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꼭 장가가게 해 주세요’ 부적 만들어 볼까
‘올해는 꼭 장가가게 해 주세요’ 부적 만들어 볼까
  • 편보경 기자
  • 승인 2010.01.07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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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회민화박물관, 수복강녕을 빌던 선조들의 발자취

호랑이 해를 맞았다.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호랑이 사진과 그림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호랑이의 맛은 뭐니뭐니 해도 역사 교과서에서 우리가 흔히 봤던 그 유명한 까치와 호랑이가 그려진 우리의 전통 민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디서 이 그림을 볼 것인가? 가회동 민화박물관을 찾아가 보라. 금수의 왕 호랑이를 해학적으로 표현한 모습은 우리 조상들의 풍류와 해학을 느끼게 한다. ‘올해는 꼭 장가가야하는데..’혹은 ‘반드시 취업해야하는데’라는 부푼 꿈을 하나쯤은 안고 희망찬 새해를 출발했을 것이다. 과연 나에게 그만큼의 운이 따라줄지 하며 사주를 보러가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서울에서 그곳을 대신할 만한 곳도 민화 박물관이 아닐까 싶다. 민화박물관은 한국 고유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한옥 전시관에 부적과 민화 총 1,800여점을 소장하고 있어 수복강녕을 빌던 우리 조상들의 삶과 염원을 엿보게 한다. 올해 당신의 사주가 궁금하다면 대신 이곳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어차피 꿈을 이루는 것은 마음에 달린 일이니 말이다.

 눈이 소복이 내린 날 찾은 가회민화박물관은 자그마한 한옥집 그 자체로 운치를 뽐내고 있었다. 지난 2002년에 박물관장인 윤열수 관장의 수집품을 바탕으로 문을 열게 된 가회박물관은 인간의 삶과 염원이 담겨있는 부적과 민화, 벽사그림 등 1,80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작가가 미상인 작품들이 많아 더욱 비밀스럽고 사람들의 진솔한 감정이 담겨 있는 민화와 주술적 신앙이 반영되어 있는 벽사그림, 통일신라시대의 인면와(人面瓦), 귀면와(鬼面瓦) 등이 흥미롭다. 또한 부적병풍을 비롯한 각종 부적, 부적판 등이 전시되어 있어 재난극복을 위한 선조들의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가회민화박물관 모습

 척 보기에는 그 뜻을 알기 어려운 부적들로 만들어진 병풍이 영험해 보이면서도 재미있다. 부적은 소원 성취나 액막이, 삼재(三災)-화재(火災), 수재(水災), 풍재(風災) 부적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부적들 중에서 머리가 3개 달린 매(鷹)가 그려진 부적이 바로 삼재를 막아 주는 부적이다.

 화면에 꽉 찬 느낌이 들도록 나뭇잎과 꽃, 새를 그려 풍성하고 충만한 느낌이 드는 화조도 8폭 병풍에는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매화,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 청정함을 상징하는 연꽃, 득남을 기원하는 원추리꽃 등이 쌍을 지어 노니는 새와 함께 그려져 있다. 꽃과 함께 어우러진 새들의 모습이 따사로운 봄날 햇살 아래 사랑에 분주한 연인들의 모습을 표현한  듯한 작품이다.

 문자도는 글자의 뜻과 관련이 있는 고사(古事)나 설화(說話) 등의 내용을 자획(字畵) 속에 그려 넣어 서체를 구성한 그림이다. 삼강오륜의 교훈적이고 길상적인 뜻을 담고 있는 효제문자도는 효(孝)·제(悌)·충(忠)·신(信)·예(禮)·의(儀)·염(廉)·치(恥)를 도식화하여 제작하였다. 이러한 문자도는 장식화로서 아름다움과 사회 윤리기능까지 담당해 인간의 윤리관과 존엄성을 일깨워 주는 그림이기도 하다.

