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숙 명인, 60년 춤 인생, 아직도 세계 속으로 날고 싶다
정명숙 명인, 60년 춤 인생, 아직도 세계 속으로 날고 싶다
  • 이은영 대표기자
  • 승인 2010.01.08 09:4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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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월11일 국립국악원에서 ‘춤 인생 60년’ 29번째 개인발표회 열어

 

경인년 새해가 밝았다. 묵은 시간들은 보내고 새로운 출발을 맞이하기 위해 액운을 풀고 한해가 풍요롭기를 기원하는 살풀이춤을 보는 것은 어떨까. 춤이 좋아 오직 춤과 함께한 인생만 60년인 정명숙 명인은 아직도 세계로의 멋진 날개 짓을 꿈꾼다. 올해 6월 춤 60년을 선보여줄 개인 발표회를 앞두고 있는 정 명인은 살풀이를 출 때 인생의 희노애락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한다. 올 한해 장애인 복지관이나 양로원등을 찾아 외롭고 힘든 이들에 더욱 많은 살풀이 공연을 선보일 것이라는 정명숙 명인. 종로3가 국악로에 위치한 정명숙 전통춤 예술단 사무실을 겸한 연습실에서 만나 춤에 바친 오롯한 60년 인생을 들어봤다.

“일생동안 춤만 고수하고 춤만 추었는데 이제 춤과 함께 무덤에 가야지요.”

 

어려서부터 유희로 시작한 춤은 열렬히 사랑하는 연인처럼 정명숙 명인과 60여년을 함께 했다. 남자도 몇 번 만나봤지만 춤과 비교했을 때는 시시할 따름이었다는 정 명인은 20살, 경북여고를 졸업하던 꽃다운 나이에 본격적으로 춤을 배우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최현 선생과 김진걸 선생을 거쳐 당시 김 선생의 절친한 친구였던 승무와 살풀이춤의 인간문화재 보유자인 이매방 선생과 운명처럼 조우하게 된 정 명인은 국립무용단 1기, 이매방 류 이수 1기를 거쳐 지금은 보유자 후보가 됐다. 자신의 춤을 남에게 평가받기를 바란 적 없어 콩쿠르 같은 것을 한 번도 나간 적이 없을 만큼 자신이 추는 춤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정 명인은 일생 중 가장 기억의 남는 공연으로 미국 뉴욕의 카네기 홀에서의 공연을 꼽았다.

“91년인가 쯤 이었어요, 그때 카네기 홀에서 전통 춤으로 공연한 것은 아마도 제가 최초가 아니었나 싶어요. 공연이 확정돼서 가게 됐는데 그 측에서 녹음테이프를 틀고 춤을 추는 것은 공연이 아니니 악사들을 대동 하라고 하더군요. 어렵게 비용을 들여서 12명이 공연을 하러 갔는데, 공연조차도 성공적일지 장담을 못할 긴장된 상황이었죠. 그런데 공연당일에 갑자기 악천후까지 겹쳤어요.

5분 전까지도 관객석이 텅 비어서 ‘정말 이대로 실패구나’ 하고 생각하던 찰나 3분 전부터 갑자기 관객들이 몰려들어와 공연장을 가득 메우더군요. 흥분되는 마음에 이매방 선생님의 이수 1호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또 대한민국의 전통춤의 진수를 보여주겠다는 춤을 추었지요. 공연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나오면서 제 눈에서도 감격의 눈물이 쏟아져나왔어요. 제 스스로도 많이 울고 감명 받았던 그런 무대였습니다.”

또 하나 지난해 9월에 열렸던 한일축제한마당에 초청받아 서울시청광장에서 공연했을 때를 꼽았다. 정 명인은 당시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까지도 환호를 보내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 했다. 아울러 이 행사가 공동으로 진행되고 있는 일본무대에서 공연했더라면 더욱 의미가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명인은 살풀이에 인생의 희노애락이 다 들어있다고 했다.

"살풀이는 심금을 울리고 기쁨을 승화하는 무궁무진한 감정이 깃들어 있고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기에 살풀이춤을 출 때 그 느낌이 너무 복잡한 심정이라서 설명할 길이 없어요. 춤이 인생이고 춤이 내 삶인데 몰입해서 춤을 추다보면 나 혼자 속으로 울기도 하며 별 별 감정이다 들지요. 눈물이 터지려고 하는 것을 가까스로 붙잡는 그런 눈물이 나기도 하고요.”

정 명인은 특히 위안부 위령제에서 살풀이를 했을 때 자신의 감정 변화에 대해 말하며 그때의 심경을 전했다.

“일본 사람들에게 인간이하의 취급을 당하며 사람대접을 못 받고 큰 고통과 슬픔을 당하고 가신 할머니들의 영혼을 조금이라도 달래 줄 수 있는 그런 역할을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이 기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비통한 마음이 들었어요. 좋은 세상에 태어나서 춤을 출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미안해서 펑펑 울었으면 좋겠더군요.”

살을 풀면 평화가 찾아온다, 우울증 치료에도 탁월

 

“'살풀이' 하면 단순히 죽은 영혼을 달래는 것만 생각하는데 우리 조상들은 본디 신명이 많은 민족이었기 때문에 춤을 추어서 마음의 시름을 풀었지요. 맺힌 한을 풀어서 죽음을 당할 때 한을 다 풀어서 좋은데 가서 편안히 쉬라고, 남의 살도 풀지만 내 살도 풀고요. 저는 살풀이춤을 참 잘 배웠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제가 자선사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것이라도 할 수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죠.”

정 명인은 이어 살품이 춤의 또 다른 장점까지 소개 했다.

