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세상을 보는 창] 집콕문화소개, 좋은 영화 다시보기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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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승현 아트스페이스U대표, 설치도예가
  • 승인 2021.11.1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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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재 감독의 ‘작은 빛’
▲유승현 아트스페이스U대표, 설치도예가

꿈과 일상이 혼용되는 시공간, 조민재 감독의 ‘작은 빛’

영화는 비출 영(映) 그림 화(畵), 즉 비춰진 그림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누군가의 삶과 일상이 보여지고 주어진 시공간안에 과거와 현재, 미래의 조각들이 감독의 의도대로 그려지는 것이다. 이번 호에 소개할 영화는 조민재 감독의 ‘작은 빛’으로 감독의 생애가 투영된 자전적 이야기이며,삶에 대한 순수성과 영화에 대한 열정이 조물조물 버무려진 작품이다. “귀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어떤 이야기도 하찮은 것은 없다. 누구나 저마다의 빛을 품고 있다” 필자가 느낀 이 영화의 핵심 정서다. 감독은 영화를 전공으로 택하지 않았단다. 오히려 영화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과정 중심의 작업으로 철학적인 정서를 영화에 반영하고 있다는 전문 영화인의 응원 섞인 평을 들었다. 영화 ‘작은 빛’에 숨은 그림을 보자면 일관적인 맥락을 발견할 수 있는데 어쩌면 새로울 것도 없는 가족의 공간과 삶의 풍광들이 더욱 건강하게 느껴졌다. 평소에 노동일을 하고 휴식으로 작품을 만든다는, 솔직한 표현을 하는 조민재 감독. 투명한 그의 정서가 영화 속에서도 은밀하게 암시된다. 필자는 감독에게 “당신의 영화는 아주 큰 빛이며 당신의 일상과 꿈이 혼용되는 귀한 시공간”이라고 전하고 싶다. 영화 ‘작은 빛’은 2020년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2019년 무주 산골영화제 뉴비전상과 영화평론가 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최근 제작한 영화로는 실제로 창신동 봉제 공장에 다녔던 어머니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영화‘실(이나연감독 공동 연출, 2020)이 있으며 ’작은 빛‘과는 조금 다른 페이크다큐 진행으로 여성 노동자의 힘든 삶을 담백하게 그렸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과거로의 회귀, 삶을 담아내는 캠코더 등장

얼마 전 뇌 질환을 앓았던 지인이 치료를 위해 방사선을 쏘는 과정에서 감각기관의 기능 저하를 우려하여 치료를 중단했다는 이야기를 필자에게 전한 적이 있다. 시력과 청력이 떨어지면 기억력의 손실이 오기에 그는 당장의 치료보다 삶의 질을 선택했고 뇌 어디쯤에 기거하는 종양과 지금까지도 숨가쁜 동행을 하고 있다. 새삼 살아가는 것이 고귀하게 느껴지고 인간의 감각과 자유의지가 한 사람의 생애에 미치는 거대함을 보았다. 영화 “작은 빛‘의 주인공 진무 역시 뇌수술을 앞두고 기억이 상실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일상을 하나둘 기록하기 시작한다. 오늘의 기억을 잡아두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캠코더를 들었다. 36살 아들이 한밤중 누워있는 엄마의 뒷모습을 찍는 이유다. 어릴 적 춤을 잘 추었던 형을 찾아가 춤을 춰달라고 부탁을 하고 쑥스러워하던 형은 동생을 위하여 어느새 대문 앞에서 춤을 춘다. 그 역시 영상에 담아 돌려보며 가족들과 환하고 큰 웃음을 짓는다. 혼자 아이를 키우는 씩씩한 누나의 지난 꿈은 글 쓰는 작가였다. 현재의 이야기를 담으며 과거를 소환시키고 다시 한번 꿈을 추억하게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어느새 커버린 어린 조카의 모습을 담기도 한다. 주인공 진무는 어느 날 어머니에게 조용히 묻는다. 살면서 언제가 가장 좋았냐고. 엄마는 “사느라 바뻐서 시간이 후딱 가버렸으니 좋은 적이 없다”고 아들에게 딱 잘라 말하지만 이내 따스한 목소리로 답한다. “생각해보니 일하러 다니는 길 나무밑을 걸을 때가 참 좋았다”고. 쉽지 않게 사는 진무와 가족들은 어느새 기억의 저편에 있던 아버지를 떠올리기도 한다. 부재하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 섞인 어머니의 표현이 “그래도 너를 보니 아버지에게 고맙기도 하다”는 어머니의 잔잔한 고백으로 이어진다. 어느덧 병원에 입원한 진무. 주인공과 가족들은 그동안 담은 영상을 돌려본다. 기억하든 못하든 캠코더에 가족과 함께한 일상의 공간을 담는 행위도 의미가 있다. 산에서 가족의 장례를 마친 후 어머니의, 참 좋았다던 나무 밑을 일가족이 걷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어둠 속에서 더욱 터져 나오는 빛

대부분 영화는 나름대로 내적, 외적 운율을 지니고 있는데 이 영화는 세련된 연출을 사용하지 않았다. 극의 분위기와 정서적 효과를 내기 위한 노력도 크게 발견되지 않았다. 아주 친절한 영화는 아니다. 영화 속 장면과 배우들의 대사가 너무 자연스러워 감독의 의도가 무엇이었는가 심심하게 느껴질 정도다. 대신 주인공 진무가 매일 하는 일, 오늘을 영상에 담아내는 것을 보여주며 관객 스스로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한다. 또 가족이 등장하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통해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고 싶을 만큼, 무료함과 피로함을 전달하는 동시에 희망을 경험케 하는 역설을 보여주기도 한다. 필자가 인상 깊게 본 장면은 초기 장면 중 아주 비좁은 방 안과 낡은 벽에 잔뜩 걸린 가족의 사진이었다. 프레임 안에 걸린 사진들과 주인공이 담아내는 영상들이 오묘한 간극을 만들어내는 듯……. 멈춰있는 사진은 자연스럽게 배경으로 연출되었지만, 영화 속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오히려 가족들이 영상 남기기에 어색함을 드러내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생동감을 유도한다. 주인공 곽진무의 실제 이름도 곽진무다, 배우들의 대사 70%가 즉흥적 대사였단다. 저예산이라 그런가? 배경음악마저 쉽게 들을 수 없다. 영화 끝날 무렵 찔끔 나올 뿐이다. 그 덕에 배우들의 숨소리 웃음소리 이야기들이 관객의 귀에 쏘옥 들어온다. 독립영화의 큰 매력이다. 움직임이 끝나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때 공간이 몇 초간 지속되는 것을 발견했다. 감독의 의도이리라. 관객의 시선을 붙잡아 주인공 진무처럼 현재를 기록하는 훈련을 진지하게 시키고 있다.주인공 진무가 고장 난 형광등을 고치고 암전과 빛의 장면이 반복되는 부분이 있다. 우리의 삶도 영화와 다르지 않다. 암전과 빛의 반복이다. 어두움 속에서 더욱 강한 빛, 그 빛을 가진 조민재 감독의 차기 작품이 진심으로 궁금해진다. 필자는 이미 팬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