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Interview]악단광칠 “신명 나는 현대적 굿판으로 ‘모십니다’”
[Culture-Interview]악단광칠 “신명 나는 현대적 굿판으로 ‘모십니다’”
  • 이은영 발행인‧진보연 기자/김재성 작가
  • 승인 2021.10.13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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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광복 70주년에 밴드 결성
황해도굿ㆍ서도민요에 현대적 감각 입혀…‘영정거리’ 유튜브 조회수 130만 돌파
국악기 연주자 6명(김약대, 이만월, 그레이스박, 원먼동마루, 전궁달, 선우바라바라바라밤)과 3명의 소리꾼(홍옥, 유월, 명월)
우리 음악이 고통 위로해 주고, 용기와 희망 전달하기를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발행인ㆍ진보연 기자/김재성 작가]무가(巫歌)는 굿에서 비롯된 음악이다. 굿이라고 하면 흉악한 귀신을 부르는 의식으로 여겨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겠지만, 굿 음악은 귀신에게 바치는 노래인 동시에 인간을 위한 노래다. 

한국에 남아있는 무가는 대체로 공통된 지점을 지니고 있기도 하지만, 각 지역만의 차이점과 매력도 뚜렷하게 존재한다. 신을 축원하는 기능도 하지만, 이 외에도 굿판에 모인 단골들을 축원하고 즐겁게 하기 위한 노래의 기능도 한다. 무가는 대개 흥겹고 오락적 성격을 갖는 것이 많고, 때에 따라서는 민요화한 것도 있다. 

▲창작 국악밴드 ‘악단광칠’
▲창작 국악밴드 ‘악단광칠’

악단광칠은 황해도 무가를 경쾌하게 하지만 응집력 있게 풀어낸다. 현대의 대중음악처럼 빠르고, 간결하다. 전통 악기와 우리 소리만으로 서양 악기와 기계음에 익숙한 대중의 귀를 사로잡는다. 굿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더라도 우리는 악단광칠의 음악이 낯설지 않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고 신이 나는 것은 이 무가의 감성이 우리 몸속 어딘가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악단광칠은 2015년 정가악회에 모인 김약대(대금), 이만월(피리·생황), 그레이스박(아쟁), 원먼동마루(가야금), 전궁달(타악), 선우바라바라바라밤(타악) 등 국악기 연주자 6명과 3명의 소리꾼(홍옥, 유월, 명월)으로 꾸린 국악밴드다.

전통을 ‘재해석’해 ‘대중’에게 전하는 것을 기치로 내건 악단광칠은 국악계에서도 낯설고 생소한 두 장르, 황해도굿과 서도민요를 결합했다. 악단광칠의 단장 김약대는 “서양화와 현대화의 차이는, 현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이 음악 왜 만드는지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라고 말하며 “현대를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현대성을 토대로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자 한다면, ‘이 음악을 왜 하는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등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시도의 의미는 사라지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이들에게 국악은 결국 도구이자 주체이다. 

▲악단광칠의 WOMEX19 공연 모습 ⓒ Jacob Crawfurd
▲악단광칠의 WOMEX19 공연 모습 ⓒ Jacob Crawfurd

전통악기만 사용해 서양 록 같은 국악을 들려주는 악단광칠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2019년 10월 핀란드 탐페레에서 열린 세계 최대 월드뮤직 축제 ‘워멕스(WOMEX)’는 이들의 음악을 ‘코리안 샤머닉 펑크(Korean Shamanic Funk)’로 소개했다. 뉴욕타임스에서는 “케이팝과 전통음악을 결합한 아찔한 쇼 밴드”라며 극찬했다. 또한 이들은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이들은 벨기에, 스페인(마드리드ㆍ산 세바스티안), 런던 등 유럽 4개 도시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새로운 것을 자유롭게 만들려면, 본질인 전통을 제대로 하면 된다고 이들은 말한다. 본지 서울문화투데이는 악단광칠을 만나 추구하는 음악 속 전통과 새로움은 무엇인지 들어봤다. 남영동 연습실에서 진행한 인터뷰는 시종일관 솔직하고 유쾌하게 이어져, ‘악단광칠의 에너지’를 가득 채우고 돌아왔다.

