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희 지회장, 세상을 앞서보는 ‘좋은 선수’
정창희 지회장, 세상을 앞서보는 ‘좋은 선수’
  • 이은영 대표기자
  • 승인 2010.01.06 12: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종로구의 명실상부한 '사랑의 전도사'

 

"추운 겨울, 따뜻한 커피나 마시며 얘기하죠." 으레 높으신 분의 인터뷰 요청은 말투 하나도 조심스럽기 마련이다. 그런데 웃음을 머금은 인상만큼이나 다정다감한 말투에 인터뷰라기보다 데이트를 하는 심정으로 종로구 새마을회 정창희 지회장과 만났다. 사실 정창희 회장은 지난해 서울문화투데이(이하 서문투)가 창간 1주년을 기념하여 선정한 ‘공로상’ 수상자. “상을 받아야 할 서문투에서 되레 상을 주니 감사했다”며 겸손해 한다. 문화예술과 관광분야에 많은 관심과 아이디어, 애정을 가진 그의 수상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는 전설적인 아이스하키 선수 웨인 그레츠키와 닮았다. 그레츠키는 ‘성공 비결'을 물으면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나는 퍽이 가 있을 곳에 미리 가 있어요." 다른 선수들이 퍽을 따라 움직이는 데 반해, 퍽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 나갈지 예측하는 것. 그래서 그는 '좋은 선수'가 됐다. 강단 있는 성격만큼이나 날카로운 예측으로 한발 앞서 세상을 내다보는 ‘좋은 선수’, 종로구새마을회 지회장 정창희를 만나보자.

 

문화계에 관심이 많으시다고 들었어요.

 

 

관심은 많은데 공연, 전시장을 자주 찾지는 못해요. 생활 자체가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어야 하니, 정작 취미생활로 보는 건 일 년에 한두 번 될까.

너무 솔직하게 말하시는 거 아니에요? (웃음) 문화계 행사는 꼭 참석하시잖아요.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이에요. (웃음) 중요하지 않은 자리가 없죠. 하지만 참석할 때마다 ‘문화’라는 단어를 한두 가지의 키워드로 국한해 연상하고 고집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요. 그래서 문화란 무엇인지, 문화의 역할과 기능은 무엇인지, 시민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데 노력해왔어요.

항상 노력하시는 모습에 반해, '공로상'을 드리게 됐어요.

서문투가 첫돌을 맞이했다고 해서 갔는데, 기념비적인 날에 나에게 공로상을 주는 거예요. 나는 문화란, 다양성을 인정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이 수반될 때 빛을 발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문화와 시민을 잇는 교두보인 서문투에 미력하게나마 도움을 줬던 건데, 상 받아 마땅할 곳에서 되레 상을 주니, 감사했죠. (웃음)

아직 부족한데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종로문화원 부원장으로도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지난해 종로문화관광협의회가 생겨, 종로문화원에서 하던 일을 옮겨갔어요. 헌데 여전히 관광 상품화를 경시하는 모습이 보여요. 종로 냄새가 물씬 풍기는 관광 상품을 개발해야 하는데 현재 나와 있는 관광 상품들은 판매가는 물론 단가 자체도 비싸고 제작도 어렵거든요. 라이프 사이클도 짧고요. 과연 어느 정도의 경쟁력이 있나, 고안해서 만드는 건 실제 종로 사람들인 만큼 낮은 단가 비용에 대량생산할 수 있도록 변해야 한다고 봐요.

예를 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경연대회를 여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겠죠. 기념품 하나 만들었다는 실적 위주보다 우리 문화를 가깝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앞서 솔직하신 성격이라고 하셨지만, 쿨하게 자성의 목소리를 내주셨어요.

종로문화원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면 반성도 해야죠. 다만 종로문화관광협의회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사업들이 관광 중심이라는 게 염려가 돼요. 역사와 전통, 문화유산을 지키려는 노력과 관광상품화하려는 노력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종로문화원과 종로문화관광협의회가 공조, 협조체제가 되어 힘을 합쳐야 하겠죠.

