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 옆에서>에 대한 잘못된 평가들
<국화 옆에서>에 대한 잘못된 평가들
  • 김우종 (전덕성여대 교수, 문학평론가)
  • 승인 2010.01.25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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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의 시와 산문들은 어떻게 봐야 하나?

ㄴ. 잘못된 평가들

이 시는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해설이 붙고 있다. 어떤 생명이라도 모두 어려운 노력이나 시련의 대가로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존엄하다는 것이다. 거의 모두 그렇게 배우고 가르쳐 오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전문가가 아니라도 시를 바로 읽을 자세만 되어 있다면 쉽게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김현승 시인(전 숭실대 교수)은 이 시의 주제를 '생명의 신비성과 존엄성'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사실은 이와는 정반대다. 생명을 가장 잔혹하게 말살한 행위를 정당화하고 그런 결과로 태어난 악마의 자식을 찬미한 것이 <국화 옆에서>가 아닌가?

그런데 김현승의 해석은 혼자만의 새로운 해석은 아니었다. 거의 모든 국어 참고서에 나타나고 있는 유사한 해석의 하나다.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비록 작은 것이로되 얼마나 많은 섭리와 준비 와 동원과 참여가 있어야 하는가를 나타내고 있다.

(김현승 <한국현대시해설> 1974년 관동출판사)

이 시를 불교의 인연설로 해석한 다른 국문과 교수의 것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우주만물의 모든 현상들이 서로 인연을 맺고 얽히며 힘이 합해지는 과정을 통해서 가능해진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라고 했으므로 역시 생명의 신비와 존엄성을 주장한 것이다.

'생명의 신비성과 존엄성'이라는 것은 그를 일반적으로 '생명파 시인'이라고 불렀던 것과도 같은 맥락을 지닌 해석이다. 그런데 과연 그는 그렇게 생명의 신비성에 감동하며 그 존엄성을 주장한 시인이었을까?

아무리 하찮은 생명이라도 그것이 참으로 많은 신비한 섭리와 준비와 동원과 참여가 있은 뒤에 탄생하는 것임을 알고 그 존엄성을 존중하는 시인이 젊은이들을 왜 개죽음의 침략전쟁 터로 나가라고 선동했나?

ㄷ. 인신어공 人身御供 선동

친일문학의 친일이란 연예인들이 일으킨 한류 열풍 같은 문화적 공감과 교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일제말기의 친일문학은 민족 해방 운동과는 반대로 민족의 영원한 예속을 위해 일본의 침략 정책을 찬양하고 우리로 하여금 이를 위해 목숨과 제물을 바치도록 선동한 문학이다. 한 일본 작가는 이를 인신어공人身御供이라고 표현했다. 어공은 일왕에게 바친다는 뜻이었다.

그러므로 이것은 우리 민족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일본 젊은이들의 운명도 꼭 같았다.

통신마저 끊어진 전군에게 '최후의 일병까지 싸우고 유구한 대의大義에 살라'고 무기한 전투명령을 내리고 자결한 우지마 사령관의 죽음은 여자 어린애들을 포함해서 수습할 길 없는 단말마의 양상을 낳았다. ….(중략) …. 그 후 한없는 희생의 강요, 본토 결전의 인신어공人身御供이 되고 있었다.
(<마쓰이 류우지의 장편소설 <청춘의 유서>에서)

이것은 일본이 후퇴를 거듭하던 오키나와 전투의 양상을 일본작가가 말한 소설의 한 장면이다.

'여자와 어린애들까지 모두 수습할 길 없는 단말마의 양상'이라고 한 것은 젊은 군인들만이 아니라 살아 있던 모든 일본인의 죽음을 의미한다. 소위 전원 '옥쇄 玉碎'라고 말한 실상을 증언한 것이며 여기에는 물론 그곳에 있던 한국의 젊은 병사들과 위안부 여성들을 포함한 모든 조선인들도 포함되어 있다.

일본 육군대신 도죠히데키가 만든 전진훈陣訓前 '살아서 포로의 욕을 당하지 말라'를 갓 난 어린애들에게까지 강요해서 죽인 것이다.

이처럼 전쟁터에 나간다는 것은 도수장으로 끌려 나가 도축되는 짐승들의 운명이며 이를 선동한다는 것은 살인행위의 공범이며 반민족적 반인류적 행위다. 그래서 반민족행위 처벌법(반민족행위 특별법)도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렇다면 '길거리에서 허우적거리는 게으른 조선의 청년들'이라고 동족을 멸시하고 조롱하며 자식들을 어서 전쟁터에 내보내라고 어머니들을 선동하고 기만한 서정주의 시와 산문들은 어떻게 봐야 하나?

<국화 옆에서>에 대해서 '생명의 존엄성'을 나타낸 것이라는 학술적인 평가를 내리고 생명파 시인이라고 가르쳐 온 논문과 저서를 낸 사람들은 이런 서정주의 반생명 문학에 대해서는 왜 말이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