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 ‘Asian Fusion’과 원융무애(圓融無礙)의 정신성Ⅲ
[윤진섭의 비평프리즘] ‘Asian Fusion’과 원융무애(圓融無礙)의 정신성Ⅲ
  • 윤진섭 미술평론가
  • 승인 2021.10.13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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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 미술평론가
▲윤진섭 미술평론가

<지난호에 이어서>

융합을 의미하는 퓨전은 다양성이 특징이다. 다양한 요소와 이질적인 성질들이 한데 섞여 화학적 변화를 이루는 가운데 전혀 다른 내용으로 거듭 태어나는 것이 바로 퓨전이다. 가령, 미국은 다인종 사회인데, 그런 미국의 문화는 퓨전적이다. 그래서 미국문화를 가리켜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라고 하는데, 이는 특정한 인종이나 민족의 문화를 편애할 수가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용인하는 데서 온 일종의 사회적 합의(合意)이다.

학부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自作詩를 통한 多元的 融合과 現代東洋畵의 變容>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홍지윤이 생각하고 실천에 옮기는 예술의 내용이 바로 이 퓨전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회화를 근간으로 사진, 퍼포먼스, 패션, 예술상품 일러스트레이션, 애니메이션, 미디어 아트, 공공미술, 그리고 책의 출판과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뻗어나가는 그녀의 기민한 상상력은 마치 거대한 용광로와도 같다. 한국을 넘어 홍콩, 중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등 아시아와 유럽에 이르기까지 진출한 홍지윤의 독특한 서체에 기반을 둔 독자적인 예술세계는 미래의 그녀를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을 만큼 탄탄한 조형적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홍지윤이 주장하는 ‘아시안 융합’이란 아시아적 미적 가치에 대한 그녀 나름의 확신인 동시에 미학적 탐색의 핵심적 개념이다. 그것이 예술실천의 구체성을 띌 때, 거대한 스케일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예컨대 허공을 캔버스로 삼은 미디어 아트로 나타날 수 있는 상상력과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홍지윤 특유의 서체 예술로 나타나게 될 이러한 잠재력과 기민한 상상력은 협업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러한 징후는 곧 있게 될 홍콩의 대표적인 문화예술공간인 프린지 클럽에서 전개될 공공미술과 상징물 제작 프로젝트, 중국정부가 후원하는 북경의 [2016 베이징 디자인 위크전]을 통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국제적 활동은 이미 안도 다다오, 장 샤오강 등 국제적 명망가의 반열에 오른 인사들과 함께 가진 ‘2012 Herald Forum’의 초청에서도 그 맹아(萌芽)가 나타난 바 있다.

아시아의 미적 독자성과 가치에 대한 홍지윤의 예술실천은 2010년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이 주최한 [세계미술의 진주, 동아시아미술(Rainbow Asia-Pearl of World Art, East Asia)전]에서 빛을 발했다. 이 전시를 위해 홍지윤은 한국에 거주한 지 20년이 된 한 파키스탄 가족의 삶을 밀착 취재했다. 서울 용산구 남영동에서 인도식당을 운영하는 한 무슬림부부와의 열흘 간 에피소드를 담은 홍지윤의 <10 days in India>는 이 부부를 주인공으로 전개되는 시, 미디어 아트, 설치미술, 퍼포먼스가 융합된 대작이다. 홍지윤은 이 작품을 통해 이 부부를 단지 조연에 머물게 하지 않고 작품의 주연으로 삼는 과감한 시도를 하였다. 작품의 모티브로 디자인한 옷을 입은 부인에게 자신의 시를 ‘우르두어’로 적게 하는가 하면 인터뷰와 함께 식당에 장식된 인도와 파키스탄의 민속적인 모티브를 재해석한 드로잉 벽지를 제작하는 등 적극적인 문화적 소통을 시도한 후 그 결과물을 전시에 활용했다.

Ⅲ. 대작 위주의 회화 실험과 동서양의 미학적 융합

홍지윤은 대작에 능한 작가이다. 크기가 보통 5백호를 능가한다. 그처럼 큰 캔버스에 먹과 형광색 아크릴 칼라를 섞어 현란하면서도 깊이감이 있는 화면을 창조한다. ‘화려(華麗)’라는 한자를 쓴 가운데 캔버스의 좌우에 특유의 화려한 색과 분방한 필치로 꽃무더기를 묘사한 작품**은 홍지윤의 회화 세계를 잘 드러낸 수작(秀作)이다. <천지화(天地花/Flower World. 116x80cmx3폭, Acrylic on canvas, 2014)는 한자와 꽃이 병치돼 시니피에(기표)와 시니피앙(기의)의 간극을 피해 이미지와 타이포 사이의 동일 증명을 시도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처럼 문자와 이미지를 병치하는 홍지윤의 회화전략은 시서화 일체의 동양적 전통에서 유래한 것이다. 홍지윤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자칫 구태의연한 것으로 치부될 수 있는 전통적 문화 형식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 과감하게 이를 자기화 내지는 현대화하는 작업에 몰입해 오고 있다. <접시꽃 들판에 서서>(220x640cm, Acrylic on canvas, 2014)는 신라시대의 거목인 고운 최치원이 접시꽃을 소재로 쓴 시를 한자의 원문을 캔버스의 여백에 적고, 붉은 색의 화려한 접시꽃을 푸른색 바탕에 가득 그려넣은 대표작이다. 아마 이 작품만큼 대담하고 화려하며, 호방한 홍지윤의 예술가적 기질을 잘 드러낸 작품도 드물 것이다.

홍지윤은 규모가 크고 화려한 미디어 파사드의 제작과 함께 설치미술에도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은 아마도 <봉별(逢別 :Being and Dead Meet and Seperate, 2011>***일 것이다.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다다(Dada)적 실험을 한 천재 시인 이상(李霜:1910-1937))의 소설 <봉별기>를 설치미술의 형식으로 재구성한 이 작품은 그의 연인인 1930년대 기생 금홍의 방을 그녀 특유의 필치와 원색적인 색채감, 그리고 상상력을 동원하여 만든 다양한 형태의 오브제와 벼룩시장에서 구한 앤틱가구들로 이루어졌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