간단한 멤버 소개를 부탁한다.

악단광칠에서 대금을 연주하는 김약대라고 한다. 악단광칠에서 노래하는 명월이라고 한다. 악단광칠에서 함께 노래하는 유월이고, 이 팀의 막내다. 아쟁 하는 그레이스박이다. 

팬데믹으로 모두가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온ㆍ오프라인을 아우르며 무대를 지속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 전후로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은 무엇인가.

(김약대) 우리가 가장 피부로 느끼는 건 이제 카메라를 보면서 공연을 하게 됐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그런 경험을 한 적이 거의 없었던 터라, 처음엔 많이 낯설기도 했다. 카메라 렌즈 너머의 반응을 막연히 상상하면서 공연하는 일이 어렵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무대도 반복되다 보니 익숙해지는 것 같다. 특히 노래하는 친구들이, 멀리 있는 관객들과 음악을 통해 가깝게 소통할 수 있는 노하우를 터득하며 발전되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레이스박) 관객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끼는 요즘이다. 얼마 전 울산 공연 당시, 많지 않은 수의 관객들이 자리해주셨는데 그분들의 호응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는 ‘실제’ 관객이라 그 감동이 더 컸다. 무대가 있으면 그 맞은편에 관객이 있는 것을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김약대) 현장에서 관객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받는 것과 화면을 통해 가상의 관객을 예측하는 것은 확실히 다르다. 더불어 온라인 송출이나 방송을 위한 공연의 경우, 화면으로 보이는 각도나 카메라 연출 등이 따로 있기 때문에 의식이 어쩔 수 없이 의식이 된다. 보이는 모습도 신경이 쓰여서 멤버 모두 살도 좀 빼고 있다.(웃음)

▲악단광칠
▲(왼쪽부터)악단광칠 그레이스박(아쟁), 명월(보컬), 김약대(대금), 유월(보컬) ⓒ김재성 작가

■확장된 국악의 현대화…현재의 새로움이 미래의 전통

‘악단광칠’은 익히 알려져 있듯 광복 70주년이 되던 해(2015년) 결성되어 붙은 이름이다. 처음 이 밴드를 결성하게 된 것은 누구의 아이디어이며 어떻게 이 멤버가 모이게 됐나?

(김약대) 원래 정가악회 멤버들이었다. 2014년에 서울남산국악당에서 ‘평롱(平弄)’이라는 상설 공연을 하던 중에, 정가악회가 예비 사회적 기업에서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이 되면서 사람들을 좀 더 모으게 됐다. 실력 있는 사람들과 함께 공연을 만들고자 했고, 새로운 이들과 함께 ‘평롱’을 치렀다. 
공연 이후, 좀 더 커머셜한 감각의 음악을 만들 순 없을까 고민을 시작했다. 이전에도 국악의 현대화를 추진했지만, 더욱 확장된 형식이 필요하다는 것에 의견이 모였다. 기왕 만들 거 같이 연주했던 사람들과 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당시의 멤버를 토대로 ‘악단광칠’ 멤버를 꾸리게 됐다. ‘평롱’을 준비하면서 일차적으로 오디션을 봤었는데, 꽤 많이 지원해주셨다. 대금만 빼고.(웃음) 대금은 지원자가 없어서 여름휴가도 못 가고 혼자서 공연을 계속해야만 했다. 

▲악단광칠 유월
▲악단광칠 유월 ⓒ김재성 작가

오디션에 어떻게 지원하게 됐는지, 당사자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가장 최근에 들어온 유월 씨부터 말해달라.

(유월) 오디션 당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급하게 준비를 하다 보니, 가서 부를 노래들만 연습해갔다. 만약 댄스라든지 다른 개인기를 미리 말해줬다면 따로 준비를 해 갔을 텐데, 그땐 과제곡 두 개랑 자유곡 하나 이 정도만 준비했다. 자유곡은 내가 서도민요 전공이라 <난봉가>와 <자진난봉가>를 불렀다. 과제곡은 악단광칠 2집 수록곡 중에 <히히>라는 곡 가운데 월선 언니가 불렀던 솔로 부분 카피와 악보 시창을 준비해갔다.

