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Affinités-결의 만남》展, 한-프 ‘판화’로 도시‧자연 마주보다
[전시리뷰] 《Affinités-결의 만남》展, 한-프 ‘판화’로 도시‧자연 마주보다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05.24 2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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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아트빌리지 아트센터, 6월 5일까지
독특한 공간 연출, 판화의 미감 살려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인간-자연-도시를 바라보는 판화 작가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전시가 김포아트빌리지 아트센터에서 개최되고 있다. 한‧프 현대목판화전 《Affinités-결의 만남》이다. 전시는 오는 6월 5일까지 관람객을 만난다.

▲김억, 강화만, 366X81cm, 한지에 목판화, 2019 (사진=김포문화재단 제공)
▲김억, 강화만, 366X81cm, 한지에 목판화, 2019 (사진=김포문화재단 제공)

이번 전시는 2018년 울산국제목판화페스티벌에서 이뤄졌던 작은 만남으로부터 시작됐다. 당시 페스티벌에 방문했던 프랑스 베르사유미술대학 판화학과 김명남 교수는 프랑스에서 ‘한국목판화’를 전시해보고 싶다는 제안을 했다. 프랑스에서는 5월마다 <판화의 날>이라는 행사가 개최되는데, 중국문화원과 일본문화원은 모두 참석하는데 한국문화원만 참석하지 않아 아쉽다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된 제안이었다.

김 교수의 의견에 흥미를 얻은 국내 중견 판화 작가 및 미술계 인사들은 ‘한‧불 판화전 추진위원회’를 구축해 전시를 구체화해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시 공간 대여와 준비 비용에서 위원회는 어려움을 겪게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확산으로 전시 개최에 먹구름이 끼는 듯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김포에 작업실을 두고 활동해오고 있는 홍선웅 판화가가 김포문화재단에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이후, 전시 준비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다.

▲강행복, 화엄-A(변형), 38X224cm, 목판화, 설치, 2022
▲강행복, 화엄-A(변형), 38X224cm, 목판화, 설치, 2022 (사진=김포문화재단 제공)

김포시와 김포문화재단이 ‘한‧불 판화전 추진위원회’와 함께하기 시작하면서, 김포시와 베르사유시의 문화교류, 한국과 프랑스의 교류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 김포시와 한국파리문화원과 업무협약을 맺으며, 김포문화재단과 베르사유미술대학이 협력한 한‧프 현대목판화 협력전시(5월12일~28일)도 준비될 수 있었다. 이번 전시는 1795년 베르사유미술대학 개교 이래 타국과 교류해 개최하는 최초의 협력 전시라는 점에서 또 한 번의 큰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한국과 프랑스의 목판화 교류는 1980년대 이후로 거의 전무하다고 볼 수 있었다. 프랑스의 시선이 일본이나 중국으로 옮겨갔고, 이후 특별한 연결점을 만들 수 없던 것이다. 40여 년간 교류가 전무했던 한‧프 현대목판화 현장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낸 것은 한국 목판화에 애정을 갖고 있던 작가들과 지자체 단위 협력 덕분이었다.

▲Anne Paulus,  Higashimyo II , Woodcut , 90 x 60 cm, 2020
▲Anne Paulus, Higashimyo II , Woodcut , 90 x 60 cm, 2020 (사진=김포문화재단 제공)

3일의 고민 담긴 공간 연출

전시 기획을 맡은 김명남 교수는 이번 전시 공간 기획에 남다른 노력을 쏟았다. 당초 계획했던 연출과 공간 기획이 많이 달라져, 김 교수는 3일 간 모든 인력을 물리고 혼자 전시 공간에 남아 전시 작품을 다시 배치했다.

이번 《Affinités-결의 만남》 전시는 도시, 자연, 인간을 주제로 세 가지 공간으로 구성됐다. 이번 전시에서 특별한 점은 작품별 네임택이 붙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작품별 제목에 집중하기보다 관람객이 공간 안에서 작품을 통해 상상할 수 있길 바랐다고 한다. 네임택이 없기 때문에 도시, 자연, 인간이라는 큰 주제 안에서 공간 속 작품들이 어떻게 조화되고 상응하는지 느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작품별 네임택이 없는 전시는 관람객에게 불친절한 전시라는 지적 또한 있었다. 이를 보완하고자 전시를 주관한 재단 측은 전시장 입구에서 작품 이름이 적힌 안내서를 배부하고 있다.

▲박영근, The time, 80X100cm, 목판화, 2020
▲박영근, The time, 80X100cm, 목판화, 2020  (사진=김포문화재단 제공)

전시가 열리는 김포아트빌리지 아트센터의 공간은 천장이 꽤 높은 공간이다. 대게 미술 전시라면, 성인 시선 높이에 작품을 배치하는 것이 보편적인데, 이번 전시에서는 조금 더 높은 위치에 작품을 배치하거나, 모서리 공간을 활용해 작품을 선보이는 등의 독특한 배치를 선보였다. 이러한 연출을 판을 찍어서 작품을 완성하는 판화가 가지고 있는 회화와는 다른 미감을 느끼게 한다. 작품의 의미를 해석한 연출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3전시실 ‘인간’ 공간에는 탁상시계를 소재로 한 박영근 작가의 <The time>을 굉장히 높은 벽면에 전시한다. 이 또한 김 교수의 연출이었다. 대게 시계를 높은 벽면에 배치하는 우리의 일상 속 모습을 전시장 안으로 끌어오고, 벽걸이 시계가 아닌 탁상시계를 높은 곳에 배치하는 것으로 색다른 재미를 전한다.

▲홍선웅, 시암리초소, woodcut, 134x76cm, 2018
▲홍선웅, 시암리초소, woodcut, 134x76cm, 2018 (사진=김포문화재단 제공)

국경 넘어 공유되는 도시‧자연‧인간의 정서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김포’라는 공간을 절실하게 담아낸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다. 홍선웅 작가 <시암리 초소>, 김억 <강화만>, 이언정 <city Gimpo-B>등이다. <강화만>은 대작으로 마치 김포의 지도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도시의 지형을 잘 담아내고 있다. <city Gimpo-B>는 젊은 작가인 이언정의 작품으로 화려한 색과 젊은 느낌의 도시를 느껴볼 수 있게 한다.

한국‧프랑스 작가의 작품을 동시에 선보이며, 한국의 가진 역사와 미감이 무엇인지, 그리고 국경을 뛰어넘어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도시, 자연, 인간은 무엇인지를 이번 전시는 넌지시 전달하고 있다. 전시장에서는 한국과 프랑스 작가 구별 없이 작품을 배치하고 있다. 시대의 시선과 진정한 교류의 시선을 느껴볼 수 있는 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