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목적’ 컬렉팅 위험성 존재해
활기 띤 한국 미술 시장 긍정적이나, 예술 본연 기능 고민해야
10조원 대 중국 미술 시장 비하면 한국 미술 시장 아직 열악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아트부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대구 아트페어의 역대 최고 매출 소식이 들려왔다. 아트부산은 350억 원, 키아프는 650억 원, 대구 아트페어는 98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예년에 비해 2배 이상 상승한 수치다. 지난 10월 코엑스에서 열린 키아프 VVIP프리뷰 당일엔, 페어 입장 시작 1시간 전부터 입구에 관람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광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페어 입장이 시작되고, 몇몇 인기 작가 작품을 공개한 갤러리로 관람객이 달려가는 ‘오픈 런’ 장면이 연출됐다는 후문도 있다.
지난해부터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간 코로나19는 우리 사회 이곳저곳에 절망을 안겼다. 특히나 삶의 여유가 있어야 돌아볼 수 있다고 여겨지는 예술 분야는 더 큰 어려움을 맞닥뜨렸다. 대면이 전면적으로 금지된 상황 속에서 갤러리와 공연장은 문을 닫아야 했고, 작가와 대중들의 만남은 더욱 어려워졌다. 이런 암담한 상황 속, 올해 아트 페어의 성과는 그 어느 때보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아트 페어 성공은 여러 가지 요인으로 설명되고 있다. 현 정부의 부동산 규제 강화로 흐를 곳 없어진 자본이 아트페어 시장으로 몰리기 시작했다는 점, 홍콩 미술 시장이 불안해지며 해외 자본이 대체재로 한국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는 점, 코로나19로 해외 여행길이 막히자 소비 자본의 흐름이 아트페어 쪽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점 등이다. 이와 더불어, ‘동학개미’, ‘빚투’, ‘영끌’ 등의 신조어가 나오며 전 국민에게 불어 닥친 주식, 비트코인과 같은 투자 열기가 미술 시장까지 이어져 ‘아트 테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분석도 있다.
우정우 학고재 실장은 최근 아트페어의 활황이 개인의 개성발현 욕구 때문이라는 시각도 제시했다. 코로나19로 외부활동이 줄어들고, 사람들이 집 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자 인테리어에 대한 욕구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우 실장은 “팬데믹 이후 소수의 지인들을 집으로 불러 함께 시간을 보내는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라며 “이와 함께, 집을 방문한 손님들에게 나만의 개성을 보여주는 방법으로 가구나 미술품 컬렉션을 선택하고 있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 같다”라는 설명을 전했다.
몇 년간 큰 변화 없이 이어져 오던 한국 미술 시장의 호황은 이유가 무엇이 됐든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게 현 미술계의 중론이다. 윤진섭 미술평론가는 “미술 시장의 부흥은 미술계 내부의 활력과도 이어진다”라며 “실제로 전업 작가들의 경우 작품이 잘 팔리고 미술 시장이 활황을 띄어야,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을 얻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최은주 대구미술관장은 “고조선이래 대한민국에 가장 큰 자본이 흐르고 있는 시대라는 말이 있다”라며 “한국의 질적·물질적 성장과 코로나19라는 시대상, 예술을 즐길 수 있는 문화 향유 계층의 등장이 모두 맞물려 나타난 현상이 아닐까 싶다”라는 견해를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끝을 모르고 성장하는 미술 시장이 혹여나 ‘버블’은 아닐지 불안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본지 서울문화투데이는 현 미술 시장에 닥친 주목할 만 한 변화요인을 짚어 보고, 이 현상이 한 번의 헤프닝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 어떤 대비가 필요할지 고민해봤다.
