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문학평론가 임헌영과 유성호의 대화록”…『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 출간
[신간]“문학평론가 임헌영과 유성호의 대화록”…『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 출간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1.10.28 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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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의 생애 집약한 자전적 기록
역사 격랑 속에서 꽃피워낸 문학의 길
▲저자 임헌영|한길사|정가 24,000원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나는 문학으로 역사를 성찰하고 역사를 문학으로 조명한다”

문학평론가 임헌영과 유성호가 치열한 민족의식의 언어로 풀어낸 대화록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이 출간됐다. 이 책은 임헌영의 유년 시절부터 두 번의 수감생활을 거쳐 민족문제연구소장을 역임하고 있는 현재의 생애까지를 집약한 자전적 기록이기도 하다. 

임헌영은 아주 독특한 이력을 지닌 문학평론가다. 그는 80년의 세월 동안 식민지 시대, 해방과 분단, 독재와 항쟁을 끝없이 경험하며 역사의 격랑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문학사와 민족사에 큰 획을 그었으며 현재까지 왕성하게 활동하는 문학평론가다. 『친일인명사전』(2009) 출간에 앞장서며 근현대사의 반성적 자료를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문인간첩단 사건과 남민전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의 인생을 따라가다 보면 어두운 시대를 앞장서서 걸어간 현대사가 그대로 드러난다.

임헌영은 대학원생이던 1966년 『현대문학』에 조연현 추천으로 평론가로 등단했다. 대학원 졸업 후 그는 1968년 『소년경향』에 들어갔는데 적자로 폐간되어 『주간경향』에서 대중문화 관련 기사를 썼다. 그러던 중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이름을 알린 김상현 의원이 설립한 출판사 범우사에서 1970년대 사회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한 잡지 『다리』지를 창간했다. 제7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김대중 후보의 홍보 활동을 원천봉쇄하려는 독제체제의 음모 아래 『다리』지 필화 사건이 발생했다. 발행인 윤재식, 주간 윤형두, 필자 임중빈이 구치소에 수감됐다. 이 사건의 재판을 맡은 목요상 판사는 “고위층에서 이 사건에 관심이 많다”는 압박을 받았지만 세 구속자를 모두 직권보석으로 석방했다. 임헌영은 필화 사건 이후 1971년 『경향신문』에서 『다리』지로 옮겨가 많은 지식인에게 경종을 울리는 글을 실었다.

이후 그는 유신독재 후반기에 남민전 사건으로 또 한 번 옥고를 치르게 됐다. 10월 9일 한글날, 구자춘 내무부장관이 특별기자회견에서 건국 후 반국가활동 단일사건으로는 최대 규모인 74명이 가담한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 위원회’ 사건 총책 이재문을 위시한 20명을 경찰이 검거했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임헌영을 포함한 나머지 54명에 대한 검거령이 내려져 그는 관계 기관에 자진 출두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집 앞에 대기하고 있던 형사들에게 붙잡혀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되었다. 형사들은 온갖 증거물을 압수해 그를 협박했는데, 의논만 하고 실천하지 않은 일들도 있어 숱한 고문을 당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임헌영의 아내 고경숙도 구금되어 대학교 행정직으로 일하던 곳의 사표를 강요받았다.

그는 2심이 끝나는 9월까지 서울구치소에 있었다. 다음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 그는 독방 신세를 청산하고 일반수들과 합방해 경제사범들 방에 배정됐다. 그는 이후 광주와 대구 교도소를 전전하면서그곳에서 홍남순, 송기숙, 박석무, 김남주, 서승 등 귀중한 인물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1983년 8·15에 특별사면을 받아 풀려나면서 인생의 한 고비를 넘겼다.

임헌영은 1985년 10월 초 민주화운동을 더 알차게 추진하려면 근현대사를 다룰 연구소가 절실하다는 대화를 박원순과 나누다가 연구소를 세우기로 마음먹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비역사학자들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그는 근현대사에 더 본격적으로 다가서고 싶다는 의지 하나로 연구소를 차렸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시절 블랙리스트 파동으로 임헌영은 현대문화센터 강의를 접게 됐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낸 다큐 「백년전쟁」이 화근이었다. 그는 이 일을 계기로 민족문제연구소에 더욱 헌신하며 지냈다. 그는 연구소 역사의 3분의 2 정도 되는 세월을 함께했다. 

1991년 2월 27일(강화도조약 체결일)에 4명이 개소한 연구소는 현재 상근자 40여 명에 1만 2,000여 후원회원이 함께 학술연구와 실천운동을 병행하는 단체로 성장했다. 연구소는 2021년 2월 27일에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연구소는 그간 여러 업적을 이루어냈는데 가장 독보적인 활약은 『친일인명사전』 발간이었다. 1997년 IMF로 연구소가 큰 타격을 입자 전국교수들의 서명을 얻어 『친일인명사전』 편찬지지 선언을 했고 2001년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유성호가 대담을 이끌어가며 조명한 임헌영의 생애는 한나 아렌트가 말한 어두운 시대를 밝히는 한줄기 빛과 같다. 광기와 야만의 세월을 살아낸 임헌영은 살아 있는 역사이자 역동적인 정치적 산물로서 문학작품을 바라본다. 그가 읽고 섭렵한 문학작품들에 대한 기억은 그 시대를 증언해주는 기록이다. 한평생 문학의 길을 걸어온 그가 말하는 문학은 역사 그 자체다. 

낙관과 비관이 공존하는 우리의 역사를 돌아본다면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는지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저명한 두 평론가의 대화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문학과 역사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