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 산책] 바그네리안 되기Ⅲ
[이채훈의 클래식 산책] 바그네리안 되기Ⅲ
  • 이채훈 클래식 해설가·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 승인 2021.10.13 10: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호에 이어)

▲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 객원기자/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전 MBC 음악PD.

등장인물의 성격도 정리가 됐다. ➀ 보탄 · 프리카 프라이아 등 신들의 세계는 전통 종교의 세계 ➁ 거인 파프너 · 파졸트는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왕국 ➂ 난장이 알베리히 · 미메 · 하겐은 신흥 자본가 계급(바그너의 반유태주의를 감안하면 이들이 유태인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소지도 있다) ➃ 지크프리트 · 브륀힐데는 초인을 지향하는 인간. 이들은 반지를 소유하려고 각축하다가 결국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한다. 등장하는 분량은 적지만 ➄ 라인의 세 처녀와 대지의 여신 에르다는 세상에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순수를 상징한다. 이들의 뜻을 거부하는 자는 신이든, 인간이든, 거인이든, 난장이든 파멸을 피할 수 없다. 결국 이 작품은 19세기 중반의 자본주의가 인간을 구하지 못하고 멸망할 거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셈이다.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는 ‘모든 소유는 도둑질’이라는 프루동의 무정부주의에 심취하여, 남의 돈을 자기 돈처럼 쓰곤 했다. 자본의 탐욕에 대한 그의 증오가 <니벨룽의 반지>에서 황금 숭배에 대한 저주로 표현됐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실제 혁명에도 열광했다. 18세의 나이로 1830년 혁명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1849년 드레스덴 봉기를 주도한 혐의로 12년 동안 수배 생활을 했다. 시민군이 세운 임시혁명정부는 프로이센 지원군의 공격으로 무너졌고 바쿠닌 등 주동자들은 체포되어 고문 끝에 유배됐다. 하지만 바그너는 프란츠 리스트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했다. 리스트는 위조여권과 돈을 줘서 바그너가 취리히로 도피하도록 했다.

10대 시절의 바그너는 베토벤 교향곡 9번을 듣고 감동하여 며칠 밤을 새우며 악보를 베껴 썼다. 베토벤 때문에 본격적인 작곡 공부를 시작한 것이었다. 그는 18살에 라이프치히 음대에 진학한 뒤 교향곡 C장조를 썼다. 하지만, “베토벤 교향곡 9번 이후 새로운 교향곡을 쓰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에서 새로운 음악 장르인 ‘음악극(Musikdrama)’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극작가인 동시에 작곡가’라는 전무후무한 예술가를 꿈꾼 것이다. 필생의 대작 <니벨룽의 반지>는 30살 때인 1843년 테플리츠에서 처음 구상했다. 이 때 영감을 준 것은 그림 형제의 <독일 신화>란 이야기책이었다. 1851년, 망명지 취리히에서 냉천욕과 암벽타기를 즐긴 바그너는 알프스의 신기한 암벽들에서 <발퀴레> 무대의 암벽을 떠올렸다. 취리히의 집 건너편에 이사 온 철공소의 망치소리가 바그너를 괴롭혔지만, 그는 여기서 영감을 얻어 <지크프리트> 첫머리의 대장간 장면을 작곡했다.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소음 속에서 ‘지크프리트의 목가’를 작곡하여 아내 코지마에게 생일 선물로 주었다. 이듬해 바이로이트 축제극장 후원회장인 피아니스트 타우지히가 세상을 떠나자 ‘지크프리트 장송곡’을 작곡했다. <니벨룽의 반지>는 막바지 수정을 거쳐 1874년 11월 21일 완성됐다. 무려 30년의 대장정이었다.

이 작품은 바이로이트 축제극장 개막을 기념하여 1876년 8월 13일 초연했다. 니체, 리스트, 그리이그, 브루크너, 차이코프스키가 객석에 있었다. 몇몇 장면에서 무대 장치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지만 공연은 무사히 마무리됐다. <신들의 황혼>, 마지막 구원의 모티브가 울려 퍼지고 막이 내리자 바그너는 “우리는 이제 새로운 예술을 갖게 됐다”고 의기양양하게 선언했다.

바그너는 연극과 음악을 하나로 융합한 자신의 새로운 오페라를 ‘종합예술작품’(Gesamtkunstwerke)이라 불렀고, 이를 통해 19세기의 속물적 시민 사회를 비판했다. <니벨룽의 반지>로 태어난 게르만 신화는 이렇게 근대적인 의미를 갖게 됐고, 19세기 자본주의에 대한 바그너의 비판은 오늘날도 음미해 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니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를 재미있게 감상할 안목을 조금 갖게 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문정훈님이나 서정원님과 같은 바그네리안이 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어렵지 않을까? 무엇보다, 무려 16시간이나 되는 <니벨룽의 반지> 전막을 다시 볼 자신이 없으니 바그네리안이 되기는 틀린 것 같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