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숙의 문화읽기]정재의 이습(肄習)과 자경전 야진찬
[성기숙의 문화읽기]정재의 이습(肄習)과 자경전 야진찬
  •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 승인 2021.11.18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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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주지하듯, 정재(呈才)는 궁중무용을 뜻한다. ‘재주를 바친다’, ‘군왕에게 헌기(獻技)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정재는 조선시대 유가의 예악사상이 담지된 특별한 춤으로 간주된다. 궁중연향에서 의례와 함께 추어졌고, 왕궁문화의 꽃으로 불린다. 

정재는 단품이 아닌 궁중의례와 함께 설행되어야 그 진면목이 제대로 드러난다. 그런데 궁중의례와 함께하는 정재공연을 접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 가운데 지난 11월 12일 ‘광이불요’(光而不耀)를 타이틀로 화려하고 장엄한 정재의 향연이 펼쳐져 관심을 끌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무용과 정기발표회의 일환으로 개최된 순조 기축년(1829) 자경전 야진찬 재현무대가 바로 그것이다.

자경전 야진찬은 순조의 40회 생신과 등극 30년을 기념하기 위한 잔치로서 조선후기 가장 성대하게 치러진 궁중연향으로 손꼽힌다. 연회가 베풀어진 자경전은 혜경궁 홍씨를 비롯 왕실의 아녀자들이 기거하던 일상공간이다. 순조 기축년 야진찬 때 의례공간이자 공연공간으로 변모하여 궁중연향이 치러졌다.

기축 자경전 야진찬의 주인공은 바로 순조 임금이다. 『국조오례의』에 의거 순조는 자경전 중앙의 북쪽에 설치된 어좌에 남쪽을 향해 앉는다. 황제가 북쪽에 앉아 남쪽을 향하는 중국적 전통이 이식된 결과다. 임금을 중심으로 왕세자가 주렴 밖의 동쪽 계단 위에 서향으로 앉고 그 밖의 참여자 역시 정해진 규칙에 의거한다. 이번 공연은 궁궐인 자경전 대신 프로시니엄 아취 형태의 서구식 극장공간에서 설행되었다.    

무대 중앙의 일월오봉도를 배경으로 임금(순조)이 정좌하고 그 앞에서 정재가 추어진다. 포구락으로 막을 열었다. 포구락은 고려 문종 27년 중국 송나라에서 유입된 당악정재이다. 교방여제자 초영(楚英)에 의해 구장기별기와 함께 팔관회에서 추어졌다는 기록이 전한다.

포구락은 궁중정재 중 가장 유희성이 짙은 춤으로 알려져 있다. 중앙에 포구문이 설치되고 이를 중심으로 무원들이 좌우로 편을 갈라 서서 춤추다가 문의 상부에 뚫린 풍류안에 채구를 집어 던지는 일종의 놀이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채구넣기에 성공하면 상으로 꽃을 주고, 실패하면 벌로서 얼굴에 먹점을 찍는다. 좌우 양대로 갈라서서 향당교주, 도드리, 타령장단에 맞춰 채구를 던지는 놀이형식인데, 무원들의 대결하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순조시대 포구락과 유사한 또다른 놀이형식의 정재가 창작되었음도 주목된다. 포구락을 변용하여 재창작한 보상무가 바로 그것이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고려시대 중국에서 유입된 헌선도를 토대로 헌천화가 재창작되었다. 궁중정재 헌선도에는, 선도(仙挑) 즉 신령스런 복숭아를 임금께 바친다는 뜻이 깃들어 있다. 헌천화는 순조 28년 무자년 궁중연향에 사용된 정재로 효명세자에 의해 창작되었다. 왕에게 꽃을 바치며 만수무강을 기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악정재 형식의 헌선도를 향악정재 형식의 헌천화로 변개하여 재창작된 점도 흥미롭다. 포구락->보상무, 헌선도->헌천화는 전통의 변용과 재창작의 산물로 읽혀진다. 시대를 초월하여 ‘전통의 현대화’ 작업이 한국무용사의 큰 화두였음을 확인케 한다.   

