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할 수 없는 매일의 기록, 우리를 마주하는 순간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매일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개인의 일상 한 순간을 포착해 화면을 완성하는 작가 김은정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학고재 신관에서 오는 12월 10일까지 개최되는 김은정 개인전 《매일매일( )》이다. 전시는 학고재 온라인 공간 오룸(OROOM)에서도 같은 기간 진행된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학고재 디자인|프로젝트 스페이스에서 선보인 《가장 희미한 해》의 연장선상에서 마련한 전시다.
김은정(b. 1986, 경남 거제)은 미술계가 주목하는 청년세대 작가다. 회화를 중심으로 판화, 도자, 시각디자인 분야를 넘나들며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작품세계를 키워가고 있다. 김은정은 삶 속 다양한 사건과 사람들의 정서를 날씨의 요소에 빗대어 보는 시도로 매일의 날씨와 일상적 경험을 소재 삼아 작업한다.
이번 전시 제목 《매일매일( )》에 사용된 빈 괄호는 일상에 내재한 우연성을 상징한다. 자꾸만 어긋나는 기상예보처럼, 예측할 수 없는 매일의 의미를 비워 둔 공백으로 표현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제작한 회화 및 오브제 작품 총 49점을 선보인다. 오브제 작품 중에는 회화 속 사물을 그대로 표현한 작품들도 있다. 회화 작품 옆에 놓은 작은 오브제 작업들은 회화와 현실의 연결성을 희미하게 잇고 있는 듯도 하다.
김은정의 화면은 온난한 색채와 서정적인 이야기 구조를 지니고 있다. 편안하고 다가가기 쉬우면서도 특유의 독창성과 활기 어린 붓질이 돋보인다. 또한, 자칫 화려해 보일 수 있는 색감들을 자연스럽게 화면 안으로 녹여내고, 화면이 품고 있는 서사를 통해 색감의 분위기 또한 부드럽게 정리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큰 작품이자 신작인 <구름의 모서리>는 조지아 오키프의 〈Sky Above Clouds IV〉 (1965)를 오마주 해 그린 작품으로 최근 장거리 비행 중 봤던 창 밖 구름에서 시작됐다. 작가는 비행 중 본 끝없이 밀려오는 구름이 바다 위 파도 같기도 하고, 산처럼 보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표면을 비추는 햇빛을 바라보며 서로 연결된 커다란 세계에 대해 생각했고, 그 생각의 확장 속 작가는 타국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전 지구적 규모의 전염병에 대해서도 다시금 떠올렸다. 세상 속 모든 존재는 마치 가느다란 실로 연결된 것처럼,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는 생각이 이어진 작품이다.
<구름의 모서리>와 이어지는 화면을 공유하는 <읽는 사람>은 작가가 북아프리카 튀니지 여행 중 본 여인을 소재로 그린 것이다. 해변에 앉아 오래도록 책을 읽던 히잡 쓴 여인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본 작가는 산자락 아래에는 정체 모를 그림자들이 불안하게 서성이고, 구름 같은 덩어리들이 부유하는 공간 속에 그 여인을 배치했다. 불안정한 상황 가운데, 여인은 멈추지 않고 자신의 책 읽기에 몰두하고 있다. 김은정은 이 작품을 통해서 “불확실한 변화들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읽어내는’ 사람이고 싶다”라고 말한다.
김은정이 만드는 화면은 어떤 특별한 날의 날씨인 동시에 여러 날들의 날씨가 함께 담겨 있는 듯하다. 그 날씨는 자연의 것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개별 존재의 내면이기도 하다. 여러 날의 날씨와 여러 날의 감정이 이어진 김은정의 화폭은 항상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일상을 마주하는 순간들을 연상케 한다. 정말 사소하지만, 우리에게 항상 어떤 감흥을 전하고 사라지는 어떤 것들을 떠올리게 하고 그 분위기에 빠져들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한다.
이번 전시 서문을 쓴 홍예지 미술비평가는 “삶에 통합된 날씨는 우리가 겪는 다양한 사건과 만남을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내밀한 감정과 기분, 느낌을 다른 이와 공유하는 매개체가 되어준다. 김은정의 《매일매일 ( )》은 바로 이런 시각에서 날씨를 바라보며 일상을 가꾸어 나간 기록이다. 화가의 몸을 감싸는 청량한 공기와 높이 떠 있는 구름,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산책길에 만난 이웃과 고양이들이 사계절을 함께 통과하는 여정을 담았다. 마치 한 권의 시집처럼, 화면과 화면을 연결하는 자유 연상이 미묘한 아름다움의 세계를 열어 보인다”라고 말한다.
작가의 글을 통해 김은정은 “삶은 새로운 날씨와 함께 변모한다. 인간에게 주어지는 ‘공통의 경험’ 보편적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을 날씨에 빗대어본다”라고 말한다. 이번 전시는 김은정이 실제로 마주했던 일상의 날씨, 순간과 그것들을 엮어 사실은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가끔 세계는 명징한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예측할 수 없고 확실하지 않는 것들이 흐를 수 있는 공간들, 그것이 김은정이 만들어 가고 있는 ‘매일매일 ( )’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