[Artist Interview] 최모민 작가, 풍경을 걷는 산책자
[Artist Interview] 최모민 작가, 풍경을 걷는 산책자
  • 안소현 기자
  • 승인 2021.10.12 16: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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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트 《요괴 생활》展, 오는 15일까지
대학 시절부터 거주 지역 및 공간 관심, 인물-풍경 상호관계 탐구해와
홍제천 일대 재개발 지역 그린 '익명의 풍경' 시리즈로 첫 개인전
익명성 속 몸 숨기고 자기 존재 발화하는 동시대 청년들 그려
▲ 서울문화투데이 사무실에서 프로필 사진을 촬영하는 최모민 작가
▲ 서울문화투데이 사무실에서 프로필 사진을 촬영하는 최모민 작가

[서울문화투데이 안소현 기자] 우리는 산책을 통해 주변 환경과 직접 마주한다. 문을 열고 밖을 나서는 순간, 멀리서 지켜만 보던 세계는 직접 발 딛고 느끼는 세계로 변화한다. 풍경은 이때 토지구획의 틀 바깥으로 새어 나와 생동하게 되며, 산책자 개인의 기억과 감정에 곧바로 호소한다. 목적 없이 걷는 산책길은 세계와의 만남인 동시에 나와의 만남이기도 한 셈이다. 

산책자 최모민은 자신이 몸소 마주한 풍경을 대상으로 작업해오고 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는 홍제천 일대 풍경에 자신의 내면을 투사해 <익명의 풍경> 시리즈를 그렸다. 후미진 도시를 감싸 안는 밤의 어둠 속에서 탄생한 작품으로 익명성 안에서 구축되는 평등한 세계를 담았다. 2017년에는 해당 시리즈로 175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갖게 된다.  

한동안 도시를 소재로 작업하던 최모민은 2018년 금호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한다. 이곳에서 발견한 교외 풍경을 바탕으로 <식물 극장>, <꿈 같은 삶> 등의 연작을 작업했다. 작품 속에서 인물들은 하잘것없는 행위를 진지하게 반복하며 세계와 팽팽히 대결하는 모습을 보인다. 둘 사이의 충돌을 통해 일상적이면서도 낯설고, 웃기면서도 서글픈 정경이 화폭 위에 펼쳐진다.

현재 대학로 전시공간 아웃사이트에서 진행되고 있는 ⟪요괴 생활⟫전에서는 인물과 세계 사이의 관계가 미묘하게 변경된다. 인물로 등장하는 작가는 이제 풍경 속으로 거의 녹아 들어간다. 인물과 풍경은 거의 하나가 돼 풍경화인지 자화상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다. 

서울문화투데이는 지난 8일 최모민 작가를 만나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지금까지 그가 조우해온 다양한 풍경에 관해 들어보자. 

풍경을 소재로 계속 작업을 해왔다. 풍경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부산서 살다가 대학 입학 후 처음 서울에 왔다. 모든 게 낯설었다. 돈도 없는 학생 신분이라 사는 곳을 2년마다 옮겨야 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사는 지역과 내가 거주하는 공간에 관심을 두게 됐다. 서울은 특히 지역 내부에서도 공간이 세분된다. 강북과 강남으로 나뉘기도 하고, 강북 혹은 강남 안에서도 동네마다 분위기가 달라진다. 자본이 몰린 곳이 있는가 하면, 후미진 저개발 지구도 있다. 부산에서만 살았던 내게 이런 게 새롭게 다가와서 공간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보냈다. 그리고 내가 대학을 다닐 때는 지금과 달리 장소성을 다루는 작가가 많았다. 선배 작가들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최모민, '종이 꽃', 2021 (사진=작가 제공)
▲최모민, '종이 꽃', 2021 (사진=작가 제공)

작가 홈페이지에서 2013년 초기 연작 <조각적 풍경>을 봤다. 제작 배경에 관해 설명해줄 수 있나? 특히 조각과의 연관 관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도 페인팅을 하고 싶어서 혼자 그림을 많이 그렸다. 나는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에서 학부를 했는데, 1~2학년 때는 파운데이션 수업이라고 해서 정해진 커리큘럼을 따라야 했다. 당시 커리큘럼은 그림보다는 입체・조각・퍼포먼스 등에 더 집중돼 있었기 때문에 풍경을 소재로 비디오와 퍼포먼스 작업을 했다. 

