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프리뷰]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1》展, 온라인 공간 윤리‧욕망 보여줘
[현장프리뷰]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1》展, 온라인 공간 윤리‧욕망 보여줘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1.11.04 1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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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11.03~2022.02.06
팀 ‘새로운 질서 그 후...’, ‘더 덕 어몽 어스’ 참여
웹소설 시장과 텍스트 콘텐츠 도구적 접근....의문
동시대 청년 작가 시각… 새롭지만 정제되지 않아 아쉬움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장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미술관 공간의 새로운 시도를 모색하는 《프로젝트 해시태그》 공모사업 결과전이 열린다.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1》은 지난 3일 개막해 내년 2월 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최된다. 전시 개막에 앞서 지난 2일에는 언론 공개회가 열렸다. 공모에 참여한 80여 팀 중 최종 선발 돼 지난 3개월 간 창동레지던시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한 ‘새로운 질서 그 후...’와 ‘더 덕 어몽 어스’의 대표인 윤충근 작가, 신희정 작가가 직접 간담회에 참여해 작품의 의미를 전했다.

▲더 덕 어몽 어스, #후즈더덕어몽어스 영상 설치 전경 ⓒ김윤재
▲더 덕 어몽 어스, #후즈더덕어몽어스 영상 설치 전경 ⓒ김윤재

현대자동차가 후원하는 공모사업 《프로젝트 해시태그》는 젊은 세대와 함께 미래의 미술을 준비하는 새로운 태도와 방식을 생각해보고자 하는 미술관의 고민이 담겨 있다. 기존의 시각 중심적인 예술 형태나 시간 중심적인 예술 형식을 넘어선 새로운 플랫폼을 실험하고, 서로 다른 분야의 젊은 창작자들 간의 협업을 지원하고자 마련됐다.

새로운 질서 그 후...(After New Order...)팀은 윤충근, 기예림, 남선미, 이소현, 이지수가 참여해 시각디자인과 조형예술의 협업을 추구했고, 더 덕 어몽 어스(The Duck Among Us)팀은 신희정, 이가영, 정만근, 손정아가 참여해 웹소설과 시각미술의 협업과 천문학, 해양환경학을 전공한 팀원의 참여로 새로운 시각의 장을 열었다. 전시를 기획한 이수연 학예사는 “단 한 번도 전시 경험이 없는 작가들도 참여하는 프로젝트여서 창작자, 기획자, 설치팀이 모두 제한 없는 협업을 위해 마음을 열고 힘을 모았다”라며 전시 준비과정의 소회를 밝혔다.

공모사업 명칭 “해시태그(#)”는 누리소통망(SNS)에서 널리 쓰이는 검색용 기호이자 특정 단어에 한정한 연결고리다. 해시태그로 연결되는 예측불가능한 무수히 많은 게시물처럼 무한한 맥락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추구한다. 올해 공모사업은 웹을 둘러싼 경험과 환경의 진화에 공명해 빠르게 변해가는 인간성에 관한 MZ세대 작가들의 질문과 비판을 담고있다. ‘새로운 질서 그 후...’와 ‘더 덕 어몽 어스’는 웹을 둘러싼 여러 시각 중 양극단으로 표현될 수 있는 두 가지의 화두를 각각 전시로 풀어냈다. ‘새로운 질서 그 후...’팀은 웹이 가지고 있는 윤리적 가치에 대해서 고민한 작품을 선보이고, ‘더 덕 어몽 어스’는 온라인 공간에서 발산되는 인간의 욕망을 중점적으로 다뤄낸다.

청년 작가들의 제한 없는 발상과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분야들의 협업, 다학제간의 협업을 추구한 결과물들은 확실히 새롭고 신선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탐구를 온전한 형태로 정제해 관람객에게 매끄럽게 전달할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 든다. 또한, 새로움이 낯섦과 동의어는 아니라는 점을 짚어보고 싶다.

▲새로운 질서 그 후..., #국립대체미술관 설치 전경 ⓒ김윤재
▲새로운 질서 그 후..., #국립대체미술관 설치 전경 ⓒ김윤재

‘새로운 질서 그 후...’는 많은 이에게 공평하게 전달되는 지식, 개방적인 공간을 꿈꿨던 초창기 인터넷의 유토피아적 기대가 현재 온라인 세계에서 실현되고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지금의 인터넷이 올바르게 작동할 수 있는 방향을 점검한다. 작가들은 웹 접근성, 거대기업 플랫폼으로부터의 자유로움, 환경친화성 등의 기술 윤리적 관점에 근거해 <올해의웹사이트상>과 <국립대체미술관>, <마이크로데이터센터> 등의 가상세계를 구축해 선보인다.

