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프리뷰] 카메라 렌즈로 회화를 완성하는 안드레아스 거스키, 국내 첫 개인전
[현장프리뷰] 카메라 렌즈로 회화를 완성하는 안드레아스 거스키, 국내 첫 개인전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03.30 15: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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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8.14,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첫 공개 신작 2점 포함한, 작품 40점 공개
수직·수평이 강조된 사진, 선과 면으로 완성한 추상성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안드레아스 거스키는 신의 시선으로 현대사회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우혜수 부관장이 전시 작품을 소개하면서 전한 말이다. 사진을 현대미술의 영역으로 확장시키며, 현대 사진의 거장으로 불리게 된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국내 첫 개인전이 개최된다. 전시 《Andreas Gursky》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31일 막을 열어 오는 8월 14일까지 관람객을 맞는다.

▲크루즈 Kreuzfahrt, 2020, ⓒ안드레아스 거스키 (사진=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크루즈 Kreuzfahrt, 2020, ⓒ안드레아스 거스키 (사진=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국내에서 <평양> 연작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안드레아스 거스키는 1955년생 독일 태생의 사진작가다.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베른트와 힐라 베허 부부로부터 유형학적 사진을 공부했고, 1981년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93년 세계적인 작가로 알려지면서, 2001년에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현대 사진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거스키는 인류와 문명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대규모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 공장이나 아파트와 같이 현대 문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를 포착해 거대한 사회 속 개인의 존재를 숙고하게 한다.

비교적 국내에 많이 알려진 <평양>연작은 북한에서 규모가 가장 큰 행사인 아리랑 축제에서 진행된 매스 게임의 장면을 담고 있다. 작품을 멀리서 바라보면, 떠오르는 태양이나 아름다운 꽃문양에 시선을 빼앗기게 된다. 하지만 작품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면, 거대한 꽃을 만들고 있는 개개인의 무용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개인을 억누르고 있는 강력한 사회주의 구조와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 존재의 모습을 생각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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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as Gursky》 언론공개회에서 참석자들이 <평양> 연작 중 <평양VI>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 구조와 의미를 포착해, 이미지 조작(합성)을 통해 아주 작은 개별의 형상까지 세밀하게 표현하는 거스키의 작업은 현대 사회 그 자체를 담아내고 있다. 작품 속 보이는 소재의 외견 그 자체와 작품 속 도사리고 있는 보이지 않는 힘의 흐름, 의미로 현대 사회를 표현해낸다. 보는 이를 압도하는 듯한 4~5m에 이르는 거대한 작품 규모 또한, 눈 여겨 볼 수 있는 지점이다.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국내 첫 개인전 《Andreas Gursky》에서는 전 세계 최초로 선보이는 신작 2점을 포함한 그의 대표작 40여 점을 공개된다. 이번 전시는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3년 간 준비해 온 결과물이다. 거스키가 작품을 시작한 1981년도부터 작가가 작품 활동을 한 전 시기를 아우르고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라인강>, <파리, 몽파르나스>, <99센트> 등이 공개된다. 지난 29일에는 전시 개막을 앞두고 언론 공개회가 있었다.

작가는 대상을 집요하게 관찰하며, 대상의 본질성을 찾아 화면 안으로 가져온다. 촬영 후 이미지를 조작하고 합성하는 방식으로 작가는 작품 속 원근법을 없애기도 한다. 색 조정, 디테일 조정, 때에 따라선 리마스터링 작업을 즐겨하는 그는 지금까지 총 250여 점의 작품을 발표했다. 작품 숫자로 봤을 때 40년간의 작품 활동에 비하면 조금 적은 발표작이지만, 작품 하나하나의 가치를 따지면 그렇지 않았다.

▲클라우센파스, 안드레아스 거스키, 1984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원경 속 숨어있는 디테일

전시는 총 7개의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전시실은 굵직하게 ‘조작된 이미지’, ‘미술사 참조’, ‘숭고한 열망’이라는 주제로 조성됐지만, 이보다 더 중시된 부분은 작품의 ‘시각적 상호’다. 전시 설명을 진행한 우 부관장 “전시장 구성은 거스키 작가와 모두 상의해서 진행됐으며, 작품 간 ‘시각적 상호’를 중심으로 작품을 배치하자는 의견은 작가 측에서 먼저 제안했다”라고 설명했다.

거스키의 작품은 수평, 수직에서 뻗어 나가는 무한함을 품고 있다. 또한, 주요 소재 이외의 배경은 어두운 단색조로 색상으로 처리하면서 거대한 화면 안에 명징한 현대 문명의 구조물 혹은 소재를 담아내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은 이번 전시에서 미술관 전관을 사용하며 거대한 규모의 작품들을 거리감을 두고 배치했다. 넓은 공간 안에서 큰 규모의 작품들이 발하는 명징한 색감과 아우라는 공간별로 다채로운 감정을 느껴볼 수 있게 한다.