회화는 학부 3학년 때부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심화 수업이 시작된다. 각 매체의 기술 및 특징을 배우고, 스튜디오 수업을 통해 자기 작업을 할 수도 있다. 나는 풍경을 소재로 회화를 시작했다. 직접 관찰한 풍경이 아닌, 개인적 심상을 담은 풍경이었다. 그때는 회화에 대한 이해는 없었고, 1~2학년 때 배웠던 입체・조각 및 사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작업을 했다. 

<익명의 풍경>을 설명하려면 그림의 시작인 파도 그림부터 설명해야 한다. 3학년 때 박찬경 선생님의 수업을 들었는데, 수업 중 북한미술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수십 장의 바다 그림을 봤다. 내 기억으로는 거친 파도가 휘몰아치는 바다 풍경이었는데, 그 그림에 정치적 메타포가 숨겨져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일종의 선전 그림으로, 전진하고 쟁취하여 나아가자는 의미가 담겨 있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정확하진 않다. 그 파도가 굉장히 폭력적이고 남성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연약한 파도 그림을 그려 보기로 했다. 

실제 파도의 모양이 해체되고 만들어지는 과정을 유심히 관찰하던 중에, 파도가 일정한 형태를 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연약한 파도의 모습을 그리려면 고정된 형태를 만들어야만 했다. 그런 과정에서 어떤 사물이 움직이다 멈춘 순간이 곧 조각적인 상태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런 결론이 나오기까지 아무래도 당시에 강의에 나오셨던 정서영 선생님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정서영 선생님께서는 조각을 깊게 들여다보는 작업을 하고 계신 분이었다. 

그다음이 <조각적 풍경> 연작이었다. 연기와 재를 그린 작업이었다. 파도와 같은 자연물이고 은유나 상징이 쉽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이동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파도 작업이 온전히 파도에 집중해서 파도의 도상을 재해석한 메타 파도 그림이었다면, 연기 작업의 경우는 (연기와 재에 대한 해석이 포함돼 있지만) 개인적 서사를 그림 속에 집어넣어서 당시의 고민과 갈등을 연기와 재에 투영했다는 점이 다르다. 중심 주제는 일이 벌어지고 난 다음에 남겨진 현장만 보고 사건을 유추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불에 탄 대상은 그림에서 사라지고, 재와 연기만이 남아있다. 삽시간에 흐트러지는 연기가 고체 형태로 한 곳에 남아 있는 부조리한 상황을 연출하고자 했다. 

▲최모민 작가의 파도 그림이 전시돼 있다 (사진=작가 제공)
▲최모민 작가의 파도 그림이 전시돼 있다 (사진=작가 제공)

<조각적 풍경>과 불과 1년 간격을 두고 제작된 <소년 b> 연작에서는 큰 변화가 느껴졌다. 실외 대신 실내 풍경을 다뤘고, 무엇보다 인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블라인드 뒤로 얼굴을 가린 소년을 그린 작업은 <익명의 풍경> 시리즈를 상기시키기도 했다. 작업상 변화 과정에 대해서 자세히 들어보고 싶다.

<조각적 풍경>을 끝내고 한동안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여러 가지 고민이 많았다. 내 작업이 기호와 상징으로만 이루어져 현실의 문제를 다루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때는 장소특정적 미술, 정치적 미술 같은 것이 주를 이뤘고, 무엇보다 회화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그림은 상업적 도구라는 얘기도 있었다. 무엇을 그리는가 하는 질문보다 왜 회화를 선택했는가 하는 질문에 먼저 답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림을 계속 그리기가 버거웠다. 회화로 사회에 대해 이야기 할 수는 없을까 고민하다가 일단 눈앞에 있는 것들을 그려보기로 했다.

