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 말 되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 고 김용민(1943-2021) 선생의 삶과 예술Ⅰ
[윤진섭의 비평프리즘] 말 되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 고 김용민(1943-2021) 선생의 삶과 예술Ⅰ
  • 윤진섭 미술평론가
  • 승인 2021.11.18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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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 미술평론가
▲윤진섭 미술평론가

현재 한국 화단에서 김용민(1943-2021)이란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오랜 세월동안 그는 세인의 뇌리에서 잊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일찍이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평택에 있는 한광중고등학교에서 미술교사를 하다가 상경하여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그러나 사회를 살아가는 요령이 부족했던 그는 끝내 학원 운영에 적응하지 못 하고 몇 년 못 가 문을 닫고 말았다.

나는 H대 미술대학 회화과에 재학 중이던 1976년에 그와 동기인 이건용 선생 화실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이건용(1942- )이 당시 전위미술단체로 잘 알려진《ST》그룹의 회장인 관계로 자연스럽게 같은 회원인 김용민과 성능경(1944- )이 자주 화실을 방문했던 것이다. 이 세 사람은 다 함께 전공만 달랐을 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동창생들이었다. 이건용과 성능경은 서양화, 김용민은 동양화 전공이었다.

나는 학생 신분이지만 마침 북아현동에 사는 넷째 누님댁에 기식하고 있던 관계로 상수동에 있는 학교에 오다가다 들러 무려 한 띠나 차이가 나는 이 대선배들로부터 현대미술에 대한 귀동냥을 할 때였다.

1970년대 중반에 김용민은 행위예술의 일종인 이벤트(Event)와 개념미술에 푹 빠져 있었다. 흔히 '사건'으로 번역되는 이벤트는 사물과 신체를 매개로 어떤 구체적인 행위를 보여주는 예술의 매체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60년대의 해프닝은 우발적인 사건으로, 이벤트는 논리성을 지닌 것으로 해석됐는데, 여기에는 특히 자신의 행위를 가리켜 '논리적 사건(Event-Logical)'이라고 명명한 이건용의 사고가 반영된 측면이 없지 않다.

▲ 고 김용민(1943-2021) 

그러나 김용민의 관점에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그는 사건의 논리적 관계를 주장한 이건용처럼 사태가 논리적 정합성을 갖고 전개된다고 보지 않았다. 이 양자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가령 이건용의 대표적인 이벤트 작품인 <건빵먹기>(1975)를 예로 들어보자. 이건용의 신체 해석 방식은 인과적이며 기계론적이다. 이건용은 처음에는 손을 사용하여 자유롭게 건빵을 집어 먹지만 팔에 부목을 댈수록 부자유스런 팔 때문에 입 안으로 건빵이 들어갈 수 있는 확률은 점점 낮아진다. 이건용은 그것이 사물(오브제)과 신체 사이에서 빚어지는 사건의 논리적 관계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처럼 사건이나 사태를 논리적 관점에서만 보게 되면 자칫 예술의 중요한 생성원리인 상상력이 위축될 소지가 없지 않다. 이제와서 돌이켜 보면 70년대의 미술공간에서 사건을 논리적 관점에서 사고하고 파악하는 습관은 근대적 사고의 훈련이란 관점에서 작가들에게 좋은 점도 남겼지만 , 그 반대 급부로 잃은 것도 적지 않았다. 나의 관점에서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사건이나 사태에 대한 이 선생의 분석은 탁월한 바가 있었다. 여담이지만 1977년에 견지화랑에서 열린 제6회 [ST]전에서 발표한 나의 이벤트 <서로가 사랑하는 우리들>은 관객참여를 도입하여 함께 즐기며 논 유목적인 성격의 퍼포먼스였다.

이번에는 1976년에 발표한 김용민의 이벤트 하나를 보자. 그는 샌드 페퍼를 들고 나와 화랑 벽에 붙인 뒤 붓을 문질렀다. 붓은 얼마 안 돼 닳아버렸다. 그러자 그는 ''붓이 그렸나? 뻬빠(페퍼)가 그렸나?'' 하고 자문한 뒤 자리로 돌아갔다.

당시 <신문읽기>란 이벤트를 통해 군사정권 하의 언론통제를 은유적으로 비판했던 성능경과 함께 개성있는 작품세계를 보여준 김용민은 이처럼 '말 되어질 수 없는 사태' 에 주목했다.

뜨거운 전기 다리미를 수백 장의 포갠 천 위에 올려놔 천이 눌어붙어 시커멓게 탄 다리미의 흔적이 순차적으로 남은 모습을 전시한다든지, 김용민의 개념적인 작품은 주로 일상생활에서 소재를 구한 것들이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