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Interview] 유근택 작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얼마나 놀라운 세계인가 증명해보고 싶다”
[Artist Interview] 유근택 작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얼마나 놀라운 세계인가 증명해보고 싶다”
  •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발행인ㆍ이지완 기자/김재성 작가
  • 승인 2021.11.18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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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2회 이인성 미술상 수상
‘일상’…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하나의 세계 그려내
동양화의 현대성, 지금 시대와 소통할 수 있어야 해
올해 초 프랑스 노르망디 체류, 불안을 경험한 시간
“2121년에도 통용될 수 있는 말을 담은 그림 그리고파”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발행인·이지완 기자·김재성 작가] 지난 10월 우리 화단에서 가장 큰 상이라 할 수 있는 이인성 미술상(제 22회) 수상자가 발표됐다. 주최측은 자연과 인간, 환경과 사회문제에서 도출된 주제로 실험적인 재료와 화면을 실천해 한국화를 현대적 시각으로 재현했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미술상 심사위원들은 “개인의 서사를 말하는 것 같지만 그의 작품엔 사회적, 심리적 층위가 발견된다는 것이 특징이다”라며 “유근택의 회화는 시공간을 넘어선 지평을 열어왔다”라고 밝혔다.

이인성 미술상 시상식을 이틀 앞 둔 지난 3일 서울문화투데이는 성북동에 위치한 유근택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일방통행만 되는 좁은 골목길에 자리하고 있는 유근택 작가의 작업실은 다세대 주택 두 개 층을 터서 활용하고 있었다. 1층과 지하층을 모두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었으며, 현재는 대형작업을 위해 옥상에 작업공간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작업실에서 유근택 작가가 작품 앞에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김재성 작가
▲작업실에서 유근택 작가가 작품 앞에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김재성 작가

유 작가의 작업실은 작품과 화구들로 빼곡이 들어차 작업을 하다 잠시 편히 쉴 공간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현관 맞은편에 있는 3인용 소파가 작업실에 존재하는 유일한 푹신한 가구였다. 그마저도 책 무더기와 자료에 파묻혀있었다. 인터뷰는 플라스틱 간이의자를 붙여서 마련된 공간에서 진행됐다. 걸음을 잘못 내딛으면 바닥에 놓인 붓이나 작품이 훼손될까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유 작가의 작업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작업의 순간이 생생히 살아 숨 쉬는 공간에서 그의 작품을 마주하며 진행한 인터뷰는 더욱 깊이를 더 할 수 있었다.

유근택의 회화에는 일상이 가지고 있는 두꺼운 층위가 기록돼 있다. 창 밖 풍경, 샤워하는 모습, 분수라는 일상적 소재를 사용하지만 그 이면의 시간과 공간은 무한함을 지니고 있다. 평면 회화 안에 시간을 압착시키는 작업은 쉽게 완성되지 않는다. 인터뷰를 진행하고, 잠깐 남은 시간 동안 그의 작업실을 돌아보며 벽면에 붙여진 메모들을 발견했다. 올해 초 사비나 미술관 전시를 준비하던 때의 기록인 듯 했다. 일상에 대한 담담한 몇 문장이 선과 같은 필체로 담겨져 있었다. 그 순간 유 작가가 건너왔을 일상 기록의 층위를 작게나마 상상할 수 있었다. 그의 작품에선 시간과 공간의 켜를 만나볼 수 있다. 그 켜 안에 눌러진 서사를 들어보았다.

▲유근택, 분수,179x187cm black ink and powder of white gouache Koren paper 2009 (사진=대구미술관 제공)
▲유근택, 분수,179x187cm black ink and powder of white gouache Koren paper 2009 (사진=대구미술관 제공)

이인성 미술상 수상을 축하한다. ‘세상에 화가적 의무를 다하라’라는 의미로 생각하겠다는 말에서 결연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소감과 함께 수상자로 선정된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을 듣고 싶다.

