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딱지 14회
[연재] 딱지 14회
  • 김준일 작가
  • 승인 2010.01.06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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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형제 (2)

동네마다 저런 놈이 하나씩은 꼭 있기 마련입니다. 미친 개한테 물린 셈 치고 잊어버립시다.

주인이 대신 사과를 한다며 맥주 한 병을 땄다. 얼굴도 체구도 동글동글하고 순하디 순하게 생긴 중년사내였다. 정구가 말없이 잔을 받자 사내의 부인이 접시에 땅콩과 오징어채를 내왔다. 남편과는 딴판으로 깡마르고 신경질적으로 생긴 여자였다. 그녀가 말했다.

술이 좀 취해서 그러지 원래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녜요. 서로 사귀어 보자고 한 것이 그렇게 됐으니까 이해하세요.

부부간에 의견이 엇갈리는 것이다. 주인이 무어라고 한 마디 하려다 그만두는 눈치였다. 정구는 가슴이 답답해져 넥타이를 풀어 헤쳤다. 주인은 잊어버리자고 했지만 같은 구 자 돌림인 상구라는 이름을 쉽게 잊을 것 같지 않았다.

무조건 한 방 먹이고 보는 건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읍내 쪽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왔다. 그리고 가게를 덮칠 것처럼 달려들더니 묘기자랑이라도 하는 것처럼 끼익 소리를 내며 급정거했다.

울긋불긋 용이 그려진 가죽점퍼에다 청바지를 입은 장발이었다. 주인이 대뜸 욕부터 퍼부었다.

야 이 자식아 뒈지고 싶어 환장을 했어? 무슨 오토바이를 그따위로 몰고 다녀?

그러나 녀석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래 봐야 60밖에 안 놨어요. 워낙 고물이라 소리만 요란한 거라구요. 그러니까 새로 한 대 사 달라고 그랬잖아요?

새로 사 주는 거 좋아하네. 저놈의 걸 개굴창에다 처박지 않은 것만도 다행인 줄 알아 이 자식아.

좋아요. 그럼 내가 벌어서 사죠 뭐.

아이구 잘도 벌겠다. 개구리 수염 날 적에?

정구가 거북스러워 엉거주춤 일어나려 하자 주인이 급히 팔을 잡았다.

이 대목에서 일어나면 내가 더 염치가 없지요. 형씨는 큰애가 지금 몇 살이요?

아직 없습니다. 결혼을 좀 늦게 해 가지구요.

그럼 낳지 마시오. 보시다시피 무자식이 상팔자요. 한 병만 더 합시다.

아니 됐습니다.

에이 그러면 내 인사가 아니지요.

정구는 하는 수 없이 다시 주저 앉았다. 주인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정구의 귀에는 한 마디도 들어오지 않았다. 상구라는 사내를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생각뿐이었다.
다녀왔습니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 하나가 마당으로 들어오며 얌전하게 인사를 했다.

주인의 눈가에 금방 부드러운 주름이 잡혔다.

어서 와라. 배고프지? 계란 너서 라면 하나 끓여 주래?

제가 끓여 먹을게요.

아 참 인사드려라. 저 주택에 새로 이사오신 분이시다.

여자이가 다시 얌전하게 인사를 했다. 아들과 딸이 저렇게 다를 수 있을까 싶도록 얌전하고 예쁘게 생긴 아이였다.

정구가 그 고약한 이웃을 다시 만난 것은 바로 그 이튿날이었다. 전입신고 때문에 이장집을 찾아갔더니 그자가 거기 있었던 것이다. 이장의 이름은 박상만이었다. 그자가 이장의 동생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물은 잘 나옵니까?

이장이 도장을 찍어 주며 웃으면서 물었다.

청계천에 가서 몽키 스패너를 하나 사다 놨습니다.

이장은 웃음을 터뜨렸다. 동생과는 딴판으로 서글서글하면서도 생각이 깊어 보이는 사내였다.

여기 사람들이 아직은 때가 덜 묻고 다들 무던해서 살다 보면 정이 붙을 겁니다. 언제 대포나 한잔 합시다.

이장은 그러면서 대문 밖에까지 따라 나왔다. 그때까지도 그자는 싱글싱글하는 그 기분나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동네사람들이 다 무던하다는 이장의 말은 아무래도 잘못된 것 같았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