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숙의 장르를 넘어서]풍류 : 문화예술을 탐닉하며 즐기는 능력과 감수성, 그속에 쌓이는 격조
[양혜숙의 장르를 넘어서]풍류 : 문화예술을 탐닉하며 즐기는 능력과 감수성, 그속에 쌓이는 격조
  •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 승인 2021.11.18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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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어렸을 때, 나는 서도를 즐기시며 멋진 창을 즐기시던 큰아버지와  일주일에 한 번씩 서너 분 친구들과 모여 앉아 시조 창 "청산리 벽계수야~~"를 배우며 즐기시던 진지한 분위기의 아버지들의 모임을 보며 ‘어른들의 놀이는 저런 것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마치 독일의 대문호 토마스 만(Thomas Mann)의 요절한 아들, 천재적인 클라우스 만( Klaus Mann)이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극장에 가서 어른들의 연극 만드는 모습을 보며 "어른들의 놀이터가 바로 이 극장이구나!"라고 생각한 모습과 나의 생각을 비교해 보았다. 이게 다름 아닌 한국과 독일의 우리 아버지 세대들의 풍류로구나 하는 것이다.

풍류도와 풍류사상은 화랑도의 정신세계와 그 교육과정에서부터 우러나, 오늘을 사는 한국인의 풍류도와 그 사상을 굳이 어렵게 역사적인 뿌리를 더듬어 올라가지 않더라도 찾을 수 있다. 심성의 흐름을 따라 삶을 즐기며 사색하며 회포를 풀며 살아온 모습의 흔적과 퇴적의 모습이 바로 <풍류>라는 그릇 속에 담겨있음을 나는 너무 늦게, 요즈음에야 깨닫는다. 

나는 한참 동안이나 한국인의 풍류와 그 속에 곁들여 흘러 내려온 품격을 놓쳐서는 풍류의 참뜻을 놓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풍류와 품격, 풍류와 격조를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인 열다섯 살 때 일어난 6·25 전쟁은 모든 일상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으면서 세상을 보는 나의 눈과 생각의 저변을 확장하였다고나 할까!? 사람들과 사회가 방향을 잃고 옥신각신하던 중 1·4 후퇴 때 부산으로 피란을 갔다. 다시 아버지가 전라도 광주의 의대에 교수로 가시는 바람에 1년 반 동안 광주에서 중학교 3학년의 반년, 고등학교 1년을 보내며 많은 것을 새롭게 경험한다. 그중에서도 나의 눈을 놀라게 한 것은 밭에서 열심히 일하던 아낙네들이 새참과 점심때를 맞아 막걸리나 탁주(?) 등을 마시고는 창과 함께 한바탕 신명나게 춤을 추며 즐기는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여자가 술을 마시네, 게다가 회포를 풀며, 창과 춤을 곁들이다니!?" 참으로 내게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후 한참이 지나서 진도에 문화예술회관이 지어지고 얼마 안 돼 큰 축하행사를 할 때 영광스럽게 초대되어 오픈 행사에서 큰 공연을 함께한 적이 있다. 먼저 진행되는 세미나를 위해 이른 오후에 진도에 도착한 우리는 온 진도가 텅텅 비어있음을 감지하고 이렇게 사람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오픈식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행사 시작하기 30분 전이 되니 그 넓은 행사장이 빈자리 하나 없이 관객으로 가득 차있었다.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과연 예향은 예향이로구나!." 그들의 관극 하는 태도 또한 그리 진지하고 멋질 수가 없었다.

오늘날 우리는 코로나19 판데믹 시절을 2년 가까이 견디며 참으로 힘든 세월을 보내고 있다. 내가 이끌고 있는 단체인 한국공연예술원(이하 한공예원)의 임원진과 회원들도 얼굴을 맞대며 회포를 푼 지 너무나 오래됐다. 그래서 지난 10월 30일에는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여주의 귀한 명소가 된 <여백 서원>을 함께 돌아보았다. 서원을 운영하는 전영애 원장의 삶의 모습을 보며, 그가 풀어가는 삶의 여정을 보는 것도 풍류의 또 다른 모습을 보는 큰 공부가 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뒤이어 한 30여분 거리에 있는 우리 한공예원의 박호남 원장의 절친의 산수 좋고 공기 맑은 별장에서 신나게 그간의 회포를 풀며 풍류를 즐기고 왔다.

생존하고 계신 테너의 원조라고 일컫는 홍운표 선생과 양태갑 바리톤을 모시고 전수향 춤꾼 과 대금연주가 곁들여졌다. 예술을 사랑하는 젊은 마니어들의 신나는 노래와 합창, 시낭송이 이어지며 마스크를 쓴 채, 합창과 중창으로 밤이 깊도록 오랫동안 눌려있던 회포를 풀며 맑은 공기를 마시고 왔다. ‘이것이 다름 아닌 현대판 풍류의 모습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예술의 경지에 견주어 볼 때에 부족함과 격에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완벽을 지향하는 예술의 혼과 격을 지향하는 대중의 행복과 즐거움도 <풍류라는 큰 그릇>의 저변이다. 이는 풍류의 바탕을 이루는, 없어서는 안 되는 주춧돌의 큰 터전이란 생각을 하며 나는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