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규 회장, 한국인으로서 자존감을 키워라
김종규 회장, 한국인으로서 자존감을 키워라
  • 이은영 대표기자
  • 승인 2010.01.08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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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를 인정하고 Win-Win 해야 바람직한 사회로 나아가

서울문화투데이에서는 2010년 새해를 맞아 ‘문화계 원로에게 듣는다’를 기획, 국내 주요 문화계 인사를 취재하여 우리사회가 나아갈 길을 찾기로 했습니다. 생생한 필드 이야기를 통해 2010년 누구보다 먼저 문화계 동향과 비전을 찾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편집자주>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의 정체성은 뭘까?

'걸어 다니는 박물관', '문화계 대부', '문화를 담는 그릇', '문화 외길 풍류객' 등....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에게 붙여진 별명은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이 모든  직함이나 수식어는 ‘문화’라는 코드로 귀결된다. 그리고 기자는 그를 문화계 ‘대부’라고 부르는 것에 적극 동의한다. 그는 실제로도 영화 대부에 나오는 ‘알 파치노’ 같은 카리스마와 스타일리쉬, 요샛말로 ‘엣지있는’ 감각도 갖추었다.

김종규 회장은 학창시절 누구라도 한번쯤은 접했을 책, 삼성출판사 회장이다. 1990년 출판박물관을 열기까지 그는 문화강국을 향한 끝없는 열정으로, 출판·학술·공연 등 문화예술계의 크고 작은 일에 힘을 보태왔다. 사실 문화계에서는 그가 참석하지 않은 행사는 무효라고 말할 정도로 문화계에서 그의 존재감은 특별하다.

그는 지난해 8월 자신이 운영하는 삼성출판박물관의 특별기획전으로 ‘책을 건네다 저자서명본 展’을 열며 오랜 세월 교유(交遊)해온 수많은 인사들과의 인연을 공개하기도 했다. 시대의 애환을 함께 해온 배우 최불암, 치열한 작가혼을 불태워 온 시인 고은, 20세기 한국의 대표 지성 이어령 등 우리와 시대의 호흡을 함께해온 저자들의 숨결과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전시를 열었던 것. 그러나 ‘책을 건네다 저자서명본 展’은 인연의 매듭과 결을 확인하는 자리이기 이전에, 남다른 문화 사랑으로 ‘책의 성찬(盛饌)’을 선물해준 그가 진정한 ‘문화계 대부’임을 실감케했다.

전 국립극장장이자 현 서울시문예회관연합회장을 맡고 있는 최진용 관장의 말을 빌리면 ‘그의 도움을 받지 않은 문화예술인은 손에 꼽을 정도’다.그리고 그것으로 그만이다. 한마디로 ‘티’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문화’와 ‘배움’이 있는 곳이라면 빠지지 않는다. 박물관협회 수장(首長) 외에 1997년 기층문화를 익히려는 민학회장(1997)을 지내며, 문화재전문위원(1991~1999), 전통사찰 지정자문위원(2002)을 역임하며 수많은 강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함은 물론 적극적으로 강좌를 개설해 나가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그는 매주 수요일마다 사비를 들여 자신의 박물관에서 SMA(삼성출판아카데미) 인문학강좌를 열고 있다. 김상현 고대교수, 이태진 서울대 교수 등의 석학을 초대해 역사 철학 천문학까지 다양한 분야의 강좌를 개설하고 문을 활짝 열어놨다. 소설가 조용헌씨는 SMA를 프랑스의 ‘살롱’이라 지칭했다. 즉 김회장은 ‘살롱마담’인 셈이다. 찾아온 손님에게 정신과 육체의 밥을 먹이는데 돈을 아끼지않고 마음껏 자신들의 지식보따리를 풀어놓는 토론의 장을 펼쳐놨으니 말이다. 