처음 시작은 인물화였다. 하나의 인물을 두고 그 사람의 성격이나 사회적 위치 등을 생각해 습작 개념으로 그렸다. 내 주변에 있던 사람을 많이 그렸는데, 소년 b는 내가 과외를 했던 친구였다. 일주일에 두 번씩 정기적으로 만났던 키가 매우 큰 청소년이었다. 수업은 분당 정자동에 있는 한 오피스텔에서 진행했는데, 당시 그 동네에 갑자기 고층빌딩이 많이 들어섰다. 고층빌딩이 우뚝 서 있는 그 지역의 풍경과 멀대같이 키만 큰 그 청소년 친구의 만남이 흥미롭게 느껴져서 두 요소를 같이 배치하게 됐다.

도시 공간을 소재로 삼은 <익명> 시리즈로 꽤 오랫동안 작업을 했다. 인물이 아예 등장하지 않는 작업이 많고, 등장하더라도 얼굴을 지워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게 처리했다. 생각해보면 다른 작품에서도 얼굴을 선명히 그리는 편은 아닌 거 같다. 왜 익명성에 주목하게 됐나?

<소년 b>를 마치고 작업실을 구해야 했다. 자취생 신분으로 강북 변두리 동네를 옮겨 다니며 서울에 이미 7~8년 정도 거주한 상황이었다. 당시 홍제천 근처 홍연아파트에 있던 할머니 댁이 재건축으로 묶여있었다. 사람은 한 동에 한두 명만 남아있었으며, 전기도 안 들어오고, 바닥에 쓰레기도 방치돼 있었다. 내가 들어가서 개조하고 거기서 1년가량 작업과 일을 병행하며 지냈다. 낮에는 일하고, 밤과 새벽에는 작업했다. 

홍연아파트에서 생활하는 동안 동네 곳곳에 쓰레기, 나무 폐자재 등이 그대로 방치된 풍경을 봤다. 나는 그때 밤의 어둠이 황폐한 공간을 가려준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생각이 좀 다르지만, 당시에는 어둠 속에선 못 사는 동네나 잘 사는 동네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어둠으로 인한 익명성이 불공평한 세계를 공평한 상태로 전환한다는 가정을 했던 것 같다. 밤은 내게 서정적인 시간이자 사물의 거친 부분을 가려주는 상징이다. 그때부터 익명적인 상태를 가정해서 작업했다. <익명의 풍경>은 그렇게 시작됐다.  

▲최모민, '불꽃놀이', 2021 (사진=작가 제공)
▲최모민, '불꽃놀이', 2021 (사진=작가 제공)

<익명의 풍경> ‘위장술’ 연작에서는 미술사적 도상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예를 들어 <작업실에서>는 빈센트 반 고흐의 <신발>을, <식물이 된 남자>는 존 에버릿 밀레이의 <오필리아>를,  <밤이 된 남자>는 바니타스 도상을 상기시켰다. 서양미술사를 참조하기로 한 이유는 무엇인가?

미술 작업은 미술사와 무관할 수 없으며, 과거 선배들의 작업을 비틀거나 뒤집거나 혹은 이어 그으면서 진행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물이나 풍경이 미술사에서 다뤄졌던 지점을 생각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작업실에서> 같은 경우, 고흐의 <신발>을 생각하고 그린 건 아니다. 하지만 미술사적 레퍼런스를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하는 건 사실이다. 그 외에도 영화, 문학 등에서 다양한 이미지 레퍼런스를 취해 유머러스한 상황을 만들거나 하는 게 내 도구 중 하나다.

<식물 극장> 연작에서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화폭에 드러내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얼굴을 가리는 작업이 많았던 거로 기억한다. 

익명성은 내 작업을 잇는 공통된 키워드로 작업 안에서 다양한 텍스트로 지속해서 등장한다. <익명의 풍경>에선 밤의 어둠으로 익명성을 만들었다면, <돌이 된 남자>, <식물이 된 남자>, <그림자 되기>에선 인물이 돌과 식물 그리고 그림자에 몸을 숨기도록 해 인물의 정체를 식별할 수 없도록 했다. <식물 극장>에서도 이 같은 연출을 이어가 우거진 수풀과 잔가지 사이로 혹은 인물을 덮은 눈으로 인물의 정체를 감췄다. <요괴 생활>에서도 억지웃음을 짓거나 얼굴을 가리는 제스처를 취하는 인물이 대부분이다.        

