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의 인문학 파먹기] 잠옷을 좋아하는 이유
[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의 인문학 파먹기] 잠옷을 좋아하는 이유
  • 윤이현
  • 승인 2022.01.11 0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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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최근 윤영채에서 윤이현으로 개명했다.
윤이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최근 윤영채에서 윤이현으로 개명했다.

마땅히 받고 싶은 게 없을 땐, 보통 파자마를 사달라고 말한다. 그래서 내 생일 선물은 대부분 디자인과 브랜드만 다른 잠옷들이다. 재작년에도 작은 언니에게 늦은 생일 선물로 잠옷 두 벌을 받았다. 그중 남색의 그것을 입고서 다른 하나를 옷장에 개어 넣는 도중이었다. 하얀색 바탕에 보라색 줄이 그어진 것, 실크 재질의 분홍색 여름 잠옷, 극세사 원피스 파자마 등. 불현듯 꼭 필요한 것도 아닌데 지나치게 많은 옷이 쌓여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여러 벌의 잠옷이 있는데 왜 나는 여전히 이를 더 가지고 싶어 갈망하는지.

학창 시절, 수련회나 수학여행을 가면, 여자아이들의 방에서는 묘한 심리전이 시작됐다. 누가 더 귀여운 세안 키트를 챙겨왔는지. 또 얼마나 예쁜 잠옷을 가지고 왔는지로 그날의 공주가 결정됐다. 사실 나는 언제나 공주의 옆을 지키는 무수리 같은 존재였다. 바쁜 엄마는 우리 가족이 쓰던 샴푸 통을 그대로 비닐봉지에 싸서 챙겨주셨다. 그 밖에 가져간 것이라곤 언니들에게 물려받거나 엄마의 독특한 패션 취향이 담긴 괴상한 옷뿐이었다. 그 덕에 나는 수련회에서 좋아하던 남자아이에게 보란 듯이 뻥 차이고 말았다.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아마도 내 촌스러움에서 기인한 게 아닌지 추측해본다.

나를 위로했던 건, 샴푸조차 챙겨오지 않은 소수의 괴짜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나와 비슷한, 아니 어쩌면 더 후줄근한 티셔츠를 입고 내게 빌붙어 엄마가 챙겨준 대용량 샴푸에 눈독을 들였고, 동병상련 그냥 사이좋게 나눠 쓰곤 했다. 화려한 잠옷을 입은 공주들이 따뜻한 아랫목을 차지한 채, 이성 교제나 2차 성징과 같은 야릇한이야기로 한참 숙소의 분위기를 주도해갈 때, 무수리들은 윗목에 옹기종기 모여 우리만의 세상을 만들어갔다. 그 세계엔 막 좋아하던 학교의 킹카에게 차인 천한 것들의 설움이 서려 있었고, 사치와는 거리가 멀었던 서로의 가정사가 녹아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부끄러움보다는 호탕한 웃음으로 여린 나를 감싸주었다.

성인이 돼 양손으로 커튼을 벌려 사회 속으로 발을 내딛던 날을 기억한다. 그날은 몹시 추운 1월이었다. 동네 언덕 끝에 있던 베이비 스튜디오에서 스텝으로 일한 지 한 달이 되어 월급이 들어왔다. 짐을 빠르게 챙겨 스튜디오를 나온 나는, 그 높고 험준한 산길을 단숨에 내려왔다. 그리고 유일하게 알고 있던 종로의 한 잠옷매장으로 달려갔다. 꽁꽁 언 손으로 하나씩 그것들을 만져 보며 한참이나 매장 안에 있었다. 그러나 가게 밖을 나설 때 나는 빈손이었다. 돈이 있어도 쓰기 쉽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지갑을 열어 돈을 건네고 가지고 싶던 물건을 들고 가게 밖을 나서는 일이 왜 이리 힘들었던지. 어느덧 저문 저녁 하늘에선 눈이 내리고 있었다. 외투에 손을 깊이 찔러넣고, 환히 불이 켜진 가게를 지나쳐 쓸쓸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나는 매년 생일이 되면 잠옷을 사달라고 말한다. 잠도 별로 없을뿐더러, 집보다 밖에 더 시간을 많이 보내는 나지만 잠옷에 집착하며 탐내고 싶다. 차마 내 돈으로는 살 수 없어서, 생일이라는 명분을 빌어 누군가에게 선물을 요구하고 또 받는다. 또 반대로 그들의 기념일이 되면, 가장 좋은 파자마를 선물하려 이곳저곳을 둘러보곤 한다. 나에게 있어서 잠옷을 선물한다는 것은 당신에게 어린 날의 슬픔 그리고 오늘의 슬픔마저 모두 위로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고백이다. 또 선물을 받는 것은 당신에게 나의 아픔을 알아달라는 무언의 몸짓인 것이다.

작년에 그 사람에게도 잠옷을 선물했었다. 헤어진 지금도 과연 그가 그것을 입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지만, 한때 누군가가 당신의 슬픔마저 끌어 안아주려 했다는 것을 그 사람은 알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만 전달하는 나만의 진심이었다는 걸 과연 알까.

지금 나는 친구와 동네에 있는 한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 있다. 길 건너편엔 그 사람이 졸업한 고등학교가 있다. 우리가 인연이 되기도 전 어쩌면 수십 번도 더 마주쳤을지 모를 그 커피숍에 나는 우두커니 앉아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사람이 보고 싶다. 그러나 글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잔인하게 이 여린 슬픔을 밀쳐내고 있다. 글을 마친 뒤에는 짐을 챙기고 씩씩하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집으로 향할 것이다. 오늘만큼은 옷장 한 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잠옷 중, 가장 포근한 것을 골라 입고서 침대에 누워야겠다. 이 무한한 슬픔마저 안아줄 무언가가 필요하기에 한때나마 나를 무수리가 아닌 공주로 돋보이게 해줘서 고마웠다고 속마음으로 작은 인사를 전하며 그렇게 잠옷 속에 안기어 잠자리에 들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