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세상을 보는 창] 집콕문화소개, 좋은 영화 다시보기Ⅳ
[예술가의 세상을 보는 창] 집콕문화소개, 좋은 영화 다시보기Ⅳ
  • 유승현 아트스페이스U대표, 설치도예가
  • 승인 2021.10.2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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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 튀는 인권영화 이옥섭감독의 ‘메기’
▲유승현 아트스페이스U대표, 설치도예가

2019년 개봉된 독립영화 <메기>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인권영화 프로젝트로 믿음과 불신 사이에 놓인 이들의 정서를 매우 독특한 시선으로 그려낸 이옥섭 감독의 첫 장편 영화이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CGV아트하우스상, KBS독립영화상, 올해의 배우상, 시민평론가상 수상에 이어 뉴욕아시아영화제, 로테르담국제영화제, 뮌헨국제영화제 등 해외에서도 주목을 받고 당시 큰 화제가 되었다. 당신은 수많은 관계와 현상 속에서 어느 것도 믿지 못하여 밤새 괴로웠던 경험이 있는가? 또는 착각의 늪에 빠져서 침울했던 적은 없었는가? 이들에게 재치 있게 말을 걸어주는 영화 ‘메기’속으로 들어가 본다.

관계의 불신과 사회부조리에 관한 이야기

영화 ‘메기’는 마리아사랑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 여윤영(이주영분)을 중심으로 주변인물들의 생각과 행위를 통해 인간의 그릇된 생각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시키는지, 또 타인을 믿지 못하는 관계 속에서 실의와 괴로움에 빠지는 일은 얼마나 많은지 보여준다. 어디든 도사리고 있는 불법촬영과 데이트폭력, 청년들의 실업문제, 무분별한 재개발과 주택문제 등 젊은이들의 눈에 비친 사회문제가 뭉근하게 떠오르는 작품이다. 수족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물고기 메기의 등장. 메기의 내레이션과 메기시점이라니! 감독의 자유로운 발상과 넘나드는 시도가 흥미롭다. 몇 해 전만 해도 수녀원이었지만 지금은 상업행위를 하는 마리아 사랑병원에서 주요사건이 시작되는데 비공개되어있는 방사선실에서 가끔씩 애정행각을 벌였던 인물들이 적지 않았나보다. 그날따라 방사선기사와 남자친구가 사랑을 나누던 중 누군가에 의해 몰래 촬영되었고 적나라한 xray 사진이 병원에 공개되면서 물의를 일으킨다. 모두들 자신일지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이 시작되자마자 누구든 의심하는 미스터리한 상황이 시작된다. 주인공 윤영은 본인일거라고 믿으며 결국 일을 그만두려고 하는데 같이 사는 남자 친구가 사직서를 대신 써준다. 그 어려운 한자를 척척 써내려가다니! 아이러니다. 그는 정규 취업하지 못하고 일일노동을 야간에도 하고 있는 인텔리다. 우연히 재개발 반대 시위현장을 지나며 무심코 ‘작품이다’라는 말을 남기는 주인공 윤영. 공동의 의식을 함께하는 자체가 아름다운 일 아닌가? 서로를 불신한다면 함께 할 수 없기에. 말하지 않으면 진실도 사라진다. 온갖 사회문제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 시대의 커다란 씽크홀이다. 재난영화도 아닌데 영화속에서는 도로 한복판에 씽크홀이 생긴다. 뻥뚫린 도로를 보며 구조대원에게 누구는 호기심 가득한 물음을 던진다. “저 구경하면 안 되나요?” “네 안 됩니다”

영화속 등장인물들의 대사들도 예사롭지 않다.

“이제 우리 사람 믿기로 해요”

“밤이 떫어” “네 마음이 떫은 거야”

“사실은 언제나 사실과 연관된 사람들에 의해 편집되고 만들어진다”

자유로운 발상이지만 충분한 고민을 한 영화

영화초반부터 남녀의 성행위가 찍힌 Xray등장. 관객의 호기심을 충분히 부르지만 우리사회가 도촬된 위법행위보다 자극제로 쓰인 인물들 파헤치기에 중독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어쩌면 대중의 솔직한 입장을 감상자들이 처리하는 느낌이다. 또 독립영화 몇 편이 영화안에 삽입되어 함께 상영되는 듯한 독특한 구조로 각 에피소드들이 배우들의 열연으로 개성 있게 표현된다. 때로는 인물들을 최대한 작게 그리는 방법, 대신 인물을 둘러싸고 있는 배경을 프레임 안에 꽉 채운 처리가 이색적이다. 풍광을 남기고 싶은 명소에서 사람을 작게 담는 대신 배경을 크게 넣는 것만으로도 그 곳의 정서를 단번에 느낄 수 있지 않은가? 감독의 의도대로 인물들의 정서가 옴팡 느껴지는 대범한 샷처리가 좋았다. 필자는 영화를 볼 때 영상의 색감과 패션에도 민감한 편인데 본 영화는 비비드한 컬러감을 배경으로 한 시위현장 설치가 인상 깊다. 그 설치현장도 궁금했다.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 젊은이들의 상징 체크무늬, 다소 비현실적인 병원설정과 간호사들의 백색유니폼, 자꾸 훔쳐보게 되는 주인공의 집 내부, 남친에게 폭 안겨서 달리는 자전거까지, 시대는 불안하지만 시대를 사랑해야하는 젊은이들이 느껴진다. 독립영화의 큰 장점인 섬세한 연출과 고민의 흔적이 영화 속에 가득했다. 영화 속 대사로 끝을 낸다.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구덩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 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