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한류, 막걸리
한글,한류, 막걸리
  • 이수경 교수(도쿄가쿠게이대학)
  • 승인 2010.01.07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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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사라질뻔한 인류의 재산

▲필자 이수경 교수
일본의 시사 주간지로부터 일제강점 100년에 즈음한 정월특집기사의 의뢰가 와서 1월1일호에 아래와 같은 내용을 게재했다. 일본어로 적었던 내용이지만, 일본사회에만 소개하기에는 좀 아쉬워서 주된 내용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李修京「韓国併合100年」『週刊新社会』2010年1月1日、第664호、8쪽 참조)
……………………….이하 기사 번역 소개………………………
일본에서 최근에 높은 인기를 얻으며 파급되고 있는 것 중에 한국 막걸리가 있다. 원래 막걸리라는 말은 [적당히 여과시킨 것]이 어원인데, 술 색이 하얗고, 짙은 맛에, 농촌에서 논밭일을 할 때 농부들이 즐겨 마신다고 하여서 농주라고 불리기도 했다.

각 지방마다 독특한 제조법을 가진 막걸리 맛이 있고, 한국에서는 지금은 와인과 더불어 인기가 높다. 그 중에서도 한국의 전통 막걸리 제1호로 지정되어 제조 비법을 고수하며 일정한 양밖에 생산하지 않는 부산 금정 산성막걸리가 [서울문화투데이]의 문화대상을 수상하였다기에 필자도 학술대회에 참가 후, 취재가는 지인에게 동행을 했다.

그 미묘한 맛을 내는 독특한 누룩 만드는 방법이나 코 끝이 싸-한 누룩향의 유지방법, 불순물을 섞지않은 양심적 제조법과 전통을 계승하는 고집스런 의식이 높이 평가된 것이다. 그러나 원래 이 술은 근대사 속에서 소멸될 뻔 했던 귀중한 술이다. 금정 산성막걸리사가 술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일제 강점기때이다. 전통적인 조선의 술 제조를 금지해 온 일본측의 엄한 감시를 피해서 부산의 험난한 동래산성의 산 속에서 밀조주를 만들어 온 역사의 부산물이다. 그렇기에 일반 보급이 되는 일이 별로 없었고, 해방 후에 겨우 빛을 보게 되어 당시의 박정희 정권 때에 그 역사의 뒤안길에서 우직한 전통과 한국의 맛을 보존해온 고집을 평가받아 전통 막걸리 제 1호로 제정되었다.

▲금정산성막걸리의 누룩빚는 모습

지금은 식민지 시대에 금지당했던 그 막걸리가 건강과 미용에 좋은 술이라고 하여, 금정 산성 막걸리의 누룩제조법을 규명하기 위해 찾아오는 일본업체가 많다고 한다. 참고로 필자는 일체 술을 못 마시는 체질이지만, 현지에서 권유받은 이 술을 맛보고선 소박한 맛에 매료를 느껴서 최근에는 일본에서 구입가능한 막걸리나 복분자를 간혹 즐기기도 한다.

일제 강점기가 지속되었다면 우리는 자칫하면 거대한 세계적 유산과 소중한 문화들을 잃는 손실을 입었어야 했다. 최근, 식민지 시기때 잃을 뻔 했던 한국의 문화를 재평가하는 움직임이 한일병합 100년을 맞이하여 다양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상실될뻔 했던 소중한 문화중의 하나가 바로 [한글]이다. 15세기에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인류의 재산이자 한국 특유의 언어지만 일본의 식민지 통치기에 한글 사용이나 조선사 교육을 금지 당하여 민중의 반발도 심했다. 1942년에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인해 숱한 언어학자들이 희생되는 등, 소위 한민족 문화의 말살정책이 행해졌지만, 반대로 사람들이 한글에 대한 애착을 가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일본이 패전하고 한국이 해방되자 그때까지 행해졌던 폭압에 대한 반일감정이 표출되었고, 우리의 소중한 언어를 하루 속히 되찾아야 한다는 의식 속에서 [한글]사용이 중시되었다. 국경을 초월하고 인류가 지구촌 각지로 이동하는 다문화 사회로 향하는 궤도 속에서 한글의 우수성과 독특하고 다양한 표현력은 사용하기 편한 효율적 기능을 가지면서 많은 외국에도 알려지는 언어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7년의WIPO(세계지적재산권기구)에서 한국어가 국제 공용어로 183개국의 만장일치로 채택되었고, 지금은 지구촌의 7000만을 넘는 외국인들이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일본에서는 수능시험에 해당하는 대학입시 센터 시험의 정식 외국어 과목으로 2002년부터 지정되었고, 2010년 현재 일본의 고등학교에서는 7000명을 넘는 학생들이 한국어 수업을 듣고 있다. 모음과 자음으로 만들어지는 과학적인 언어이고 배우기 쉬워서 인도네시아의 소수민족인 찌아찌아족의 공용표기어로도 지정되어 있으니 다양한 한글 문화가 창출되고 있는 셈이다. 생각해보니 어제까지 사용되었던 말을 갑자기 금지당하고, 일본어 사용이 강요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잔혹한 언어문화의 말살정책이었다.

