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다섯해를 맞은 서울무용영화제(SeDaFF)
[이근수의 무용평론]다섯해를 맞은 서울무용영화제(SeDaFF)
  •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21.11.1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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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지하철 7호선 이수역 7번 출구, 시네마타워 12층에 자리 잡은 아트나인영화관은 서울무용영화제(Seoul Dance Film Festival)가 열리는 공연장이다. 2017년, 성균관대를 정년퇴임한 정의숙 교수가 중심이 되어 시작된 영화제가 올해 5년째다. 언택트 비대면 공연이 일상화된 코로나상황 때문인지 행사규모가 확대되고 관객관심도도 훨씬 높아졌다. ‘영화와 춤추다(Dance with Film)'란 주제를 내 걸고 개막된 행사(2021, 11.5~7) 둘째 날, ’공모작베스트1‘ 다섯 작품(120분)과 다큐멘터리 ’춤 바람입니다‘(50분)를 보고난 후, 본격적인 무용영화 ’프란시스 하‘(Frances Ha, 86분)를 보았다.

'온라인댄스 온‘(유희정 감독, 최보결 안무, 65분)은 코로나 팬데믹 환경의 산물이다. 더 이상은 무대에서 대면으로 춤출 수 없는 사람들이 각자의 카메라로 자신의 춤동작을 촬영한 것이 모아져 한 편의 다큐멘터리가 되었다. 거실과 소파, 화장실과 부엌, 서재와 뜨락이 각자의 무대가 되고 현대무용, 발레, 고전무용이 아닌 일상생활이 곧 춤이 되었다. 빨래를 한다. 빨래판 위에 빨랫감을 얹어놓고 비누칠하고 방망이로 두드린다. 물기를 비틀어 짜고 줄에 너는 동작들이 반복된다. 규칙적인 팔 운동, 씰룩거리는 엉덩이, 도중에 말다툼이 일고 빨랫감을 흔들어대며 몸싸움이 일어난다. 이러한 모든 움직임들은 최보결의 안무를 통해 그대로 춤사위가 되었다. 우리 몸은 춤추고 싶어한다. 몸의 본성은 움직임이고 몸짓은 곧 춤이다. 생활공간이 무대고 누구나 출출 수 있다는 것이 커뮤니티댄스의 철학이다. 최보결, 박성희, 강란이 등 참여자들의 인터뷰를 곁들이면서 코로나상황의 공연과 소통 방법을 보여준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춤 바람입니다’(예효승 안무, 나혜영 조안무)는 지하철역에서 일하는 환경미화원들의 동작에서 춤 소재를 찾았다. 그들을 대상으로 공모절차를 진행하고 이들이 춤꾼으로 변화해가는 1년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하여 EBS가 방영한 ‘예술의 쓸모’ 3부작 중 제1부를 무용영화제가 초청해온 것이다. 평균나이 61세, 춤에 관심을 가졌지만 춤과는 무관하게 살고 있는 9명의 직업 청소부들, 그들이 춤을 연습하고 급기야 공연 무대에 오른다. 누구나 춤출 수 있고 생활이 곧 춤이란 커뮤니티 댄스의 춤 철학과 같은 맥락이다. 지하철역사의 바닥과 벽체, 전동차 차체와 내부, 화장실 변기 등 청소를 위해 물 뿌리고 비누칠 하고 물걸레로 씻어내고 마른 수건으로 닦아내고 소독을 실시하는 일상행위가 그대로 춤사위로 탈바꿈한다. 최보결 춤에서 빨래가 춤이 된 것처럼 예효승 작품에선 청소가 춤이다. 아홉명 참가자들은 춤은 도전이고 용기이고 호기심이었다고 말한다. 공연을 끝내고는 이러한 과정이 모험이고 놀라움이고 기쁨이었다고 술회한다. 예술의 쓸모를 확인시켜준 의미있는 작품이었다.

‘프란시스 하’는 뉴욕에서 무용가의 꿈을 키우는 27세 무용지망생(Greta Gerwick)의 삶의 현장을 소재로 한 자전적인 영화다. 녹녹치 않은 도시 생활 속에서 분투하며 자신의 꿈을 추구하는 모습이 우리 젊은 무용가들의 현실과 오버랩되며 공감을 불러온다. 무용단 연습생자리에서 해고되고 보이프렌드와 이별한 프랜시스에게서 오랜 룸메이트마저 떠나간다. 춤 출 곳은 물론, 머물 곳도 없어진 그녀는 모교에서 웨이트레스로 일하면서 학교 기숙사에 임시로 거처를 마련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존심을 지키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간다. 묵묵히 현실을 견디는 가운데 꿈을 살리고 주어진 현실과 타협하는 법을 배운다. 친구와 화해하고 무용단의 사무직으로 일하면서 아이들에게 무용을 가르치고 미숙하지만 안무가로서 변신을 추구한다. 자신의 아파트를 마련하고 우편함에 문패를 단다. ‘Frances Haladay’란 이름자를 다 적을 수 없어 ‘Frances Ha’란 글자만 남는다.

1894년 카메라가 처음 발명된 후 춤과 카메라기술이 결합된 무용영화(dance film)는 여러 단계를 거쳐 발전해왔다. 춤공연을 카메라로 촬영함으로써 공연에 연속성과 반복성을 제공한 것이 최초의 단계다. 예효승의 ‘춤 바람입니다’가 여기에 속한다. 다음은 라이브 공연의 대안으로서 영상기술을 적용한 단계다. 유희정 최보결의 ‘온라인 댄스 온’이 이에 해당되고 몽딸보, 필립 드쿠플레, 잘 클로드 갈로타 등 안무가들이 무대와 영상을 믹스함으로써 춤영역을 확장하는 것도 이 분류에 속한다. 또 하나의 추세는 춤이나 무용가를 소재, 혹은 주제로 삼아 본격적인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다. 안무가와 영화감독의 협업을 통해 춤은 무대의 한계를 뛰어넘어 미장센 효과를 더하고 영화는 춤에서 영감을 얻는 것이다. 2012년 저 예산 흑백영화로 제작된 ‘프란시스 하’도 이 중의 하나이다. ‘Order in Chaos’(김형희 안무, 서영진 감독), ‘춤이 된 카메라, 롤 앤 액션‘(성승정 안무, 성승정 감독), ’초량비트‘(허경미 안무, 홍석진 감독) 등 공모작베스트에 선정된 10개 작품은 모두 카메라와 춤과의 관계를 창의적으로 결합한 실험들이다. 영상과 전달기술이 끝없이 진화하면서 무용과 영화의 관계는 더욱 다양해지고 관객들은 춤에서 더욱 큰 감동을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 ’서울무용영화제‘가 ’서울무용제‘를 능가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무용예술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고 있는 정의숙(집행위원장), 양정수(조직위원장), 강형구(운영위원장) 들 무용영화제를 이끌어온 댄스필름의 선구자들께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