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프리뷰] 《제21회 송은미술대상전》, 20인 20색 돋보여
[현장 프리뷰] 《제21회 송은미술대상전》, 20인 20색 돋보여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1.12.21 0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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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문화공간 송은, 내년 2월 12일까지
539명 지원, 본선 20인 작가 선정돼
작가 특유 창작관 존중한 제도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한국 미술 문화 발전을 위해 2001년 제정된 송은미술대상의 21회 전시가 열렸다. 올해로 제정 20주년을 맞은 송은미술대상은 전시 형식의 심사 단계를 거쳐 기간 중 최종 대상을 선정하는 방식은 유지하면서, 본선 참여 작가를 기존 6인에서 20인으로 확대했다. 이번 공모에는 총 539명이 지원했으며, 지난 2월 진행된 예선심사를 통해 본선에 오른 작가 20인이 이번 전시 《제21회 송은미술대상전》에 참여하게 됐다. 21회 송은미술대상 대상 수상자는 내년 1월에 발표될 예정이다.

▲《제21회 송은미술대상전》 B2F 설치전경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제21회 송은미술대상전》 B2F 설치전경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전시는 내년 2월 12일까지 강남구 도산대로에 있는 송은문화재단 신사옥 ‘송은’에서 개최된다. 지난 10일 전시 개막날 송은미술대상전 본선에 오른 20인의 작가들이 참여한 언론간담회가 열렸다. 참여 작가 20인은 권아람, 김경태, 김다움, 김우진, 김은형, 김인배, 김지수, 김지영, 김지평, 류성실, 박광수, 박형렬, 서해영, 심래정, 이정우, 조경재, 최고은, 최병석, 한 & 모나, 후니다 킴이다. 작가들은 회화, 조각, 설치, 사진, 영상, 사운드 등 여러 매체를 아우르며 동시대 한국 미술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신작을 선보였다.

새로운 공간과 어우러지는 동시대 한국 미술

지상 3개 층과 지하 1개 층에서 펼쳐지는 전시는 공간마다 작가들의 독창적이 예술관을 느껴볼 수 있게 구성됐다. 특히 본선에 오른 20인 작가는 송은문화재단 신사옥 준공 당시에 직접 공간을 방문하고 작품을 구상해 공간과 어우러지는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특히 조경재, 최고은, 한 & 모나 작가는 언론공개회 당시 공간에서 시작된 발상으로 작품을 만들었다는 점을 언급했다.

▲최고은, 컷, 2021(사진=서울문화투데이)
▲최고은, 컷, 2021(사진=서울문화투데이)

한 & 모나 작가는 여러 도시 공간에 새겨진 흔적과 건축 구조에 주목해 그 장소만이 간직한 시간들을 드러내고, 공간과 건축물에 새겨진 시간에 영감을 받아 사진과 설치가 결합된 작업을 선보여왔다. 이번 송은미술대상에 출품한 <Suspended Land scape>(2021)은 송은 구사옥과 신사옥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는 작품이다. 건설현장에서 생성되고 사라지는 자재를 전시장 곳곳에 재배치하면서 사라지고 말 순간을 하나의 오브제로 기록해둔다. 시간의 기념이라고 하면, 거창하거나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을 법 하지만, 한 & 모나 작가의 <Suspended Land scape>는 특별하지 않아도 가장 기억과 근접한 소재를 택함으로써 기억을 더욱 선명하게 묶어둔다.

최고은 작가는 우리 생활 근처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가전, 가구를 모아 조각 혹은 전시장과 감응하는 작품을 선보여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수도 설비용 산업 규격의 동 파이프로 작업한 신작 〈컷〉(2021)을 선보였다. 최 작가의 작품은 전면 유리창이 있는 공간에 배치 돼 있는데, 산업 규격의 동파이프와 자연물인 나무가 어우러져 색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또한 동파이프 가운데를 갈라 곡선을 만드는 작품은 물질이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방식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조각가의 적극적 행위를 담아냈다.

조경재 작가의 작품은 지하 1층에 배치돼 있다. 이 공간은 환한 조명을 갖고 있는 지상 3개의 층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품고 있다. 어두운 색깔의 구조물과 천장 중앙홀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조 작가는 이 공간의 매력이 ‘각’이 없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그 점이 자신의 작품의 모티프가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하 1층 전시 공간은 곡선이 주를 이룬다. 그는 사물과 공간의 관계를 유심히 관찰하고 배치한 뒤 사진 프레임에 담고 사진 자체가 일종의 사물로서 다시 공간과 관계하며 전체적인 공간 조성으로 확장되는 방식의 작품을 선보여 왔다.

이번 공모전 출품작 <갈색재단>(2021)은 사진가의 설치 감각을 느껴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는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무미건조함, 날카로움, 플라스틱의 느낌을 벗어나 클래식으로 나아가고 싶은 자신의 지향을 작품에 녹였다고 말했다. 사물과 공간 사이 선을 모호하게 만들면서 자연스러움에 가까워지는 감각을 경험해볼 수 있다.