  보통 민화는 작가가 없는 것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민화박물관에는 강원도지방의 대표적인 문자도로 석강(石剛) 황규성(1886~1953)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작품이 있다. 상단에서부터 화제, 문자, 책거리를 차례로 배치한 3단 구도의 이 문자도는 매우 화려한 채색과 여러 장르의 민화를 함께 그리는 것이 강원 문자도의 특징이 있는 작품이다.

 특별한 것은 역시 역사 교과서에서 우리가 흔히 본적이 있는 그 유명한 까치와 호랑이 민화를 직접 감상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수의 왕 호랑이를 해학적으로 표현한 모습은 우리 조상들의 풍류와 해학을 느끼게 한다. 

 전시를 관람하고 나면 박물관 한 편에서는 직접 부적을 찍고, 귀면와를 탁본(拓本)할 수 있는 체험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작품들을 더욱 깊이 있게 공부하고 싶은 사람을 위해 그간 윤열수 관장이 출간한 책을 구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가회민화아카데미가 열려 민화이론을 전문적으로 교육하고 있다.

 올해는 3월 개강을 앞두고 제7기생을 모집 중이다. 7기 교육에는 안휘준, 이태호, 윤용이, 이원복, 안상수, 강순형 등이 강사로 초빙, 수준 높은 강의를 선보인다. 

 1월 중 주말에는 어린이 방학특강도 열린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이 특강은 사회수업, 민화이론, 까치와 호랑이 그리기, 다과 접시만들기 등을 내용으로 한다.


 

가회박물관 윤열수 관장 인터뷰

“새해소망? 조금 더 넓은 공간에서 소장품 모두 선보이고 싶어”

▲효제문자도 8폭 병풍

 

 군대에서까지 부적수집? 수집가라면 누구나 수집 무용담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터이지만 윤 관장의 수집은 더욱 특별한 구석이 있어 흥미진진했다.

“제 고향이 전북 남원인데 백제와 신라의 접경 지역이었던 탓에 곳곳에 고분이 널려있었어요. 전북 남원이 고향인 까닭에 어려서부터 옛 문화가 대수롭게 보이지 않았지요. 그러한 문화재에 대한 관심은 우표수집에서 부적 수집으로 옮겨 갔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는 가야토기 150여점까지 수집하게 됐습니다.”

 원광대학교 영문과에 진학했지만 등록금이 여의치 않아 입학하자마자 당시 학교 박물관 관장이었던 유병덕 관장에 자신을 소개 하고 그동안 모았던 토기를 모두 원광대 박물관에 기증하면서 박물관에서 일을 시작했다. 학부생이지만 대학원생들이나 하는 박물관 조교를 시작하게 된 셈이다. 그렇게 자못 특별한 대학시절을 보내고 있을 때 그에게 민화가 삶이 되게 해준 또 한번의 특별한 인연을 만났다. 

“대학 3학년 때 미국에서 평화봉사단이 왔을 때였어요. 그중 칼스트롬이라는 미국인이 저의 면면을 보고 서울에 있는 민화분야의 전문가 조자용 관장이라는 분을 한번 찾아가보라고 권유해 주더군요. 저는 박사님을 찾아 갔고 그때 박사님께서는 졸업하면 박물관에 한번 찾아오라는 말씀을 해주시더군요.

 그래서 결국 에밀레 박물관에서 근무를 하게 된 것이고요. 약 11여 년간을 그곳에서 근무하면서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1982년 한미수교 100주년 때 스미소니언에서 공연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적이 있는데 그 덕분에 상당한 금액의 돈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 돈으로 미국 여러 곳을 일주하면서 견문을 넓혔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벽사
이후 그는 밑바닥부터 차곡차곡 쌓아 민화전문가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동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 진학했고 고미술 분야에 많은 식견을 가질 수 있었다. 1985년에는 여의도에 있던 삼성출판사에 삼성출판박물관을 설립하는 과정에 학예직으로 참여하게 되고 당산동에 설립된 삼성출판 박물관에 근무하게 된다.

