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뷰] 강요배 개인전 《첫눈에》, 작가가 만난 어느 날들과 감정
[현장리뷰] 강요배 개인전 《첫눈에》, 작가가 만난 어느 날들과 감정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08.26 1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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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고재 본관, 8.26~9.30
2018~2022 사이 제작된 회화 18점 전시
제주 풍광-작가 마음의 공명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화가가 바라보는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같은 세상을 보고 살아가고 있지만, 예술인이 바라보는 세계는 평범치 않을 것 같다. 강요배 작품 앞에 서면, 그 시각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작가의 시선을 만나게 된다. 파도인 듯, 구름인 듯 바람으로 드러나는 자연의 일면과 그날의 날씨, 빛들이 화폭 안에 묵직하게 담긴다.

▲풍설매(風雪梅) Plum Blossom In Snowstorm, 2022, 캔버스에 아크릴릭 Acrylic on canvas, 130x162cm ⓒ양동규 (사진=학고재 제공)

지난해 대구미술관에서 제 21회 이인성미술상 수상기념전으로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했던 강요배 작가가 서울 학고재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26일 시작해 오는 9월 30일까지 관람객을 맞는다. 이번 전시는 대구미술관 전시에서 공개했던 신작과 더불어 올해에 작업한 신작들까지 포함한다. 대구 전시를 찾지 못했던 서울 관람객들에게 강요배 작가의 신작들을 선보이고, 9월 2일부터 열리는 국제아트페어 Kiaf를 기점으로 해외 미술애호가들에게도 강 작가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제작된 회화가 공개된다. 학고재 본관에서는 회화 18점이 전시되고, 학고재 온라인 전시룸 ‘오룸’에선 오프라인 전시작을 포함해 총 30여점을 선보일 예정이다.

학고재 개인전 전시 제목 《첫눈에》는 강요배 작가가 직접 정한 것으로, 세상 모든 것을 처음 바라본 그 순간의 감각들을 담고 있다. 대상을 찬찬히 바라보다 보면 논리적 설명과 관계없이 문득 마음에 깃드는 직관과 감정이 있다. 강요배가 ‘첫눈에’ 담아낸 제주의 풍광과 그 섬에 뿌리내린 동식물의 삶,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마음이 공명하며 관람객에게 ‘첫눈에’ 전달된다.

26일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강요배는 “화면을 둘러싸고 있는 이론적인 것은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작품을 마주하게 될 ‘처음’을 생각했다”라며 “국제전을 맞이하면서 동양과 서양을 넘어서고, 구상과 추상을 넘어서면서 장르를 넘나들고 싶었다. 두 가지 분류법에 갇히지 않으면서, 좀 더 단순하고 좀 더 보편적인 느낌으로 울림을 전하려했다”라고 전시 제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전했다.

▲<설담(雪談)>에 대한 설명을 전하고 있는 강요배 작가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제주 풍광 속 담긴, 그날의 정서

이번 전시 서문을 쓴 미술비평가 이진명은 강요배가 지향하는 세계가 사람과 자연이 본래 하나라는 동양적 사유방식에 바탕하고 있다고 본다. 강요배의 화면은 주관적 사상, 감정이 객관적 대상과 어우러지면서 의미를 창조해내는 ‘의경(意境)’의 세계다.

강요배 작가는 언론간담회에서 인사말을 전한 이후, 전시장에 있는 18점의 회화를 빠르게 기자들에게 소개했다. 강 작가는 작품마다 어떤 날에 어떤 것을 보고 그린 것인지에 대한 설명을 전했다. 화면 속 모든 장면은 제주에 살아있는 풍광이고, 강 작가 작업실 앞 수목이었다.

강요배는 작품에 대해 아주 간략한 설명을 전했지만, 작품 속에 있는 모든 소재들을 기억하고 그 순간들을 떠올리는 듯, 애정을 갖고 작품을 설명했다. 대구미술관 전시에도 선보였던 <설담(雪談)>이란 작품에 대해선, 눈이 쌓인 평상마루 위에서 세 개의 유자열매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작품이라는 얘기를 전하며 즐거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전시장에 들어서서 가장 처음 만날 수 있는 작품은 <중향성(衆香城)>이다. 197X333.3cm의 대형 작품으로, 작가가 1998년 금강산에 방문했을 때 본 풍경을 재구성해 그린 작품이다.

이 비평가는 <중향성(衆香城)>에 대해 “강요배가 그리는 한라산과 내금강 중향성(衆香城)은 단순히 감상을 위한 대상으로서의 아름다운 산이 아니다”라며 우리 민족의 심성을 길러낸 영적 대상이자 근원적 동력의 산으로서의 의미를 언급했다. 강요배가 바라보고 있는 세계와 그 속의 의미를 동시에 감각하고 인지할 수 있는 작품이다.

