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을 로데오 거리로 만들 것인가
북촌을 로데오 거리로 만들 것인가
  • 권대섭 기자, 박기훈 기자
  • 승인 2010.01.20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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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로 임박한 북촌일대 지구단위계획

‘북촌살리기’ 열풍이 불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제40차 도시건축공동위원회를 열어 가회. 삼청, 안국동 등 북촌일대 1,128,372평방미터에 대한 ‘제1종 지구단위계획’안을 심의, 수정 가결한 후 1월 21일에 확정 고시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해당지역주민들은 북촌 대로변의 한옥을 파괴하는 명목상의 ‘눈 가리고 아웅’ 이라고 걱정한다. 확정 고시가 바로 눈 앞인 지금, 북촌 한옥 마을의 실태를 짚어보고자 한다.

관광한국 살릴 북촌 대로변의 한옥

서방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으로 세계가 극명하게 갈라졌던 20세기 냉전시대, 서방 진영에 속한 대한민국 사람들 눈엔 서방 진영 국가들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눈엔 미국 뉴욕의 맨해턴 빌딩 숲과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일본 도쿄의 도시풍광이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들 도시에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전통거리와 풍경을 불편하다며 마구 부수고 개조했다.

개발이란 이름하에 성냥곽 아파트 숲과 회색 빌딩의 도시를 건설해 나갔다. 도심복판을 흐르던 개천들도 모두 덮어 차량 길로 만들었다. 사람이 숨 쉬고 걸어나갈 길은 점점 사라졌다. 개발로 인한 한바탕 돈 잔치와 탐욕스런 투기가 판치며 강자와 약자, 부자와 빈자의 성패가 분명해 졌다.

그럴 즈음 그들에게 새로운 자각 하나가 샘 솟았다. 선망의 대상으로 여기고 무작정 따라가던 서방 선진국 도시들이 추구해 온 도시 디자인과 녹색환경, 각 도시들의 고유 풍광에 대한 발견이었다. 나아가 자본주의 무한확장 속에 개방의 길로 나온 사회주의 동구 진영 도시들의 풍광마저 서방국가 도시들 밖에 보이지 않던 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특히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도 프라하의 아름다운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오래된 고성과 도시건축, 골목길, 강물 흐름까지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보전한 그 도시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세계인이 보석처럼 아끼는 관광도시가 된 것이다. 헝가리 부타페스트와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등 발트 3국들도 그들만의 독특한 ‘동화 속 같은’ 풍광을 잘 보전, 서방국 풍경만 쳐다보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 주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회색 빌딩도시만 건설한 줄 알았던 일본도 도쿄, 교토, 오사카, 이마이 마을에 이르기까지 그들만의 고유 풍광을 잘 가꾸고 계승해 작은 마을 한 곳에서만 연간 400만 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프랑스, 영국, 이태리, 스페인 등의 관광선진국에 대해선 더 말할 필요가 없겠다.

우리가 서방 선진국의 ‘신기루’만 쫒던 사이 남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풍광을 살려 관광대국을 지향해 간 것이었다. 우리 고유의 풍경은 무너지고 시골 농촌마을 오솔길까지 콘크리트 시멘트 길과 아파트가 올라간 뒤에 다가온 깨달음이었다.

최근 대한민국 서울이 ‘가고 싶은 세계도시 3위’에 올랐다는 뉴스보도가 나왔다. 뒤늦은 깨달음으로 개천을 복원하고, 도시 디자인을 다시 하며, 1200만 관광객 유치에 노력한 결과라고 자축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인들이 서울로 왔을 때 그들이 무엇을 보고 느낄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절로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다.

수 십 년간 서방 도시들만 뒤 쫒으며 건설한 회색빌딩, 성냥곽 아파트, 파괴된 도시자연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서울 북촌 대로변의 한옥을 보전하자는 북촌사람들의 목소리에는 근심이 가득하다.

자산 가치보다 더 중요한 것을 깨닫다.

1960년대까지도 서울의 대표적 주거지였던 북촌. 60년대 후반 강남개발이 본격화 되면서 북촌에 위치하고 있던 명문 고등학교들이 대거 강남으로 이전해가고, 학교가 빠져나간 자리들이 개발되면서 급격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학교 이전지에 현대 사옥, 헌법재판소, 미 대사관 숙소, 등 대형개발이 진행되며 이에 따른 변화가 지역의 내부로 확산되며 지역 내부에 급속한 한옥 멸실이 시작된다. 이러한 한옥의 멸실과 비 한옥 건물들의 확산은 한옥에 대한 지원 정책이 전무한 당시 조건에서 주민들의 보유 자산의 가치 상승을 위한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 서울시가 1978년 7월 경복궁주변 북촌 쪽의 팔판동, 소격동, 중학동, 사간동, 송현동 일대를 10미터 미만의 고도지구로 지정하면서 건축규제를 시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동의나 공감대, 여론의 수렴 등은 전혀 없이 서울시의 일방적인 한옥보전 정책이 시행되어 주민들의 지속적, 조직적인 대규모 반대로 1990년대 들어 북촌지역에 대한 규제가 완화된다.

그러나 제한이 완화되면서 원서동, 삼청동 일원 지역에 한옥을 철거하고 주거환경개선 사업을 통한 다세대 주택의 건축이 확산되며 북촌경관이 급속히 훼손되었다. 한옥의 멸실과 다세대 건축의 증가로 북촌경관이 변하고 주거환경도 악화 되자 북촌 보전을 반대하고 주민들 의 인식도 바뀌게 되었다.

서울의 독특한 풍광, 이해와 돈으로 얼룩지다.

