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알티미트무용단(ALTIMEETS)’의 두 번째 정기공연
[이근수의 무용평론]‘알티미트무용단(ALTIMEETS)’의 두 번째 정기공연
  •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21.10.27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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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알티밋(altimeets)'은 <Artist+Ultimate+Meets>의 합성어다. “예술가의 궁극적인 만남‘ 혹은 ‘우리가 만난 최고의 예술가들’ 정도로 해석하면 좋을 것 같다. 한예종 출신 한국무용전공자 들로 구성된 무용단 창단공연을 CJ토월극장에서 본 것은 2019년이었다. 같은 학교 현대무용전공자들로 구성된 LDP(Laboratory Dance Project) 창립이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보면 한 참 늦은 출발이다. 졸업생인 안덕기 교수가 실기과 전임으로 부임한 것이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창단공연 후 한 해를 건너뛴 두 번째 정기공연 ‘2nd Altimeets'(2021, 8.28~29)을 보기 위해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을 찾았다. 무대에 오른 김원영, 배진호, 장혜림이 안무한 세 작품 중 배진호의 ’Saliva or Blood(침 혹은 피)‘가 가장 인상에 남았다. 

무대 앞쪽에 한 여인이 다리를 들어 올려 양쪽으로 벌린 채 누워 있다. 수술대에 선 임산부의 자세다. 의사가 접근하고 여인은 탈진한 채 수술대에서 일어나 부축을 받으며 누군가에게 인도된다. 낙태는 자유로운 성의 부산물일 것이다. 네 귀퉁이에서 차례로 등장한 9명 남녀 무용수가 무대를 가득 채운다. 검정색 날렵한 옷차림의 무용수들이 자유롭게 움직이며 상대를 탐색하고 짝이 이루어지면 둘 만의 자리를 찾아 이동한다. 처음 만나서도 스스럼없이 입을 맞추고 몸을 섞는다. 동성끼리 맺어지기도 하고 남녀 셋이 원 팀이 되기도 하는 개방적인 성풍속도가 스스럼없이 드러난다. 키스를 통해 침(saliva)이 교환되고 섹스를 통해 체액(blood)이 섞인다. 피는 붉은 색을 띈 체액이다. 18금이 어울리는 행위들이 밝은 조명아래 대담하게 펼쳐지는 분위기는 관능적이지만 음란하지 않고 성적인 쾌락을 추구하지만 솔직하다. 섹스에 대한 호기심을 즐기려는 젊은이들이 모이는 비밀클럽을 엿보는 느낌이다. 보비 컬릭과 하산 클록((Bobby Crlic & The Haxan Cloak; 두 개의 이름을 쓰지만 실제로 이들은 동일인이다), 오디오머신(Audiomachine)의 음악이 배경에 낮게 깔린다. 어둡고 조용한 멜로디가 무대의 다소 들 뜬 분위기를 잡아주기엔 적절한 음악구성이다. 첼로 등 저음의 현악기로 시작하여 관악기 중심의 밝고 서정성을 띄는 음악으로 변해가는 ‘파이어 템플(Fire Temple)’을 비롯해서 안무가의 독특한 음악성을 느끼게 하는 선곡들이다. 배진호의 작품은 소재가 특이하다. 젊은이들의 지극한 관심사면서도 작품의 소재로 택하기엔 부담스럽던 '성(Sexuality)‘문제를 그는 정면에서 도전한다. 스물여덟의 젊음이 그의 힘일 것이다. ’Saliva or Blood‘란 제목 자체도 도전적이다. 키스는 상대방의 입을 막고 성교는 다른 모든 것을 정지시킨다. 성행위 자체가 말이 필요없는 깊은 대화란 면에서 입 대신 몸이 말하는 춤과 상통하는 면이 느껴진 작품이다.

마지막 한 작품을 남기고 안무자와의 대화시간이 준비되었다. 사회자(이한빛)가 세 사람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졌다. “안무의 영감을 어디서 얻는가?” 장혜림은 시대상황 혹은 반향이 큰 사회적사건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대답했다. 사람의 심리 혹은 자신의 심리상태라는 것이 이원영의 대답이었다. 배진호의 대답은 남달랐다. “모두의 관심사면서도 남들이 나서기를 꺼려하는 주제, 호기심, 체험에서 우러난 상상력”이라고 대답하면서 그는 수줍어했다. 이 대답들이  바로 그들이 보여준 이날 공연의 주제와 일치했다. 장혜림의 ‘심연’은 세월호의 비극을 통해 자녀들의 죽음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한을 묘사한 작품이다. 2017년 침몰 1주기를 맞아 초연한 후 나인티나인무용단의 레퍼토리가 된 이 작품을 그 해의 베스트 10 공연으로 꼽았던 기억이 난다. 자녀를 잃은 어머니의 한은 결코 끝날 수 없는 영원한 주제이지만 세월호를 넘어 어머니의 한을 표현할 새로운 소재를 찾아내는 것이 99무용단의 나머지 1%를 채우는 영감일 것이다. 이원영의 ’Am o te, am a me(아모 테 아마 메)‘는 인간심리 속에 내재된 자기애(나르시즘)를 춤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나르시즘은 10대 혹은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한번은 거쳐 가야할 고뇌지만 무대에서 성인 관객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를 고민해 보아야 했을 것이다. 글이나 말로서도 형용하기 어려운 관념을 몸으로 표현하기 위해 고통스러운 씨름을 계속하기보다 스스로 작품을 살아나게 할 영감을 찾아 나설 용기를 그에게 주문하고 싶다. 

‘2nd Altimeets'은 절반의 성공이다. 해를 거듭하면서 그들만의 고유한 색깔을 찾아가길 바란다. 새롭지도 않고 관객을 놀라게 하거나 흥미를 유발시키지도 못하는 작품이 관객들에 어필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자극적인 주제와 남을 놀라게 하는 작품을 보여주겠다는 배진호의 당연한 욕심이 알티밋이 존속하는 한 오랫동안 지켜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