이번 전시 첫 작품은 <클라우센파스>로 작가의 1984년도 작품이다. ‘클라우젠파스’는 스위스 알프스를 넘는 높은 산길이다. 작가는 이 사진의 필름을 확대하다가 산등성이를 걷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고, 점처럼 흩어진 그들이 작가에게 ‘완벽한 별자리’로 보였다고 한다. 원거리 시점을 활용사람과 환경의 관계를 어떻게 탐구할 수 있을지 발견한 작품으로 해석된다. 우 부관장은 “거스키의 초기작인 이 작품이, 이번 전시를 관람하기 위한 하나의 키로 작용하길 바랐다”라며 “거스키의 작품은 인간의 삶을 둘러싼 거대한 현대사회를 담아내는 동시에 아주 미시적인 순간까지 담아낸다. 작품의 디테일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메시지를 느껴보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전시 관람 방향을 제안했다.

▲파리, 몽파르나스, 안드레아스 거스키, 1993 (사진=서울문화투데이)

거스키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파리, 몽파르나스>(1993), <99센트>(1990, 리마스터 2009)는 프랑스 파리의 아파트와 ‘99센트 마켓’과 같은 대형마트의 공간을 촬영한 작품이다. 이 두 작품 또한 아주 큰 규모를 가지고 있는데, 거스키는 같은 공간을 여러 번 촬영하고 이미지를 합성하면서 거대한 현대사회의 단면을 작품 안에 완벽하게 구현해냈다.

<파리, 몽파르나스>는 750가구가 거주하는 가로로 굉장히 긴 아파트를 두 개의 시점에서 따로따로 촬영해 이어붙인 작품이다. 하나의 시점에서 촬영하면 이미지의 거대한 규모 때문에 이미지의 왜곡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고자, 작가는 두 개의 시점에서 촬영했고 완벽한 수평구조와 격자무늬를 만들 수 있었다. 또한, 이미지 합성을 통해 완성된 작품은 현실의 구조물이지만 비현실적인 분위기도 자아낸다. 이러한 느낌을 극대화하고자 작가는 땅의 색과 하늘의 색을 아주 옅은 단색으로 처리해, 거대한 구조물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내는 효과도 사용한다.

이 작품에서 또 주목할 점은, 거대한 아파트 구조뿐 아니라 750개의 창문들이다. 거스키는 아파트를 세밀하게 촬영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인물들의 정보를 작품 안에 녹여냈다. 아파트 창문으로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중년의 남성, 베란다에 놓여있는 화분, 색이 입혀진 창들을 볼 수 있다. 먼 거리에서 봤을 때, 작품은 거대한 아파트의 현대문명을 즉물적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이후 디테일한 면을 살펴봤을 때 그 구조가 현대인의 미시적인 순간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점을 전하면서 거시적 시각과 미시적 시각을 복합적으로 느끼게 한다.

<99센트> 역시, 줄지어 놓여 있는 상품으로 화면을 빼곡하게 채워 현대 문명과 자본주의 유통의 구조를 생각하게 한다. 그러면서 원근법을 없애는 이미지 합성 방식으로 개별 상품을 구체적으로 표현해 거대한 문명을 만들고 있는 개별의 존재를 상기시킨다.

▲《Andreas Gursky》 언론공개회에서 우혜수 부관장이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회화 작가로 불리는 사진작가

사진계에서 거스키는 회화 작가라고도 불린다. 이미지를 조작하면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작품을 만드는 그의 방식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현대미술사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이기도 하다. 우 부관장은 “사진 또한 예술의 한 분야이지만, 다른 회화나 조각보다 역사가 짧아 그 가치를 저평가받기도 하는데 거스키는 그 한계를 뛰어넘는 작가”라며 “사진을 현대미술과 동등한 위치로 보며, 추상화 된 대형 사진 작품을 많이 선보인다”라고 설명했다.

거스키는 전후 시기 폭발적으로 성장한 현대미술 운동을 직면하며,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고 그와 같은 결의 작품을 선보여 왔다. 게르하르트 리히터, 잭슨 폴록, 바넷 뉴먼 등의 경향을 빠르게 받아들이면서 이를 사진으로 표현해냈다. 사진이 가진 추상화의 가능성을 열어 보인 것이다.

거시적 시점과 미시적 시점에서 각기 다른 감정을 전달하는 작가는 현대 문명을 거시적 시각에서 바라보며, 구체적 사물로 추상적 표현을 완성한다. 전시는 작가의 추상적 표현이 극대화된 작품들을 한 공간에서 선보이고 있다.