이 팀에 왜 들어오고 싶었나.

(유월) 나는 월선 언니의 빈자리를 대신해 지난 6월 ‘악단광칠’에 합류하게 됐다. 기쁘기도 했지만, 이미 정착된 팀에서 빈자리의 역할을 잘 메꿔 나갈 수 있을까, 뭔가 새로운 색깔을 입힐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오디션 전에 이 고민에 대한 확신을 만들 시간이 없어서 일단 부딪혀 보기로 했다. 
지원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활동의 다양성이었다. 민요 전공은 판소리나 다른 전공에 비해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국립국악원이나 창극단 등에서 활동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특히 경기민요보다 서도민요는 더 국한되어 있다. 더불어, 다른 사람들은 어떤 음악적인 생각을 가지고 창작 활동을 이어나가는지도 너무 궁금했다. 많은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아 함께하고 싶었다. 

▲악단광칠 명월 ⓒ김재성 작가
▲악단광칠 명월 ⓒ김재성 작가

명월 씨는 언제부터 함께했는지?

(명월) 팀이 결성되기 직전인 2015년, 정가악회로 처음 함께하게 됐다. 판소리를 전공했고 시험도 판소리로 봤다. 사실 ‘악단광칠’의 음악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고, 정가악회의 음악만 상상하고 들어왔다. 극, 콘서트 등 다양한 무대 활동을 하니 나도 전공인 판소리를 통해 다른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악단광칠’이라는 팀을 만들 거라 하셔서 솔직히 처음엔 고민을 많이 했다. 하고 싶지 않다기보다, 서도민요나 굿 음악은 제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라 ‘내가 해도 되는 영역일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김약대) 성당을 다니고.(웃음)
(명월) 맞다. 종교적인 부분도 있었다.(웃음) 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부딪히는 부분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같이 음악을 하는 과정들이 너무 재밌었다. 어떤 걸 하는지보다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했던 것 같다. 그래서 계속하게 됐다. 판소리를 전공한 내가 서도민요를 엄청나게 잘할 수는 없을 거고, 굿 음악 역시 아무리 열심히 흉내를 내도 미흡한 점이 있을 테니 그보다는 나만의 색깔로 그것들을 풀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레이스박은 정가악회 단원으로 시작했지만, 악단광칠로 팀의 색깔이 바뀜에 따라 연주 스타일 등에 변화가 필요했을 텐데?

(그레이스박) 주변에 정가악회에 다니던 친구가 있어서 이 단체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항상 들어오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자리가 나지 않아 다른 단체에서 활동하다가, 공고가 나서 시험을 보게 됐고 그렇게 ‘평롱’ 공연을 잘 끝냈는데, 갑자기 ‘악단광칠’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됐다. 나도 처음엔 많이 당황했다. 음악 자체도 낯설뿐더러, 서도 민요를 연주하기 위해선 내가 몇십 년 동안 해오던 아쟁 조율법과는 전혀 다른 조율법을 새로 익혀야 했다. 하면서도 너무 어색해 이게 아쟁이 맞나 싶었다. 그냥 손에 익을 때까지 연주하며 서서히 적응했던 것 같다.
이 악기가 이런 조율이 될 수 있었던 건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있었을 것이고, 지금 내가 하는 조율법 역시 지금은 낯설고 새롭지만, 나중에는 전통이 되리라 생각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간다는 생각으로, 지금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새로운 음악적 시도, 동력은 ‘전통’

정가를 하면서 판소리를 하는 경우는 봤어도, 민요를 하는 경우는 처음 본 것 같다. 음악적 성격부터 굉장히 다른데 이에 대한 괴리는 없었나.

