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아리랑보이즈’를 아시나요?
[윤중강의 뮤지컬레터]‘아리랑보이즈’를 아시나요?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21.12.22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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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우리나라 최초 걸그룹이 ‘저고리시스터’라면, 최초 보이그룹은 ‘아리랑보이즈’가 맞다. 두 팀은 같은 무대에 올라서 각각 인기를 끌었다. 당시 이런 흥행물을 아트랙션(attraction)이라 했다. 바리에티(variety)라고도 했는데, 노래 춤 스케치(코메디)가 다양하게 한다. 이런 것이 합쳐져서 하나의 서사를 더욱 드러낼 때 레뷰 (revue)라 했다. 

일제강점기에 이런 용어가 등장하는 공연물은, 오늘날의 뮤지컬과 연관이 아주 깊다. 현재 뮤지컬업계에선 ‘살짜기 옵서예’(1966)로 본다. 이미 1930년대에도 노래와 춤을 바탕으로 한 레뷰 형태의 공연이 있었던바, 시각에 따라선 뮤지컬의 시작을 더 거슬러 올릴 수 있다. 저고리시스터와 아리랑보이즈는,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뮤지컬배우로서 손색이 없다. 어쩌면 지금의 배우보다도 더 다양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940년 3월 23일, 동아일보 (석간)에선 ‘오케그랜드쇼’에 출연하는 두 그룹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저고리 시스터. 자주 끝동을 놓고 거기에 금색 수(壽) 복(福)의 글자를 박은 저고리를 입은 처녀들을 볼 때에 우리 의상 아니 조선의 정서가 거기에 고히 잠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서를 담은 악극자매단(樂劇姉妹團)을 이름 지어 “저고리 씨스터”라고 했다. 이 자매단의 무대 등장은 만도(滿都)의 인기를 독차지 할 것이다. 

아리랑 뽀이쓰는 “저고리씨스터”의 오빠다. 그들은 노래를 사랑하고 춤을 즐기고 기쁨을 풍기고 웃음에 사는 아리랑고개 형제단(兄弟團)이다. 설움과 근심 적정에 찌들어 웃음을 잃은 우리에게 웃음과 노래를 파는 백화점 점원들이다.” 

조선악극단의 일본공연서도, 이들은 특별히 더 사랑받았다. 오케그랜드쇼가 일본에서 공연을 할 때, 요시모토흥업(吉本興業)이 권한 명칭이 조선악극단(朝鮮樂劇團)이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 일본 공연 전단에는 특별히 4인의 얼굴이 보인다. 김해송(金海松), 이복본 (李福本), 송희선(宋熙善), 박시춘(朴是春)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사람은 박시춘으로, 한국가요사에 큰 역할을 했다. 

김해송과 이복본은 한국전쟁(1950년)으로 인해서 생사가 불분명해졌다. 안타깝게도 그 해 사망한 것이 맞다. 이들이 특히 표적이 된 이유는 뭘까? K.P.K악단와 연관된다. 단체는 해방 이듬해인 1946년부터 1950년 전쟁 전까지 가장 활발했다. 악단을 이끌었던 김해송을 비롯한 구성인원이나 공연의 레퍼토리 면에서도, 오케레코드와 조선악극단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K.P.K도 레뷰에 해당하는 공연을 했다. 공연은 크게 둘로 나뉘는데, 한 쪽에선 꼭 ‘버라이어티쇼’가 존재했다. 당시 남과 북의 대립상황에서, K.P.K는 당시 미국 제국주의 문화의 선봉처럼 보였던 것이다. K.P.K를 매우 좋아한 미국인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하지 준장 (남측 주둔 미군 최고 사령관)이요, 또한 사람은 미대통령 특사로 남측에 와서, 이후 미대사로 임명된 무초(주한 미대사관)이다. 여기에 더해서 당시 ‘젠틀’하기로 소문난 임병직 (외무부장관)도 K.P.K의 팬으로 공연을 관람했다. 북측에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것들이 K.P.K를 가장 반동적으로 볼 수 있는 요인이었다. 특히 그들은 ‘대한청년단’의 1주년을 기념한 공연까지 해준 터였다. 

K.P.K에서도 ‘아리랑 보이즈’의 레퍼토리로 공연했다. 박시춘, 김해송과 함께, 윤부길, 현경섭이 ‘아리랑보이즈’로 활동했다. 아리랑보이즈에서 초창기에 활동한 송희선은 한국전쟁 이후에도 악극에서 작, 편곡으로 활동을 했다. 그러나 점차 메인스트림에서 멀어졌고, 이후엔 특별히 주목할만한 활동이 보이지 않아서 안타깝다.  

오케그랜드쇼에서 저고리시스터와 아리랑보이즈가 등장하는 레뷰의 제목은 ‘도레미파 떼파트(백화점)’이다. 백화점의 여러 풍경을 노래와 춤으로 그려낸다. ‘양복부’의 점원이 아리랑보이즈. 1940년 4월 3일부터 나흘간 부민관(현, 서울시의회)에서 공연했다. 

아코디언을 메고서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송희선, 기타 김해송, 색소폰 이복본, 바이올린 박시춘, 그 시절 ‘아리랑보이즈’의 공연을 알게 해주는 사진이 있다. 오케그랜드쇼는 매우 서구적일 것 같지만, ‘아리랑’과 ‘저고리’란 말에서 느껴지듯, 연년무(延年舞), 선녀무, 무당춤, “도성을 찾아서” 등 조선적(한국적) 정서에 기반을 두고 노래와 춤 (이난영, 저고리시스터즈), 진도아리랑, 창부타령 노들강변과 같은 우리 민요가 함께 한다. 

마지막에는 도레미파백화점 여흥장(클럽)에서의 아리랑 보이즈의 ‘아리랑 광시곡’에 이어서, 전 출연자의 피날레가 끝난다. 오케그랜드쇼는 재현이 가능하다. 이를 통해서 지금의 뮤지컬과 다른 버라이어티쇼와 레뷰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현재 활약하는 뮤지컬배우 중 누구 ‘아리랑보이즈’에 어울릴까? 노래 되고, 춤 되고, 악기가 되면서, 리듬과 개그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남배우는 누구 적당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