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프리뷰] 두 점 반가사유상, 설레는 첫 만남
[현장프리뷰] 두 점 반가사유상, 설레는 첫 만남
  • 안소현 기자
  • 승인 2021.11.12 16: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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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 공개돼 상설 운영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열어 국보 반가사유상 선봬

[서울문화투데이 안소현 기자] 잠시 바쁜 일상을 멈추고 사유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국립중앙박물관이 12일부터 상설전시관 2층에 ⟪사유의 방⟫을 마련해 국보 반가사유상 2점을 선보인다. 특정 전시기간 없이 상시 관람할 수 있다. 해당 전시실은 현대 사회의 빠른 속도에 대응해 느린 속도로 흘러가는 방으로 ‘사유’라는 키워드로 기획됐다. 이곳에서 관람객은 반가사유상과 호흡하며 일상과 거리를 두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 언론공개회도 마치 명상 수업처럼 진행됐다.

▲사유의 방 ⓒ원오원아키텍스
▲사유의 방 ⓒ원오원아키텍스

⟪사유의 방⟫은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임기 중 처음으로 기획한 전시로 신소연 학예연구사와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다. 언론공개회에서 민 관장은 “이번 전시의 취지는 반가사유상을 한국의 대표 브랜드로 공고히 하고 세계적 작품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천천히 들어가는 공간, 정지된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다. 관람객이 사유를 통해 마음에 평온을 얻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전시실 안으로 들어서면 길고 어두운 복도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복도 왼쪽 벽면에는 프랑스 작가 장 줄리앙 푸스가 제작한 영상 <순환>이 재생되고 있다. 작가는 박물관의 지난 특별전 ⟪한겨울 지나 봄 오듯-세한・평안⟫에서 <세한의 시간>이라는 영상으로 <세한도>를 재해석하기도 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액체・기체・고체로 순환하는 물의 순환은 영원히 지속되는 실체는 없다는 공의 개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관람객은 이를 통해 거대한 우주 속 자신의 존재에 관해 생각하며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이 복도는 반가사유상을 마주하기 전 준비운동과도 같은 단계다.

▲사유의 방 ⓒ원오원아키텍스

영상 감상을 끝내고 방 안에 발을 들이면 토굴과도 같은 공간이 펼쳐진다. 복도에서부터 이어지는 2만여 개의 봉이 천장에서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는데, 이는 인간의 수많은 염원을 상징한다고 한다. 숯, 흙, 허브 등으로 이루어진 친환경 적토벽은 계피와 편백 향을 풍기며 관람객의 마음을 가라앉힌다. 경사진 바닥을 천천히 걸어가다보면 반가사유상 두 점이 점차 가까워진다. 해당 공간을 디자인한 원오원 아키텍스 대표 최욱 건축가는 “초월적 존재인 반가사유상이 일반인과 호흡하려면 공간의 크기가 중요하다. 그래서 전시 공간을 소극장 크기인 24미터로 디자인 했다. 거리감은 유지하면서 배우의 섬세한 표현은 볼 수 있는 거리다”라며 반가사유상과 관객 사이의 적정 거리를 찾기 위해 고심했다고 말했다.

반가사유상 앞에 이르면 전체적인 모습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왼편에 위치한 반가사유상은 삼국시대 6세기 후반 작품이다. 화려한 보관과 장신구를 착용하고 있으며, 상의는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하의는 정돈돼 있어 화려한 상반신과 대비된다. 한편, 오른편 반가사유상은 7세기 전반에 제작됐다. 부처는 앳된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왼편 작품과 달리 보관과 장신구가 모두 간결하다. 또 상반신은 맨몸인데 반해, 하반신 의상의 옷 주름은 율동적이다.  대비되는 두 반가사유상이 균형 속에서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유의 방 ⓒ원오원아키텍스

오른다리를 왼무릎에 올린 반가 자세는 석가모니가 세자 시절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며 첫 명상에 임했을 당시의 자세에서 비롯됐다. 여기서 부처는 곧 결가부좌를 맺고 명상을 시작할 것 같기도 하고, 결가부좌를 풀고 명상을 끝내려는 것 같기도 하다. 멈춤과 움직임 사이 짧은 순간을 나타내는 반가 자세는 번민과 수행이 교차하는 반가사유상의 미소와 연결되며 깨달음의 찰나를 포착한다.

반가사유상의 매끄러운 뒷모습을 통해서는 삼국시대의 뛰어난 주조기술을 엿볼 수 있다. 두 반가사유상의 높이는 대략 1미터 정도인데, 그 두께는 0.2~1.0cm로 몹시 얇다. 당시 반가사유상 제작은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섬세한 작업이었다. 제작 과정에서 거푸집이 깨지며 작품에 손상이 갈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박물관의 대표 소장품인 두 반가사유상의 경우, 주조 후 거푸집을 고정했던 장치나 못을 제거한 흔적도 보이지 않아 당시 금속 가공 기술이 매우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제작 당시 보수했거나 후대에 수리했던 흔적은 남아 있으나 육안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사유의 방 ⓒ원오원아키텍스

두 반가사유상의 예술적・기술적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자신만의 사유의 여정을 펼치다 보면 어느덧 출구에 다다르게 된다. 그곳에는 반가사유상 사진 엽서가 마련돼 있는데, 뒷면에 있는 QR 코드를 찍으면 집에서도 작품 관련 내용을 상세히 살펴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관람객은 전시장에서 경험한 사유의 여정을 집으로까지 이어갈 수 있다. 전시장 바깥 복도로 나오면 장 줄리앙 푸스의 또 다른 작품 <등대>를 만나볼 수 있다. 초현실적인 배경에 놓인 반가사유상이 위로를 건네는 영상이다. 박물관이 이번에 처음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으로, 고루하다는 편견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고 한다.

⟪사유의 방⟫은 관객이 유물을 통해 자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다. 과거와는 달리 전시장 내부의 작품 설명도 줄여 기획자의 개입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다. 짧은 휴식이 필요하다면 이번 기회에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가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