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Interview] 민병구 무대미술가, “배우와 연출가에게 오래 남는 무대 만들고 싶어”
[Artist Interview] 민병구 무대미술가, “배우와 연출가에게 오래 남는 무대 만들고 싶어”
  • 이은영 발행인‧안소현 기자/김재성 작가
  • 승인 2021.10.26 09: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88년 극단 새벽 ‘오셀로’ 이후 30여 년간 무대미술가로서 활동
국내 최초 무대 현장 기록서 ‘민병구 무대미술’ 발간
선생 찾아다니며 독학으로 그림 공부
부엉이 그림으로 개인전과 초대전 러브콜, 화가의 꿈도 이뤄
▲무대미술가이자 화가 민병구 ⓒ김재성 작가
▲무대미술가이자 화가 민병구 ⓒ김재성 작가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발행인안소현 기자/김재성 작가] 2021년, 한국 무대미술 기록서 ‘민병구 무대미술’이 2권의 책으로 출판됐다. 무대미술가이자 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민병구 작가가 30여 년에 걸친 자신의 무대 작업 기록을 모아 세상에 내보낸 것이다. 

민병구 작가를 생각하면 개척자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어린 시절 가정 형편이 어려웠음에도 작가로서 자신의 길을 스스로 닦아왔기 때문이다. 그는 청주대학교 연극영화과 이창구‧차범석 교수와의 만남을 계기로 무대 디자인 및 무대 제작을 시작했다. 1988년 극단 새벽이 공연한 <오셀로>가 공식적인 첫 작업으로, 무대미술가 송관우 선생께도 틈틈이 무대 제작을 배우며 지금까지 다양한 공연의 무대를 담당해왔다. 

민 작가는 부엉이 그림으로도 유명하다. 2013년에 공사 일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부엉이에게 매료되어 본격적으로 부엉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를 기반으로 올해 서울과 청주에서 각각 개인전을 개최하기도 했으며, 지금은 부산에서 전시를 진행하고있다. 그가 그린 그림에는 동양화, 만화 등의 다양한 기법이 반영돼 있어 작가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중학생 때 동네 헌책방에서 『사군자 묘법』 책을 구매해 그림을 독학하다가, 고등학생이 되자 다른 화가들의 화실을 찾아다니며 곁눈질로 실력을 닦았다. 미대 졸업장 없이 스스로 그림 실력을 연마해 작가로서의 기반을 다졌다.

서울문화투데이는 지난 9월 민병구 작가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작가는 수더분한 충청도 말씨로 기자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는 지난 작업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많은 공연 무대가 취소되거나 비대면으로 축소되고 있는데,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낮에는 전시장에 있다가 밤에는 공장에 일한다. 요즘은 다섯 가지 일을 한다. 농사도 짓고, 친구 식당에서 설거지 아르바이트도 하고, 봉사 활동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무대 미술도 한다. 코로나 때문에 많은 공연이 취소되고 있지만,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일이 없는 편은 아니었다. 기술이 있으니까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이 없을 때는 문학 하시는 분들이 보내준 책도 읽고, 스케치를 하러 다니기도 한다. 

전국 각지를 돌며 스케치를 비롯해 대목ㆍ소목ㆍ주물 등 많은 기술을 익히다, 1988년 극단 새벽이 공연한 <오셀로>를 시작으로 무대디자인과 무대제작을 시작하게 된다. 

처음에는 극단서 살면서 그냥 이름 없이 일을 도왔다. 몇 년 그렇게 하다 보니 너무 힘들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전화가 오면 달려 나가 일했다. 내 이름을 걸고 작업한 것은 <오셀로>가 처음이다. 그러다가 건너건너 이창구 교수님을 만났다.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당시 청주대학교 연극영화과에 계셨다. 그분이 학교에서 진행했던 <산불> 공연을 도와달라고 요청하셨다.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연극계에서 활동하게 됐다.  

▲무용 공연 '나와 나타샤와 시인', 박시종 안무, 민병구 무대 (사진=작가 제공)
▲무용 공연 '나와 나타샤와 시인', 박시종 안무, 민병구 무대 (사진=작가 제공)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쉼 없이 새로운 공간을 세우고 허무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끊임없는 고민으로 만든 세계가 공연 종료와 동시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아쉬움이 클 것 같다.  그간의 작품 활동을 담은 ‘민병구 무대미술’에는 1990년부터 2012년까지의 90여 연극작품이 소개되어 있고 2권에는 2012년부터 2020년까지의 연극, 무용, 이벤트(행사) 등 70여 개 작품이 소개돼 있다. 책에는 무대 사진과 더불어 스케치, 무대 평면도가 들어있다. 이 책은 어떻게 만들기 시작했으며, 이를 통해 남기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처음에는 공연이 무사히 끝나면 그게 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업을 하다 보니까 이렇게 흘려보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내 생각도 있었지만, 이창구 교수님 영향이 컸다. 

