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뷰] 2022 로에베 재단 공예상 최종 우승, 정다혜 공예가 선정
[현장리뷰] 2022 로에베 재단 공예상 최종 우승, 정다혜 공예가 선정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07.04 1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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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에베 재단 공예상’ 전시, 서울공예박물관서
최종 결선 오른 30명 작품 선봬
정다혜 공예가, 공예 역사‧작가 정체성 담아내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전 세계 공예인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로에베 재단 공예상(Loewe Foundation Craft Prize)> 시상식이 대한민국 서울에서 개최됐다. 또한, 올해 <로에베 재단 공예상> 최종 우승자로 정다혜 공예가가 선정돼 한국 공예가 지닌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렸다.

서울공예박물관에선 지난 6월 30일 열린 시상식을 시작으로 오는 7월 30일까지 최종 결선에 오른 30인의 공예작가 작품을 선보인다. 최종 결선에 오른 동시대에 가장 혁신적이고 재료의 미학을 잘 살린 공예작품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특별한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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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에베 재단 공예상> 최종 우승자, 정다혜 공예가, 성실의 시간(A Time of Sincerity), 2021년, 말총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로에베 재단 공예상>은 스페인에서 4대째 가죽공예 기업을 운영하던 엔리케 로에베 린치(Enrique Loewe Y Lynch)가 1988년 세운 재단에서 2016년 제정한 상이다. ‘장인 정신’을 되살리는 동시에 전통·혁신·재료· 창의성 등에 초점을 맞춰 공예작품을 선정, 포상하고 공예작가를 후원한다. 국제적으로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공예상이다. 최종 우승자에게는 5만 유로(한화 6,800만 원 상당)와 상패가 수여된다.

2022년 ‘로에베 재단 공예상’에는 세계 각지의 공예작가 약 3,100명이 지원했으며, 지난 1월 25~26일 양일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전문가 패널에 의한 1차 심사를 거쳐 2월 10일(스페인 마드리드 기준) 15개 국가·지역의 최종 결선작가 30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이후 시상식 당일 공예와 디자인, 건축, 장식미술 분야의 해외 유력 인사들이 전시장에 모여 30명의 결선작가 중에서 최종 우승자를 심의, 발표했다. ‘시각적인 미’를 전달하는 것을 기능으로 삼고 있는 공예 작품이 전시에서 어떻게 보이는 지도 중요한 심사요소이기 때문이다. 재단은 이러한 심사 과정을 거쳐 정다혜 공예가를 올해 최종 우승자로 선정했다.

▲김민욱, 본능적(Instinctive), 2021년, 한국산 참나무, 동 (사진=서울공예박물관 제공)
▲김민욱, 본능적(Instinctive), 2021년, 한국산 참나무, 동 (사진=서울공예박물관 제공)

사라지고 있는 ‘말총 공예’, 독보적 재료 미학 갖춰

<로에베 재단 공예상>에서 한국인이 우승자로 선정된 것은 처음이다. 정다혜 공예가는 우리나라의 독특하면서 사라져가는 말총(말의 갈기나 꼬리의 털) 공예에 매료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정 공예가에게 바로 입체로 직조할 수 있는 말총에 매력을 느꼈다.

말총공예는 대게 망건이나 갓을 만드는 기술이었으며,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일상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갓이 우리네 일상에서 사라지게 되면서 현재는 제주에서만 말총 공예가 전승되고 있다.

정 공예가는 제주에서 나고 자라, 2017년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지역 공예마을 육성사업’에 참여하면서 말총 공예를 접하게 됐다. 정 공예가는 국가무형문화재 양태장 장순자 장인에게 사사 받아 적극적으로 공예에 임하게 됐다.

말총 공예는 전통적으로 갓이나 노리개 같은 것을 만드는 공예지만, 정 공예가는 말총으로 장신구나 모빌, 입체적인 조형을 만드는 시도를 시작했다. 이번 <로에베 재단 공예상> 우승작으로 선정된 정 작가의 <성실의 시간(A Time of Sincerity)>는 기(器)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 작품은 조선시대 중기 사방관(四方冠)에 장식된 마름모꼴 무늬를 활용해 작품에 말총공예의 역사성을 담으며, 작가 본인이 좋아하는 빗살무늬토기의 형태로 본인의 정체성까지 표현했다. 정 작가는 “말총공예는 500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의 독창적인 공예다. 작품 안에 공예의 시간과 더불어 내가 지향하고 있는 삶의 방향성을 담고자 했다”라고 작품을 설명한다.

▲<로에베 재단 공예상> 전시 언론공개회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조혜영 커미셔너 (사진=서울문화투데이)

기물 본연의 미 살피는 전시, 개성 뛰어난 30개 작품 만날 수 있어

지난달 30일에는 시상식 전, <로에베 재단 공예상> 전시 언론공개회가 열렸다. 공예상 1차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고, 올해 공예상의 로에베재단 국제 커미셔너로 임하고 있는 조혜영 한국조형디자인협회 이사장이 전시 소개를 맡았다.

로에베 재단은 2017년 스페인 마드리드를 시작으로 2018년 영국 런던 디자인박물관, 2019년 일본 소게츠 재단, 2021년 프랑스 파리 장식미술관 등 각국의 공예와 디자인을 대표하는 박물관 등에서 매해 공예상 결선 진출작 전시회를 개최해왔다.

조 커미셔너는 <로에베 재단 공예상> 전시 특징으로, 공예 작품 기물 그 자체를 돋보이게 하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심플한 전시장 구성을 꼽았다. 또한, 기(器)의 형태를 중시하고 현대적인 혁신과 변화를 지향하며 전통과의 연결성, 재료가 가진 본질적인 미학을 중요하게 보는 점을 <로에베 재단 공예상>이 가진 특징으로 언급했다.

