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세상을 보는 창] 집콕문화소개, 좋은 영화 다시보기Ⅲ
[예술가의 세상을 보는 창] 집콕문화소개, 좋은 영화 다시보기Ⅲ
  • 유승현 아트스페이스U대표, 설치도예가
  • 승인 2021.10.13 10: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영화 ‘남매의 여름밤’
▲유승현 아트스페이스U대표, 설치도예가
▲유승현 아트스페이스U대표, 설치도예가

내 마음이 가는 그 곳에 너무나도 그리운 사람-----(중략) 지나간 날 그리워하니 먼 훗날에 돌아온다면 다정하리라 <영화 ‘남매의 여름밤’ 삽입곡중에서 신중현 작사>

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영화 ‘남매의 여름밤’

좋은 영화와 재미있는 영화는 시선의 차이가 조금 있다. 재미있는 영화는 스크린 속으로 관객을 집중시키지만 좋은 영화는 안과 밖으로 관객의 시선을 뛰게 만든다. 어쩌면 잊혀졌거나 흩어져있는 우리의 감정을 모아주고 쏟아내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작은 일상을 보여주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과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깊은 여운을 남긴다. 필자의 어린 시절 외할머니가 데리고 온 고종사촌들과 몇 해를 같이 산 기억이 있다. 필자의 어머니에게 고모라고 불렀던 남매는 부모 없이 이사 온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기억하지 않는다. 결핍이 있었지만 의지할 가족이 있었기에 소소한 일상을 경험했다. 예술가로 잘 성장하여 활동하고 있는 그들은 어릴 적 추억들이 창조의 원천이며 살아가는 원동력이라고 표현한다. 영화가 끝날 무렵 필자는 잠시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정서를 마주하며 가족과 함께한 아련한 기억들이 몽글몽글 올라왔다. 삶의 보편성 앞에서 평범한 것이 가장 큰 추억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우리 모두의 영화라고 평하고 싶다. 지난호에 이어 좋은 영화 다시보기 세 번째 ‘남매의 여름밤’으로 들어가 본다.

구체적이지 않지만 구체적인 영화

영화 ‘남매의 여름밤(2019)’은 윤단비감독의 첫 장편영화로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뿐 아니라 국내외 영화제 수상과 함께 많은 호평을 받은 독립 영화이다. 불완전한 사춘기 소녀 옥주의 시선으로 영화는 전개되는데 가짜브랜드 신발을 팔고 다니는 가난한 아빠는 사춘기 딸만큼 불안전한 대상이다. 아내도 없이 두 남매를 키우며 지하방에서 살고 있는 자신 없는 삶이지만 당신에게는 가끔 음악을 듣는 아버지와 삶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있는 아버지의 집이 있다. 흔들리게 보이고 싶은 감독의 의도인지 작은 화물차 다마스가 프레임에 불안하게 이동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여름방학이 되어 반지하방에 살던 옥주 남매를 데리고 몸이 불편한 아버지 집에 이사를 오게 된다. 무더운 날 작은 식탁에 다닥 붙어앉아 콩국수를 먹으며 할아버지 앞에서 아이들에게 눈치보지 말라고 말하는 대목이 인상 깊다. 눈치는 당신이 보고 있는듯한데 평생 타인을 의식하며 살고 있는, 어디에나 있을법한 평범한 가장의 모습이 짠하게 그려진다. 옥주 남매의 여름 방학 중 소소하게 벌어지는 몇 컷의 스토리가 톤다운 된 영상으로 고요하게 연출되는데 여느 영화에 비해 사건이 자세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뭔가 복잡한 사연의 옥주 고모와 연이어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 이 두 사람, 어른 남매의 불안정한 정서가 옥주남매의 정서와 교차적으로 묘사되며 영화에서는 어른남매나 아이남매나 성장이 필요한 존재로 묘사된다. 실수와 후회를 하고 가끔은 답하지 않는 자신없는 모습의 남매들.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 집을 중심으로 뭔가 위태한 일이 계속되지만 자극적이지 않은 영상을 지켜보며 관객들은 너도 그러니? 나도 그랬다...라는 동질감으로 위로를 받게 된다. 영화 속에서 가족들이 옹기종기 붙어 앉아 식사를 하는 장면이 유독 많다. 그게 가족이다. 감독의 의도일 것이다. 필자의 감상 키워드는 가족 일상 그리움이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등장인물들의 문제는 전혀 구체적이지 않다. 옥주의 아버지는 왜 힘들어진건지 할아버지가 무슨 병이었는지 왜 갑자기 돌아가신 것인지 옥주네 가족은 어쩌다 이사를 오게 된 것인지 고모와 고모부는 왜 싸운 것인지 아이를 두고 간 엄마는?......영화는 등장인물들의 정보를 친절하게 제공하지 않는다. 보통의 영화처럼 하나의 사건에 따라 붙는 연계성에 에너지를 쏟지 않았기에 관객은 각자의 몫으로 추정할 뿐 저마다의 방법으로 그리움을 처리하고 있다. 엔딩장면에서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무덤덤히 바라보고 미워했던 엄마가 너무나 그리워진 옥주. 찌개가 싱거워졌다는 말에 터져버린 울음은 잘 만들어진 영화 음악으로 감동의 바통을 이어간다. 누구나에게 있을법한 기억을 보편적으로 끌어냈기에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여름밤을 공유하며 저마다의 그리움으로 향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겪지 않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정서,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뽀송뽀송하게 끝이 난다.

올해 당신의 여름밤은 어떠했는가?

필자의 올해 여름밤은 별이 총총했으며 움직이는 달을 보며 듣는 좋은 음악이 있었다. 또 부드러운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는 이들 덕에 한강길 조깅을 하며 ‘노인과 바다’와 ‘데미안’을 몇 번이고 들었다. 어느 여름밤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져 소리죽여 울기도 했으며 사랑하는 이들 덕에 크게 웃기도 했다. 장기간 코로나로 우리의 일상이 석연치 않다. 뭔가 뒤죽박죽 된듯하지만 주어진 환경대로 열심히 살아 나가는 자체가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것이지 않은가? 빛같이 빠른 이 시간이 언제 갑자기 그리워질런지 모른다. 어제가 쌓이고 일상이 쌓여서 지금 이 순간을 만나고 있는 우리들. 급히 지나가는 시간속에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날. 사소한 일상이 그려지는 좋은 영화를 찾아보라. 무뎌져있는 촉이 세워지고 사라져버린 시절이 방울방울 올라올 것이다. 감동은 참 단순하고 평범한 곳에서 자연스레 일어나는 듯......

찬바람이 분다. 벌써 우리의 여름밤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