사진을 잘 못 찍어서 처음엔 버리는 게 많았다. 필름은 관리 없이 모아 놓으면 눅눅해지기도 한다. 사진 기록 작업은 10여 년 전에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08년인가 2009년쯤에 자료집이나 만들지 싶어서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사진 양이 너무 많았다. 팸플릿 하나당 사진이 2천 800개가 넘더라. 어떤 공연은 사진이 없고 스케치만 남아 있기도 했다. 그래서 아는 인쇄소 사장한테 부탁을 했다. 

원래는 그냥 보관용으로 하나 만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창구 교수님께서 자신도 하나 가지고 싶다고 하셨다. 그러다 보니 일이 점점 커졌다. 필름 현상하는 값만 1,600만 원이 나왔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사장이 얘기를 듣더니 CD에 필름을 스캔하는 것이 훨씬 더 싼 데 왜 굳이 현상을 하느냐고 묻더라. 그때 카페에 있었는데 마시던 커피를 쏟을 정도로 깜짝 놀랐다. 그런 게 가능한지도 몰랐던 것이다. 그렇게 스캔과 현상 작업을 함께 진행하게 됐고, 책을 내는데 10년이 넘게 걸리고 말았다. 

2016년도에 책을 내려고 했는데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지는 바람에 잠시 중단하게 됐다. 그러다 사장이 얘기를 꺼내서 다시 시작하게 됐다. 정리가 얼추 되고 보니 책이 시리즈로 40권 가까이 나왔고, 책값은 약 2억 원으로 추산됐다. 대학로에서 연극 기획을 하는 친구 김순국의 소개로 출판사에 갔더니 거의 3억 원 가까이 나오더라. 너무 부담돼서 줄이고 줄여 대출로 책을 완성했다. 작년에 코로나가 왔는데 일하면서 책 작업을 하다보니까 9개월이 더 걸렸다. 그런데 책이 완성되기 사흘 전쯤 이창구 교수님께서 돌아가셨다. 아버지처럼 모시던 분이 책도 받아보지 못하시고 돌아가시니 너무 허무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민병구 무대예술’을 출판을 하게 됐다. 그간 이론서는 있었지만 한국 무대 미술 기록서는 없었다. 처음으로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담은 기록서가 나온 것이다.   

▲민병구 작가가 인터뷰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김재성 작가
▲민병구 작가가 인터뷰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김재성 작가

시나리오를 보고 같이 연출자가 원하는 무대가 있을 거고, 작가가 원하는 무대가 있을 테다. 어느 쪽이 더 비중이 높은가? 주로 어떤 방식으로 협의가 이루어지는지 듣고 싶다.  

연출가 10명 중 8명은 내가 하자는 대로 하다가 부족한 부분이 보이면 개입한다. 비중은 50대 50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무대 디자인을 했다고 해서 모든 걸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어차피 공연에서는 음향, 의상, 분장, 조명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연출가와 기획사의 마음에도 들어야 한다. 이런 부분이 모두 협의가 돼야 비로소 하나의 무대가 완성된다. 

무대 미술을 하면서 특별히 영향을 받은 작품이 있는가? 있다면 해당 작품을 통해 어떤 점을 배웠는가? 

1988~1989년도에 무대 작업 때문에 일본에 가게 됐는데, 거기서 어떤 만화가 한 분을 만났다. 나도 83년도부터 삽화, 만평 등 만화를 그려오기는 했지만, 그분을 만나면서 애니메이션 그림이 무대 미술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시 한국에는 수입되지 않았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 책을 일본에서 갖고 왔다. 하야오의 작품을 살펴보면서 무대 미술 작화에 대해서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면 그림이 참 예쁘다. <톰과 제리>도 큰 도움이 됐다. 

공부하면서 똑같이 그림을 그리더라도 똑같은 페인트가 아니면 결과물이 달라진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특히 형광 도료를 넣으면 색이 조금 더 강해진다. 나도 가끔은 무대의 색이 없는 부분에 형광도료를 넣는다. 요즘 친구들은 쓰지 않는 재료다. 송관우 선생님도 형광도료를 안 넣으면 조명을 해도 무대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셨다. 당시 송 선생님만큼 작화하는 사람이 없었다. 영화 간판을 그리셨다고 했는데 거기서 터득한 것들로 아마 작업을 많이 진행하셨을 것이다. 