▲중향성(衆香城) Junghyangseong, 2019, 캔버스에 아크릴릭 Acrylic on canvas, 197x333.3cm ⓒ오권준 (사진=학고재 제공)

취재진에선 당시 사진을 보고 그린 것이냐는 질문이 있었고, 이에 강 작가는 “아니다. 당시의 풍경이 아직도 내게 남아있다”라는 답을 전했다.

강요배 작가는 작품을 창작할 때 ‘사진’을 참고하지만 그것을 토대로 작업하진 않는다고 강조해서 말했다. 강 작가는 “사진을 보고 그리게 되면, 사진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풍경을 보고, 내게 오랫동안 남아있는 소재들을 가지고 작업을 한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모든 것을 관찰하고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는 것처럼, 내 일상 속에 남아있는 장면의 조각들을 취사선택하고 강조해 화면을 그린다”라고 창작의 한 과정을 언급했다.

산상(山上) On the Mountain, 2022, 캔버스에 아크릴릭 Acrylic on canvas, 197x667cm ⓒ양동규 (사진=학고재 제공)

“추상화돼가는 구상”

이어지는 두 번째 전시공간으로 들어서면, 한라산 백록담 분화구의 광활한 전경을 보여주는 작품 <산상(山上)>을 볼 수 있다. 작가가 열 번 남짓 한라산 정상에 올라 바라봤던 풍경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산상(山上)> 옆으로 자리하고 있는 <비천(飛天)>이라는 작품도 인상적이다. 청명한 파란 하늘 위에 바람결이 모두 드러나는 듯한 구름이 자리한 작품이다. 강 작가는 “제주에 살다보면 산들바람이 지나간 구름들을 볼 수 있는 날들이 존재한다. 그 날을 만나고, 마음속으로 여러 번 드로잉을 해보고 화폭 위에 옮겨냈다. 아마 이러한 과정은 맨손체조를 하는 선수들과 같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 <비천(飛天)>과 강요배 작가 (사진=서울문화투데이)

‘강요배 작품은 추상인가, 구상인가’라는 질문에 강 작가는 “추상화돼가는 구상이지 않을까 싶다”라는 답을 전했다. 제주에 살고 있는 강요배 작가는 제주의 날씨를 통해 창작의 시작을 설명했다. 강 작가는 “제주는 날씨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는다. 개인적으로 제주가 마음 공부하기 좋은 곳이라고도 생각하는데, 제주의 날씨를 보고 있으면 인간의 칠정(七情)인 희노애락애오욕을 모두 느낄 수 있다. 날씨를 느끼고 풍경을 보고, 그때의 기분이나 사람의 감정으로 작품을 시작한다”라고 말했다.

이 비평가는 강요배 작가의 이런 예술세계에 대해 전시서문 「원인(原人)과 원도(原道): 사람을 묻고 도리를 묻다」를 통해 “강요배 작가는 삶과 개념의 무게를 영원한 수평으로 만들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그것이 바로 새로운 형식의 풍경화이다. 힘과 속도, 벡터와 강약이 더불어 용솟음치는 무대(arena)를 만들었다. 이러한 힘과 속도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이야말로 강요배 회화의 진수를 알게 되는 지름길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간담회 현장에서 한 취재진은 <비천(飛天)>을 제작할 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작업을 했는지 질문했다. 이에 강요배 작가는 “말로 하기 애매한 것들을 화면으로 그리는 것 같다”라는 답을 전했다.

▲배나무꽃 Blossoming Pear Tree, 2022, 캔버스에 아크릴릭 Acrylic on canvas, 116.7x91cm ⓒ양동규 (사진=학고재 제공)

강요배 작가를 떠올리면 여전히 ‘동백꽃 작가, 제주 4‧3 항쟁의 작가’라는 느낌이 다가오곤 한다. 하지만 대구미술관에 이어 학고재에서 선보이는 이번 근작들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강요배 작가의 표현들이 담겨있다. 제주의 자연과 순간인 동시에, 강요배가 만났던 어떤 순간의 감정, 지금 시대만의 정서를 느낄 수 있다.

한라산의 모습을 담은 <산상(山上)>과 태풍이 온 정원을 담고 있는 <‘바비가 온 정원>, 달의 모습 <정월(正月)>이 전시된 공간은 작가가 느꼈던 어떠한 자연이자 세계를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한다. <비천(飛天)> 또한 같은 공간에 전시돼 깊이를 더한다.

언론공개회가 끝나고 강요배 작가는 올 11월 예정된 제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일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전했다. 작품의 70%정도가 완성됐고, 세로 7m의 대작으로 보는 이에게 깊은 사유의 기회를 전달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환한 미소를 보였다.

전시 《첫눈에》는 제주의 풍경을 통해 강요배가 지닌 풍경, 나아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풍경들을 만나볼 수 있는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