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 '놀이충동'에 의한 재미의 발현
[윤진섭의 비평프리즘] '놀이충동'에 의한 재미의 발현
  • 윤진섭(미술평론가)
  • 승인 2022.05.1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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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 미술평론가

충남 공주와 천안을 오가며 작업을 하고 있는 임재광은 정년 퇴직을 한 해 앞둔 요즈음 작품을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공주대학교 미술교육학과에서 후진을 양성하는 한편, 공주시 구도심을 가로지르는 제민천 부근의 갤러리 쉬갈다방과 카페 서천상회에 나가 일을 보기도 한다. 가끔씩 갤러리 쉬갈다방에서 전시기획도 하니 가히 전천후 작가라 할 수 있다. 요즈음 본캐(본 캐릭터)니 부캐(부 캐릭터)니 하는데, 교육자에 작가,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등 1인다역을 척척 해내고 있다. 충남 공주 태생인 임재광은 대학 졸업후 교사로 출발해 대학에서 정년을 맞는 경력 40년 차의 미술교육자이다. 작가로서의 능력도 출중하지만 교육자로서 일생을 바친 삶도 각별히 기록되지 않으면 안 될것이다. 그런 그가 이제는 서서히 직장의 일을 정리하는 한편, 작업에 가열차게 정성을 쏟고 있다.

임재광은 80년대 초반에 구드레야외미술제를 비롯하여 다수의 전시회에 오브제와 설치를 포함, 실험적인 작업을 출품, 작가로서의 경력을 쌓아나갔다. 또한 31살의 젊은 나이에 배낭을 메고 유럽으로 가 유럽 나라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다니며 미술품을 보는 안목을 키웠다. 이때 본 서양의 명화들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교육하는데 필요한 자양분이 되었음은 물론, 자기 자신의 작업을 개진하는데 알게 모르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것은 곧 자기객관화 작업이었다.

임재광의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은 미국유학이었다. 그는 세계미술계의 가장 뜨거운 중심부인 뉴욕에 거주하연서 변화의 흐름과 미술계의 생리를 지켜보았다. 이때 겪은 소중한 경험은 훗날 그가 비평보다는 오히려 작품제작에 더욱 열을 올리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작가인 그에게 하나의 난제가 있었으니 그것은 국내 미술계에서 작가보다는 오히려 비평가로서의 입지가 더욱 크게 구축된 것이다.

따라서 지난 10 여년 간에 걸쳐 임재광이 전시를 통해 작가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화단에 알리기 시작한 것은 작업에 대한 그의 열정이 그만큼 치열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불붙게 된 작업에의 동기는 현재의 오브제 작업으로 내려오면서 서서히 순항의 깃발을 올리게 된다.

 

임재광의 독창성 발상은 공간 추상충동에 근거

 

임재광이 요즈음 들어 더욱 치열하게 몰두하는 골동품 오브제 작업은 실로 우연히 탄생한 것이다. 직장이 있는 공주와 집이 있는 천안을 오가던 중, 하루는 매일 보다시피 하는 골동품판매점이 유독 눈길을 끌어 호기심에 들렀다고 한다. 그래서 관심을 갖고 하나 둘 모으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취미 수준을 넘어서고 말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옛날에 했던 오브제 작업을 떠올리며 다양한 골동품을 이용한 오브제 작업이 재개되기에 이른 것이다.

2013년을 전후하여 임재광은 한동인 색채추상에 빠져 지냈다. 오방색에 뿌리를 둔 당시의 작품 경향은 묽게 푼 물감을 캔버스에 들이붓거나 큰 붓에 듬뿍 묻혀 뿌리는 등 기운생동의 표출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적, 청, 백, 황, 흑 등 오방색은 캔버스 안에서 작열하는듯한 강열한 시각적 효과를 드러냈다.

이 시기가 지나면서 임재광은 이번에는 동양 문인화 중에서도 특히 사군자에 주목했다. 그러나 서양화가 전공인 그는 이를 지필묵을 통해 풀어가지 않고 캔버스에 아크릴 컬러로 그리되, 테이프 컷팅에 의한 기법을 개발, 전통을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그려나갔다. 매, 난, 국, 죽의 소재는 임재광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면서 현대적인 미감으로 거듭 태어났다. 특히 테이프 안으로 아크릴 물감이 조금씩 스며들어가 테이프를 떼었을 때 드러나는 번짐의 효과는 기존의 화선지에서 보는 것 같은 효과와는 다른 맛을 가져다 주었다. 임재광의 이 테이프 작업에 대해 평단이나 미술계가 간과한 것 같은데 이는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임재광, 21211204, 32.5x32.5x3cm,  2021 (사진=윤진섭 제공)
▲임재광, 21211204, 32.5x32.5x3cm, 2021 (사진=윤진섭 제공)

지난 2017년 부터 임재광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하고 있는 골동품 오브제 작업은 오방색을 이용한 색채추상과 사군자의 테이핑 작업이 변증법적 종합(정.반.합)을 이룬 것이다. 이는 실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이룬 개가이다. 옛 선인들이 쓰던 각종 목기류를 비롯하여 칼, 톱, 자귀 등의 연장류, 도마, 장난감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사용하여 테이프를 이용, 일정한 구획을 설정한 뒤. 그 위에 오방색의 아크릴 물감을 칠해 드러난 결과가 바로 이 작품들이다. 사실, 목기 위에 기학적적 무늬나 패턴을 그리는 방식은 그가 개발한 독자적인 것이다. 흔히 이런 류의 기하학적 패턴을 보며 몬드리앙을 연상할 수 있으나, 자연 풍경의 이미지를 사상하여 세계의 본질인 기하학적 모듈에 도달한 몬드리앙의 것과 임재광의 것은 판이하게 다르다. 왜냐하면 임재광의 발상은 자연이 아니라 공간에 대한 추상충동(빌헬름 보링거)에 근거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빗살무늬를 제작한 선사인의 마음처럼 비어있는 공간에 뭔가를 그려넣고 싶은 '놀이 충동'이 작용한 결과인 것이다. 임재광이 이 작업을 시작하면서 한없이 재미에 빠져든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는 틈날 때 마다 골동품 경매장에 가서 물건을 사고 자랑스레 얼책(facebook)에 올린다. 그 모습이 마치 자랑에 들뜬 어린이 같다.

발상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그럴 때 마다 독특한 패턴들이 틴생한다. 과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은 물론 동서양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임재광의 기하학적 추상 오브제 작품들이다. 무릇 작품의 독창성은 유일무이성에서 온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대두 이후에 모더니즘을 떠받쳐온 이 금과옥조와도 같은 미적 기준이 다소 허물어진 감이 있지만, 좋은 작품에 대한 판단기준으로는 아직 이만한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