‘이유’라니 정말 어려운 질문이다. 내가 말하기 어려운 지점이기도 하다. 90년대 후반부터 동양화단에는 언제나 위기론이 거론돼 왔다. 그런 가운데서 특별한 대안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 중에 이 시대에 어떤 목소리를 낼 동양화가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수상 연락을 받았을 때, 두려움이 제일 컸다. 그 다음으로 주변분들 혹은 모든 사물들 모든 시간들에 대해서 굉장히 감사함을 느꼈다. 조금 진정이 된 후에야, 이인성 미술상에 대한 의미를 고민하게 됐고 지금 미술계 내 나의 포지션에 대해서도 여러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인성 선생은 한국 근대 미술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 이인성 선생의 작품은 동서가 결합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아마 그런 지점들이 나의 작품 세계와 연관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일상, 지금, 여기’라는 동양화의 현대화를 이끌어낸 작가라는 수식어가 있다. 스스로도 동양화의 제한적 주제에 답답함을 느낀 듯도 하다. 수식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동양화의 현대성에 많은 생각을 했었던 적이 있다. 내가 미술계에 들어 설 때쯤인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은 동양화의 과도기적 시기이자 격변을 겪던 시기였다. 그 때 동양화의 현대성은 무엇일까 많은 생각을 했다. 동양 회화에는 굉장히 중요한 장점들이 많다. 그런데 너무 관념적이고 정신적인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땅 위로 내려와 땅에 발을 붙이고 인간과 대화할 수 있는 위치로 동양화를 끌어내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당시 나의 중요한 회화적 화두였다.

의식적으로 모필소묘 개념을 끌어들인 것도 ‘현대성’을 향한 나의 고민이 담겨있었다. 직접 현장에서 작업을 한다든가, 의식적으로 창밖을 나선 풍경 시리즈를 해나가는 작업이었다. 동양미학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과 가까워져 함께 호흡하며 우리의 조건이나 정서들과 어떻게 어우러지는지가 중요한 과제라고 여겼다. 대중과 소통하지 않는 한 ‘현대’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마 나를 표현하는 수식어인 ‘현대성’은 소통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 제22회 이인성 미술상 시상식, 유근택화가 (가운데) (사진=대구미술관 제공)
▲ 지난 4일 열린 제22회 이인성 미술상 시상식, 유근택화가 (가운데) (사진=대구미술관 제공)

먹, 호분, 과슈 등 동양화에서 재료의 다양성도 추구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동양화는 일반적으로 수묵이 바탕이 되고, 색채를 사용하는 것이 경시되는 경향이 있었다. 다양한 재료의 시도도 현대성을 추구한 결과인가.

그런 지점도 확실히 있을 것이다. 화선지와 먹은 동양화의 대표적인 재료로 아주 중요한 매체다. 하지만, 수묵에 갇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미학적인 부분들을 조금 더 확장적 개념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봤다. 그렇지 않으면 굉장히 복잡한 현대의 정서적인 문제에 접근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진다. 동양 미학이 가지고 있는 재료적인 미학은 끌고 가면서, 지금을 담아야 했다. 그래서 종이를 변질시키거나 호분을 쌓아 시간의 단층을 기록하는 방식들로 기존 수묵체계와 지금의 정서를 연결시키려 노력했다. 현대성에 대한 의미적 갈망이 기법적인 부분으로도 발현된 것 같다.

시리즈 작업이 많다. <앞산 연구>, <창밖을 나선 풍경>, <지하철> 등. 한 가지 소재를 꾸준하게 바라보며, 공간을 넘어선 사유와 시간을 담아내는 듯도 하다. 이런 방식의 작업은 어떻게 시작되고,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궁금하다.

