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세상을 보는 창] 집콕문화소개, 좋은 영화 다시보기Ⅵ
[예술가의 세상을 보는 창] 집콕문화소개, 좋은 영화 다시보기Ⅵ
  • 유승현 아트스페이스U대표, 설치도예가
  • 승인 2021.12.22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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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 젠킨스 'Moonlight'
▲유승현 아트스페이스U대표, 설치도예가
▲유승현 아트스페이스U대표, 설치도예가

베리 젠킨스 감독의 미국 영화 Moonlight는 테렝 앨빈 매크레이니의 희곡 ‘달빛 아래서 흑인 소년들은 파랗게 보인다. In Moonlight Black Boys Look Blue’를 원작으로 각색된 영화로 2017년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각색상, 남우조연상뿐 아니라 아카데미 사상 최초라는 수식어를 무수히 만들어낸 예술영화이다. 한 인간이 성장하면서 느끼는 여러 감정을 푸른 달빛으로 환기시키고 관찰자로 하여금 자신의 인생여정을 위로하게 만드는, 꽤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라고 필자는 표현해본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푸른 달빛과 그 빛을 흡수하는 마이애미의 따듯한 바다색이 인상 깊다. 이번 글은 영화 전반에 흐르는 스트링의 선율, 숨이 멎을 듯 절제된 배우들의 연기가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영화 Moonlight를 소개하려고 한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외롭다

또래 아이들보다 왜소하고 자신 없는 주인공, 어린 샤이론은 늘 고개를 묻고 다닌다. 흑인이며 사생아로 태어난 것도 부족하여 마약중독인 엄마, 주 보호자로부터 정서적인 위로조차 받을 수 없다. 엄마도 외롭고 어린 샤이론도 외롭기만 하다. 우연히 마약 거래상 후안을 만나게 되고 외로운 주인공은 잠시나마 타인에게 따스한 애정과 관심을 받기도 한다. 틴에이져가 된 샤이론. 역시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소외되고 여전히 가난하고 여전히 따돌림을 받고 있다. 캐빈이라는 동성 친구를 만나 묘한 감정을 갖게 되면서 자신의 삶속에 처음으로 주관적인 감정 ‘사랑’을 표현해본다. 폭신한 모래사장에 나란히 앉아서 따스하고 편안한 대화를 주고받게 되는 장면이 영화 속 밀도 있는 색감으로 보여진다. 주인공은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할 겨를도 없다. 행복도 잠시 케빈에게 샤이런을 구타하라는 또래 친구들의 괴롭힘으로 결국 인간에 대한 배신과 상처, 사랑함으로써 더 큰 실망과 분노를 경험하게 한다. 인간에게 반사적으로 나올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충동적으로 폭력을 사용하게 된다. 그동안 숨겨져 있던 자신의 모습. 그도 그 자신이 아닐 듯……. 감옥에 다녀오게 되고 건장한 청년 30대로 성장하지만 결국 마약 거래에도 손을 대는 주인공의 모습이다. 덩치 커진 샤이론에게 엄마가 울면서 미안해하는 장면, 오히려 엄마를 안아주는 샤이론의 모습에서 그의 폭풍 성장이 느껴졌다. 영화속 시대는 1970~80년대로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 남부 마이애미로 흑인들의 암울함을 같이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뿐 아이라 배경인물들 역시 세상이 규정지은 마이너리티의 삶을 살고 있지만 어쩌면 그 규정을 결정하는것은 세상이 아니라 자신일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은 세상 부호들이 모두 다녀가는 마이애미의 바다지만 영화속의 바다와 흐르는 달빛은 외롭게 느껴지며 등장인물들의 눈빛도 푸르스름한 달빛과 흡사하다.

당신 삶의 방향에 대한 선택권은 누구에게 주어진 것인가?