작가 특유의 창작관 돋보이는 작업 볼 수 있어

전시투어 이후 이뤄진 참여 작가 질의응답 시간에는 ‘어떻게 송은미술대상전에 지원하게 됐느냐’라는 질문에 여러 작가들의 공통된 답변이 이어졌다. 조 작가는 “송은미술대상은 작가들의 대표적 공모전으로 지원을 안 하는 작가가 없을 것”이라며 “사실 한국 작가들의 아쉬운 점 중 하나가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는 글로 먼저 작품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점에 참여 작가 대부분이 동의하는 바를 표했다. 하지만, 송은미술대상의 경우 글이 아니라 기존에 자신이 해왔던 작품 포트폴리오를 통해 지원이 가능해 작가들 모두 지원하는 데에 부담이 없었다고 밝혔다. 송은문화재단 역시, 자연스러운 환경 속에서 작가가 꾸준히 지속해 온 평소 작업 세계를 심사 대상으로 삼는다고 설명했다.

▲향기에 대한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김지수 작가 (사진=서울문화투데이)
▲향기에 대한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김지수 작가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이 때문인지, 《제21회 송은미술대상전》은 작가가 꾸준히 관심을 기울였던 세계나 작업 방식들이 연속되는 작품들이 주를 이뤘다. 향기에 특히 민감하다는 김지수 작가는 다양한 공간에서 수집한 향, 텍스트, 사물 등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 탐미하는 자아 속 숨겨진 욕망을 드러내는 작품을 꾸준하게 선보여왔다. 김 작가는 자신이 향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 계기는 역사학자인 아버지 서재로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번에 출품한 작품은 향기에서 발현되는 기억을 서랍과 장식장의 형태로 선보인다.

박형렬 작가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지배 구조에 관심을 두고, 이 주제를 사진 매체를 통해 다양한 형태로 드러내거나 재구성하는 작업을 선보여왔다. 특히 간척 사업이 진행된 공간을 찾아다니며 잘려진 산의 단면이 기록된 위성사진을 수집하고, 취합된 일부를 일정 면적으로 재구성해 실제 간척지에서 조각하고 사진으로 기록한 작업인 〈산의 단면#4〉(2021)을 선보인다. 작품에 사용된 색 또한 간척지 현장에서 수집된 색이다. 박 작가는 작품에 대해 과거부터 꾸준히 해왔던 작업이라고 소개하며 “앞으로는 현재 작업에서 좀 더 나아가 더 큰 대형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라는 바람을 드러내기도 했다.

▲박형렬, 산의 단면#4, 2021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박형렬, 산의 단면#4, 2021 (사진=서울문화투데이)

후니다 킴 작가는 이번 전시에 〈디코딩을 위한 돌#01(네오 수석 시리즈)〉(2021)를 선보였다. 작가는 여러 곳에서 수석을 채집해 관찰했고, 수집한 수석의 일부를 재조합해 새로운 수석을 만들었다. 실제 자연 속에서 완성된 자연석은 아니지만, 모래로 조합해 만들었기 때문에 〈디코딩을 위한 돌#01(네오 수석 시리즈)〉 역시 시간의 흐름을 겪게 된다.

이 작품은 단순히 수석만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수석과 그 공간에 있던 소리를 함께 선보인다. 그리고 함께 전시되는 소리 데이터는 관람객이 작품에 설치된 손잡이를 돌릴 때 공개되는데, 이는 놓여진 곳의 환경 데이터(습도, 온도 등)에 따라 속도가 달라지기도 하고 다른 소리를 만들기도 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순간들을 담아낸 작품이다. 작품명에 시리즈라는 설명이 붙은 만큼, 후니다 팀 작가도 꾸준히 해당 작업을 이어가고 싶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 갈색재단(2021), 작품 설명을 하고 있는 조경재 작가 (사진=서울문화투데이)
▲ 갈색재단(2021), 작품 설명을 하고 있는 조경재 작가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이외에도 자신의 작품관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독창적인 작품들이 《제21회 송은미술대상전》에 출품됐다. 이번 공모전에 <바위 옮기기>(2021)라는 설치 작품을 출품한 서해영은 자신이 조각 작품을 하게 된 이유를 탐색하며, 조각이 완성되는 한 과정 자체를 작품으로 표현해냈다. 서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만들어진 과정을 ‘조각가를 위한 생츄어리’ 프로젝트라고 칭했다. 작품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이 스스로의 템포를 찾는 시간이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올해 제정 20주년을 맞은 《제21회 송은미술대상전》은 지난 9월 개관한 비영리 문화공간 ‘송은’의 건립과 맞물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자 하는 태도에 힘을 쏟았다. 한국 미술계에서 주목할 만한 역량 있는 작가 배출을 위해 힘써왔던 송은은 올해부터 수상 작가의 꾸준한 작품 활동을 위한 지원도 준비했다. 대상 수상자의 작품 2점을 각각 송은문화재단과 서울시립미술관의 소장품으로 매입하여 3,000만 원 상당을 추가로 지원하고, 서울시립미술관과 협력해 레지던시 프로그램인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1년 입주 기회를 제공해 작가의 작업 활동도 장기적으로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제21회 송은미술대상전》 2F 설치전경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제21회 송은미술대상전》 2F 설치전경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국내보다 주로 해외에서 많은 활동을 진행한 한 & 모나 작가는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를 지원해준다’라는 전시 공고문을 보고 지원을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작품 설명을 하는 20인의 작가들에게선 자신의 작품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담겨있었다. 이번 전시는 현시대와 함께 박동하며 새롭게 움트고 있는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미술을 새롭게 이끌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