아마 내 버릇이라든가, 습성과 가까운 방법인 듯 하다. 세계를 받아들이는 태도하고도 가깝다. 항상 무언가를 어떤 궁금증을 가지고 계속 바라본다. 그러다보면, 갑작스레 내게 다가오는 낯선 감동이라든지, 낯선 지점들이 있다. 사실상 일반 사람들도 이런 부분은 모두 다 느끼고 있다. 일반 사람들에겐 그 낯선 지점들이 살짝 왔다 지나 간다면, 나는 그 낯선 지점들을 꼭짓점으로 잡아서 뚫고 들어간다. 그 지점들로 들어가다 보면 전혀 다른 언어가 개입되고 완전히 다른 언어가 발생하기도 한다. 반복적인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진 않다. 하지만, 뚫고 들어갈수록 새로운 언어를 마주하고 또 다른 테마로 옮겨가면서 작업을 이어가게 되는 것 같다. 이 과정 속에서 굉장히 영화적인 소재를 만나기도 하고, 시간의 속성을 만나기도 한다. 세계와 나의 호흡이 더욱 직접적으로 부딪힐 수 있는 기회가 되돼서 시리즈 작업을 이어온 것 같다.

1990년대 중후반 할머니를 계속 그린 시리즈 작업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다.

할머니에 대한 작업은 어떤 연구라기 보단, 당시 내 의식이 할머니에게로 쏠려있었기 때문에 시작된 작업이다. 어느 날, 할머니가 돌아가실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서 항상 할머니 곁에 머무르게 됐다. 그러다보니, 아예 지필묵을 할머니 방에 놓고 할머니만 그리게 됐다. 사실 그 때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이 사건이 내게는 하나의 큰 사건이 됐다. 할머니를 그리겠다는 목적을 세우고 다가간 것도 아니었다.

그 때에는 수묵으로만 작업을 했는데, 내게 ‘수묵의 매재는 방안의 공기조차 작업의 수단이 될 수 있겠구나’하는 깨달음을 안겨줬다. 공기의 구조조차 내 조형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은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전혀 다른 개념이었다. 태도가 움직여지다 보니 그렇게 마음이 움직였던 것 같다. 모든 시간이 흐른 후에야 깨닫게 된 지점이었는데, 당시 할머니의 신음소리라든지 할머니의 호흡과 나의 선이 일체화됐었다. 작업을 하다보면, 텔레비전 빛 앞에 누워계신 할머니, 할머니의 호흡, 할머니의 뒤척임을 계속적으로 관찰한다. 그런 관찰을 지속하다보면 할머니가 가진 호흡이나 리듬이 내 손을 타고 종이 위로 올라가는 느낌이 있었다.

그 당시에 나는 수묵이라는 매체를 벗어나 현대미술의 기법, 강한 마티에르적 효과를 추구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할머니 곁에 머무르며 수묵이라는 기법에 더욱 빠져들 수 있었다. 마티에르를 모두 걷어내고, 수묵과 담묵에 집중한 순환성에 몰두했었다. 90년 대 후반까지 이런 작업 지속했는데 이제는 여기에 호분이 다시 개입되면서 돌성에 대해 집중하고 있다. 과도기적인 과정이었지만, 중요한 경험이었다고 본다. 정서적 차원의 표현과 공기의 흐름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감각을 만들어줬다.

▲인터뷰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유근택 작가 ⓒ김재성 작가
▲인터뷰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유근택 작가 ⓒ김재성 작가

‘일상, 정서, 공감’이 작품에서 많이 보인다. 가볍고 부드러운 언어들인데, 그림 속에서는 또 묵직한 의미로 전달된다. ‘일상’은 어떤 의미 인가.

‘일상’은 내가 호흡하는 모든 것이다. 내가 바라보고 호흡하는 모든 것, 내가 사물과 어떻게 만나고 있는가에 집중해서 작품에 담아왔다. 일상 속 어떤 대상과 내가 계속 부딪히다 보면 그 사이의 언어라는 것이 발생한다. 이 언어라는 것, 그 사이의 개념은 굉장히 문학적일 수도 있고 영화적일 수도 있고 시적인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일상’이라는 것은 결국 내가 가장 가까이서 부딪히고 있는 문제, 혹은 부딪히고 있는 관계, 낯섦, 에너지 모든 것을 뜻한다. 근데 이 일상이 어떤 경우에는 사회적인 문제와 만나기도 하고, 내 심리적인 부분과 만나기도 한다. 또, 어떤 삶의 구조와도 만난다. 이처럼 ‘일상’으로 시작되는 것은 단순하게 반복되는 구조가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하나의 세계라고 볼 수 있다.