▲청주시립무용단의 공연 '달의 노래', 박시종 안무, 민병구 무대 (사진=작가 제공)
▲청주시립무용단의 공연 '달의 노래', 박시종 안무, 민병구 무대 (사진=작가 제공)

최근엔 비대면 공연으로 영상 작업화가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이에 따른 무대미술의 변화도 요구될 것 같은데. 

무대는 살아 있는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프로시니엄이라고 액자 무대라는 말도 있지 않나. 무대는 움직임을 담아내는 그림이다. 화면 비율도 따져야 하고, 조명에 따라 색이 변할 수도 있다. 작은 차이가 배우를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남들은 다 컴퓨터로 설계를 하지만 나는 컴퓨터를 쓸 줄 몰라서 스케치를 많이 한다. 요즘은 무대 미술에서 미디어 아트의 비중이 많이 커졌다. 하지만 연극은 영상이 들어가면 눈이 부셔서 작품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진다.

물론 하기 나름이기는 하다. 특별히 영상을 공부한 적은 없지만, 나도 영상을 쓴 적이 있다. 한 작품에서 연출가랑 상의하면서 이번 공연에는 영상이 꼭 필요할 거 같다고 제안을 한 적이 있다. 시간의 흐름을 담아내는 무대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빔프로젝터로 영상을 쏴서 해가 뜨고 비가 내리는 등 하늘의 변화를 표현해보자고 했다. 회전무대 같은 게 있기는 하지만, 보통 연극에서 사람은 움직이고 무대는 정지돼 있지 않나. 나는 사람처럼 움직이는 무대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어차피 연극은 관객한테 볼거리를 주기 위한 것인데, 볼거리가 없다면 그게 무슨 무대냐는 생각이다. 하나를 하더라고 배우들이나 연출자에게 오래 남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극단 새벽의 연극 '아버지 없는 아이', 유보배 작, 한선덕 연출, 민병구 무대 (사진=작가 제공)
▲극단 새벽의 연극 '아버지 없는 아이', 유보배 작, 한선덕 연출, 민병구 무대 (사진=작가 제공)

지금까지의 작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무대가 있다면?

2006년에 올린 연극 <혈맥>이 제일 애착이 간다. 이 공연은 시대극이라서 소품을 마련해야 했다. 그런데 예산이 충분치 않아서 전국 시골 동네를 다 뒤지며 소품을 구했다. 당시 차가 없었기 때문에 친구 차를 빌려서 돌아다녔다. 한겨울이라 눈이 내려 추웠고 배도 고팠다. 하지만 고생 끝에 지게, 그릇 등 골동품을 모아다가 진열해 놓으니까 보기 좋았다. 된장 거드는 단지 등을 씻지도 않고 그대로 가져와서 극장 안에 냄새가 났던 게 기억난다. 가마니 속에서 쥐가 나오기도 했다.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이 작품에 특별히 애착이 간다. 

1989년부터 중부무대미술연구소를 설립하고 이곳을 공연예술인들을 위한 장으로 만들었다. 개인적 작업실이 아닌 열린 공간을 만든 이유가 따로 있었나?

작은 극단이나 학생들은 세트를 새로 맡길 능력이 안 된다. 그래서 우리 공장에서 만든 자재를 빌려주고 나중에 반납받고 있다. 소품을 재활용할 수 있으면 예산을 조금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450만 원 들어갈 거 100만 원이면 해결할 수 있다. 나중에 색깔만 지우면 되니까 큰일은 아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벌써 30여 년이 흘렀다. 

▲극단 원의 연극 '소작지', 노경식 작, 장봉태 연출, 민병구 무대 (사진=작가 제공)
▲극단 원의 연극 '소작지', 노경식 작, 장봉태 연출, 민병구 무대 (사진=작가 제공)

얼마 전 ‘부엉이 시리즈’ 60여 점을 선보이는 개인전을 개최했다. 부엉이 그림은 언제 처음 그리게 됐으며 부엉이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처음에는 수강료가 너무 비싸서 그림을 배우지 못했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다. 그러다 공모전에 몇 번 당선되면서 나도 그림이 된다는 생각이 들어 그림을 시작하게 됐다. 사군자를 그릴 줄 몰라서 대나무를 잘라다가 빛을 비춰 연필로 그린 다음, 그 위에 습자지를 놓고 먹으로 따라 그리며 연습했다. 나중에는 그림 그리는 분들 화실을 많이 찾아갔다. 그림 배울 데가 달리 없었기 때문이다. 고서화를 보면 먹을 가는 제자의 눈빛이 붓끝에 가 있다.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그림을 배우고 싶어서 그러는 것 같다고 혼자 상상했다. 곁눈질로 유심히 살펴보니 원래 그림은 그렇게 배우는 것이었다. 제자가 스승 넘기 위해서는 스승의 작품을 연구해야 한다. 나도 그런 식으로 열심히 그림 연습을 하면서 배웠다. 

