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어색한 만남, 문화재와 조명
[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어색한 만남, 문화재와 조명
  • 백지혜 디자인 스튜디오라인 대표, 서울시좋은빛위원회 위원
  • 승인 2021.10.27 10:01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지금 우리나라 전역에서는 위드코로나 시대에 대한 기대감과 더불어 서늘해진 가을밤에 즐길 야간 관광 컨텐츠가 다양하다.

5천년 역사 속에서 전국에 산재한 크고 작은 문화재를 그 컨텐츠로 하는 사업이 많은데 전국적으로 25개 정도의 대표적인 문화재 야행이 있다.

필자가 계획에 참여했던 대구문화재야행은 청라언덕이나 계산성당등을 포함하는 100년 역사를 갖는 근대문화재를 야간에 해설사와 함께 청사초롱을 들고 돌아보는 것으로 대부분의 도시들에서 그 형식은 유사하며 국보보다는 도에서 지정한 문화재, 고대문화재 보다는 근대문화재를 이용하여 야간경관을 더하는 식이었다.

최근 문화재 야간개방, 관광산업과 연계한 문화유산 활용 확대에 따라 활발히 관심을 끌며 진행되는 것이 5개 도시 유네스코 세계유산 문화재에 대한 미디어아트 쇼이다. 우리나라 문화재를 널리 알리고자 문화재청에서 계획한 공모 사업으로 속리산 법주사 팔상전과 익산 미륵사지, 부여의 정림사지, 수원 화성 그리고 공주 공산성, 이렇게 5곳이 선정되었고 문화재 고유의 이야기와 의미를 담아 미디어 컨텐츠를 제작하고 지정된 건물이나 구역을 캔버스 삼아 조명과 디지털 기술을 결합하여 미디어쇼를 연출하게 된다.

또한 문화재청은 자체 예산을 들여 구 공주읍사무소, 아산 맹씨 행단, 세종 부강성당 등 전국의 문화재 24개소에 야간경관조명 설치 사업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고, 이외에도 고양시 행주산성은 경기도 지역 특화 콘텐츠 개발 지원사업으로 선정되어 ‘행주가(街) 예술이야(夜)’라는 타이틀로 미디어 아트와 공연을 접목한 행사를 시행하며 서울 덕수궁에서도 2021 덕수궁 프로젝트 ‘상상의 정원’에서 미디어아트를 선보이고 있다.

이제까지 야간 관광 콘텐츠는 장소가 가지는 특성과 상관없이 루미에날레식으로 빛을 펼쳐 놓거나 맥락없는 조명조형물을 여기저기 설치해 놓는 사례가 많았는데 이제는 지역별 문화재의 이야기와 고유의 가치를 전달하고자 한다는 것이 매우 고무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야간 관광 컨텐츠가 불편한 것은 빛과 문화재와의 어색한 만남 때문이다.

문화재에 조명이나 미디어 아트 등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는 것은 보존과 활용의 두 숙제를 가장 슬기롭게 해결하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방법이 적절한가에 대한 지속적인 의문이 든다.

문화재에 조명을 비춘다고 하면 예전에는 일단 ‘안된다’ 였는데 그나마 요즈음은 ‘은은하게’,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게’,‘품격에 맞게’라는 표현으로 소극적인 동의를 표현 한다. 문제는 어느 만큼이 적절히 은은하고,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으며, 품격에 맞는지 알 수가 없다. 국제조명위원회에서 명시하는 문화재 조명 방법에서도 비추는 방법이나 색온도에 대한 내용이 전부이며 그나마 목조가 대부분인 우리나라 문화재에 대하여 적용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다.

문화재에 조명을 비추는 것에 대하여 우리나라 보다는 유럽이 먼저 고민을 해 온 것이 사실이고 그들의 문화재는 대리석이나 돌로 만들어져 우리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오랜 시간 동안 태양광을 견디어 온 문화재인데 더해지는 인공조명이 치명적일 수 있다고, 빛의 양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목조 문화재의 경우는, 더군다나 법주사 팔상전과 같이 색이 입혀져 있다면 그에 대한 염려를 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조명 방법에 있어서도 문화재의 특성에 맞게 다른 접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조명을 계획하기 전에 대상 문화재의 가치나 의미에 대한 충분한 고찰이 있어야 하며 그에 따른 적절한 조명 계획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궁궐은 전각별로 그 쓰임새나 사용자의 다름이 드러나게 한다던가 일반 주택에서도 사람이 살았던 공간과 조상의 위패를 모신 사당은 다르게 비추어야 할 것이다. 전기 배선이 불가한 고건축물과 내부 활용이 가능한 근대건축물에도 다른 방법을 적용해보고, 돌, 벽돌, 목재 등 재질에 따른 다름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다.

문화재의 주간 경관을 최대한 보존하기 위한 조명기구를 최소한으로 설치해야 한다거나 드러나지 않는 설치방법이나 조명기구 크기 선정에 대하여도 충분히 고민하도록 지침이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한다.

수원화성에 가면 전면 공원에 미디어쇼를 위한 거대한 조명타워와 프로젝터를 위한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다. 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영 불편하다. 가보지도 않은 법주사 뜰, 정림사지, 미륵사지 그리고 공산성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더 불편하다. 문화재 활용을 위해 이것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