▲악단광칠 김약대 ⓒ김재성 작가
▲악단광칠 김약대 ⓒ김재성 작가

(김약대) 말씀하신 것처럼 정가는 전통 중의 전통인 동시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이다. 정가악회는 수많은 세월 동안 선

배들은 정가를 자기만의 스타일로 다져놨고, 우리는 거기 올라타기만 한 것이다. 애당초 정가악회를 만들었을 때 선배들은 ‘전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꽤 오랫동안 여러 방향으로 해왔던 것 같다. 새로운 것을 만들긴 할 건데,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려는 시간을 길게 깊게 가졌다고 생각한다. (선배들이) 정가와 같은 전통 음악들을 오랫동안 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건 아마 더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각자의 분야에서 오랜 시간 정진해 온 나를 비롯한 멤버들 역시, 이제는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공통된 뜻이 있었다. 재밌는 것, 새로운 것을 하자는 의견에 다들 동의했다. 하나의 새로운 음악을 만들기 위해 어떤 소리가 필요한지, 우리가 뭘 갖고 있는지 고민했고 의견이 모이는 대로 바로바로 음악으로 만들게 됐다. 
(그레이스박) 우리가 하는 음악의 성격이 바뀌면서, 정가악회가 추구하는 정가의 뜻에도 변화가 생겼다. 바른 노래를 뜻하는 정가(正歌)에서, 노래에 여러 가지 많은 감정, 의미를 담는다는 취지에서 뜻 정(情)으로 바뀌었다. 좀 더 포괄적인 의미의 정가(情歌)를 하게 된 셈이다. 

밴드가 시작된 정가악회는 국악의 ‘서양화’가 아닌 ‘현대화’를 추구하는 국악단체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김약대) 이 부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다. 예전에 논문을 준비하며 한예종 전지영 교수님의 논문을 보게 됐는데, 당시 교수님은 현대화와 대중화를 구분하셨다. 1950~60년대 국립국악원 및 서울대학교 국악과를 중심으로 한 주류 국악계와 서양음악 작곡가 및 기타 문화예술 관계자들의 논의 과정을 현대화의 과정이라 정의하셨다. 또한 퓨전국악그룹 1세대 슬기둥의 음악 등을 통해 전통음악의 현대화와 국악의 대중화가 동시에 일어났다고 보셨다. 이러한 정리가 나에겐 도움이 많이 됐다.
서양화와 현대화의 차이는, 현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이 음악 왜 만드는지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다. 현대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 자체로서 현대성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현대성을 토대로 뭔가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자 한다면, 좀 추상적일 수 있지만 ‘왜?’라는 끊임없이 던지고 답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음악을 왜 하지?’, ‘이 음악에서 뭘 얘기하고 싶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음악이 세상에 어떤 이로움을 줄까?’와 같은 것들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것 같다. 이 부분의 답이 확실히 찾아지는 것이 현대화의 관건이지 않을까 싶다.

■“생소함은 대중을 만나 희소성의 가치를 만든다.”

국악의 현대화와 대중화를 위해선 우리에게 좀 더 친근한 지역의 음악을 활용하는 것이 더 쉬운 길이었을 텐데, 국악계에서도 낯선 서도민요(평안도ㆍ황해도)와 굿 음악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김약대) 우리가 시작할 당시만 해도, 서도 민요와 황해도 음악을 하는 팀이 없었다. 중ㆍ고등학교에 다닐 6년 동안 서도 민요는 딱 한 학기를 배웠다. 가장 짧은 교육 과정이었던 것 같다. 대학에 와서 민요에 대한 수업이 있어서 수강신청을 했지만, 그 비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도음악과 범패 이 두 음악은 국악을 그렇게 오랫동안 공부했는데도 실제로 접한 적이 거의 없었다. 
너무 생소하기 때문에 처음엔 이걸 가지고 음악을 만들기는 어려울 거로 생각했는데, 반대로 생각해보니 우리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생소한 음악이라 새롭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생소함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음악으로 만들다 보면, 지금껏 다른 팀들이 했던 음악과 다른 창작물이 나올 거란 기대감이 생겼다. 차별성과 희소성. 이게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악단광칠의 단독 콘서트 공연 모습
▲악단광칠의 단독 콘서트 공연 모습

