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 예술가와 신체 Ⅰ
[윤진섭의 비평프리즘] 예술가와 신체 Ⅰ
  • 윤진섭 미술평론가
  • 승인 2022.11.09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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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 미술평론가
▲윤진섭 미술평론가

"흔히 퍼포먼스는 전위예술(avant-garde art)의 대표 격으로 간주된다. 그것은 금세기 초엽의 다다(Dada), 미래파, 러시아 아방가르드 등 극렬한 미술운동을 통해 태동된 이후 1970년대 개념미술의 등장과 함께 예술가들의 새로운 예술에 대한 개념, 태도, 방법에 대한 실천으로 확산돼 나갔다. 그들은 자신의 몸을 매체로 다양한 예술적 실험을 전개했다. 예술에 대한 개념의 확장과 더불어 몸을 매개로 한 다양한 예술 장르의 결합은 토탈 아트(Total Art)를 향한 퍼포먼스의 예술적 가능성에 대한 타진이었다. 그 중에서도 예술과 일상의 결합은 퍼포먼스의 중추적인 미학적 개념으로 예술의 시원을 향한 외침이라고 할 수 있다."

위 글은 2012년에 펴낸 나의 책 <행위예술의 이론과 현장> 의 머리글 중에서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이 책을 쓸 당시만 해도 퍼포먼스의 개념은 예술가의 신체와 사물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즉 행위예술가의 주요 표현 수단인 신체와 보조적 재료인 사물이 중심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2천년대 중반을 전후하여 퍼포먼스의 상황은 급변하게 된다. 가장 혁신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인터넷 시스템을 이용한 얼책(facebook)의 이용이었다. 컴퓨터의 발달이 낳은 이 신매체는 지구촌을 하나로 묶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으며, 가상 공간 속에서 5천명을 한 단위로 하는 수많은 부족장들을 탄생시켰다. 얼친(facebook friend) 한 사람당 친구 수를 5천 명으로 제한하는 이 시스톔은 공유(share)가 특징인데, 가령 지구촌의 총 얼친 수가 10억 명일 경우 부족은 2십 만 개에 달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산술적인 수치에 불과하고 친구는 서로 겹칠 수 있기 때문에 그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2010년도의 어느날 나는 얼책 퍼포먼스를 시도한 적이 있는데, 네이버에서 맛있어 보이는 케이크 이미지를 캡쳐해서 얼책에 올리고 나의 생일에 축하 메시지를 보낸 다국적의 친구들에게 답례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메시지에서 오자를 발견한 내가 정정을 하는 순간, 실수를 하여 내 계정에서 이미지가 사라지고 난 얼마 후 내가 보낸 메시지가 자신의 계정에서 사라졌다는 보고가 여러 명에게서 들어왔다. 그것은 분명 나의 오판이었다. 내 생각에 지구촌 곳곳에 산재한 나의 얼친들이 메시지를 릴레이식으로 공유해가면 지구를 반 바퀴 돌아 가령, 한국의 반대편에 있는 상파울루에 사는 친구에 도달할 수 있고, 그것은 또한 지구를 여러 겹으로 감쌀 수 있다는 나의 상상이 여지없이 무너진 순간이었다. 비록 가상의 세계였지만 벌집에 존재하는 수많은 육각형의 작은 쪽방(cell)처럼 뚫리지 않은 방호벽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몸을 매개로 한 다양한 예술 장르 결합, 토탈아트 향한 예술적 가능성 타진

그러면 당시 나는 왜 부족이니 부족장이니 하는 용어를 썼는가? 나는 선형적(linear) 역사관의 산물인 모더니즘에서 리좀적(rhizomatic) 전개의 상징으로 얼책의 개념적 도형을 떠올렸고, 마치 감자뿌리처럼 얽히고 설킨 이 구조가 반모더니즘 혹은 포스트모더니티의 상징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포스트모더니티가 지닌 '시원으로의 회귀(back to the root)' 현상은 얼책의 전개구조와 개념적으로 기막히게 일치하기 때문이었다.

인터넷을 이용하여 퍼포먼스를 한 작가로 가장 인상깊은 사람은 호주 출신의 스텔락(Stelarc)을 꼽을 수 있다. 나는 2천년도에 [서울국제행위예술제(Seoul International Performance Art Festival/SIPAF2000]를 기흭하면서 스텔락을 비롯하여 성형수술 퍼포먼스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올랑(Orlan), 빵인간(Breadman)으로 유명한 타스미 오리모토를 초대하였다. 퍼포먼스계의 세계적인 대가들인 이들이 서울에 왔을 때 전국의 매스컴이 열광적으로 보도를 했다.

각설하고, 그렇다면 스텔락은 누구인가? 일본에 오래 거주한 그는 벌거벗은 몸에 갈고리를 꿰어 천정에 매달린 퍼포먼스를 필두로, 차들이 붐비는 도심의 수십 층 높이 빌딩사이에 와이어를 설치한 뒤, 역시 벌거벗은 몸에 갈고리를 꿰어 매달린 퍼포먼스를 행했다. 스텔락 퍼포먼스의 진가는 인터넷을 활용하면서 배가되었다.

[다음호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