이러한 그의 문화 마인드는 문화유산국민신탁 설립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문화유산국민신탁 설립에 산파 역할을 하게했고 설립 후에도 문화유산국민신탁의 고문을 자청하게 했다. 이렇듯 수많은 문화예술인에게 직ㆍ간접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그가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을 맡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는 또 지난해 ‘한국박물관 100년 기념사업회’의 공동대표를 맡아 훌륭하게 성과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각자의 영역을 인정하고 월권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합리’이자 상생인 Win-Win의 철학’이라고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이에 서울문화투데이는 ‘신년기획-2010년, 문화계 원로에게 듣는다’의 첫 인사로 김종규 회장을 모셨다. 눈 내린 어느 날 삼청동에 자리한 한 북카페에서 만난 그와의 시간은 사실 인터뷰 같지 않았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한때 동경하던 학생회장을 만난 기분이었달까. 그는 꿈을 얘기하는 열정적인 소년이자, 학생들을 아우르는 선망의 대상이 되어 유쾌한 에너지를 뿜어냈고, 기자는 속수무책으로 설레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문화계는 물론이고 정치, 행정, 종교에 이르는 전반적인 분야에 영향력을 끼치기로 정평이 나있는 그가 아니던가. 그런데 소년의 감성과 위트까지 지녔으니, 진정한 이 시대의 엄친아라 하겠다. 사람으로 태어나 한평생 뜨거운 가슴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를 증명하는 영원한 소년이자 청년정신의 김종규 명예회장. 1분 1초마저 소중했던 그와의 만남을 함께 해보자.

대한민국, 문화의 KEY를 잡아라!

2009년은 한국 박물관 역사에서 각별한 해였다. 1909년 최초의 근대적 박물관인 제실 박물관이 일반에게 공개된 지 꼭 100년을 맞이한 것. 이에 우리나라 박물관은 연초부터 분주했다. 국내외 전문가들이 모여 박물관과 관련된 학술, 연구 성과를 담론하였으며 일반 국민의 박물관 접근성을 높일 목적으로 시행한 박물관 100번 가기 운동과 전국 박물관 지도 제작은 그 성과가 매우 컸다. 그리고 2010년, 우리는 국치 100년을 맞이했다.

‘새로운 10년을 여는 이 시점에 문화계가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김회장은 평소 가진 생각을 거침없이 풀어놓기 시작했다.

"식민지의 잔재는 100년 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불편한 진실이다. 국치 이후 이 땅에선 식민, 분단, 군부독재, 산업화, 민주화의 고비가 이어졌다. 일제 강점 당시 일본이 외신을 통해 타전한 것처럼 우리 민족은 무지몽매하고 미개하지 않았다. 어려운 시기에도 우리는 호롱불을 밝히며 글을 읽고 학문을 연구해 왔었다. 하지만 어째서 그때 일본의 뜻대로 우리는 문화의 식민지를 거듭하고 있는가."

김종규 명예회장은 "식민지는 역사의 흔적이자 비극일 뿐 우리의 문화마저 숨을 죽이고 침묵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특히 2010년은 "경술국치 100년과 한국전쟁 60년을 맞이한 해로, 100년간 겪은 한반도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눈을 크게 떠야 할 시점"이며 "아직 원로들이 생존에 있을 때, 역사와 문화를 재정립하고 화해와 치유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가 말하는 화해와 치유의 열쇠는 다음과 같다. '문화'와 '자존감'. 1936년 일본은 내선일체를 외치며 창씨개명, 한글사용 금지 등 문화와 민족혼을 빼앗는 통치를 시도하는데 전범국인 일본은 통일된 자유 국가로 남고, 식민지로 질곡의 세월을 겪어야 했던 한반도는 갈라진다. 결코 잊을 수 없는 100년 역사는 초라한 문화 인프라와 빈약한 삶의 질만을 남겼다.

“종종 ‘조선’자기를 ‘이조’자기라는 사람을 만난다. 이것이야말로 일본이 저질렀던 과거의 폐해를 우리 스스로가 답습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는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다시 한 번 자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인들이 조선에 와 집집마다 책 없는 집이 없다는 것에 매우 놀라워했다. 외신에서는 무지몽매한 나라로 떠들어댔지만, 사실 배우고자하는 열망과 높은 교육열을 지닌 민족임을 눈으로 확인하자 큰 충격을 받은 거다. 뼛속 깊이 우리는 대단한 민족임을 깨닫고 정체성을 바로 일으켜 세워야 한다. 그럴 만큼 훌륭한 자질을 가진 민족이지 않은가.”

그는 우리 민족이 힘을 지니게 된 데에는 바로 ‘책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문사철(文史哲) 600’을 강조한 극작가 신봉승 선생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30대가 끝나기 전에 문학서적 300권, 역사서적 200권, 철학서적 100권을 마스터해야 한다. 그는 제대로 된 지성인, 교양인이 되기 위해서 책을 읽으라 했지만, 자존감을 위해 독서는 의무화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양국이 서로 불행했던 과거 역사를 정확하게 알고 용서하기 위해서는 두 민족 간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치유 과정이 필요하다. 젊은이들에게 자존감을 심어줄 비전을 제시하고 정부 차원에서 한·일 청년들의 교류를 위한 문화프로젝트를 만들어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의 가치를 만드는 것은 문화다!”