선글라스에 핫핑크색 작은 갓, 족두리가 돋보이는 무대의상은 파격과 언밸런스를 오가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명월) 처음 무대의상을 보고 ‘아, 이거 그만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웃음) 머리엔 얼굴만 한 꽃을 달았고, 화장도 처음엔 특이해서 혼란스러웠다. 가족들이 보러 오는데 어떡하나 걱정도 많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이 지나가니까 오히려 의상을 제대로 갖추지 않으면 자신감이 떨어지는 걸 느꼈다. 꽃을 달고 모자를 써야 진짜 명월이가 된 것 같고, 음악에 더 몰입하게 된다.
(그레이스박) 독특함에만 중점을 둔 것 같지만, 의상에는 다 의미가 담겨 있다. 서도지역의 굿과 민요를 베이스로 시작한 팀이다 보니 의상도 무녀의 차림에서 착안해왔다. 무녀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중간자적 존재, 여성도 남성도 아닌 중성이다. 그래서 여성과 남성의 장신구가 함께 존재한다. 의상의 언밸런스함도 거기서 나온 것이다. 이 컨셉은 계속 가져가려고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 

최근 ‘조선팝’ 열풍의 선두에 서 있는 그룹들이 대부분 국악(기)와 서양 악기의 조화로 새로운 음악을 선보이지만, 악단광칠은 전통악기로만 음악을 선보인다. 그룹 색을 확실하게 드러낼 수 있지만, 서양 악기에 익숙해진 대중의 귀를 설득하기엔 어려움도 많을 것 같다.

(김약대) 특정 연령층에 대한 타겟팅은 없었지만, 대중에게 익숙한 사운드를 내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많든 적든 그들이 즐기는 음악의 장르가 다를 뿐이지, 선호하는 소리의 편성들은 비슷할 것 같았다. 연령대를 아우르며 보편적인 취향을 만족시키는 것이 사실 제일 어렵다.
다른 멤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국악기만 써야 한다고 고집하는 입장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약 10년 동안 전통 음악만 했듯이, 지금은 그걸 좀 밟아야 하는 과정인 것 같다. 이 악기가 뭘 얘기하는 건지 좀 정확하게 알게 된다면, 그걸 해치지 않는 상태에서 대중적으로 익숙한 사운드를 더하는 시도도 가능하지 싶다. 새로우면서도 전통의 바탕에 현대성이 부여되는 길이 있지 않을까 계속 고민하는 과정에 있다.

▲악단광칠 그레이스박 ⓒ김재성 작가
▲악단광칠 그레이스박 ⓒ김재성 작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굿 음악과 록이 결합된 새로운 장르 ‘코리안 샤머닉 펑크(Korean Shamanic Funk)’에 주목하고 있다. 음악을 대하는 국내와 해외의 분위기가 조금 다를 것 같은데 어떠한가.

(그레이스박) 오히려 활동 초반에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가능성을 봤다. 우리나라에서는 굿 음악을 한다고 하니 아무래도 선입견이 있었다. ‘너네 이런 걸 하면 어떡하냐’라고 질책하는 분들 있었다. 그런데 해외에 나갔을 때 우리 무대를 열성적으로 즐겨주시고, 음악에 환호해 주시는 외국 팬들의 모습에 희망을 품었던 것 같다. 

<영정거리> 유튜브 조회수 130만은 악단광칠의 인기를 짐작게 한다. 팬카페, SNS 등을 통해 팬들과 자주 소통하고 있는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게 언제 실감이 나는지.