▲서울 광화문 앞에 세워진 세종대왕 동상

일본이 어느날 거대한 강대국의 지배하에 놓여지고, 지배국의 언어만을 강요당하며, 그게 안 되는 많은 사람들이 탄압당한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를 상상한다면 당시의 상황을 조금은 이해를 해 줄까? 그렇다, 2010년은 일본에 있어서 한국 조선이 병합되어서 100년이 되는 해이다. 동아시아 전역에는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통치나 전쟁의 상흔들이 각지에 남아있고, 100년이나 지났어도 역사 청산이 되지않는 우행 탓으로, 전후,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지구촌을 위해 행해온 공헌조차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초 강대국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의 가계나 이름을 중시 여겨온 역사를 무시하고 무력적 탄압으로 창씨개명을 강요하며, 오랜 세월 사용해 온 고유의 언어나 역사를 금지하는 억압적 지배 행위가 계속 되었다면 2000년의 역사를 통해서 키워온 수 많은 한반도의 전통이나 우수한 문화가 말살당했을 것이다. 언어가 소멸했다면 군국주의에 의해 난자질을 당하며 상처받았던 그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며 지탱해 온 주옥같은 문학작품이나 음악은 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현대 사회에 지치고 방황하며 허탈해 하던 숱한 사람들의 가슴 속에, 아름다운 언어로 치유하며 삶의 윤활유 역할을 해 오고 있는 한류문화도 결코 태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일본어 사용이 강요되고 한국어 금지가 계속 되었다면 사람들의 가슴에 치밀어오르는 감정은 다른 커다란 가스덩어리가 되어서 더욱 더 처참한 결과를 초래했을지도 모른다.

세계는 크나큰 지역주의ㆍ경제권으로 나누어지고 있다. EU나 아프리카 연합, BRICs(브라질ㆍ러시아ㆍ인도ㆍ중국)나 ASEAN+3(한중일)등, 국제사회의 움직임도 급변하고 있다. 그리고 한류나 일류(日流) ㆍ화류(華流)로 불리는 현대의 문화 소프트의 수출 성공과 더불어 정부 지원의 문화컨텐츠 개발이 새 시대의 과제가 되고 있다.

시대를 읽는 현명한 사람이라면, 하나의 국가나 민족의 한계를 인식하고, 국경을 초월한 협력으로 문화적 파트너십의 결속을 돈독히 하지 않으면 험난한 세계 경제의 파도 속에서 국가의 존속이 어렵다는 것은 쉬이 알 수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명박 정권도, 한류를 우호적으로 받아들이는 하토야마 정권도, 그리고 중국의 차기 지도자로 주목받는 시친핑 부주석도‘동아시아 공동체’를 주창하고 있다.

인류역사상 종교 전쟁이 없었던 역사 문화권인 동아시아가 키워 온 수 많은 인재와 독자적인 다양한 문화를 서로가 공유, 제공, 개발하며 협력적 공생을 하는 것이 향후의 일본은 물론, 동아시아의 바람직한 상생의 청사진이 될 것이다. 동아시아 수장들이 정치적 견해를 일치시킨 이상, 미래지향적인 방향을 향해 같이 발을 내 디디고, 서로의 신뢰 구축을 위해 과거의 사실 규명에 최선을 다하며,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과거의 아픔을 이해하고 치유하는데 서로 배려하고, 그러한 협력적 노력이 사회의 귀감이 되도록 하는 것이 우선과제이다.

전후 역사인식이란 미래를 위한 지침이고, 과거의 불행을 배우며 내일을 위해 향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루속히 동아시아의 근대의 불행을 불식하기 위해 과감한 용단으로 청산을 해야하고, 각계의 연구자들/학자들의 공동 연구, 풀뿌리 교류를 통한 시민 교류의식을 높이며, 내일의 희망인 청소년과 그들을 맡고 있는 교사들의 한중일 국제 교류를 적극적으로 펼쳐나가도록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국가간 규모와 민간인 규모의 노력과 협력이 동시 병행 되어야 하며,‘동아시아 문화 공동체’의 말이 가식적인 정치 슬로건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동아시아를 유지하는 내일의 시금석이 되는 무게있는 행동이 수반되어야 한다.

일본은 부담스런 희생을 치루더래도 아시아 외교를 위한 정직한 역사 청산으로 신뢰를 얻어야 할 것이다.

이수경 교수 (도쿄가쿠게이대학)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