저희가 지금껏 선보인 공연이나 행사도 시연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과연 티켓료만큼의 전문성을 갖춘 공연인지, 공연자의 재능이 제대로 발휘된 공연이었는지, 아니면 문화예술의 단막을 보존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는지, 모두 고려되야 해요. 관객에게 자신있게 공연을 보러오라고 말할 수 있는 당당함이야말로 가장 큰 힘이구요.

얼마 전 김덕수 선생님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어요. '예인'으로서의 자신감이 중요하다.

전통 문화를 천시, 경시하는 경향이 우리 저변에 아직도 흐르고 있지만 시대가 달라졌듯, 성숙되고 보급화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어요. 이젠 전문성, 기능성 있는 사람들이 인정받아 사회의 한 부류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해요.

한편으로 김덕수 선생님처럼 문화의 문을 열어나가는 지성인, 지도자들의 사회적 의무도 당연하구요. 독보적인 길을 걷는 자로서 먼 곳에 있느냐, 권위를 버리고 대중적으로 가까워지느냐… 어느 것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팬들이 많아지길 바래요. 인정을 받기 위한 업그레이드는 필수구요.

공연자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무언가를 발견하고 끄집어내는 것이 바로 팬이죠.

근데 이름난 공연장치고 쉽게 발길을 이끌 수 있는 곳이 없어요. 공연을 보러 가려면 가는 시간, 장소 모든 걸 고려하고 가는데, 외떨어진 곳에 덩그러니 있어요. 주변에 아무것도 없으니 쉽게 발길이 안 떨어지는 것도 당연하죠. 팬을 만들고 싶어도 실질적인 환경 조성부터가 안 되어 있어요. 우리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대학로만 하더라도 접근성으로 따지면 최고지만 너무 고가여서 건물 하나 짓기도 어려워요.

그렇다면 어디가 좋을까요?

'종로5가'도 좋겠죠. 특히 청계천이라는 지형적 메리트도 있고요. 즉, 관객의 모든 취향과 니즈가 고려되고 다양하게 충족될 수 있는 환경조성이 필요해요.

국악로에 많은 국악인이 계시니, 일석이조 아닐까요. 공연을 하는 사람도 있고, 보러 오는 사람도 있고, 무엇보다 상권도 좋으니까요.

 

 

문제는 폐쇄적이라는 거예요. 우선 강습부터가 단독으로 이뤄지고 노출의 기회가 없어요. 관광객 유치할 수 있는 환경이 돼도 볼 수가 없으니, 이게 문제죠. 서울시위원으로 있을 때, 종묘 뒤 녹지 공간에 10m 정도의 공연 마당을 만들었어요. 비록 내가 목표한 공연장으로서의 모습은 갖추지 못했지만 앞으로 2~3달러 정도로 문화생활을 즐기고, 전통 음식도 즐길 수 있는 멀티플렉스, 공동공연장으로 거듭났으면 해요.

외국인에게도 친숙한 아리랑이 가장 먼저 불리면 좋겠네요.

좋네요. (웃음) 국악의 1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아리랑을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번역해 그 나라 사람들에게 보급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가사를 몰라도 아리랑을 들으면 선조들의 슬픔과 애환이 느껴지고 곡조에 따라 어깨춤이 절로 나기도 하니까요.

말씀하셨듯이 서울시위원으로 활동하셨는데,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은 언제세요?

사람이라는 건 어떻게 쓰일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나는 아랫도리를 가리지 않고 동네를 뛰어다녔던 시절부터 종로에서 살았어요. 그렇게 종로인의 정신을 간직하며 종로의 영광과 쇄락을 모두 지켜봤죠. 나라와 시민을 위해 일한다는 건, 편협한 사고를 가져서는 안 돼요.

