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 옆에서’는 국정교과서에서도 삭제된 시 (2)
‘국화 옆에서’는 국정교과서에서도 삭제된 시 (2)
  • 김우종 (전덕성여대 교수, 문학평론가)
  • 승인 2010.01.06 1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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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파 시인'도 친일하고 전쟁 선동하나?

(지난호에 이어)

이것은 너무도 황당한 일이다. 발표시기가 이렇기 때문에 이것이 일왕 찬미가라고 하면 누구도 믿기 어려워진다. 미친 사람이 아닌 이상 도망가는 가해자들을 향해 계속 아부하는 친일문학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해방 후 작품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서정주는 해방 뒤에 버젓이 중앙의 일간지에 이것을 발표했으며 그 내용은 살짝 국화꽃 문양의 베일을 입혀서 가리는 시늉만 한 일왕 찬미가다. 이때 그는 수개월 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될 이승만 곁에서 그의 전기를 쓰고 있으면서 이것을 발표했다.

일본 국민 다수는 패전 후에도 여전히 '천황폐하'를 마음속에서 받들었지만 서정주처럼 찬미가를 쓰지 않았다. 탐미주의에 기울어 있던 미지마 유키오가 '천황폐하' 중심의 군국주의시대 복귀를 선동하다가 할복자살한 미치광이이지만 그도 서정주 수준의 악마적 탐미주의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너무 참담한 부끄러움은 이것이 발표된 후 지금까지 흘러 온 역사의 시간이 너무 길다는 것이다.

<국화 옆에서>는 지금(2008년)까지 60년의 긴 역사를 우리 문학사의 일등칸에 앉아서 버티어 온 작품이다. 그리고 여전히 힘이 막강하다.

ㅂ. 국정교과서에서 삭제된 시

<국화 옆에서>는 1990년쯤에 국정교과서에서 삭제되었고 지금도 그 상태다. 내가 국정교과서 개편 마지막 심의 때 이를 요청했고 교육개발원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 후 국정교과서에는 지금까지 서정주의 문학이 실린 바가 없다.

1990년대 초에 국정 국어교과서에서 이 시가 삭제된 것은 서정주가 공개적으로 국가로부터 받은 유일한 모욕일 것이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은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이고 이에 의해서 다음 해에 노태우 정권이 만들어졌다.

새 정부는 국정교과서 개편작업을 문교부 편수국에서 한국 교육개발원으로 잠시 옮겼었다. 이때 새로운 국어교과서에 대한 마지막 심의가 양재동에서 열렸으며 여기에 국어교과서를 심의하기 위해 참여한 위원은 나 혼자뿐이었다.

이때 다른 과목보다도 특히 '국어 교육은 민족교육'이므로 민족을 배반한 친일문인의 글은 삭제되어야 한다는 나의 주장이 받아들여져서 <국화 옆에서>는 약 40년 만에 교과서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민족을 배반한 대표적인 친일문인의 시가 윤동주처럼 조국의 해방을 위해 애쓰다가 옥사한 시인과 함께 나란히 교과서에 실려 있으면서 존경받아야 한다는 것은 애국자에 대한 모독이며 우리 민족의 장래를 망치는 교육이 되기 때문에 삭제를 요구한 것이다.

그 후 이 같은 문교부의 조치에 시비를 걸며 원상회복을 요구하는 칼럼이 중앙의 일간지에 발표된 일이 있지만 문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조치는 날이 갈수록 의미를 잃게 되었다. 검인정 교과서에는 이것이 마음대로 게재되고 있으며 지금은 국정 교과서 존립의 의미자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2. 어휘 분석

제1연

ㄱ. '생명파 시인'도 친일하고 전쟁 선동하나?

<국화 옆에서>는 잔혹한 침략 전쟁의 실상을 그려 나가며 일왕을 찬미한 시다. 그리고 이 그림의 표면에 아름다운 국화 무늬의 엷은 베일을 덮고 살짝 가리는 시늉만 한 것이다.

사발만한 유방을 다 들어내도 유두에 동전만한 스티커 하나만 붙이면 유방을 가렸다고 봐주던 출판물 검열이 있었듯이 이 시는 일왕 찬미를 다 들어냈지만 살짝 이용한 은유법 때문에 알 사람은 알고 모를 사람은 모르게 했다. 다만 알 만한 사람은 알더라도 베일을 씌운 것은 사실이니까 시비를 걸면 잡아떼고 피할 장치는 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내용을 의심할 만한 사람이 있어도 맞설 수 없던 1947년의 특수 상황 속에서 이 시는 표피만 핥아가며 무리하게 칭찬만 하는 쪽으로 확산되어 나간 것이다.

이렇게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조건하에서 나타난 칭찬이라면 그 어떤 것도 진실일 수가 없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