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의 눈물
악어의 눈물
  • 김미원/수필가
  • 승인 2010.01.06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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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우는 두견새야”

 제법 큰 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세신사(洗身士)는 때수건을 양 손에 끼고 때를 밀기 시작한다. 그녀의 눈을 바라볼 용기가 없는 나는 똑바로 누워 눈을 감는다. 때를 미는 신세를 그 구슬픈 노랫가락으로 달래고 있기나 한 것처럼 느껴져 나는 그 여자의 노래가 불편하다.

 그 여자는 손놀림이 억세다. 거칠게 나를 다룬다. 때수건은 새것인지 까칠한 것이 몸에 닿을 때 마다 조금씩 아프다. 나는 조금씩 불쾌해지기 시작한다. 무장 해제하고 눈을 감고 있지만 그녀의 숨소리, 손놀림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 여자는 내 목을, 발을 씻긴다. 손놀림이 멈추자 나는 가만히 눈을 뜬다. 그 여자 눈과 마주치자 나는 놀라 반사적으로 눈을 감는다.

 내 나이 비슷한 그녀는 사지가 멀쩡한 여자가 다른 사람에게 씻어달라고 몸을 맡긴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는데 나는 남의 발은 커녕 내 몸조차 씻지 못해 다른 여인의 손에 맡기고 있다. 죄의식이 고개를 든다. 또 한 편에서는 ‘이게 너의 최대 사치잖아. 이 정도는 해도 돼. 성실하게 산 너는 자격이 있어’ 라고 소리친다.
 
 남편이 총각 때 내 손금을 봐 주며 가는 주름이 많아 잔걱정이 많겠다고 했었다. 나는 그때 이렇게 말했던가. “싫어, 싫어. 나는 큰 걱정 뿐 아니라 잔걱정도 없이 살고 싶어.” 나는 왜 이렇게 생각이 많은가. 사소한 것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나는 남편 말대로 잔걱정이 많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굵은 땀방울이 내 배위에 떨어지고 내 몸에서는 회색 때가 투둑 떨어진다. 나는 그 때가 내 몸의 욕망의 잔해인양 부끄러워 조금씩 손으로 밀어낸다.

 그 여자는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내 몸을 툭툭 치면서 의사를 전달하고 있다. 돌아누우라고 내 다리를 친다. 그녀의 노래는 끊어질 듯 이어진다.

 “열여덟 딸기 같은 어린 내 순정, 너마저 몰라주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처녀”

 몸을 옆으로 돌리자 분신처럼 달라붙어 있던 십자가 목걸이가 내 목 아래로 흘러내린다.


김미원
1959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영어영문과 졸업
2005년 4월 《수필문학》에 〈사이비〉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에세이플러스 문학회 회원

<에세이 플러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