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근의 얼씨구 한국음악과 문화] 적선(積善), 위대한 그 분들의 아름다운 기부
[주재근의 얼씨구 한국음악과 문화] 적선(積善), 위대한 그 분들의 아름다운 기부
  • 주재근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 승인 2021.10.27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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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근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우리 사회가 따뜻한 온기가 있음을 보여주는 훈훈한 소식 들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간혹 들려오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기부 소식이다.

여자 배구 김연경 선수가 도쿄올림픽을 마치고 중국 배구 리그를 위해 떠나기 전 국내 재난구호모금 전문기관인 희망브리지에 3천만원을 기부하였다고 한다. 학폭으로 인해 그리스 배구계로 떠난 쌍둥이 자매의 일련의 행적과 비교해 보면 자기관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빌게이츠는 왜 아프리카에 갔을까 - 거짓 관용의 기술』은 세계 최고 부자이자 최대의 기부천사로 칭송받아 온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의 감춰진 속내를 파헤쳐진 내용들이 씁쓸하게 담겨 있다. 기업들의 사회 기부는 기부액은 크지만 순수성에서 볼 때 개인들의 기부와는 차원이 다르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우리나라 연예계 최고의 기부 스타를 공개하였는데 흥미있게 본적이 있다.

연예계 기부 천사 1위에 이름을 올린 가수 하춘화는 19살부터 48년째 꾸준히 기부를 해 오고 있는데 기부한 금액이 약 2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그 뒤를 이어 가수겸 배우 장나라가 기부한 금액은 130억원이라고 한다. 가수 조용필은 2009년 조용필 장학재단을 설립해 약 88억원을 기부했다고 한다. 그리고 기부천사로 많이 알려져 있는 션과 정혜영 부부는 기부한 금액만 55억원 이상이라고 한다. 이밖에도 가수 아이유, MC 유재석, 배우 신민아 등 많은 연예인들이 기부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이들 연예인들의 공통점은 자칫 흐트러지기 쉬운 자기 관리에 한점 흐트러짐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 국악계의 최고 기부 스타는 누구일까? 단연 독보적으로 꼽히는 분이 향사(香史) 박귀희(1921~1993) 명창이다. 경북 칠곡군 가산면에서 태어난 박귀희 명창은 독립운동 지사와 같은 강건함과 굳건한 신념을 가지고 민족 예술의 보존과 계승에 평생을 다하신 분이다.

광복 이후 초대 외무부장관, 국무총리 등을 역임한 장택상과 한집안인 장병관의 서녀로 태어난 박귀희는 후에 장택상의 도움을 받아 국악발전기금 마련을 위한 감상회를 열었다. 이 감상회를 통하여 국악학교 설립을 위한 기성회가 조직되었고 1955년 한국민속예술학원을 설립했다. 박귀희 명창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고 서양음악의 급속한 유입 속에 국악의 위축과 국악인재양성이 어려워져 판소리 국창 김소희를 비롯하여 뜻 있는 국악인들과 함께 1960년 국악예술학교(후,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 현,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1970년 국악예술고등학교가 서울 성북구 석관동으로 옮겼을 때, 1992년 금천구 시흥동으로 이전할 때 마다 자신 소유의 운당여관을 판 돈과 대전의 과수원까지 팔아 전 재산을 헌납해 주었다. 당시 박귀희 명창이 기부한 금액은 예술가로서 기부한 금액은 물론 그 정신적 가치도 최고가 아닐까 생각 된다.

조선일보 방일영문화재단이 1994년 ‘국악의 해’를 맞아 제정한 방일영국악상은 권위와 상금 규모에서 국내 최고 수준의 상이다. 1994년 이후 현재까지 국악의 보존 전승 발전에 지대한 공헌한 분을 선정해 오고 있다. 수상자 가운데 제2회 수상자인 만당 이혜구 박사님은 상금 전액을 서울대 음악대학에 기부하였고 그 뜻을 받아들여 <이혜구 학술상>을 제정 운영해 오고 있다. 만당 이혜구 박사는 서울대동문회에서 선정한 제1회 자랑스런동문인상에도 선정되는 등 사회적 덕망은 물론 국악학의 초석을 세우고 확장시킨 분이다. 제3회 수상자인 박동진 명창은 방일영국악상 수상금 1억원을 국립국악고등학교와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에 각각 5천만원씩 장학금으로 희사하였다. 박동진 명창은 판소리 완창과 창작 판소리 영역을 개척하는 등 현대 판소리사에 한 획을 그은 분으로 평가받고 있다.

방일영국악상 제5호 수상자인 관재 성경린 또한 방일영국악상 수상금과 자신의 재산을 보태어 국립국악원에 기탁하여 <관재 국악상>을 제정 운영해 오고 있다.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에서 거문고를 전공하고 광복 이후 국립국악원에서 궁중음악과 정악 등 우리 전통음악의 계승에 많은 힘을 기울이신 분이다.

박귀희, 이혜구, 박동진, 성경린 등 각 분야에서 큰 발자취를 남긴 이들의 염원은 단 하나이다. 그것은 국악계 후학들이 우리 민족의 소중한 문화예술자산인 국악의 전승 발전의 끈을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국악계를 비롯한 모든 문화예술계가 점점 갈수록 더욱 힘들어 지고 있다. 이러한 때 국악계와 문화예술계 후학들을 위한 기부 소식이 들려 온다면 쩍쩍 갈라진 마른 마음에 참 귀하고도 소중한 단비가 될 것이다.

우리가 반드시 배워서 지켜야 할 생활규범과 어른을 공경하는 법 등을 구체적이고 상세한 생활철학의 글을 모은 『사자소학』이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문구는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선행을 쌓은 집안은 반드시 뒤에 경사가 있고, 부선지가 필유여앙(不善之家 必有餘殃)-선행을 쌓지 않은 집안은 반드시 뒤에 재앙이 있다’ 라는 글이다.

지금 언론을 통해 보는 국악계는 국내외적으로 보기 드문 흥행의 서막에 있다. 이 바탕에는 박귀희 명창과 같은 분들의 헌신적인 기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적선을 하기 위한 실천 방안을 잘 세워 올해 가기 전 동참의 한 걸음을 옮겨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