영화 포스터의 섹션을 3컬러로 표현한 것처럼 영화 속에서의 주인공의 모습도 세 단락으로 보인다. 주인공의 아동기, 청소년기, 성인기를 3명의 배우가 연기하는데 마치 한 사람의 호흡인 양 자연스럽다. 아동기의 어린 주인공은 외로움을 오롯이 경험하며 성장한다. 청소년기의 주인공도 사랑하는 이에게 느끼는 위로감만큼 배신과 분노를 경험하고 숨겨져 있던 에너지를 사용해 보기도 한다. 성인이 된 주인공은 커진 몸짓만큼 여전히 외롭지만, 그 외로움을 극복하는 힘을 자신에게서 찾아내며 계속 성장하는 중이다. 영화 속 이야기와 현시대가 다르고 문화적인 정서가 다르지만 샤이론과 우리는 결코 다르지 않다. 사회가 규정지은 소외계층이 왕창 쏟아져나오는 지금이다. 저기압의 영향을 받은 하늘처럼 아침과 저녁의 정서가 다르고 우리의 10대와 40대가 다르지만 어쩌면 절대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을 우리 모두 숨기고 힘겹게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시간이 지나도 자신의 모습을 감추며 살아가는 사람들. 자신만의 진정한 모습을 찾는데 걸리는 시간은 철저하게 개인의 몫이다. 그 선택권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영화는 말한다. 언젠가는 내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결정해야 하는데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일들을 꾸물거리고 있다가는 모든 것이 외부의 요소로 결정되고 나의 한 표는 기권되고 만다. 그런 과정들이 어린 샤이론의 수줍음, 분노로 인한 충동성, 타인과의 우정, 사랑 등 다양한 정서 사이에서 느린 호흡으로 느껴진다. 영화 속 주인공의 별칭이 샤이론으로 시작하여 리틀, 블랙, 다시 샤이론으로 불리우는데 결국은 나 자신을 벗어나야 다시 나로 돌아온다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우리를 감싸고 있는 사회환경과 타인과의 관계는 한 사람이 성장하는 데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데 마약과의 전쟁으로 힘들었을 당시, 마이애미 출신 베리 젠킨스감독의 영화답게 사회 소외계층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였지만 흑인, 빈민, 사생아, 마약, 동성애, 집단 따돌림 등 마이러니티를 강조한 영화만은 아니다. 여러 감정의 곡선이 배우들의 몸짓과 눈빛에서도 표현이 되지만 예술영화스럽게 섬세한 정서가 시공간에 매우 조심스럽게 때로는 과감하게 발색된다.

달빛 아래에서는 모두 푸르다.

어린아이부터 30대의 청년을 거쳐 성인 남성으로 성장한 주인공. 외롭고 연약한 한 인간의 성장기를 표현하는 주 배경음악으로 영화는 바이올린의 고운 선율로 사용했다. 고조되는 부분의 음악적 흡인력이 엄청나다. 주인공의 뒷모습이 보이는 컷들이 유난히 많은데 자연스럽게 주인공을 따라 걷다 보면 우리의 성장기에 숨겨두었던 자신만의 외로움을 만나게 된다. 마약중독에 빠진 엄마를 둔, 흑인이었고 동성애자였으며 사생아 출신의 외로운 주인공 샤이론을 위로하다 보면 ‘사람은 모두 같으며 사랑이 필요하다’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필자가 어린 샤이론을 만나게 된다면 따스한 어른으로 손잡아주고 꼭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남우조연상을 받은 후안역 배우, 감정의 절제도 볼만하다. 명대사 “달빛아래에서는 모두 푸르다.” 인간의 삶에 가장 중요한 평등에 대한 이슈와 그것을 극복하는 데 가장 큰 힘은 자신이라는 것을 여운으로 남기며 영화는 끝이 난다. 자신을 둘러싼 외부의 압력과 감정싸움으로 한 번이라도 힘들어본 당신이라면 영화를 보는 내내 손수건이 필요할지 모른다. 주인공의 감정에 나의 숨겨진 정서를 투영하고 외로움과 사랑을 만날 수 있는 예술성 최고인 작품 문나이트. 영화가 끝날 무렵 새벽녘 올라오는 해처럼 따스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오늘의 당신은 어떤 빛을 지니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