김종규 명예회장이 '문화'를 2010년 키워드로 꼽는 데에는 너무나 당연한 이유가 있다. 책이 정신을 담는 그릇이라면, 그가 바로 문화를 담는 그릇이자, 문화프로젝트를 실현한 산증인이기 때문이다.

지난 12월 15일 김종규 명예회장은 국립중앙박물관에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의 대미를 장식한 초기철기시대~원삼국시대의 말모양 허리띠고리(馬形帶鉤), 삼국시대의 금동제 말갖춤(馬具), 금동제 화살통 장식(盛矢具)과 칠장식 나무상자(櫃) 등 4종 10건의 문화재를 기증했다. 이는 ‘여민락’ 정식, 즉 문화재가 왕족ㆍ귀족의 사유재산이 아니라 국민의 것임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한 것.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을 역임하는 그는 "우리 민족이 남겨놓은 재산 중 제일 귀한 것이 바로 문화유산이다. 유물은 역시 ’있어야 할 곳에 있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국립박물관에 기증하게 됐다. 대대손손 가보를 물려주듯이 문화유산을 잘 보존해 다음 세대에게 남겨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파괴된 자연이 두 번 다시 회복되지 않듯 문화유산도 마찬가지다. 문화유산은 누구 혼자만의 힘으로 지켜낼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는 하루빨리 계몽해야 한다"고 언급하며 화재로 손실된 숭례문과 향일암을 예로 들었다.

사실 그는 2004년 일맥문화대상 수상으로 받은 상금 2,000만 원을 이라크 국립바그다드박물관에 기부하기도 했다. 새삼 다시 선행을 입에 올리자 그는 오래된 얘기라며 ‘넘어가자’ 했다. 기자의 계속된 질문에 그는 "굴곡 많은 역사 속에서 우리는 많은 문화재를 잃어버렸다. 이라크전쟁으로 박물관이 파괴되고 소장 유물들이 밀매된다는 소식은 마치 우리 민족의 지난날을 떠올리게 했다. 문화유산을 한 국가, 민족의 것으로 보는 국수주의는 의미가 없다. 조선 왕릉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듯, 인류 전체의 문화는 함께 지켜야 한다"고 기부의 배경을 밝혔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은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이 된 전라남도 보성군 '남도여관(보성여관)'과 울릉도에 있는 이영관 가옥을 2008년 매입, 국가로부터 관리단체로 지정되도록했으며, 12월 11일 다카야마 시게오(93, 하쿠토 주식회사 명예회장)로부터 숭례문 복원 기금 1만 달러를 전달받으며 문화유산 전반에 거친 계몽운동과 모금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아울러 인문학 강좌도 병행해 국민들의 의식계몽운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한편, 그는 "정부의 국토개발정책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독처럼 퍼진 성형수술이 연상된다"며 "이미 잔해로 변해버린 종로 피맛골처럼 개발 원리에 밀려 본연의 미를 잃은 한국의 자산은 훗날 누구의 손에서도 빛나지 않을 것"이라 일침을 놓았다.

정부는 물론 우리의 역할을 제시하기도 했다. "우리의 DNA 속에는 명백한 문화유전자가 있다"고 강조하며 "개발 원리에 급급해 성형수술 하듯 우리 문화를 서구의 것처럼 꾸미지 말고 문화가 꽃필 수 있는 마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더불어 높아진 한류의 위상만큼이나 한국인으로서의 자존감을 세우라고 거듭 주문했다.

문화를 새롭게 디자인 하는 남자, 김종규

인터뷰에 앞서 김종규 명예회장은 "지금 '인생 3기'를 사는 중"이라고 말했다. 인생의 첫 30년이 공부하고 준비한 기간이었다면 두 번째 30년은 가업인 삼성출판사에 전력투구한 시기였고, 마지막 30년은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기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인터뷰 중, 그를 알아보는 사람과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빡빡한 일정이 당연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그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박물관협회의 역사를 기록한 책 '한국박물관협회 30년'에 대해 물었다. "1999년부터 2007년까지 협회를 운영하며 32개의 박물관으로 출발한 1976년부터 394개 박물관이 등록된 2006년까지의 활동 내역과 현황, 변천사 등을 두루 담으려 했다.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회원 박물관들의 정보를 일일이 확인하다 보니 당초 2006년에 출간하려 했던 게 3년이 더 걸렸다."