▲최모민, '숲 그리기', 2021 (사진=작가 제공)
▲최모민, '숲 그리기', 2021 (사진=작가 제공)

이번에 서울시립미술관 신진미술인지원으로 아웃사이트에서 열린 전시 《요괴 생활》에서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풍경에 녹여냈다. 작품에 대해 더 설명해줄 수 있나? 

언젠가부터 나를 풍경화가로 소개해야 하는지 인물화가로 소개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인물과 풍경 가운데 무엇이 중점인지 정해야 하는 시기가 왔을 때, 나는 인물에 더 무게를 두기로 하고 자화상과 또래 청년들을 주로 그렸다. 한국이라는 사회 안에서, 그리고 서울이라는 도시 안에서 한 개인으로서의 청년을 그리고자 했다. 

<요괴 생활>은 2016년도에 홍제천을 걸으며 그렸던 <돌이 된 남자>를 시작으로 진행해 온 풍경 속 인물 컨셉 그림이다. 아마도 이 컨셉의 마지막 작업이 될 듯하다.  <요괴 생활> 작업을 하기 전까지는 풍경에 자신을 숨기고 특정한 몸짓을 통해 세상을 향해 발화하는 현대 사회 청년의 자화상을 표현했다. 아직은 현실의 영역에 존재하는 인물을 그린 것이다.

반면에 <요괴 생활>에서 인물은 요괴의 영역에 다다른다. 일본 만화에 이계(異界)의 영역을 다루는 장르물이나  남미문학의 마술적 사실주의 계보의 책들을 참고했다. 현실의 문제를 직면하고 그것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되 그 안에 조그만 비현실적인 장치를 만들어서 현실 속 균열을 만들고 싶었다. 개구리로 변신하는 종이 꽃가루, 눈물이 모여 만든 샘, 얼음이 된 사람 등이 그런 기능으로 쓰인 것이다. 한편, 풍경의 중심에 있는 인물은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 요괴이다. 요괴라 함은 자신의 의지를 떠나 이상한 능력을 갖게 된 자들을 칭한 것인데, 이는 본인의 의지와 다르게 사회에서 규정 내려진 틀 속에 갇혀버린 자를 은유 하는 텍스트이다. 이들은 서양 히어로물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고작 눈물을 흘려 샘을 만들거나 자신의 몸을 얼음으로 바꾸는 등 사회에 헌신하거나 쓰임이 있는 능력이 없는 불필요한 존재들이다. 이들이 풍경에서 벌이는 작은 소동극을 표현하고 싶었다.   

▲아웃사이트 《요괴 생활》 전시 전경 (사진=작가 제공)
▲아웃사이트 《요괴 생활》 전시 전경 (사진=작가 제공)

《요괴 생활》은 전시 구성면에서도 눈에 띄는 점이 많았다. 전시할 때 작품 설치에 개입하는 편인가?

원래 페인팅은 캔버스 안에서 완결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림 외 다른 장치에 대해서는 특별히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는 아웃사이트라는 공간의 특성 때문에 작품 설치에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아웃사이트는 회화를 걸기에는 조금 거친 공간이다. 오른쪽 방에는 주차장 셔터가 그대로 노출돼 있고, 쓸 수 있는 벽도 많지 않다. 왼쪽 방에도 건물의 빔(골격)이 그대로 유출돼 있다. 화이트큐브처럼 그림을 걸면 작품에 집중이 안 돼서 어떻게든 그림이 공간과 조화를 이룰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게 그림을 이젤째로 전시하는 거였다. 아웃사이트는 화이트큐브가 되지 '못한' 공간이다. 이젤에 놓인 그림을 그대로 전시한다면 (그림이 이젤에서 내려와 하얀 벽에 걸리는 순간 완결된다고 가정했을 때) 완결되지 않은 전시 공간과 연결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드로잉 작업도 이젤에 설치했다. 그런데 전시 공간이 화이트큐브가 아니다 보니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드로잉 액자 위에 색을 덧붙여 설치했다. 처음 시작은 단순한 드로잉 작품이었지만, 나중에는 액자까지 작품의 일부가 됐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왼쪽 방 네모난 건물 빔도 4면을 전부 가벽으로 둘러싸지 않았다. 한쪽 벽면에만 가벽을 세우고, 가벽과 액자를 연결해 일체형 프레임으로 작품을 설치했다. 

