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대구국제오페라축제 ‘아이다’…“증오의 시대에서 사랑을 노래하다”
[공연리뷰]대구국제오페라축제 ‘아이다’…“증오의 시대에서 사랑을 노래하다”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1.10.25 14: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 네 번째 메인 무대 장식
극 중 하이라이트 ‘개선행진곡’서 무대와 객석 아우르는 연출 돋보여

프랑스의 저명한 이집트 고고학자 오귀스트 마리에트(AugusteMariette)가 이집트 브라크 박물관장으로 있던 당시, 고대 사원의 제단 밑에서 남녀의 해골이 발굴됐다. 이들은 어떻게 이곳에서 삶의 마지막을 함께했으며, 죽음으로 존재를 영원히 증명하게 됐을까. 오페라 <아이다>는 이러한 궁금증에서 시작된 작품이다.

오페라 <아이다>는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하여 라다메스 장군과 포로인 에티오피아 공주 아이다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베르디가 예순 가까운 나이에 작곡한 필생의 역작이다. 

▲오페라 ‘아이다’ 공연 장면 ⓒ대구오페라하우스
▲오페라 ‘아이다’ 공연 장면 ⓒ대구오페라하우스

19세기 바그너와 쌍벽을 이뤘던 오페라의 거장 베르디. 그가 만든 이 기념비적 대작은 지난 1869년 수에즈운하 개통을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1871년 12월 24일 이집트 카이로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됐다. 이로부터 꼭 150년이 흐른 오늘날, 이 작품은 지난 22일과 23일 18주년을 맞은 대구국제오페라축제에서 원작의 감동을 그대로 재현했다.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제작한 이번 무대는 제15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 폐막작으로 전석 매진을 기록했던 프로덕션이다. 오페라에 대한 탁월한 해석력을 자랑하는 김덕기 지휘자와 이회수 연출가, 디오오케스트라, 대구오페라콰이어, 메트오페라합창단, 대구시티발레단, 대구오페라유스콰이어와 국내외에서 활약 중인 출연진이 대거 참여하며 관객들을 이집트로 안내했다. 

이 날 공연에서 아이다 역의 소프라노 조선형은 타이틀롤답게 노련한 연기력과 발군의 가창력으로 무대를 장악했다. 특히 3막에서 아이다가 아버지인 에티오피아 왕 아모나스로(바리톤 양준모)와 각자의 입장을 내세우며 대립하는 두 사람의 연기력은 무대를 넘어 객석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전달했다. 이 장면에서 양준모는 파워풀하면서도 격조 있는 음색의 가창으로 몰입을 도왔다.

라다메스를 향한 마음을 포기하지 못하며 주저하는 아이다를 향해 아모나스로가 “내 딸이 아니라 저 이집트 왕의 종”이라며 벼락같은 호통을 치자, 충격을 받은 아이다가 “조국을 위해 무엇이든 바치겠다”라고 아버지 그리고 신께 맹세하는 장면은 이날 공연의 압권이었다. 

암네리스 역의 메조 소프라노 양송미는 신분을 이용한 사랑의 쟁취가 가능하다 여겼으나 그 마음을 얻지 못 해 좌절하는 이집트 공주의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했다. 다만 중저음을 소화할 때 볼륨이 줄어 다른 배역들과의 중창 장면에서 캐릭터가 묻히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집트 장군 라다메스를 노래한 테너 이정원은 힘있게 뻗어나가는 특유의 깨끗한 고음으로 안정감 있는 가창을 선보였다. 하지만 연기가 전반적으로 섬세하지 못하여, 아이다를 향한 사랑, 암네리스와 왕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신분 그리고 군인으로서의 소속감 사이에서의 갈등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오페라 <아이다>는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이집트의 무장 라다메스와 포로인 에티오피아의 공주 아이다와의 비련을 그린 작품으로 장중하고 화려한 음악과 호화롭고 장대한 무대장치 등 오페라 중에서도 대표적인 오페라로 꼽힐 만큼 유명한 대작이다.‘청아한 아이다 Celeste Aida (1막, 라다메스)’, ‘이기고 돌아오라  Ritorna vincitor! (1막, 아이다)’, ‘개선행진곡 Marcia Trionfale (2막)’들로 사랑받는 작품이기도 하다.

▲오페라 ‘아이다’ 공연 장면 ⓒ대구오페라하우스
▲오페라 ‘아이다’ 공연 장면 ⓒ대구오페라하우스

<아이다>의 2막의 이집트군 개선 장면은 역대 오페라 중 가장 웅장한 파노라마를 자랑한다. 화려한 오케스트라의 선율과 대규모 출연진의 합창, 현란한 군무, 거대한 무대장치로 ‘종합예술’ 오페라의 매력을 한껏 뽐내는 대작이다.

대구오페라하우스의 <아이다>는 이 장면에서 트럼펫 연주자들을 객석 2층 좌우 발코니석에 배치해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렸다. 또한 ‘개선행진곡’의 하이라이트 부분, 천장에서 극장 전체를 뒤덮는 황금 꽃가루를 흩뿌려 관객들로 하여금 개선식에 참여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 신선했다. 

아울러, 오페라 <아이다>는 수 세기 전 먼 나라의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인생사의 수많은 양면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개선행진곡’은 승전의 우렁찬 음악과 수많은 전리품의 행렬 뒤에는 패전국의 아픔과 고통이 그대로 묻어있으며, 파라오의 절대 권력을 과시하는 높은 왕좌와 피라미드는 수많은 노예들의 눈물과 땀의 산실이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신의 조국을 버린 아이다와 라다메스의 사랑은 반역 그 자체였고 세상은 죽음으로 사랑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전체적인 무대는 화려하고 웅장하게 각 막의 상황과 잘 어루러졌다. 특히 3막의  승전고를 높이 올린 개선장군인 라다메스를 맞이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높게 솟아 있는 기둥과 화려한 채색을 자랑하지만, 각기 다른 형태의 이들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가장 높은 왕좌의 화려함과 위상, 자신의 속을 드러낸 듯 부서지고 색이 변해 버린 기둥,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무너지기 직전의 기둥 등은 마치 전쟁의 본질인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비정한 면모들을 상징하는 연출이 돋보였다.

프로시니엄 무대에 오른 이번 <아이다>는 밖으로 뻗어 나갈 에너지를 안으로 응축시켜 감동의 물결을 일게 했다.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놓인 주인공 아이다와 라다메스, 그리고 그를 사랑한 이집트 공주 암네리스 세 남녀의 엇갈린 사랑에 집중했다. 대규모 합창단과 발레단이 장면을 화려하게 수놓으나 감정의 줄기를 헤치지 않는 선이다. 오페라는 유명 아리아의 연결이 아니다. 드라마와 음악의 절묘한 조화다. 이 점에서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선보인 <아이다>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객석에 앉은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한편, 이번 공연은 대구오페라하우스 공식 유튜브 채널 ‘오페라떼’를 통해 전막 온라인 생중계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