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댕이 소갈머리의 연하장
밴댕이 소갈머리의 연하장
  • 학정 이정희(수필가)
  • 승인 2010.01.25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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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밴댕이 소갈머리가 투덜거렸다

 새해가 다가오면 연하장이 오간다. 예전엔 서기(瑞氣)가 느껴지는 그림카드에 육필로 기원을 담아 우편으로 보내는 것이 대유행이었다. 모든 것이 간소화되고 온라인 네트워크가 보급된 지금은 이메일을 통해 간편하게 인사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 신속함과 편리함이야 비할 데가 없지만 경우에 따라선 예의에 어긋나지 않은지 조심스럽다.

 이번에도 친지들에게 제법 많은 연하 인사를 띄웠다. 직접 써서 보낸 것은 많지 않고 주로 이메일을 이용했다. 세상 흐름대로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날리기도 했다. 나름대로 정성을 담았다. 받을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기왕이면 그에게 적합한 축원을 실어 보냈다. 여느 때 약속 등으로 간단히 문자를 보낼 때와는 마음 자세가 달랐다. 가는 해의 끝자락에서 오는 해의 기원을 진정으로 건네고 싶어서였다.

 곧바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내가 보낸 덕담과 엇비슷한 축원을 보내주는 이가 있는가하면, 그보다 훨씬 값지고 분에 넘치는 기원을 실어주는 이도 있었다. 말이라는 게 “어 해 다르고 아 해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하는 정다운 문구들. 드물지 않게 만나는 사이인데도 그 글에 깃든 속마음이 헤아려져서 다사로움이 전해오고 미소가 지어졌다.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로도 얼마든지 정감을 교류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생광스러운지. 배달이 안 된 것도 더러 확인되었다. 또 분명 전해졌을 텐데도 몇 날이 지나도록 아무런 답신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웬 일일까. 어디 여행을 떠났나. 아니면 몸이 아픈 것일까. 꼭 되받기 위해 보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편지는 쓰는 순간부터 벌써 받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이 아니던가. 무슨 사정이 있으려니 싶다가도 혹은 컴퓨터나 휴대폰도 때로 말썽을 부리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내 안의 밴댕이 소갈머리가 투덜거렸다.

 “늘 만나는데 별스럽게 꼭 그런 걸 보내야 하나 여길지 모르지만, 그래도 받았다는 표시는 해주면 좋지 않나? 공연히 섭섭하네.”

 그랬더니 오지랖 넓기로 둘째가라면 서운할 또 하나의 내가 불쑥 나서서 달래며 하는 말.

 “너의 덕담과 축원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순수한 것이 아니었어?”
 “그래 맞아! 답신이 왔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나는 그저 보내고 싶었고 그러면 된 거야.”
 
 누가 밴댕이 아니랄까 봐 앞서의 내 반쪽이 단숨에 맞장구를 치고 나섰다.

 


 

1947년 전북 남원 출생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독어독문학과졸업
2003년 <<한국수필>>로 등단
2009년<<에세이플러스>>문학상 우수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