▲정명택, 덤벙주초(Dumbung-jucho), 2021년, 브론즈, 스테인리스 스틸, 리벳, 자연석
▲정명택, 덤벙주초(Dumbung-jucho), 2021년, 브론즈, 스테인리스 스틸, 리벳, 자연석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로에베 재단의 현 이사장인 엔리케 로에베 린치의 딸 쉴라 로에베(Sheila Loewe)는 서울로 시상식 개최지가 선정되면서, 시상식 개최지로 ‘서울공예박물관’을 적극적으로 추천했다고 알려졌다. 조 커미셔너는 “쉴라 로에베는 ‘서울공예박물관이 아니면 안 된다’라고 할 정도로 강한 의지를 보였다”라며 “세계적으로 ‘공예’를 다룬 박물관이 몇 없기도 하기에 추천한 것이라 여겨지면서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한국 공예의 위상을 새롭게 느껴볼 수 있는 지점이었다”라고 전시 추진 과정 중 일화를 전했다.

전시는 긴 두 개의 복도로 구성돼 있다. 전시장으로 들어서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첫 번째 복도는 재료 본연의 미학을 살리고, 다양한 재료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선별돼 꾸려졌다. 이어지는 반대편의 두 번째 복도는 재료를 활용해 새로운 기술을 접목시키거나 금속과 같이 차가운 성질을 가진 재료를 배치하면서 전시의 안정적인 흐름을 만들어낸다.

정 공예가의 <성실의 시간(A Time of Sincerity)>은 첫 번째 복도 공간에 전시돼 있다. 조 커미셔너는 “정 공예가의 작품을 본 해외 심사 위원들은 경악을 한다. 말총이라는 재료도 놀랍지만, 말총으로 하나의 기(器)를 만들어 낸 것에 놀라움 드러낸다. 특히, 말총으로 엮인 그릇에 빛이 투과돼 드러나는 그림자에 대해서도 극찬을 한다”라고 정 공예가 작품의 우수성을 전했다.

▲정용진, 거꾸로 된 그릇(Wavy Inverted Bowl), 2020년, 스테인리스 스틸
▲정용진, 거꾸로 된 그릇(Wavy Inverted Bowl), 2020년, 스테인리스 스틸 (사진=서울공예박물관 제공)

올해 공예상에는 최종 우승자로 한국인이 선정된 것뿐만 아니라, 최종 결선에 오른 30명의 작가 중 국내 공예가가 총 7명이 선정되는 역대 최다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김민욱(나무), 김준수(가죽), 정다혜(말총), 정명택(가구), 정소윤(섬유), 정용진(금속), 허상욱(도자) 공예가가 최종 결선까지 올랐고, 이들의 작품은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조 커미셔너는 “세계 공예계에서 ‘한국’은 ‘잘’ 만드는 나라라고 알려져 있다”라며 “한국 공예가 세계에서 꽤나 중요한 입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더 깨닫게 됐고, 개인적으로 앞으로 우리의 미술은 ‘공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한다”라며 한국 공예가 가진 위상을 전했다.

최종 결선에 오른 7명의 작가들은 모두 개성 넘치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나무를 다루는 김민욱 공예가는 벌레가 파먹거나, 뒤틀리고 갈라진 나무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작품 안에 녹여내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가구를 제작하고 있는 정명택 작가는 <덤벙주초>라는 작품을 출품했는데, 이 작품은 한옥의 ‘덤벙주초’를 모티브로 한 스툴이다. 한국 고건축에 발현된 삼무(三無) 정신 즉, 무위(無爲), 무심(無心), 무형(無形)의 키워드를 반영하며 한국인의 성정을 드러낸 작품이다.

전통적 정서의 작품이 선정됨과 동시에 최신 기술이 돋보이는 한국 공예가의 작품도 결선에 올랐다. 정용진 공예가의 <거꾸로 된 그릇>은 3D 설계, 레이저 커팅과 금속 전통 기법을 활용해 “그릇이 큰 사람”이라는 한국적 비유에서 발상을 얻어 평범한 인간사를 녹여낸 작품을 출품했다.

▲(벽면) 정소윤, 누군가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Someone Is Praying for You), 2021년, 모노필라멘트 (바닥) 파오 후이 카오(Pao Hui Kao)/타이완, Urushi Paper Pleats Bench, 2021년, 종이, 밥풀, 칠
▲(벽면) 정소윤, 누군가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Someone Is Praying for You), 2021년, 모노필라멘트 (바닥) 파오 후이 카오(Pao Hui Kao)/타이완, Urushi Paper Pleats Bench, 2021년, 종이, 밥풀, 칠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정소윤 공예가의 <누군가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라는 작품 또한 주목할 만하다. 정 작가의 작품은 첫 번째 복도의 끝, 두 번째 복도의 시작이 되는 지점에 전시 돼 있다. 이 작품은 모노필라멘트를 사용해 산의 능선을 표현했다. 벽면에 설치된 이 작품은 종이, 밥풀을 사용해 옻칠을 한 종이 스툴인 타이완 공예가 파오 후이 카오의 작품 <Urushi Paper Pleats Bench>와 함께 전시돼 있다.

산수화 같은 정 공예가의 작품과 옻칠이 된 종이 스툴 파오 우이 카오의 작품은 전시를 개최하고 있는 한국, 동양의 정서를 응축한 공간을 만들어 냈다.

이외에도 전시에서는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남아프리카공화국, 핀란드 등 세계 각지 공예가들의 뛰어난 기량이 배있는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장신구와 같은 작은 공예품부터 전시장 벽면 높이만 한 직물 공예품까지 만나볼 수 있다. 우리 일상 속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재료들이 새로운 물성과 형상을 가지고 또 다른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전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