 1989년부터는 일본 고단사로부터 초청받아 연구지원에 참여함으로서 차근차근 민화를 직접 구입할 수 있게 됐다. 실크로드, 앙코르와트 등지를 다니며 동남아 유물에 대해 견문을 넓히는 계기도 가졌다. 그러나 윤 관장이 민화 컬렉션을 갖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정작 따로 있었다.

“IMF시절이었습니다. 어느 날 인사동을 지나는데 1층은 도자기, 2층에는 훌륭한 수준의 민화들과 병풍이 상당해 평소에도 정평이 나있던 집이었는데 부도가 났다는 거예요. 수소문해서 주인을 만나보니 그 주인이 몽땅 1억 5천에 가져가라는 겁니다. 직장생활 시절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몇 점의 민화를 구입하기도 했지만 저로선 횡재를 하게 된 것이었죠.”

이 때 역시 가장 도움이 된 것은 윤 관장의 부인이었다. 평소 자신의 ‘박물관 올인 정신’을 누구보다 아는 아내는 아파트를 담보로 하고 전세까지 낮춰서 말 그대로 전 재산을 털어 소장품을 갖출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 수집품들이 지금의 박물관을 만드는 주춧돌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후 이화여대 김홍남 교수와 옹기 박물관의 이영자 관장이 서울시에서 북촌 한옥을 수리해 박물관으로 임대한다는 소식을 들려주었고요. 현장을 답사해보니 규모는 작아도 민화전시장소로는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의 민화 지키기의 노력은 박물관 설립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정식 박물관 학예직으로 일하기 시작한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벌써 30여년이다. 이후 석사와 박사를 거치면서 민화전문가 문화재전문위원을 역임하고 민학회 회장으로도 활동했던 그는 15권의 박물관 발행 단행본과 도록 등을 제작하기도 했다.

“민화가 단순히 이름없는 떠돌이 화가들에 의해서만 그려졌다고들 생각을 많이 하는데 일부에서는 분명히 시승계보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연계성을 통해 기법과 소재 등이 전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민화의 사례와 지역별 경향, 작가 찾기 등을 해왔고 이러한 연구 결과는 제 박사 논문인 ‘문자도를 통해 본 민화의 지역적 특성과 작가 연구’에서 그 논거를 밝히기도 했지요.”

올해 가회민화박물관은 호랑이 해 경인년을 맞아 다양한 전시를 기획 중이다. 오는 8일부터 11일까지는 주중한국문화원에서 여러 박물관 들과 함께 한국의 설맞이 기획전을 연다. 이 전시에서 짚풀, 한지 닥종이, 연, 세시풍속, 전통음식을 주제로 전시를 선보이게 되는데 가회박물관은 호랑이 민화를 전시를 할 예정이다. 

“해외전시도 기획 중에 있습니다. 또 오는 4월 중순에는 프랑스에 있는 한국문화원에서 무신도 20점을 전시하게 되고요. 비슷한 시점인 4월 중 일본에서 인물을 바탕으로 한 민화를 전시할 계획도 갖고 있어요. 그 밖에 현재 부적에 관한 책을 준비 중인데 올해 출간될 예정입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박수 받지 못할 뻔 했던 우리 민족의  가장 참다운 모습을 담고 있는 민화들을 오롯이 지켜온 윤 관장의 올해 소원은 뭘까.

“민화와 부적이 한옥과 찰떡궁합이라 이대로도 좋지만, 장소가 비좁다 보니 아무래도 조금 더 큰 공간에서 전시를 하면서 제가 가진 많은 소장품들을 한꺼번에 보여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개인 박물관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어렵기는 매한가지여서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고요. 새해를 맞이하는 만큼 가족들과 함께 민화 박물관을 찾아서 새해 소원도 빌고 부적도 만드는 즐거운 시간을 가져 보는 것도 좋겠지요.”

편보경 기자 jasper@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