전시장에서는 비인간적인 스케일을 가지고 있는 데이터의 거대한 양을 실제 공간으로 이끌어내, 인간적 관점에서 데이터의 물리적 양을 가늠할 수 있는 설치작업을 선보인다. ‘새로운 질서 그 후...’는 시각장애인들이 온라인상에서 이미지를 누릴 수 없다는 점을 인지하고,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전부를 텍스트화해 시각장애인들에게 이미지 향유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국립대체미술관’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시장에는 이 텍스트를 수장고 형태의 설치물로 구현해 성인남성 평균키를 훨씬 웃도는 거대한 책장 같은 작업을 선보였다. 설치 작품에는 소장품을 설명하는 텍스트가 자잘한 크기로 적혀있다. 읽을 수 있는 글이지만, 시각장애인들에게 이미지를 설명하기 위해 작성된 텍스트이기에 그 의미는 비장애인들에게는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언론간담회에 참석한 '새로운 질서 그후...' 윤충근 대표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언론간담회에 참석한 '새로운 질서 그후...' 윤충근 대표 (사진=서울문화투데이)

현장에서는 이번 프로젝트로 구축이 된 이 데이터가 추후에도 계속 국립현대미술관의 자료로 사용되는지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이 학예사는 현재 논의 중인 문제라고 답했다. 그는 “시각장애인이 이미지를 즐길 수 있게 하겠다는 시도에서 텍스트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미술계 입장에선 여전히 고민이 되는 지점이 있다”라며 “예를 들어 ‘파란색 원피스를 입고 있는 여자가 앉아있다’라는 텍스트가 있다면,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전달이 되지만 미술계에선 단순히 ‘파란색’이라는 표현이 그림을 잘 설명할 수 있겠냐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어서, 이 프로젝트 결과물을 계속 사용할 지에 대해선 열린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표현의 확실성 때문에 시도조차 안 한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에 좋은 시도로 받아들이자는 의견도 있었다고 밝혔다.

텍스트 설치 작품 옆에는 <마이크로데이터 센터> 작품이 놓여있다. 이 또한 온라인 상 데이터를 물리적 실체로 관람객 눈앞으로 구현한 작품이다. 작은 메모리 카드 안에 담긴 데이터를 빔프로젝트로 상영해 보여준다. 온라인 데이터로 발생되는 탄소배출 문제를 거론하며, 온라인의 환경친화성 문제를 물리적 형태로 느껴볼 수 있게 한다. 이외에 <벤트>, <올해의웹사이트상>, <무슨일사전>, <무슨일선집>, <대체텍스트워크숍> 등의 프로젝트 결과물을 선보인다.

▲새로운 질서 그 후..., #마이크로데이터센터 설치 전경  ⓒ김윤재
▲새로운 질서 그 후..., #마이크로데이터센터 설치 전경 ⓒ김윤재

더 덕 어몽 어스(The Duck Among Us)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활발하게 진행되는 서브컬처에 주목해 폭발적으로 거리낌없이 발현되는 인간의 욕망에 주목했다. 프로젝트는 온라인 하위문화인 뮤직비디오와 웹소설, 인스타그램 포스팅에서 시작돼 퍼포먼스, 영상 설치, 출판물의 형식으로 실체를 갖는다.

작가들은 ‘팬데믹-지구 온난화’, ‘주식-벼락거지’ 같은 디지털 혼돈에 빠진 현대인을 ‘죽음-소비’의 순환고리에 이르렀다고 판단하고 이 악순환에서 벗어날 가능성으로 ‘입’을 주목한다. 이들은 ‘입’을 “박쥐를 먹고, 오리의 간을 비대하게 만들어 먹으며 스스로를 아프게 만드는 입, 침이 튀길까 마스크로 가려지는 입, 산소를 소비해 보잘 것 없는 소리와 이산화탄소를 뱉어내는 입”이라고 표현하며 입의 허무한 감각을 뛰어넘는 입의 실천을 제안한다.

더 덕 어몽 어스는 언론간담회에 실제로 오리의 부리를 형상화한 마스크를 끼고 참석해, ‘오리’와 ‘입’에 집중한 그들의 프로젝트의 방향을 보여줬다. <후즈더덕어몽어스?>는 뮤직비디오, 퍼포먼스, 설치로 기획된 작품이다. 전시 기간 중에는 신희정 작가가 오리 모형을 입고 관객들에게 솜사탕을 만들어 건네주는 퍼포먼스를 보여줄 예정이다. <후즈더덕어몽어스?>에서 솜사탕은 허무와 혼란이 뒤섞인 살덩이를 의미한다. 이 퍼포먼스를 통해 신 작가는 몸의 움직임과 현대인으로 비유되는 오리의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혼란스러운 상태를 보여준다.