책이 나오는 사이 박물관의 숫자는 600여 개로 늘어났다. 김종규 회장은 "경제적 수준과 문화적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개인 컬렉터나 기업이 박물관을 만드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2007년부터 정부가 사립박물관에 큐레이터를 지원한 것이 기폭제가 됐다"며 정부정책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웠다. 하지만, 그는 "문화유산 지킴이로서 박물관을 1,000개 관으로 증설하는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히며 "비전(vision) 없는 백성은 망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라며 그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꿈을 가져야한다”고 역설했다.

앞으로 박물관은 어떻게 진화될 것인가를 묻자, "박물관 하면 옛 유물이나 보존하는 곳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젠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우리 것은 물론이고 책이나 여행, 영화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었던 세계의 문화를 넓고 깊게 볼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것을 가장 우리답게 잘 보여주고, 잃어버린 유물들을 환수하면 가장 좋겠지만 환수 전까지는 기획전ㆍ특별전 등을 통해 국민이 즐길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듯이 디지털 시대를 맞이했다. 박물관과 도서관은 아날로그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라고 질문하자, 그는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증도가’(남명천화상송증도가ㆍ南明泉和尙頌證道歌)를 오는 6월 국제기록문화전시회를 통해 공개할 계획을 풀어놨다.

“선종(禪宗)의 지침서 증도가'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된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 ‘직지(直指,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보다 80년가량 앞선 것이다. 오래 전 서슬퍼렇던 전두환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일본 방문길에 금속활자 최초의 모습을 일본에 보여주도록 원본을 대여해 달라고 요청이 왔다. 당시 나는 ‘귀중한 문화재를 해외에 반출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우문에 이만한 현답이 어디 있을까. 이는 김회장의 ‘문화재사랑’의 한 단면으로 유명한 일화로 회자되고 있기도 하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시대를 거슬러가라는 뜻이 아니라 중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독후감을 쓰라고 하면 많은 학생들이 인터넷 검색부터 하는데 책은 지성이 마르지 않는 샘을 만드는 최고의 명약이다. 책은 상상력도 길러주고 건강에도 디지털보다 낫다"며 유머섞인 답변을 주기도 했다.

김 회장은 또 박물관을 '샘물'로 비유하며 대학박물관에 대한 대학평가를 신랄하게 꼬집기도 했다. "문화시민으로 성장한 미래의 역군, 우리 대학생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명제다. 헌데 대학박물관이 대학 평가에서 1982년 12월 법률적 근거가 삭제된 이후 활동에 많은 지장을 받고 있다."

그는 "박물관은 비영리 항구적 문화시설인 만큼 조건 없이 살아나게 해주어야 한다. 적어도 이미 설치된 박물관이라면 죽게 놔둘 수는 없다. 대학사회에서 박물관을 활성화하는 것은 21세기에 우리가 바라는 상아탑의 모습이다"라고 설명했다.

가는 해가 있으면 오는 해가 있는 법.

그래서 마지막으로 새로운 100년을 시작하는 이때, 김종규 명예회장에게 삶의 지혜를 구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어두운 역사를 버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면 결국에 일어나는 것은 충돌뿐이지 않은가. 비록 충돌에서 이겼다 할지라도 그것은 일시적 승자일 뿐이다.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고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Win-Win 할 수 있다"

역시 젠틀맨 다운 생각이다. 각 영역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일의 고유성을 존중하며 월권하지 않는다는 그의 철학은 박물관 100주년 기념사업(아이콤)에서도 여실히 증명됐다. 김병모 고려문화재연구원장, 이건무 문화재청장과 함께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낸 것이다. 아이콤의 성공은 현재도 앞으로도 우리 문화계에서 굵직한 국제행사를 어떻게 하면 성공적으로 유치할 수 있는가를 교훈으로 주고 있는 하나의 사례다.

60여 년 전 백범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이란 글에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고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현존하는 문화계의 대부,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명예회장이야 말로 21세기 우리나라가 문화대국으로 나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우리의 또 하나의 ‘문화’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인터뷰 이은영 대표기자 young@sctoday.co.kr
정리 정혜림 기자 press@sctoday.co.kr
사진 김형관 객원사진기자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