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숙의 장르를 넘어서] 우리는 우리를 찾는데 60여 년이 걸렸습니다
[양혜숙의 장르를 넘어서] 우리는 우리를 찾는데 60여 년이 걸렸습니다
  •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 승인 2021.10.13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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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오늘 아침 나는 가까이 지내는 목사님의 전화를 받고 오랜만에 화들짝 놀라 나를 돌아보는 순간과 마주했다. 오래 잊고 있던 나의 사명을 일깨워준 전화였다.

이사장님! 이사장님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아 세워 한국 공연예술의 참모습의 뿌리를 한국 공연예술 속에 심겠다고 한국공연예술원을 창립하셨는데 한국 연극사의 발전한 모습이나 더듬으며 세월을 보내시니 제가 속이 탑니다. 이사장님은 세월이 가기 전에 그동안 길게 더듬어 이론과 실천에 충실했던 공연예술 속에 담긴 <한국인의 정체성>을 담아내지 않고 세상을 떠나시면 제가 고이 보내드리지 못하고 못내 아쉬워 하직하지 못할 거 같습니다.

"다른 글을 쓰실 시간에 마음을 다듬어 정작 하실 일에 매진해주세요.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옆에서 돕겠습니다." 그의 호소는 나의 어렴풋이 미뤄놓았던 숙제 보따리에 눈초리를 꽂아 놓았다. 김진구 목사님은 내가 한국공연예술원을 설립, 개원한 당시 1996년, 본인도 한몫 거들며 한국 공연예술의 진면목을 찾는데 일조를 하겠다고 찾아온 이래 간헐적이지만 꾸준히 멀리 있어도 옆에 있는 듯, 우리 기구 한공예원의 행사의 흐름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전화는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오징어게임>을 총 9편 모두 보시고 그 속에서 찾아지는 한국인의 우수성을 놓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나도 자주 회자되는 <오징어게임>을 한번 볼 생각이었는데 그런 권유를 받고 보니 숙제 푸는 심정으로 함께 사는 딸이 네플릭스에서 내려받은 버전을 3시간 넘게 몰입해 보았다. 20대 손녀는 내용과 화면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지금으로서는 관극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나는 지난번 <기생충>과 <죠커>를 20대 손녀딸, 50대 딸, 80대 나, 이렇게 3세대가 영화관에 가서 함께 보는 좋은 기회를 누렸다. 두 편의 영화가 모두 빈부격차와 사회적 괴리에서 오는 근원적 사회 부조리와 그로 인해 비뚤어지고 왜곡된 인간성과 그 속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몰지각한 삶의 모습을 그려냈다. 그 속에서 솟구치는 분노와 그 분노의 무방향성 분출을 담고 있는 두 영화는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같은 듯 다른 모습으로 오늘날 우리 사회의 괴리와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었다. 참으로 같은 소재와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매우 다른 감동을 주고 있었다. <죠커>의 걷잡을 수없는 분노, 그 분노의 분출은 그 대상도 계산되거나 치밀함이 없이 마구 분출해내므로 해서 관객으로 하여금 황당함을 금할 길 없게 만들었다. 반면에, 한국영화 <기생충>은 부유한 집에 기생해 들어가 살며 세상을 천방지축 계산 없이 사는 부자 주인과 남몰래 주인집 지하 밀실 속에 터를 마련하며 살아가다 몰락하는 기생충적 삶의 궤멸은 매우 치밀한 계산으로 감독의 섬세함이 돋보였다.

거의 같은 시기에 본 두 영화는 동양인의 섬세함과 서양인의 담대함으로 대비된다기보다 동 서양인의 세상을 보는 눈이 다름을 대비시키고 있었다. 영화적으로 볼 때 내 눈에는 기생충이 오히려 동양인의 세상을 보는 섬세함이 디테일한 기법으로, 높은 설득력과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 이상의 감동은 유발하지 못했다.

하지만 3시간 내내 내 방에 혼자 앉아 관극한 <오징어 게임>은 그 차원이 달랐다.

설정부터 담대함이나 섬세함은 접어 놓은 채, 극한에 달한 인간들의 군상, 막다른 골목에 달한 인간들의 마지막으로 출발하는 모습은 출구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오도 가도 할 수 없는 인간 군상이다. 죽음을 불사하고 돈을 향한 인간 군상의 최후를 맞이하는 각자 주인공들의 면면을 투시하며 그 속에서도 베풀어지고 속이는 인간의 미묘한 심리를 예리하고도 세밀하게 그렸다. 그러면서도 주인공이 거액의 돈에 손을 안 대고 견디는 모습에서 인간의 거대한 인내심을 한줄기 희망으로 비쳐주는 결말에, 한국인의 위대함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한 편의 영화 속에 흐르는 한국인의 끝 모를 담대함과 당찬 모습 속에도 면면히 흐르고 있는 섬세함 속에 그려진 <인정>, 인간의 곱고 아름다운 마음의 흐름이 90여 개 국 세계인의 감동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고 사려된다.

‘우리가 비로소 우리를 찾아 우리의 참모습을 그릴 수 있는 자신’을 본 통쾌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