같은 소재를 다룬 목탄 드로잉과 페인팅을 같이 병치한 점도 독특했다. 앞선 작품에서도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았다. 재료를 달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요새는 사진을 최대한 참고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처음에는 사진 이미지를 많이 참조했다. 사진 이미지와 페인팅이 어떻게 다른지 고민하던 과정에서 사진을 묘사하는 방식으로는 좋은 회화가 나오지 않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재료를 달리하는 이유는 사진 이미지를 회화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회화적 호흡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결과적으로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작업 결과물이 나왔다. 나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준비과정으로써 작은 목탄 드로잉, 수채화 드로잉, 작은 유화 그림을 그린다. 한 단계씩 진행하면서 불필요한 부분은 삭제하고 어떤 부분은 색과 형태를 더 강조하기도 하며 내가 표현하고 싶은 이미지를 견고하게 만들어나간다. 전시장에서는 이 결과물들을 제작 순서대로 배치하기보다는 마치 콜라주를 하듯이 전시장의 환경에 따라서 재배치했다. 과정으로써 진행한 작품들도 하나의 결과물로 기능하길 원한다. 

▲최모민, '새똥 괴물', 2021 (사진=작가 제공)
▲최모민, '새똥 괴물', 2021 (사진=작가 제공)

얼음과 불꽃을 사용한 작품이 많았던 거로 기억한다. 전 작품에서도 식물, 물, 불같은 기본 원소를 사용한 작업이 많았던 것 같다. 의도한 것인가? 

산책하면서 실제로 마주한 풍경 속의 사물을 주로 선택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본 원소가 많이 사용된 것 같다. 나는 발견한 대상이 어떤 의미를 만들어내는지 생각하며 작업한다. 예를 들어 얼음 작업 같은 경우에는 유령 사과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유령 사과는 나뭇가지에 매달린 사과 모양의 얼음이다. 얼음 내부의 온도가 높아지면 사과 알맹이는 액체가 돼 빠져나가고, 사과 형태의 얼음만 남게 된다. 외부 형태는 본질과 유사하지만, 얼음 내부는 텅 비어있다. 본질은 없어진 어떤 상태를 그리면서 ⟪요괴 생활⟫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지금 구상 중인 작업이 있나?

곤충을 소재로 한 작업을 준비 중이다. 작년에 아마도예술공간에 전시했던 <양배추와 곤충> 시리즈의 연장 선상으로 관찰자 시점에서 곤충을 그려보려고 한다. 레지던시 생활을 하면서 의도치 않게 거친 자연 속에서 생활하게 됐다. 식물과 곤충을 쉽게 접하는데, 때로는 동물 사체나 서로 잡아먹는 곤충 등 야생적인 상황도 마주치게 된다. 인간의 삶 속에서도 이렇게 야생적인 상태를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곤충을 소재로 인간을 은유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

▲최모민, '얼음사람 만들기', 2021 (사진=작가 제공)
▲최모민, '얼음사람 만들기', 2021 (사진=작가 제공)

최모민(b.1985)은 서울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부산에서 자랐다. 이후 서울로 이사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예술사 및 평면조형 전문사를 졸업했다. 2017년 175갤러리에서 열린 《익명의 풍경》전을 시작으로 풍경을 소재로 한 회화 작업을 통해 동시대 청년의 현실을 다양한 방식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후에도 2018년 은평문화재단에서 기획한 《태양 아래》, 2019년 각각 원앤제이 플러스 원과 산수문화에서 개최한 《식물 극장》, 《꿈 같은 삶》 등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다. 《홀로 작동하지 않는 것들》(아마도예술공간, 2020), 《이름 없는 말들》(금호미술관, 2019), 《의정부예술의전당 신진작가전》(의정부예술의전당, 2018) 등 단체전에도 여러 번 참여했다. 금호창작스튜디오 14기 입주작가 이며, 2019년에는 서울문화재단 시각예술 지원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