▲언론간담회에 참석한 '더덕어몽어스' 신희정 대표, 오리 부리모양을 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언론간담회에 참석한 '더덕어몽어스' 신희정 대표, 오리 부리모양을 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웹 플랫폼 속 짧은 영상들을 모방한 <에고에코-에코에코(EgoEco-EcoEcho)>는 개인주의 (Egoistic), 친환경 (Eco-friendly), 경제성 (Economical)의 사회적 흐름을 반영한 세 개의 서로 다른 영상 혼합이다. 작품을 기획한 정만근 작가는 짧은 영상의 무의미한 뒤섞임으로 개별적 의미가 함몰되고 있는 현 시대상을 보여준다.

한편, 더 덕 어몽 어스는 웹소설이라는 텍스트 장르를 미술 전시 영역으로 끌고 들어왔다. 전시기간 중 실제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되는 작품 <오늘은 너를 먹고싶어>는 이가영 작가가 집필한 작품이다. 비약적으로 팽창하는 웹소설의 형식을 차용해 전시와 웹의 엔터테인먼트에서 발생하는 파급력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 질문한다. <오늘은 너를 먹고싶어>는 집오리, 닭, 청둥오리, 백조 꽃미남 4인방과 천재 해커 소녀가 주인공인 웹소설로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계급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미래SF, 첩보물, 계급투쟁, 로맨스를 다룬다. 웹소설은 스낵컬처 형식을 갖고 있지만, 그 안에는 종차별주의‧아비투스‧소수자이론과 같은 순수 미술의 장에서 반복 재생산되는 담론들을 담아내고 있다.

<오늘은 너를 먹고싶어>를 창작한 이 작가는 더 덕 어몽 어스가 추구하는 주제를 좀 더 확실하게 드러낼 수 있는 표현법이 무엇일까 함께 고민하던 중, 소설이 가진 내러티브가 좋은 방법이 될 듯해 프로젝트를 제안했다고 한다. 작품은 대중적인 할리퀸 로맨스 소설에서 남성과 여성의 위치를 바꿔서 대중문화의 일반적인 관념에 전도를 꾀한 작품이다. 전시장에서는 팬 사인회가 진행될 예정이며, 이는 디지털 언어가 현실의 작가 신체로 제시되는 퍼포먼스다. 또한, 작품 텍스트는 홀로그램지에 인쇄돼 전시장 벽면에 공개된다. 순차적으로 공개되는 소설도 벽면에 부착될 예정이다.

▲팬사인회 현장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는 더덕어몽어스 이가영 작가, 작가 뒷편으로 '오늘은 너를 먹고 싶어'의 주인공 일러스트가 전시됐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팬사인회 현장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는 더덕어몽어스 이가영 작가, 작가 뒷편으로 '오늘은 너를 먹고 싶어'의 4명의 남자 주인공 일러스트가 전시됐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서브컬처 형식의 온라인 하위문화를 주요 소재로 사용한 더 덕 어몽 어스의 프로젝트는 웹이 가지고 있는 현대인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신선함을 보여주지만, 오리와 현대인의 욕망을 동일선상에 올려놓는 점에 대한 설득력은 부족해보였다. 신희정 작가는 ‘오리’라는 존재에 대해 노랗고 귀엽고 미운오리새끼 같은 모습, 러버덕의 모습이 떠올랐다며 그러면서도 먹을 수 있는 동물이라는 점에서 이중적인 이미지에 주목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간담회에선 지속적으로 ‘왜 오리였냐’라는 질문이 나오고, 그 설명이 명확히 전달되지 않아 전시의 모호함이 남았다. 또한, <오늘은 너를 먹고싶어> 프로젝트 경우 최근 폭발적으로 커져가고 있는 웹소설 시장과 텍스트 콘텐츠를 너무나 도구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올해로 2회 차를 맞은 《프로젝트 해시태그》 공모사업은 아직 시작단계라 많은 주목은 받지 못하고 있지만, 동시대 청년 작가들의 시각과 발상을 마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움이 현대미술의 지금을 볼 수 있었다. 다만, 다학제적 협업이 추구하는 방대한 주제적 논의는 정제된 언어라기 보단, 시도에 가까웠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