MZ세대 컬렉터의 등장
최근 미술 시장의 큰 변화 요인 중 하나가 바로 MZ세대의 등장이었다. 적금이나 성실히 노동한 대가만으로는 부를 축적할 수 없다는 인식이 생긴 젊은 세대들은 기성세대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으로 지금을 살아내고 있다. 최윤이 가나아트 홍보팀장은 “MZ세대들은 그들의 아버지 세대와는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재산을 보유하려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미디어나 SNS등의 매체를 통해 공인들의 작품 소장품을 보며 작품소장의 기회를 갖고 싶어 하고, 자신들의 주관과 가치, 스타일에 따른 투자를 미술품에서 적용하며, 새로운 문화 소비의 한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현장에서 소비자와 작가들을 직접 대면하고 경험하고 있는 우 실장은 젊은 컬렉터들의 경향 중 하나로 ‘아트 토이’를 통한 미술품 접근을 꼽았다. 그는 “젊은 세대들은 처음에는 10만 원 수준의 아트토이를 수집하는 방식으로 미술품에 접근해 점점 더 관심을 늘려간다”라며 “그리고, 아트 토이 작가들은 5~10년 이후에는 순수미술 장르에서 활동하기도 하는데, 이 작가들의 작품이 1000만 원대로 가격이 상승해도 젊은 컬렉터들이 꾸준히 작품을 향유하는 경향을 보였다”라고 말했다. 신진작가와 신진 컬렉터가 함께 성장해나가는 현상을 기대해볼 수 있는 지점이다.
또한, 우 실장은 젊은 세대가 단색화 대가들의 작품을 쉽게 소유할 수 없는 재력을 언급하며 단색화 작가들의 판화나 에디션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는 점도 주목했다. 그는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인 단색화 작가들의 소품 작품이나 판화 등을 구매하고자 하는 컬렉터들이 생기고 있다”라며 “이런 작품의 경우 중견·소형 갤러리에서도 취급할 수 있는 작품이기에 전반적인 미술 시장 확장 면에서는 좋은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미술시장으로 진입하고 있는 젊은 컬렉터의 등장은 미술계 다른 분야에서도 느껴졌을까? 최은주 대구미술관장은 MZ세대의 전시 관람 경향을 통해 새로움을 체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8월까지 개최됐던 이건희 컬렉션을 선보인 특별전 《웰컴 홈: 향연饗宴》에서 젊은 세대 관람객들 주목해 볼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최 관장은 “이건희 컬렉션과 삼성가에 대한 관심은 5,60대 중년층에 한정돼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젊은 관람객들이 많이 방문해 놀라웠다”라며 “작품을 관람할 때도 타인에게 방해받고 싶어 하지 않았고, ‘이건희’라는 한 개인의 컬렉션과 그의 안목에 호기심을 갖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 새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라는 생생한 시각을 전했다.
투자 목적 미술품 컬렉팅, 위험한 지점 있어
정체돼 있던 미술 시장에 활기를 띤 새로운 세대의 등장은 반가운 지점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투자’라는 목적성을 가지고 시장에 들어오는 새로운 유입 층에 대한 걱정도 전해지고 있다. 작품 본연의 예술적 기능보다 자본의 기능이 기형적으로 강화되는 지점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이준엽 갤러리 신라 실장은 투자를 위해 미술 작품을 구매하고, 집안에 작품을 걸어둔다면 ‘주식전광판(주식 시세표)’를 매일 바라보고 있는 기분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실장은 “최근 미술에 관심이 없던 주위 지인들도 작품에 대해 물어볼 정도로 ‘아트테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라며 “하지만, 예술품 투자로 성공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고 주식보다 더욱 불확실한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부의 축적’이라는 큰 기대를 가지고 투자를 시작한다면, 분명 어려움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윤 평론가는 현 미술 시장의 부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긴 하지만, ‘천민 자본주의’, ‘묻지마 구매’로 이어질 위험성도 언급했다. 윤 평론가는 “극단적인 사례로 한국 미술 시장에 단색화 붐이 일 때, 작품을 보지도 않고 ‘단색화’라면 무조건 사들이는 일화도 있었다”라며 “미술품 컬렉팅이란, 컬렉터 기호가 우선돼야 하고 어떤 경향을 띠고 있어야 한다”라며 단순 투기 목적으로 미술품에 접근하는 것은 긍정적 신호는 아닌 것 같다는 견해를 밝혔다.
또한, 윤 평론가는 현재 젊은 컬렉터들이 견인하게 될 메타버스, NFT미술 등에 대한 고민도 함께 전했다. 지금 막 등장하기 시작한 미술품 시장을 잘 이끌어나가야 하는 것 또한, 현 세대의 역할이라고 짚었다.
