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공원 조명도 이젠 달라져야죠
[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공원 조명도 이젠 달라져야죠
  • 백지혜 디자인 스튜디오라인 대표, 서울시좋은빛위원회 위원
  • 승인 2021.11.18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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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서울시는 2011년, 늘어가는 도시의 빛을 관리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자체로서는 처음으로 빛공해 방지 및 도시조명관리조례를 제정했으며, ‘빛공해 방지법’이 만들어 진 것은 그로부터 1년 후였다. 이후 좋은빛위원회를 두고 건축물이나 공원, 도로 그리고 미디어파사드에 이르기까지 도시의 빛요소들을 관리하여 빛공해 방지와 더불어 안전한 도시, 야경이 아름다운 서울을 만들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2019년, 서울시는 도시빛 리서치단을 꾸려 권역별로 경관조명 현황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이제까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참으로 놀라웠다.

도심권(종로구·중구·용산구)의 경우 조계사·덕수궁 등 많은 문화재가 주변 광고조명의 영향으로 그 존재를 알리지 못하고 있었고 주변의 상업지구는 높은 휘도와 정돈되지 않은 색온도 탓에 정비가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서북권(은평구·서대문구·마포구)은 아예 조명이 설치되지 않은 공원에서는 치안문제가 제기되었고 도로는 어두워 위험한 반면 상암 디지털미디어 시티의 경우 지나치게 화려한 조명으로 인해 혼란스럽다는 의견이 많았다.

동북권(도봉구·노원구·강북구·성북구·중랑구·동대문구·성동구·광진구) 역시, 대부분 지역에서 조도나 색온도, 휘도의 계획과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다는 지적을 받았고, 서남권(강서구·양천구·영등포구·구로구·동작구·관악구·금천구)은 도로와 공원 공간조명의 낮은 조도와 강한 대비로 밤길이 두렵다고 했다. 동남권(서초구·강남구·송파구·강동구)의 경우 광고조명의 휘도 관리가 필요하다는 평과 함께 도로나 보행로의 조도, 색온도의 통합적 계획과 관리가 아직 부족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각 권역별로 조명환경 개선이 시급하다고 꼽아진 것들을 살펴보면 덕수궁·남산공원(도심권), 독립공원(서북권), 북서울 꿈의 숲·정릉(동북권), 보라매공원·금천 폭포공원(서남권), 양재시민의숲·백제고분로와 몽촌토성(동남권) 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원과 문화재로 공공 공간들이었다. 2019년 조사 이후 2년이 흘렀다. 서로 거리두기가 일상화되고 어느 때보다 외부 공간, 도시 공원의 쓰임이 중요해진 지금, 조사 자료를 토대로 달라진 것이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2030 서울시 공원녹지 기본계획을 보면 과거 도시의 공원은 나무 심고 잔디밭을 조성하는 정도의 그저 바라보는 녹색공간으로 간주하여 왔으나, 최근 도시 거주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요소로서 적극적인 활용이 요구된다며 다양한 특성을 가진 공원으로 구상해야 한다고 되어있다. 그리고는 300페이지에 이르는 보고서 중에서 일몰 후 환경 조성에 대하여는 내용이 전무하다. 안전을 위해 범죄 예방 디자인을 해야 한다는 문구가 언급되었을 뿐 장소의 정체성, 기능을 위하여 세부 디자인 가이드라인이나 관련 기준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다.

실제로 공원 조성시 조명계획은 아직도 전기설비 분야에 포함되어 개략적인 수준으로만 다루어지고 있고 공원 조성 후에도 최소한의 인원이 램프를 교체하는 정도의 관리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공원의 조명계획은 4계절 그 모습을 달리하고 성장하는 수목과 복합적인 자연생태계의 특성을 고려해야 하는데 예를 들어, 가을에 잎이 떨어지는 나무를 투광하기에 지중 타입 조명기구는 적합하지 않으며 수종에 따라 빛에 민감도가 달라져 빛공해에 의한 피해도 달라진다. 또, 밝기 계획에 의해 일몰 후 사람들의 동선을 유도하여 생태지역을 보호하고 빛공해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넓게 펼쳐진 오픈 스페이스에서는 수평조도가 낮아도 수직 빛 요소를 두어 안전함을 느끼게 할 수 있고 세미컷오프의 배광을 갖는 보행로용 조명기구는 주변 나무를 비추어 낮은 조도로도 보행을 안심하게 할 수 있게 해준다. 벤치나 음수대, 파고라와 같은 환경조형물에 조명을 결합하여 밝기를 제공하고 이정표가 되도록 하여 빛요소를 최소화한다면 유지 관리의 기회도 줄어들어 이득이 되지 않을까..

어떤 길은 여럿이 떠들며 걷고, 어떤 길은 조용히, 천천히 걷고, 어느 곳에서는 앉아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 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어둠 속에 조용히 앉아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이미 공원은 계획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밤에도 그렇게 공원을 이용하고 즐길 수 있도록 보다 세심한 야간환경이 계획되길 바란다.

고층건물과 아파트로 가득찬 듯한 서울이 인구 1명당 공원면적이 꽤 높단다. 낮에는 바쁜 도시인들이 밤에라도 도심의 공원을 제대로 즐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