궁중연향의 정재는 등장하는 시점이 중요하다. 의례 절차에서 정재의 등장 시점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무고(舞鼓)는 효명세자가 순조에게 작(爵)을 올릴 때 추어진다. 『고려사 악지』 기록에 의하면, 이 춤은 시중(侍中) 이혼(李混)이 영해에서 바다에 떠 있는 나무토막을 얻어 북을 만들어 춤을 춘 데에서 기원한다. 중앙에 북을 놓고 원무와 협무가 주변을 돌면서 춤사위를 풀어낸다. 회무하면서 북을 치고 춤추기를 반복하는 구성을 보이는데, 원무와 협무의 밀착된 교감이 인상적이다.     

신라시대 황창랑 설화에서 비롯된 검기무는 조선시대 팔도의 교방에서 연행된 전통춤 중 가장 인기있는 레퍼토리 중 하나였다. 정조대 궁중으로 유입되었으며 이후 궁중정재의 주요 레퍼토리로 정착되었다. 전립에 전복을 착용하고 장검을 든 무원들의 몸놀림은 시종 절도있고 기개가 넘친다. 

춘앵전은 조선후기 ‘정재 황금기’를 표상하는 정재로 손색이 없다. 이른 봄날 아침 나뭇가지에서 노래하는 꾀꼬리의 자태를 표현한 춤이다. 궁중정재 중 무산향과 더불어 유일하게 독무로 추어진다. 향악정재 형식이기 때문에 각종 의물은 생략된다. 시적이며 서정적인 창사도 이채롭다. 이렇듯 춘앵전은 한마디로 파격의 미학을 선사한다. 

특히 화전태 대목에서 살며시 미소 짓는 미롱은 가히 파격의 절정을 이룬다. 그런데 춘앵전의 진정한 파격은 공간미학에 있다. 1평 반 남짓한 화문석 위에서 춤추는데, 이 공간을 벗어나서는 절대로 안된다. 독무 춘앵전은 각종 의궤의 그림에 그 형상이 나타나 있는데, 무원들은 모두 화문석의 경계를 넘지 않는다. 춘앵전이 추어지는 화문석 공간은 ‘무대 위의 무대’로 재구조화된다. 춘앵전의 무대는 중국의 미술사가 우훙(巫鴻)의 ‘그림 속 그림’이라는 해석이 연상될 정도로 독창적이다.

알다시피, 궁중정재에는 유가의 예악사상이 깃들어 있다. 단지 정재의 춤사위뿐만 아니라 유가의 예악사상이 투영된 궁중연향의 진면목을 배우고 익힌다는 점에서 전통예술원 무용과 학생들의 긍지와 자부심은 남다르다. 각종 문헌과 홀기를 통해 각 시대별 정재의 특성을 비교하여 이습하는 등 전문화, 세분화된 교육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궁중정재의 독보적 존재 이흥구(국가무형문화재 제40호 학연화대무 예능보유자) 선생에 이어 일평생 정재의 교육과 탐구에 헌신하고 있는 박은영 교수가 그 중심에 있다.  

박은영 교수는 조선시대 마지막 무동으로 불린 김천흥과 학연화대무 예능보유자 이흥구 선생을 사사했다. 국립국악원무용단 출신으로 정재분야 최고 전문가로 손꼽힌다. 조선시대 장악원에서 일제강점기 이왕직아악부 그리고 해방이후 국립국악원으로 이어진 궁중정재 전승의 맥이 전통예술원 무용과의 정재교육을 통해 전수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정재 전승의 맥을 입증하는 듯 오랜 이습(肄習)의 결과를 선보인 자경전 야진찬의 정재공연은 완숙미가 돋보였다. 절제된 춤사위와 아정(雅正)한 몸짓은 관객의 시선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유요(柳搖)하면서도 낙화유수(落花流水)와 같은 유연하고 자연스런 몸놀림에서 정재 특유의 문법을 제대로 체득했음이 감지된다. 궁중정재의 특성화 교육을 표방한 전통예술원 무용과 고유의 정체성이 오롯이 드러난 값진 무대였다. 민속무용 중심으로 선보이게 될 2022년의 무용과 정기발표회도 사뭇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