나도 종로구의 주민이지만, 소외받고 알아주는 이 하나 없다면 얼마나 고독하고 괴롭겠어요. 어우러져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지방자치단체의 과제이며 역할이에요. 예산 얼마를 들여 도로를 뒤집어엎고 고쳤다해도, 중요한 건 무언가를 했다는 팩트가 아니에요. 신간이 흘러도 시민이 '만족'하는 정책, 그게 중요한 거죠.

사실은 1980년대 후반, 종로 5, 6가 등 전 세대를 대상으로 생일, 결혼기념일 등을 파악해 지역주민 집을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꽃 한 송이를 선물하셨다는 이력이 가장 궁금했어요. 로맨티스트라고 생각했거든요. (웃음)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죠. (웃음) 많은 분들이 내가 배고픔을 모르고 자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솔직히 내 세대의 고생을 부모님께서 미리 해주셔서 남들보다는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부모님의 고생을 보고 자랐기에 자중자애 하는 인격을 갖추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의 벽을 허물고자 꽃을 드리기 시작했어요. 받는 이에겐 꽃 한 송이에 불과하지만 그 꽃 한 송이를 전달하려 한 집 한 집, 5분이고 10분이고 걸어야 했어요. 그렇게 집집마다 찾아가 꽃을 전할 때, 잠시나마 미소짓는 주민들의 모습에 덩달아 행복했고요.

하루에 몇 송이나 선물하셨어요?

정창희 : 비가 오던 눈이 오던 공휴일이건 아니건, 많게는 15~20송이도 선물해봤죠. 적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도 않아요. 한번은 어떤 사모님께 드린 적이 있는데, 그러시더라고요. "남편도 안 주는 꽃을 정창희 씨에게 받았다"고. 20년이 지나도 그 얘기를 하셔서 부끄럽기도 하고, 그때 느꼈던 행복을 다시 느끼기도 하고. 고맙죠, 기억해주셔서. (웃음)

그 이후 종로구의 명실상부한 '사랑의 전도사'로 통하신다고 들었어요. 비결이 뭔가요?

'사랑의 전도사'. 낯간지러운 말이지만 행복한 말이네요. (웃음) 선친께서 항상 '진인사대천명'이라 하셨어요. 정말 덕을 쌓고 살려고 노력하니 나도 행복해지고 좋은 일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항상 사람들의 마음을 주워 담을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해요. 박사, 석사학위를 취득하려 했던 것도 보다 전문적인 지식과 생각으로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였어요. 그게 비결이라면 비결이겠죠. (웃음)

마지막으로 지역주민을 위해 힘쓰고 있는 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려요.

 

 

요즘 공직자들을 보면 마치 자기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주는 것처럼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는데 그것만큼 보기 싫은 것도 없어요. 최근 발표되고 있는 정책만 보아도 주민의 편의를 가장 우선시하고 있는데 공직자가 주인이 되면 안 되죠. 언제까지나 주인은 주민이니까요. 어떻게 하면 보다 주민의 마음을 충족시킬 것인지 고민하고 노력하는 공직자가 나오길 바라고, 나부터 이런 마음을 꼭 지키리라 약속해요.

나이 이상의 활력과 위트를 가진 정창희 지회장과의 2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 버렸다. 솔직히 인터뷰 내내 종로구새마을회 지회장 정창희와 인간 정창희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컸다. 현 세태를 맹렬하게 꼬집을 때는 매의 눈이 되고, 남다른 패션 감각만큼이나 세련된 위트와 매너로 미중년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아직도 뜨겁고, 아직도 배고픈 그의 청춘에 감탄을 감추지 않으며 훗날 ‘멋지게 나이 먹는 법’이라는 책이라도 한권 내줬으면 하는 소망을 담아 펜을 놓는다.

인터뷰 이은영 대표기자 young@sctoday.co.kr
정리 정혜림 기자 press@sctoday.co.kr
사진 김형관 객원사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