(김약대) 국내에선 공연이 대개 지방 문화회관에서 진행되다 보니 가족 단위가 많다. 올해 7월에 단독 콘서트를 하긴 했는데, 코로나19가 4단계로 접어들던 시기여서 관객들을 많이 못 모셨다. 사실 1집의 영정거리가 온스테이지에서 어느 정도 유명해진 다음에, 어떤 사람들이 우리를 찾아올까 궁금했는데 여러 상황으로 인해 확인을 못 하게 되어 아쉬웠다. 댓글로는 약간 짐작하고 있다. 전국 곳곳을 돌며 공연을 하다 보니, 특정 지역에 가면 항상 오시는 분들이 계신다. 고정 팬들의 규모가 엄청나진 않지만, 우리의 공연을 기다려주시고 찾아와주신다는 게 정말 감사한 일이다.
무대 위에서 가장 실감하게 되는 경우는 사실 따로 있다. 곡 소개를 따로 하지 않고 바로 연주가 시작됐는데 객석에서 뜨거운 반응이 전해졌을 때. 우리의 음악을 알고 있고, 그 노래를 기다렸다는 마음이 느껴져서 뿌듯하고 행복하다. 
(명월) 무대에서도 그렇지만 주변의 반응을 통해서도 느끼는 것 같다. 가끔 지인들이나 친척들한테 ‘지금 어딜 갔는데 이 음악이 나온다’ 혹은 ‘내 친구가 악단광칠 팬이래’ 같은 연락을 받는다. 국악은 즐기는 사람들이 한정적이다 보니, 공연을 해도 지인들이나 소수의 마니아 층만 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대중들이 내가 하는 음악을 들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렸을 때 막연한 꿈으로 ‘사람들이 내 음악을 들어주면 좋겠다’라고 상상은 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주변 반응을 통해, 국악에 큰 관심이 없어도 국악을 듣는 시대가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음악으로 건네고 싶은, 위로와 공감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음악적 시도가 있다면?

(김약대) 초반에 악단광칠을 만들면서 바호폰도 탱고 클럽(Bajofondo Tango Club)을 많이 떠올렸다. 드럼 세트와 베이스 기타가 있고, DJ가 일레트로닉 음악을 섞어서 전체 음악을 구성한다. 아까 잠깐 언급한 바와 같이, 언젠간 서양악기도 사용해 보고 싶은데 특히 일렉트로니카 장르의 사운드를 우리 세트에서 한번 구현해 보고 싶다. 사람들이 듣고 편하고 신나게 즐길 수 있는 것. 그러면서도 정체성을 잡을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그레이스박) 평소에 지방 공연이 많다 보니 차 안에서 친구들이 트는 음악을 자주 듣게 되는데, 힙합을 좋아하는 멤버들이 꽤 있다. 힙합을 듣고 또 따라 하는 걸 보면서 함께 뭔가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요즘 하고 있다.
(유월) 1집의 ‘영정거리’ 같이 중독성 있으면서도 분출이 아닌, 정제된 카리스마를 가진 곡을 하고 싶다.
(명월) 나는 반대로 극도의 분출을 담은 곡을 해보고 싶다. 리드미컬한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왼쪽부터)악단광칠 그레이스박(아쟁), 유월(보컬), 명월(보컬), 김약대(대금) ⓒ김재성 작가

어떤 밴드로 기억되고 싶은가.
(명월) 스트레스를 받을 때, 너무 힘들고 속상할 때 생각나는 음악이었으면 좋겠다. 매일 음악을 듣지만, 다른 장르의 음악이 갑자기 듣고 싶어질 때는 힘들고 탈피하고 싶을 때인 것 같다. 우리 음악이 용기와 희망이 되었으면 한다.
(유월) 국악밴드 하면 바로 생각나는 팀이 되길 바란다.
(그레이스박) 국내에서 인기가 많은 것도 좋지만, 국악을 해외에 알리면서 느껴지는 뿌듯함은 또 다른 기쁨인 것 같다. 현재 큰 반향을 일으키는 케이팝뿐만 아니라 케이컬쳐로 우리 음악을 세계에 전하고 싶다.
(김약대) 최근 ‘스트리트우먼파이터’라는 프로그램에서 모니카라는 댄서가 컴백홈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걸 보는데, 보자마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굉장히 역동적이고 신나는 무대였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하는 음악도 신나고 재밌는 음악이지만, 누군가에겐 감수성을 자극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의 힘듦과 고통을 대신 위로해 주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전달하는 음악, 그런 공연을 하는 팀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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