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류의 예술로(路)]내가 풀고 싶었던 문제, 사랑했던 문제
[장석류의 예술로(路)]내가 풀고 싶었던 문제, 사랑했던 문제
  • 장석류 문화정책연구자(행정학 Ph.D)/ 칼럼니스트
  • 승인 2021.12.2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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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류 문화정책연구자(행정학 Ph.D)/ 칼럼니스트
▲장석류 문화정책연구자(행정학 Ph.D)/ 칼럼니스트

고등학교 시절 새벽 등굣길에 수학문제 하나를 머릿속에 넣어두고 버스를 타곤 했다. 자리에 앉아 눈앞의 공간에 문제를 펼쳐 놓고 미간에 잔뜩 힘을 주고, 골똘히 문제를 그리듯 풀면서 학교에 가던 기억이 난다. 학교에 도착해 답안을 살짝 들추었을 때, 생각했던 숫자가 있으면 기분 좋게 하루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어떤 문제는 며칠을 붙잡아도, 답을 찾아가는 길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변수가 많고, 풀기 위한 과정에 장애물이 많았다. 그래도 문제를 오래 붙잡고 있으면 그것을 풀기 위해 연구를 더 하게 되고, 그러다 며칠 뒤 풀리기도 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만나게 된 어려운 문제는 사람과 사랑에 관한 문제였다. 사랑했는데 왜 헤어지게 되었을까,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조직에서 상사와 맞지 않는데 지향하는 가치에 동의할 수 없는데 어떻게 지내야 할까, 어떤 후배들과는 관계를 풀어보려 할수록 점점 더 어렵게 느껴지지도 했다. 그런데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던 문제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풀리기도 했다. 어떤 문제는 오래 품고 있으면, 더 깊어지고, 넓어지고, 강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사람마다 풀고 싶은 문제들이 있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각자 올 한해 풀고 싶은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풀고 싶은 문제의 이면에는 내가 이 문제를 사랑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문제여서 더 풀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사람과의 문제여서 더 풀고 싶고, 좋아하는 일이고 잘 해보고 싶은 일이어서 더 풀고 싶기도 하다. 문제를 오래 품고 있으면 그 문제가 그 사람을 성장시키기도 한다. 

작년에 이어 바이러스가 준 세상은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조건에 변화를 주었다. 바이러스에 대항하기 위해 백신을 개발하고, 좀 더 견고한 방역 체계를 갖추기 위한 문제를 풀기 위해 우리 사회는 쉬지 않고 도전하고 있다. 바이러스가 확산될수록, ‘여럿이 모이면 위험하다’라는 삶의 조건은 강해졌다. 그러나 모이면 위험하다 할지라도 인간의 본성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전제는 바뀌지 않았다. 바이러스가 준 조건에서 새로운 방식의 사회적 관계와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 미래의 시간이 빠르게 당겨지고 있다. 고속철도와 항공 기술은 사람들이 사는 공간과 공간의 거리를 좁혀주었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사람들이 국경을 넘는 것을 어렵게 하고, 서로의 물리적 거리를 다시 떨어트려 놓았다. 그렇지만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본성은 서로 간 멀어진 거리만큼 작아지지 않았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대를 넘어, 우리는 미래의 시간을 힘껏 당기며 메타버스 시대의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고 있다. 만약 바이러스가 없었다면 우리가 만나기 위한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내고 싶은 욕구도 이렇게 빠르게 찾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 삶의 시간과 공간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미래의 시간이 빠르게 달려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포개져 있는 것 같은 시간이 흐르고 있다. 아직 준비되지 않은 미래가 현재에 와 있고 몇 년 전의 과거는 너무 빨리 대과거가 되었지만, 여전히 익숙하고 편안한 과거의 모습으로 현재를 살기도 한다. 지금이 과거인지, 현재인지, 미래인지 헷갈릴 정도로 시간이 압축적으로 뒤섞여 있다. 공간의 변화도 크다. 함께 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의 크기는 작아지고, 집이 곧 콘텐츠가 되고 있다. ‘집콕’의 검색량이 2019년 대비 13배 증가하였다. 하지만 집콕도 어떤 집인지에 따라 집콕을 하고 싶기도 하고, 집을 나가고 싶기도 하다. 사유공간의 질적 차이가 삶의 질의 차이와 양극화를 만들고 있다. 또 현실공간과 가상공간도 뒤섞여 있다. 현실공간에 있다가 가상공간으로 가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가상공간에서 사회적 동물이라는 본성을 뿜어내다 접속을 끄고, 다시 혼자인 현실공간으로 오기도 한다.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미래는 성큼성큼 빨리 오고, 현실과 가상의 공간은 뒤섞이면서 내가 잘살고 있는지 중심을 잡기가 여간해서 힘든게 아니다. 급속하게 현재가 되어버린 유튜브와 넷플릭스, 틱톡, 인스타그램, 다양한 게임들은 불과 몇 년 전에는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삶의 시간을 점유하는 비중이 커졌다. 우리는 그곳에서 같은 시리즈물 드라마를 보고, 서로의 삶을 엿보고, 전혀 모르는 사람과 어울려 게임을 하기도 한다. 멍하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이전의 ○○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질문하는 ○○은 원래 우리의 시간을 채워주었던 오랜 친구들이다. 영화관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축제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공연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우리 조직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왜 사람들은 영화관과 헤어졌을까, 하지만 영화관과는 헤어져도 영화와 헤어진 것은 아니다. 현실의 공간에서 다 같이 모일 수 있는 조건의 제약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축제와 헤어진 것은 아니다. 함께 놀고, 즐기고, 서로를 위로하는 축제에 대한 인간의 갈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올 한해 풀어보려고 애썼던 문제들이 있었다. 삶의 조건은 달라졌지만, 인간의 본성과 욕구는 달라지지 않았다는 전제를 가지고, 시간과 공간의 급격한 변화가 주는 불안한 사회에서 현재와 미래를 읽어보고 싶었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중심을 잡고 살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 끝에 국가의 역할에 대한 문제를 만난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분들의 말과 글에서 각자 애증을 가진 문제들을 풀어가는 것을 보면서 희망과 가능성을 만나기도 했다. 작년 이맘때보다 올해 조금 더 풀린 문제가 있고, 변화하는 세상이 조금 더 보이는 지점도 있었다. 하지만 조금 더 풀렸을 뿐, 문제는 더 어려워지고, 세상이 더 아파지는 경우도 많았다. 내년에도 풀고 싶은 이 문제를 마음에 품고, 사랑할 것이다. 2022년은 검은 호랑이라 불리는 임인년(壬寅年)이다. 임인(壬寅)은 큰 강과 큰 나무가 함께 있는 모습이다. 내년에는 당신이 품은 질문이 큰 강이 되어, 강가에 심어둔 풀고 심은 나무들이 새로운 마디가 생기며 크게 자라 꽃 피우고 열매 맺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