“살풀이춤을 추면 두 세 시간 운동을 한 것 같은 그런 효과를 주기도 하고 정신적 치료까지 된다고 과학적으로 증명돼 있어요. 특히 제 제자 중에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 살풀이춤을 추어서 고친 사례가 있었어요. 그리고 처음부터 멋들어지게 추는 건 힘들겠지만 타고난 민족성으로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어요.”

전통, 박제화시키지 말아야

정 명인은 살풀이춤을 포함한 전통 춤에 대한 선생의 견해를 밝히며 그간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저는 우리의 전통 춤 뿌리는 고스란히 보존하면서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새로운 재창조작업이 필요하다고 봐요. 전통은 옛날 것을 그대로 박제 같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시대 조류에 따라서 살아 숨 쉬게 하고 관객의 호응을 이끌 수 있도록 변화해야 하는 것이지요.  관객이라는 상대에 어필이 되어야 세계적으로 뻗어 나가는 우리나라의 춤이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명숙 전통춤 예술단은 관객의 눈높이를 늘 고려하는 공연을 합니다.”

 

누구보다 전통의 재창조에 앞장서고 싶었던 정 명인이었지만 그간의 보유자 후보로서 살아야 했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고충도 털어놨다.

“제 스스로 우리 춤의 재창조나 변화를 주고 싶어도 그것을 내 맘대로 재창조해서 할 수가 없어요. 보유자 후보를 박탈시킨다고 하니까 말이죠. 특히 제 혼을 다해서 정성을 쏟은 제자에게 이수증을 내 주지 못해서 제자를 다른 선생님에게 떠나보내야 할 땐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문화재 법도 엉성하긴 마찬가지예요. 60년 춤을 추고 그 실력을 인정받아도 문화재가 되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단지 5년, 10년 춤을 추고도 문화재가 된 사람도 있고요.

대통령상을 한번 탔다고 저와 같은 급이 되서 심사를 보러 나오는 이를 보면 참 뭐라고 해야 할지 갑갑합니다. 또 제 나이 70이 넘도록 이매방류의 춤을 추고 있는 이런 실정이 답답한데 선생님마저 저를 오해하시니 저는 참 마음이 아픕니다. 선생님은 남자고 저는 여자인 만큼 사람이 다르니 그 춤이 똑같을 수도 없고 명인이 되어 어느 정도 인정을 받는다면 한 예술가의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지원책을 마련해 주어야 하는데 말이지요. 정말이지 저에게 이수자라도 뽑을 수 있도록 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선생은 아울러 우리나라 전통 춤에 대해 인식전환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전통춤이 양적으로는 많은 것 같지만 질적으로 여건이 안 좋아요. 일단 전통 춤을 어릴 때부터 접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문화인데도 초등학교 때부터 당연히 접해져야하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밸리댄스와 같은 외래문화를 더 많이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렇다 보니 우리나라 전통춤은 너무 생소하기만 하고 가슴에 와 닿지가 않게 되는 것이죠.

정부 차원에서도 지원을 많이 해줘야 하는데 그런 분들조차 잘 몰라서 살풀이가 징징 짜면서 흰 치마를 입고 느리게 춤추는 재미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더군요. 전통춤을 배우는 사람들에 대한 대우만 해도 그래요. 이 사람들이 바로 보배지킴이 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기량을 펼 수 있는 장소도, 춤 출 수 있는 장소도 없어요. 사람이 일단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의식주가 해결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해결이 안 되니까 부모님들도 자연히 춤 배우는 것을 반대하시게 되는 것이고요.

고생고생해서 고난의 무용의 길을 와서 인정받아도 턱없이 대우가 낮습니다. 전통무용 하는 사람들을 아직도 낮게 평가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게 폄하하는 것은 전통 무용하는 사람의 자존심을 짓밟는 것 밖에 안 되는 거죠. 인간문화재 대우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분들이 우리나라 문화의 얼굴인데 몇 명되지도 않지만 대우가 정말 엉망입니다."

우리 전통춤 법칙, 체계적으로 정리 할 필요성 느껴

 

정 명인은 우리 전통 춤에 어떤 체계적인 법칙이 정리되어 있지 않은 점도 전통춤이 세계화되기 힘든 난점으로 꼽았다.

“우리 춤이 앞선 어른들을 통해 배우다 보니 통일이 안 되어 있고 정립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이렇게 추면 안 된다, 법에 저촉 된다. 그런 법칙은 없지만 그런 체계가 반드시 필요하지요. 현재 보유자 위치라 제 선생님께서 젊을 때 말씀해 주신 것이 사실 내 머릿속에 다 들어있고 그 말씀 하신대로 춤을 추면 창작도 아니면서 획기적인 춤이 되고 정말 아름다운 춤이 되는데 지금 제가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는 처지입니다.”

 향후 기회가 되면 우리나라 살풀이뿐 만아니라 승무를 잘 정립해 책으로 발간하고 싶다는 정명숙 명인. 그러나 현재 칠순이 넘은 나이인만큼 기력이 쇠하면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움을 내 비췄다. 그럼에도 한 평생 그랬던 것처럼 남은여생도 살풀이춤을 베풀면서 보내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는 정 선생은 앞으로의 활동 방향을 들려줬다.

“앞으로 우리 전통 춤을 차원 높게 재창조해서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춤을 더 멋있게 펼쳐 보이고 싶은 것이 제 꿈입니다. 오는 6월 11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춤 인생 60년’ 저의 스물아홉 번째 개인 발표회를 갖고요. 또 올해는 장애인들이나 복지관등을 방문해 더 많은 자선공연으로 그들을 즐겁게 해 주고 싶습니다. 그들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가진 능력으로 이렇듯 기쁘게 할 수 있구나 하면서 뿌듯해지지요.”

인터뷰 이은영 국장/정리 편보경 기자/김형관 객원 사진기자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