▲시카고 선물거래소 III Chicago Board of Trade III, 2009, ⓒ안드레아스 거스키 (사진=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시카고 선물거래소 III Chicago Board of Trade III, 2009, ⓒ안드레아스 거스키 (사진=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시카고 선물거래소 III>는 선물거래소의 현장을 포착한 작품으로 증권가의 ‘플로어 트레이딩’이라는 대면 선물 및 상품 거래 방식을 잡아내며, 작품은 디지털 시대에 사라져가는 방식을 기록했다. 이처럼 작품의 내포된 의미도 중요하지만 <시카고 선물거래소 III>를 완성시키는 안드레아스의 독창적이 표현법도 주목해야 한다.

전시장에서 <시카고 선물거래소 III>를 처음 마주하면 익숙한 듯 낯선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선 잭슨 폴록의 ‘드리핑’ 기법을 바로 떠올 릴 수 있다. 사람들이 입고 있는 각기 다른 유니폼 색상이 한 방울의 물감이 돼 화면을 채운다. 거스키는 해당 공간을 처음 접하고, 오랫동안 이 공간을 연구하고 공간에 머물며 작품을 완성시켜나갔다. <시카고 선물거래소 III> 역시 여러 이미지를 이어 붙여 원근법을 없애고, 팔각형의 중앙 공간을 둘러싼 개인들의 모습으로 화면을 채웠다.

튤립 농장, F1 경기장의 도로 등을 피사체로 한 작품도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에는 완벽한 수평구조, 형이상학적인 곡선 등으로 표현된 소재를 인식하게 된다. 촬영의 대상이 무엇인지 잊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먼 곳에서 대상을 바라보고 화면 안으로 새롭게 배치하는 거스키의 작품은 신의 시각을 닮았다는 우 부관장의 말을 공감하게 한다.

▲바레인 I, 2005
▲바레인 I, 안드레아스 거스키, 2005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얼음 위를 걷는 사람>, 인류가 걸어가는 길을 바라보다

거스키의 이번 전시는 코로나19 확산 이전부터 논의 돼, 지금의 상황을 전혀 예상치 못한 채 준비돼 왔다. 코로나시기를 겪으면서 작가들은 시대에 응답하는 작품을 선보이곤 한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거스키의 신작도 ‘팬데믹 시대’를 의미하고 있을지 관심이 쏠렸다. 답은 ‘시대를 담고 있으면서, 담고 있지 않다’로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거스키는 가파른 스키슬로프를 담은 <스트레이프>와 독일 라인강 인근 목초지의 군중을 담은 <얼음 위를 걷는 사람> 2점을 신작으로 공개한다. <스트레이프>는 실제로 세계에서 가장 위험 스키 코스의 경사를 평면적으로 담은 작품이다. 공간이 가진 날카로움을 드러내며, 그가 꾸준히 추구해오고 있는 사진의 추상성이 잘 드러난다.

▲얼음 위를 걷는 사람 Eislaufer, 2021, ⓒ안드레아스 거스키 (사진=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얼음 위를 걷는 사람 Eislaufer, 2021, ⓒ안드레아스 거스키 (사진=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얼음 위를 걷는 사람>은 코로나 팬데믹 시대의 군중을 직접적으로 담은 사진이다. 작품에서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군중과 곳곳에 마스크를 끼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작품 우측 중앙부에는 경찰차가 배치돼 있는데 작가가 촬영을 진행한 날 경찰들이 나와 마스크를 써달라며 계도 행위를 펼쳤다고 한다. 이 작품에선 코로나시기를 지나고 있는 우리의 모습 면면이 담백하게 담겨있다.

우 부관장은 “거스키는 항상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 현대 문명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관찰하는 작가였다”라며 “그가 특별히 코로나 시대를 담았다기 보다, 지금 현재 작동하고 있는 시대의 모습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라고 작품을 설명했다. 거스키는 코로나19시대 상황 뿐 아니라, 현재 우리에게 닥쳐오고 있는 기후 문제와 동물과 인간의 관계성에 대해서도 작품으로 표현해낸다.

사진 장르의 전시이지만, 전시장을 방문하면 사진에서 벗어난 회화적 감각과 사진의 매력을 함께 느껴볼 수 있다. 작가가 구현한 화면 속 구체적 대상의 완벽한 수평 구조와 격자무늬들은 고요함과 안정감을 주는 동시에 끝없는 무한함까지 떠올리게 한다.

 

▲카타르, 2012,
▲카타르, 안드레아스 거스키, 2012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우 부관장은 거스키의 작품이 한편으로는 비극적이고, 또 한편으로는 숭고하다고 설명했다. 거대한 자연, 사회와 구조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아주 바쁜 개인을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거스키는 동작을 멈춘 인간을 담기보다 움직이고 있고, 움직이려던 사람을 담는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거대한 세상이 쉽게 인지되지 않지만, 그의 시각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우리를 좇아 개인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하게 한다. 나아가 세계의 본질과 구성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도 상상하게끔 한다. 우주의 가장 작은 먼지이자, 가장 큰 우주를 갖고 있는 인간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