우 실장은 이런 투자목적 성격을 띤 미술품 컬렉팅과 이로 인해 갑자기 주목을 받게 된 작가들의 입장도 전했다. 미술 평단에서 주목받기보다, 매체에 소개되고 유명 인사가 주목한 작품으로 갑작스레 작품 값이 뛴 작가들의 경우 박탈감과 공포감을 표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우 실장은 “실제 갑작스레 작품 값이 뛰어 거래된다 해도, 그 대가가 모두 창작가에게만 돌아가는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되레 작가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라며 “갑작스레 가격이 높게 책정된 몇몇 스타 작가들은 이 현상이 오래가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며, 앞으로 시장과 컬렉터들이 자신을 주목하지 않을 때 작가로서 자신의 입지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에 대해 공포감을 표하는 경우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미술품 시장을 단순히 경제적인 시장논리로 판단하기엔 위험한 지점들이 있다는 견해였다.
동력 얻은 한국 미술 시장, 대중과 전문가 공동의 고민 지속돼야
지난 10월 키아프와 얼마 전 막을 내린 대구아트페어에서 갤러리 신라는 작품 전시가 아닌 프로젝트로 부스를 채웠다. 키아프에서 갤러리 신라는 부스를 막아두고 “아트페어 기간 중 갤러리 신라부스는 닫혀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부스 벽면에 적어뒀다. 이 부스는 글로벌 미술 전문지 ‘아트뉴스’에서 키아프에서 주목 할 만 한 10대 부스로 소개되기도 했다. 상업화 된 미술과 미술의 예술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부스였다.
갤러리 신라는 대구아트페어에서 또 하나의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To buy art, You Just need money. To collect Art, You just need ( ).”라는 문구를 적어두고 예술을 수집하는 데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관람객에게 물어보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이다. 아트페어 관람객들은 자신 만의 답을 종이에 적어 이 벽면에 붙였다. 이 실장은 “아트페어란 단순히 작품을 판매하는 장이 아닌 갤러리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운영방식 보여줄 수 있는 장이라고 본다”라며 “투자재로서의 미술, 예술적 기능의 미술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싶어 갤러리의 방향을 담아냈다”라고 설명했다. 갤러리 신라의 해당 프로젝트는 0-0, 0-1로 선보여졌고 이후 내년 화랑 미술제에서도 0-2로 지속될 계획이라고 한다.
최 팀장은 투자 개념으로 미술품을 찾는다면 신뢰가 가는 갤러리를 선택해 작품성의 조언과 미래가치에 대한 의견을 갖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조언과 함께 매체를 통해 알려진 작품을 무작위로 소장하기 보다는, 미술관 및 갤러리의 전시장을 찾아 나만의 작품스타일을 찾고, 소장 목록을 정해 작품을 컬렉션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견해를 표했다.
윤 평론가 또한, 미술품이란 컬렉터가 소장하고 연구하며 작품이 가진 문화적 향수가 공유 될 때 그 진가가 발휘된다고 했다. 최 관장 역시, 자신의 취향과 목적성이 있는 컬렉션일수록 그 가치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건희 컬렉션의 등장은 한국 미술 컬렉션 전반에 여러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라며 “미술품을 구매한다는 것은 ‘부가가치’를 구매하는 것으로 확실하지 않은 분야를 믿고 선택하는 신중함이 필요한 영역”이라며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선적으로 고려될 지점이라고 짚었다.
하나의 예술 분야가 성장하기 위해선, 그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이 존재해야 한다. <기생충>과 <미나리>같은 한국 영화의 세계적인 성공은 그 저변에 영화를 사랑하는 대중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미술 시장 매출 규모는 연간 4000~5000억 수준에 머물렀다. 올해엔 1조원 대를 넘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지만, 약 10조 원대 매출 규모를 가진 중국 미술시장에 비하면 열악한 수준이다. 국민의 일부만 즐기는 문화가 아닌, 다양한 이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돼야지 한국 미술시장의 호황이 미술계 발전으로 나아갈 수 있을 듯하다. 이를 위해선 미술시장의 구조개선, 대중 교양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컬렉터를 위한 전문적인 교육 등 준비돼야할 것들이 있다. 새로운 세대의 등장은 변화를 주도하곤 한다. 몇 년 만에 불씨를 얻은 한국 미술 시장의 호황이 아름답고 따스한 불꽃으로 계속 타오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