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 부산 행위예술 약사(略史)Ⅱ
[윤진섭의 비평프리즘] 부산 행위예술 약사(略史)Ⅱ
  • 윤진섭 미술평론가
  • 승인 2022.09.07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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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 미술평론가

(지난호에 이어서)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8년에 개최된 [부산국제아트페스티벌](부산비엔날레의 전신)의 공식 행사 중 하나인 [행위예술전]이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려 2천년대 퍼포먼스 활성화의 단초가 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김광훈, 김춘기, 문정규, 안치인, 이건용, 홍오봉 등이 참가한 이 행사는 마침 열린 국제아트페스티벌의 열기와 맞물려 부산 시민들에게 퍼포먼스의 존재를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Ⅲ.

2천년대에 들어서면서 부산의 행위예술계는 바빠지기 시작한다. 우선 꼽을 수 있는 것은 <부산행위예술가회>의 창립이다. ‘11.11 대반란’을 주제로 광대의 집 갤러리와 소극장에서 열린 이 행사는 퍼포먼스(2000.11.11.-13)와 야외설치전 및 실내전(11.11-11.20)으로 구성되었으며, 퍼포먼스에는 김춘기를 비롯하여 박병철, 김영아, 류환, 김창근, 김백기, 타이거백, 정성호, 노주현, 조우영, 최무영 등이 참가하였다. 주최측은 행위예술이 아직도 대중에게 낯선 느낌을 던져주기 때문에, “지역예술의 보다 폭넓은 인식 확산과 다양한 접근을 위하여 부산행위예술가회”를 창설한다고 밝히고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부산에서 열린 퍼포먼스 행사 중 어쩌면 가장 큰 것일 수도 있는 1998년의 [부산국제아트페스티벌]의 행위예술제와, 같은 해에 허승민, 김원태, 양종예, 황경호, 허창용, 김희진, 윤이서 등이 모여 <퍼포먼스 파크(Performance Park)>를 결성한 것은 부산 행위예술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는 퍼포먼스에 관심을 가진 젊은 작가들의 집단적 등장을 상징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산지역의 미술, 무용, 연극, 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퍼포머들이 모여 결성한 이 ‘토탈아트’ 지향의 예술집단은 ‘부산 최초의 상호매체(intermedia)-다원예술’이란 칭호에도 불구하고 단명하고 말았다. ‘관객과 어떤 방식으로 소통할 것인가’하는 질문을 화두로 던지며, 허창용과 황경호가 ‘H의 집은 어디인가’란 타이틀로 퍼포먼스 발표회를 가졌다. 이들은 1999년 12월 빨간 잠수함 프로젝트를 선언하였으나 아쉽게도 그 활동은 오래가지 못하고 2001년을 기점으로 막을 내렸다.

2천년 대 들어 ‘부산 행위예술가회’
창립 계로 활발해져가

2000년도 부산행위예술가회의 창립은 어쩌면 이러한 분위기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연령에서 오는 세대 차이 때문인지 초기에 이들은 이렇다 할 교류가 없었다. 부산행위예술가회의 창립 명단에 퍼포먼스 파크 멤버들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이다.

이들이 만나게 되는 것은 이듬해인 2001년 부산 민주공원 소극장에서 열린 [2001 부산행위설치예술제](2011.11.10-15)에서 였다. ‘그들의 심장은 뛰고 있는가’를 주제로 열린 이 발표회에서 부산행위예술가회의 대표 김춘기는 ‘꿈꾸는 자의 향연’을, 김영아는 ‘풍물굿’을 선보였다. 퍼포먼스 파크 팀의 허창용, 황경호이 참여하였으며, 아마추어 록 그룹 기타리스트 임대호가 마임 퍼포먼스를 발표하였다. 한편, 이 행사에는 전국 각지에서 행위예술가들이 참가하였는데 타이거 백, 김백기, 김자경, 문재선, 장군, 신용구, 김은미, 이국희, 김광철, 류환, 김석환, 황민수 등이 그들이다.

규모 면에서 볼 때, 광주비엔날레에 버금가는 부산비엔날레는 이따금 훌륭한 퍼포먼스의 장을 제공하였다. 전위를 추구하는 비엔날레의 정체성은 매번은 아니어도 잦은 퍼포먼스의 기회를 제공했다. 초대작가가 행위예술가인 경우도 있고, 타장르와 병행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관객이 비엔날레 행사장에서 퍼포먼스를 접하는 일은 흔했다.

‘문화에서 문화로(Culture meets Culture)’를 주제로 열린 [2002 부산비엔날레]에서 6개국 15명의 행위예술가가 참여한 행위예술제(Artists of Performance in Busan 2002)가 그러했다. ‘새로운 아시아의 정신•접•촉•열•풍’을 주제로 한 이 행위예술제에는 빵인간(Bread Man)으로 유명한 일본의 타스미 오리모토를 비롯하여 헬레나 빌라로보스, 헤이 윤 창, 헤이 쳉야오, 곡망호, 사카모토 나오코, 황리, 김계현, 이상진, 김광철, 이승택, 성능경, 이건용, 히구마 하루오가 참가하였다.

한편, 2000년부터 인터넷 라이브 퍼포먼스를 추구해 온 성백은 2003년 4월 1일에 ‘24h, 그 작업과 일상’을 주제로 박장렬, 김현정, 권오경, 이소라, 김혜원과 함께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라이브 퍼포먼스를 벌였다. 작가와 대중 간의 소통에 따른 어려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 성백은 이 라이브 퍼포먼스를 통해 인터넷의 소통 기능에 주목, 다양한 실험을 통해 관객과 작가 내지는 작품 사이에 존재하는 두꺼운 벽을 허물고자 하였다.

Ⅳ.

2000년대 접어들어 부산에서 나타난 퍼포먼스의 양상은 서울을 비롯한 전국적 양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2008년에 창립한 제1회 [부산국제행위예술제]와 2014년에 창립한 [openARTs Project in Busan]이 그것이다. 두 행사 모두 성백이 창설자로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행위예술 축제이다.

2000년대 이후 부산의 행위예술제는 시간이 갈수록 자리를 잡아가게 된다. 1990년대의 부산 퍼포먼스계를 이끌어 오던 이상진과 김춘기의 존재가 희미해지면서 성백과 몸더하기 대표인 서수연의 활동무대가 펼쳐진다. 이 두 사람은 앞에서 언급한 [부산국제행위예술제]와 [openARTs Project in Busan]을 주축으로 [꽃마을자연미술제](2005- ), [꽃마을국제자연미술제], [몸더하기 하이브리드 퍼포먼스 아트쇼] 등등의 다양한 행위예술제를 주관하면서 국내적으로는 서울, 전주, 안동, 제주, 전주, 인천 등등 행위예술 거점 지역의 맹주들과 교류를 갖기 시작했다. 즉, 서울의 김백기(한국실험예술제)를 비롯하여 전주의 심홍재(전주국제행위예술제), 안동의 이혁발(안동국제행위예술제), 문재선(Pan Asia), 서울/인천의 유지환 등등이 그들이다.

2016년에 성백이 설립한 복합문화예술공간 머지(MERGE)는 부산 퍼포먼스계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카페와 전시공간 및 자료실을 겸한 이 공간은 숱한 퍼포먼스 행사를 치러낸 산실과도 같은 곳이다. 설립이후 다양한 행사들이 이곳에서 기획되었고, 치러졌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