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즐거운 경험 그리고 안전 @ 보령터널에서
[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즐거운 경험 그리고 안전 @ 보령터널에서
  • 백지혜 디자인 스튜디오라인 대표, 서울시좋은빛위원회 위원
  • 승인 2021.12.08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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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세계에서 5번째로 긴 보령터널이 11년간의 긴 공사를 마치고 개통하였다는 소식과 함께 터널 이미지가 인터넷에 올라왔다. 터널 개통 뉴스와 함께 이미지가 올라오는 경우는 거의 없는 듯한데 진입구에 파란 조명이 천정을 비추고 있는 이미지였다. 기사를 읽어보니 바다 속을 지나는 느낌을 내기 위하여 파란 조명을 비추었다고 짧게 언급되어 있었다.

궁금해졌다. 왜 바다 속을 지나는 느낌을 주고 싶었을까, 파란 빛이 비추어진 공간을 바닷 속이라고 상상하는 것이 가능한가, 밤에는 파란 빛이 더 선명하고 낮에는 그렇지 않을 텐데 입구부의 파란 빛을 둔 이유는 무엇일까, 15분 동안 - 터널의 길이는 약 14km이고 평균시속 60km/hr로 가정했을 때 - 바닷 속을 달리는 사람들의 감정, 생각은 어떨까? 그리고 바닷 속은 파란 색인가?

사람은 누구나 어둡고, 밀페된 공간에서 불편한 감정을 느끼며 그 공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여러 가지 행동을 하게 된다. 도로를 운전하다 만나는 터널의 경우 진입 시부터 이미 출구가 보이거나 곧 출구로 나가게 될 것이라는 암시를 볼 수 있을 경우에는 그 불안감이나 불편함이 덜하나 끝이 안보이는 경우에는 조금 사정이 달라진다.

최대한 빨리 벗어나기 위해 속도를 높이기도 하고 지루함에 주의력이 흐트러져 전후방 다른 차량과의 관계를 살피는데 소홀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터널 기술이 발전하고 그 길이가 길어지면서 운전 안전성 확보를 위한 여러 가지 방안도 마련되고 있는 듯 하다. 예를 들어, 곡선형으로 터널을 만들어 접근하는 차량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거나, 측벽 면에 그림을 그려 넣어 속도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효율이 좋은 엘이디 광원으로 교체하여 터널 내부가 아주 밝아졌을 뿐 아니라 경관조명이나 소리를 통해 운전자의 감각을 깨우려는 다양한 시도를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던 사고를 통해서 알 수 있었던 바와 같이 터널이라는 공간에서의 교통사고는 엄청나게 많은 죽음으로 결과지어짐을 알 수 있는데 펄 오이에 감독의 <더 터널>을 보면 사소한 운전자의 부주의로 일어난 사고로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잃는 과정을 실감하게 한다. 마지막 자막으로 흐르는 내용이 매우 충격적인데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으며 아직도 노르웨이에 비상구가 없는 1,100개의 터널이 있다고 한다. 노르웨이 역시 산지가 많아 지역 간을 연결하는 터널이 많은데 이러한 일들을 계기로 안전에 대한 많은 장치들이 터널 설계 시 적용되고 있고 최근 터널의 길이가 점점 길어지며 안전을 위하여 터널 내 물리적인 환경뿐 아니라 운전자의 심리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듯하다.

노르웨이의 동서를 연결하는 세계 최장 터널인 라르달 터널을 이야기 할 때 이동의 편리성과 더불어 안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아주 길게 붙는다. 터널 내부 설계는 기술과 창의력이 합쳐진 결과물로 터널 엔지니어와 더불어 교통 심리학자들, 전문 조명 설계사들 그리고 운전 시뮬레이터가 협업하여 진행하였단다. 그들은 단순한 감각적 안전함이 아니라 차를 몰고 이 터널을 통과하는 행위가 즐거운 경험이 되어 이를 통한 안전감을 느끼도록 의도하였다.

라르달 터널은 1km 정도까지 전방을 볼 수 있도록 완만하게 구부러진 형태로, 이를 4개로 나누고 사이에 세 개의 커다란 산속 광장을 두어 주행 시 공간에 대한 시각적, 심리적 리듬을 만들어 줌으로서 단조로움에서 오는 지루함을 덜었다. 이 공간의 조명계획이 아주 매력적인데, 바닥에 노란색이나 초록색 빛을 두고 위에는 북극의 빛, 청색 조명이 있어 어디로부터인가 자연광이 들어오고 새벽의 일출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이 곳을 방문하는 운전자들은 이 빛을 기대하며 운전하는 즐거움을 느낀다고 한다.

파랗게 비추어진 보령터널이 너무 차갑게 보인다, 우울해진다, 특징없이 파랗기만 하다 등등의 구설에 오르지 않기를 바란다. 심리학자나 조명전문가의 협업으로 운전자의 심리나 환경적 특성을 세심하게 배려하여 계획된 것이기를 바라며 - 혹여 그렇지 않더라도 다른 시도를 했다는 것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 운전자에게 즐거운 경험이 되기를 바란다.

앞으로 더 많은 보령터널들이 생길 것이다. 기술이나 공법의 발전과 도시별 이동의 편리성을 위하여 터널 길이의 갱신은 계속될 것이다. 바다나 산을 관통하는 터널 뿐 아니라 도시의 땅의 효율성 때문에 터널은 계속 늘고 그 길이도 점점 길어질 것이다. 건물이 즐비한 지하 도시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도로가 지하화 되는 것은 상상해 볼 만한 상황이다.

전파상 간판처럼 색색의 조명이 번갈아 반짝이고, 어설프게 이름 지은 색조명, 공권력을 연상시키는 호루라기 소리로는 터널이 갖는 공간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어려운 상황이 올 것이다. 미래의 내가 출퇴근시간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될 밀폐된 좁은 공간에서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안녕할 수 있도록 보다 환경심리학자, 조명전문가와 같은 다양한 전문가들과의 협업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제도적인 보완도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