지난해 프랑스 노르망디에 있는 레지던시에 머물면서 코로나19를 경험했다고 들었다. 심지어 머무는 기간동안 유럽 코로나 상황이 악화됐는데, 어떻게 시간을 보냈나.

나눔재단에서 보내주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한국에선 신천지 사태가 터졌고, 프랑스에선 전 지역에 감염자가 30명 정도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되레 한국이 더욱 위험한 시기였다. 그래도 어쨌든 유럽 쪽으로 떠나게 됐는데, 도착하자마자 프랑스에서 봉쇄가 시작됐다.

여러 가지 계획을 가지고 갔었는데, 아무데도 못 가고 한군데에만 갇혀있었다. 엄청 불안한 시간이었다. 레지던시가 있는 지역이 파리에서도 되게 먼 지역이기도 했고, 그곳엔 병원도 없었다. 혹시라도 코로나에 감염이 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하는 극심한 불안이 다가왔었다. 그래서 불안을 이겨내는 방법을 고민해야 했고, 불안과 싸워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됐다. 원래는 두 달을 계획하고 갔는데, 한 달 조금 넘긴 후에 귀국하게 됐다.

한 달 반 동안 감금과 같은 상황을 겪으면서 신문지를 태우는 <시간>연작을 완성했다. 신문지가 탄다는 것이 1차원 적으로 해석하면 코로나가 끊임없이 번져나가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속에서 좀 더 긴박함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작품 10점을 완성해서 시계 방향으로 배열한 작품인데. 팬데믹이라는 상황 속 아주 빠르게 돌아가는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다.

사실, 신문지가 타들어가는 순간을 잡아채서 작업하는 것은 굉장한 몰두가 필요한 예민한 작업이다. 신문의 글자를 그리고, 불을 표현하는 작업은 빠른 시간 내에 엄청난 집중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작업이었다. 아무 데도 갈 수 없고, 혼자서 불안을 감내해야 하는 공간에 머물렀기 때문에 가능한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유근택, 어떤땅-뉴욕타임즈, 148X270cm ,Black Ink, White Powder and Tempera on Korean Paper,2019 (사진=대구미술관 제공)
▲유근택, 어떤땅-뉴욕타임즈, 148X270cm ,Black Ink, White Powder and Tempera on Korean Paper,2019 (사진=대구미술관 제공)

최근 미술계가 다양한 변화를 겪고 있는 것 같다. NFT의 등장, 새로운 담론들도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정말 많은 것이 혼재된 시기라고 느껴지는데, 지금 미술계 상황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만만치 않은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본다. 정말 말 그대로 혼재(混在)의 상태다. 자본도 너무 복잡하게 움직이고 있고, NFT 미술 같은 의식적으로는 알 것 같지만 가까이 와 닿지 않는 문제들도 나타났다. 옛날 같으면 변화를 파악하고자 노력을 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오히려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시스템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고도 보인다.

새로운 거대 담론이 생겨나고 있는 것도 느껴진다. 한동안은 미술계가 개인적인 정서로 몰입했는데 또 다른 개념의 거대 담론으로 시선을 옮기고 있다. 개인적으로 약간 조금 섬뜩할 정도의 움직임이기도하다. 그런 움직임이 미술적 반응으로는 어떻게 나오게 될지는 고민이 된다. 나 또한 그 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반영할 지, 질문으로 가지고 있다. 단 하나 확실한 것은 미술은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술은 언제나 새롭게 재편되고, 옛날 것을 가져온다 해도 새롭게 만들어서 선보인다. 지금 이러한 변화들이 회화 안에서 어떻게 개입될 지 고민하며 같이 가보고 싶다.