작년 말, 2001년부터 ‘북촌가꾸기사업’이 시행된 이후 부유층들이 한옥이 제일 많은 가회동 일대의 한옥들을 사들여 내부를 콘크리트로 개조해 무늬만 한옥인 ‘별장촌’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한 매체가 보도하여 사회에 파장을 일으켰다. 이런 와중에도 한옥 자체가 많다는 사실에 기대하고 오는 관광객들을 목적으로 한 상업시설이 하나 둘씩 늘어나 제2의 인사동이나 삼청동이 되는 것은 아닌가하는 걱정의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이에 자극 받은 서울시는 지난 해(2009년) 12월 2일 제40차 도시건축 공동위원회를 열어 가회 · 삼청 · 안국동 등 북촌일대 1,128,372평방미터에 대한 ‘제1종 지구단위계획’안을 심의, 가결했다. 이 계획은 북촌 일대의 현재 용도지역과 용도지구를 바탕으로 건폐율과 용적률을 지역별로 따로 적용하고 높이, 용도계획 등도 지역별 특성에 따라 14구역으로 세분해 별도의 보존 방안을 추진하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전통 한옥 밀집지역인 가회동에는 한옥만 신축할 수 있게 했으며 북촌 2·3구역은 한옥이 아닌 건물의 최고 높이를 각각 4m와 8m로 제한했다.

시 관계자는 이번 계획에 대해 “북촌 내 한옥 건축을 유도하기 위해 한옥건축구역을 구분해 지정했으며 한옥이 아닌 건물을 짓더라도 경사형 지붕이나 전통 담장 등을 설치해 주변 경관과 어울리도록 했다”며 “역사도시 서울을 대표하는 북촌이라는 전통적 한옥주거지의 체계적인 관리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즉, 역사도시 서울을 대표하는 북촌의 독특한 경관특성을 유지하여 서울을 세계적인 역사도시 반열에 올리고, 그 품격을 높일 것이란 이야기다.

하지만 아직 남은 문제가 있다. 북촌 현장주민들 중 많은 이들이 다른 우려를 내놓고 있다. 지구단위계획의 구역별 세부 계획도를 보면 삼청동 길 1구역과 2구역, 북촌 길, 가회로, 창덕궁 담장 주변 등 대로변 부지에 건축 가능한 건물 높이가 12미터 이하로 획일화되어 있다.

이것이 주민들이 걱정하는 점이다. 아무런 보완책도 없는 상태에서 대로변 대상의 이 계획이 시행되면 자칫 수년 내에 북촌 대로변의 독특한 경관을 이끌 ‘대로변 한옥’이 자취를 감추게 되어 역사성 · 전통성 · 문화적 가치 상실과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걱정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대해 김성배 종로구의원은 “대로변의 건물들은 경사형 지붕을 사용하고 한옥의 형태를 갖춰서 주변 경관과 어울릴 수 있어야만 허가를 내준다. 대로변 한옥의 자취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고 단호히 말하며 “병원, 약국, 마켓 등 최소한의 편의시설이나 기타 공공시설은 주변 주민이나 관광객을 위해 있어야 하는 데 그것마저 없다면 오히려 다 떠나가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한편 북촌의 한 주민은 “지금의 인사동 거리를 생각해보면 된다. 기존의 인사동을 해체하고 새로운 인사동을 만든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문화의 보전이 아닌 새로운 디자인을 만든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도로변의 경우 상권이 집중되고 건물이 높아질수록 재산적 가치는 오르기 마련이다. 그곳에 즐비하게 서 있는 3층 높이의 한옥이라니. 마치 양복입고 삿갓을 쓴 형태일 뿐이다.”라고 현재의 서울시 계획에 쓴 소리를 했다.

“긁어 부스럼은 이제 그만”

체코의 프라하나 일본의 이마이 마을에서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요체는 그 도시, 그 마을만의 독특한 풍취에 있다. 북촌으로, 더 나아가 서울로 관광객을 몰 수 있는 요체도 마찬가지다. 서울과 북촌만의 특별한 경관과 풍광을 유지하는 요체는 한옥인 것이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이 나라를 찾아올 세계인에게 보여 줄 ‘한국적 풍광’의 핵심이기도 하다. 한옥의 독특한 멋과 가치, 그 풍경을 살릴 때 ‘관광 한국’도 살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가운데 작년 ‘한옥문화과’의 창설을 필두로 ‘북촌지구단위계획’, ‘가회동 백인제(白麟濟)가옥의 북촌문화센터 추진’ 등의 활동은 서울과 한옥문화를 새롭게 열어가겠다는 서울시의 의지는 가상하다. 하지만, 한옥을 보전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한옥 디자인을 개발하겠다는 것인지는 아직까지 애매모호할 뿐이다.

북촌에서 만난 또 다른 주민은 “기존의 한옥을 지키기 위해 한옥과 비슷한 건물을 짓겠다니, 이런 주객전도가 어디 있나요? 부유층들이 한옥을 사서 별장처럼 개조한다고 욕을 해대지만, 그래도 겉은 진짜 한옥이잖아요.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서울시보다 오히려 그분들이 더 고맙네요.” 라며 헛웃음만 지었다. 

옛날처럼 아궁이를 떼며 불편하게 살아가는 한옥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보일러를 틀고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하더라도 원형 그대로의 모습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서울시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한옥에 가까운 건물 만들기’ 가 아닌 ‘원래의 한옥 이어가기’ 이다. 북촌주민들의 대로변 ‘한옥 보전’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는 동시에, 서울시 소유 한옥의 보수비용 확대 등에 대한 관리감독이 더 절실한 시점이다.

권대섭 기자, 박기훈 기자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