부엉이 그림은 2013년도 즈음에 처음 시작하게 됐다. 중국에 계시는 선배님 가게 인테리어를 도와드리다가 작업장에 돌아오니 부엉이가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더라. 조금 기다려보니 하얀 아기 새 세 마리가 왔다 갔다 했다. 꼭 펭귄 같은 것이 귀여워서 부엉이에 대해 찾아봤다. 부엉이에 집착해서 작업하는 작가가 한국에는 없어서 부엉이를 주제로 그림을 그려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좀 서툴렀지만, 열심히 작업하다 보니 부엉이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 부엉이한테서 재미난 게 많이 나왔다. 코믹하게 만화처럼 그려볼 생각도 해보고, 슬픈 부엉이를 그려볼 생각도 해봤다. 

부엉이 작업을 시작하고 나서 사람들이 전보다 나를 많이 찾는다. 부엉이가 돈을 불러 온다는 속설이 있다 보니 불경기를 겪는 사람들이 그림을 많이 구매했다. 그렇게 일 년을 버텼다. 인사아트프라자에서 열린 전시도 반응이 좋았다. 그림이 21개나 팔렸다. 한 번에 네 점이나 사간 분도 계신다. 관객 중에 그림을 자기 블로그에 올려도 되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다. 

부엉이 그림은 무엇보다 내가 좋아서 그렸다. 하지만 부엉이는 복, 지혜, 재물을 가져다주는 동물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그림을 바라보며 마음에 위안과 희망을 얻길 바란다. 그림을 구매해 가져가신 분도 작품을 벽에 걸어놓고 무언가를 기다리고 계시지 않을까? 

▲민병구, '만월' (사진=작가 제공)
▲민병구, '만월' (사진=작가 제공)

건강 문제로 고생 많았던 거로 알고 있다. 

1989년부터는 사업자를 내고 본격적으로 일했다. 2014년까지 장거리 운전을 많이 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잤다.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심장 혈관이 꼬이더라. 지금은 발병한 지 8년 정도 지나 후유증은 없어졌다. 

그래서 요즘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무시해버리고 사니까 편해지더라. 두통도 없어졌다. 그래도 밤을 그냥 흘려보내는 게 아까워서 차 마시며 생각을 많이 한다. 전보다 일은 안 하지만 책은 많이 본다. 옛날에는 시인, 수필가 지인이 보내준 책들을 보내주어도 읽은 적이 없다. 읽어보지도 않고 잘 읽었다고 ‘뻥’을 쳤다.(웃음) 한 20년 전에 받은 책들을 인제 와서 읽어보고 있다. 그 형들에게 참 미안하다. 

▲민병구, '워낭소리' (사진=작가 제공)
▲민병구, '워낭소리' (사진=작가 제공)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품, 무대와 작품이 있다면?

무언가를 새로 만들기보다는 그냥 순리대로 살고 싶다. 전에는 일 욕심이 많았지만, 지금은 언제까지 일하게 될지 몰라도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뭔가를 내세우기보다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필요할 때 나와 일하고 싶다. 

그래도 굳이 하나 꼽아보자면, 초가집이 있는 빈민촌 무대를 만들어보고 싶다. 주호성 선생님이 연출을 맡았던 극단 원의 <소작지> 무대처럼 말이다. 당시 무대를 담당하셨던 분은 조성하 씨다. 우리 공장에 골동품이 많으니까 그런 것들을 싹 재활용해서 무대에서 한번 올려보고 싶다. 

무대를 쉬게 되면 목조각, 특히 부엉이 조각을 해보고 싶다. 보니까 부엉이나 사람이나 다 똑같더라. 종만 다를 뿐이지 생각은 비슷하게 하는 것 같다. 목조각을 하기 위해 작업실을 옮기면서 은행나무를 많이 모아놨다. 

요즘은 그저 볼거리를 주고 싶은 마음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면 나도 좋다. 내게 주어진 것들을 조금씩 마무리하면서 지내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