기술의 발달은 과거로 돌아가진 않는 것 같다. 그런데, 회화는 영원할 것 같다. 이 점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회화는 계속 가지 않을까 싶다. 회화는 아날로그적인 작업이지만 철저하게 미디어적이 요소들도 지니고 있다. 이를테면 한 시간짜리 영화는 한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으면 영화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이 영화가 가진 딜레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회화는 이 한 시간이라는 개념을 평면으로 압축해놓은 것이기에 해석의 여지가 넓다. 지금도 알타미라의 동굴 회화는 그 시대의 언어로 21세기에 말을 걸어오고 있다. 이것은 굉장히 놀라운 지점이다. 회화는 어떤 등식에 의해서 해석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다. 블랙홀과도 같이 해석의 무한한 분야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회화는 데이터에 의해 사라질 수 있는 존재는 아니라고 본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엔 회화가 계속 남아있을 것 같다. (웃음)

▲인터뷰하고 있는 유근택 작가와 이은영 발행인 ⓒ김재성 작가
▲인터뷰하고 있는 유근택 작가와 이은영 발행인 ⓒ김재성 작가

부부작가이기도 하다. 아내 분이 이진원 작가다. 대게 부부작가들을 보면 항상 남편에 가려져 아내 작가가 빛을 못 보는 경우 있는데, 같은 작업을 하는 이가 평생의 동반자라는 점은 어떠한가. 작업에 많은 견해를 나눌 것 같다.

서로의 작업에 대해서 좀 냉정하게 얘기하는 편이다. 특히 진원씨가 내게 냉정하게 얘기하는 편이다. 일단 우리 두 사람은 성향 자체가 많이 다르다. 보는 각도도 다르고, 방식이나 접근법도 모두 다르다. 나는 허리나 팔이 아플 정도로 몸을 써가면서 작업하는데, 진원씨는 정말 크게 호흡해나가면서 나아가는 스타일이다. 옆에서 내가 막 휘두르면서 작업을 하는데도, 진원씨는 한쪽에서 조용하게 작업을 이어나간다. 옆에서 보면 진원씨가 참 대단해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얘기를 나누고 있고, 서로 다르기 때문에 얘기하면서 각자 새롭게 알게 되는 지점들도 있는 것 같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작업의 고충은 다르고, 고충은 분명히 있기 때문에 서로가 조심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피할 것은 피하고, 조언할 것은 조언하면서 가끔은 일상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며 지내기도 한다. 조언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라는 생각을 한다.

가까운 시기의 전시 계획과 작가로서의 지향을 듣고 싶다.

내년 초에 벨기에 안트워프 ‘뉴차일드 갤러리’에서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현지인이 하는 갤러리인데,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전시 제안을 받았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느꼈다. 문명의 발달이 단절을 불러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되레 물리적인 거리를 뛰어넘어 현재를 살아가게 해주고 있다.(웃음) 벨기에에선 3인전 전시를 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내년 2월 21일부터 3개월 정도 전시를 열고 20점 정도의 작품을 출품할 것 같다. 이후에는 이인성 미술상 전시를 준비해야 한다.

최근 사비나 미술관 전시는 거대담론과 시대성에 초점을 맞췄다. 앞으로 작가로서의 지향이 있다면 창밖으로 보이는 마을 풍경, 빛, 정원들이 얼마나 놀라운 세계인가를 증명해보고 싶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곳이자 당신 역시 바라보고 있는 세계를 좀 더 담아내고 싶다. 이런 작업들이 얼마나 감동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좀 더 본질적으로 풍경이 나의 삶을 건드리는 장치에 대해서 도전해보고 싶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집 앞 풍경들을 그리고, 분수 작업이 가진 순간적 찰나의 회화적 가능성을 탐구하고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 계속해나가야 한다. 내가 언제까지 작업을 할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계속 현재형 작가로 있고 싶다는 것이 바람이다. 한 100년 후에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2000년대의 언어로 충분히 말을 전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