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 자연과의 동화(同化)를 통한 동화(同和) 의지
[윤진섭의 비평프리즘] 자연과의 동화(同化)를 통한 동화(同和) 의지
  • 윤진섭 미술평론가
  • 승인 2022.02.16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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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 미술평론가

Ⅰ.

2000년 초에 지구촌을 덮친 ‘코로나19’가 쉽게 소멸되지 않을 전망이다. 뿐만 아니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델타변이가 기승을 부리는가 하면, ‘오미크론’이란 보다 강력한 전염병이 번지면서 이제 팬데믹 상황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최근 뉴스에 의하면 방역 당국은 오미크론과 델타변이가 동시에 유행을 할지, 오미크론이 우세종이 될지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인류의 대재앙인 이번 사태를 접하며 자연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오랜 세월 인류가 창안하고 가꾼 문명의 대척점에 있는 자연과 그 크기가 가늠조차 안 되는 우주에 대해 생각하면서, 인간 스스로가 자연과 우주에 대해 발길질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이는 자연과 우주의 운행 이법(理法)에 몸을 맡기는 순응주의가 아니라, 거슬리고 역행하는 저항주의적 태도의 발로인 것이다.

자연에 대한 이러한 저항의 발길질은 자연을 정복하고자 하는 인류의 교만에서 비롯되었다. 서양에서는 근대성(modernity)의 개념이 발생한 르네상스 이후 계몽주의 시대와 산업혁명의 시기를 겪으면서 자연 정복과 자연 경시의 풍조가 점차 자리를 잡아 나갔다. 반면에 중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자연 존중과 동화(同化)의 태도를 견지해 왔다. 이러한 자연관이 잘 나타난 것이 바로 동양의 전통 산수화이다. 하나의 우주를 상징하는 동양의 산수화에는 자연을 배경으로 인간이 작게 표현돼 있는데, 이는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겸손한 태도가 잘 드러난 사례이다. 이른바 ‘안빈낙도(安貧樂道)’니 ‘안분지족(安分知足)’과 같은 도교적 삶의 태도들은 다 같이 청빈을 삶의 실천윤리로 삼으면서 자연과의 동화(同和)를 꾀한 사례들이다.

Ⅱ.

80년대 초반에 한국의 충남 공주에서 발원한 ‘야투(野投/Yatoo)’의 근본정신이 바로 이러한 자연 동화(同化)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기억하건대, 80년대 초반이면 ‘생수’라는 말조차 없었던 시기였다. 산이나 숲에서 흐르는 물을 그냥 마셔도 아무런 탈이 없던 시대였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연과 인간이 한 몸인 시대, 즉 자연과 인간이 동화(同和)된 시대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서양의 자연관에서 보는 것처럼 자연 정복이 나은 인간과 자연과의 불화가 아니라, 화합을 이루고 친연(親緣)을 유지하는 동화(同和)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사례인 것이다.

‘야투’의 정신이 옳았음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40여 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은 점점 더 황폐해져 갔다. 중금속을 비롯한 환경오염이라든지 오존층의 파괴, 생태계의 위기와 같은 단어들이 점차 신문지상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급기야는 ‘코로나 19’라고 하는 전대미문의 대재앙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야투’의 정신은 자연 존중의 사고방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를 좀 더 자세히 해석하자면 자연은 인류의 삶의 근본이므로 자연을 존중하는 사고는 곧 인류의 모태인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야투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들(野)’에 몸을 ‘던지는 것(投)’이다. 자연에 몸을 던지되, 오염된 ‘문명의 옷’을 입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 그대로의 벌거벗은 몸으로 투신하는 것이다. 이는 물론 상징적인 의미지만, 거기에는 자연 동화의 정신이 살아 숨 쉬고 있다.

Ⅲ.

자연미술 그룹 야투(Yatoo)가 2014년부터 지속하고 있는 글로벌 노마딕 아트 프로젝트(Global Nomadic Art Project)는 현장 미술의 성격이 강한 행사다. 올해도 어김없이 열려 자연미술(Jayeonmisul/Nature Art)에 관심이 많은 작가들이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고 사유한 결과물을 한 자리에 모아 발표한다. 아울러 이제 세계적인 규모로 자리잡은 이 행사는 비단 한국뿐만이 아니라 프랑스, 독일, 몽골, 중국에서도 자연미술인들의 뜨거운 관심과 성원 아래 진행되고 있다.

멀리 프랑스에서 온 올리비에 위에(Olivier Huet)와 마그릿 노이엔도르프(Margrit Neuendorf)를 포함, 고승현, 고요한, 김가빈, 문수빈, 박주영, 오더, 임혜옥, 정지연, 최용선, 허강, 허진권, 홍지희 등 14명의 참여작가들은 3박 4일간에 걸친 일정을 무사히 마쳤다. 일행은 공주의 금강을 비롯하여 전라남도 신안군에 위치한 증도, 김제의 새만금 등지를 순회하며 자연의 품에 안겨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였다. 그리하여 자연에 몸을 던지고(野投) 자연과 함께 하는 이 자연동화의 순간이야말로 세계 구원의 첫 발자국임을 몸소 깨닫게 된 것이다. 참으로 코로나 19로 대변되는 이 절체절명의 팬데믹 위기에 대응하는 참 지혜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의 순수한 행위에서는 오늘날 위기의 주범인 문명을 찬양하는 구석을 찾아볼 수 없다. 그보다는 오히려 문명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인류 발생의 시원인 자연의 소중함을 인류에게 일깨우려는 의지로 가득 차 있다. 이들이 벌거벗은 몸으로 자연의 품에 안기려는 이유이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