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rcial-Interview]이어령, 국보급 지성의 국보급 문화 전망
[Sprcial-Interview]이어령, 국보급 지성의 국보급 문화 전망
  • 인터뷰·정리/이은영 발행인 ·박기훈 기자
  • 승인 2010.02.01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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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은 본격적인 21C 패러다임이 시작되는 해’

 

‘홍조(鴻爪)’ 란 기러기가 눈이나 진흙위에 남긴 발자국을 일컫는 말이다. 발자국이 이내 자취 없이 사라진다는 뜻으로 인생의 허무함을 의미한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자신의 자취를 알리려 애꿎은 발자국을 남겨봤자 곧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무하지만 허무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 이라며 보람을 느끼는 이도 있다. 경인년 새해를 맞아 본지에서 준비한 ‘문화계 원로에게 듣는다’ 에서는 남들에게 공헌이 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발자국을 끝없이 내고 있는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이야기를 준비했다.

◇2010년, 새로운 패러다임의 본격적인 시작

2010년 우리나라 문화계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이어령 장관은 우리 주위의 많은 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했다. 즉, 자기 영역의 울타리를 너무 높이 쌓아 고립되면 발전하지 못하므로 비슷한 영역은 같이 어울려야 한다는 의미다. 하다못해 요즘은 격투기조차도 한 가지가 아닌 두 가지가 결합되는 이종격투기의 시대이다.

 

 

학제간 예술간 벽이 허물어져 문화에 있어서 전통연희와 같은 공연예술과 문학이 서로 본격적으로 긴밀하게 얽혀야 한다고 했다. 순수예술인 미술이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 접목돼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미의 한계를 넘어 설 수 있는 것을 예로들 수 있다. “2010년은 두 자리 수이기 때문에 본격적인 21세기의 패러다임이 시작되는 해”라고 말한 그는 상호 결합하고 융합되는 열려진 문화계로 새로 태어나는 것이 절실히 요망된다고 말했다.

둘째로 문화의 중심 이동에 대해 예견했다. 문화의 주도권이 서구 중심에서 아시아 시대로 넘어온 오늘날, 우리는 한류 열풍의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예술계에선 중국이 우리를 앞지르고 있다고 했다.

“벌써 미술품 같은 경우는 한국미술가들보다 국제가가 높습니다. IT 분야도 우리를 위협하고 있어요. 미국에 많던 중국계 IT전문가들이 자국의 경제가 좋아져 다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죠. 박사학위도 중국이 세계 2위입니다. 사람들은 인도 IT 업계가 크다고들 하지만 거의 제자리 수준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중국의 경제, 문화 등 모든 것이 올해의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므로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여성들의 진출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사회, 문화발전을 이루는 여자의 힘이 큰 것을 트렌드로 보는 동시에 여성문화에 대한 재평가의 시간이 필요한 때라는 의미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여성 파워는 매우 세다. 각 직장이나 대학에서 필기시험을 보면 여성이 70% 이상을 차지한다. 남자와 여자가 역전됐다. 이것은 남자가 불리한 게 아니라 여성이 불리하다. 다시 말해, 여성 모델 속에서 크기 때문에 양성의 균형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한 쪽이 너무 우세해지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식민지쟁탈로 인해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남성패권 시대를 보면 알 수 있다. 저 출산문제의 경우도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출산권을 구체적으로 행사하기 때문에 생기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것은 여권신장이 아니다.

 

 

“여권 신장과 여성의 역할과 내실을 기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물론 아직도 여권이 신장돼야 될 부분들이 많이 있지만 억압에서 풀려나기 위해 혁명으로 쟁취하는 단계는 이미 지난 지 오래입니다. 이젠 여성이 얻은 권한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해요”

이제는 여성이 자신의 여권을 자기 가정에만 국한해서 볼 것이 아니라, 좀 더 넓고 크게 시야를 가지고 사회, 국가, 더 나아가 인류를 위해 봐야한다. 그래야 교육도 그런 차원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만약 계속 자기 가정 내에만 계속 국한된다면 필기시험 외에 다른 부분까지 보고 판단하는 입학사정관제가 보편화되었을 때 아이들 교육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대학입학사정관제 원년인 올해, 아이들은 필기시험 점수위주 교육과 더불어 엄청난 봉사활동과 경험까지 강요당해 남아나지 못하게 된다. 교양과 기존의 교육방식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안간힘을 쓰다보면 오히려 더 낙후될 수 있다는 얘기이다.

여권의 넓은 확대는 학력사회의 획일주의, 고정관념, 선입관에 빠져있는 우리나라 교육계에 변화를 몰고 올 동시에 물건 사듯이 학력을 사려는 이들도 사라질 것이다.

◇창조학교를 통해 지적 상상력과 영감을 교환하라

창조학교는 오늘날 교육의 부정이 아니다. 다만 ‘얼음이 녹으면 무엇이 되는가’ 라는 질문에‘물이 된다’는 지식의 전달이 아닌 ‘봄이 온다’, ‘펭귄이 사라진다’ 는 창조력의 성장을 도와준다. 정상적인 교과과정에서 놓친 것들, 자신 안에 묻혀있는 창조성과 잠재력을 꺼내주어  한국의 아인슈타인이나 에디슨에게 발판을 마련해주는 곳이 바로 창조학교이다.

멘티라 불리는 창조학교의 회원들이 자신이 원하는 멘토의 강의를 듣기 위해선 각 멘토마다 할당되어 있는 50명의 수용인원이 다 차야만 한다. 50명 이하가 되면 그 방은 잠정적으로 폐쇄가 되고 다른 멘토를 찾아야하는 시스템이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멘티들은 멘토가 귀찮아 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면서 활동하고, 멘토들은 그에 상응하는 피드백을 해줘야한다. 무한한 지식과 정보의 보고이지만, 서로 서로가 적극적인 곳만 기회를 준다.

 

 

“성경에 ‘떡을 달라는 자에게 누가 돌을 줄 것이며, 생선을 달라는 자에게 누가 뱀을 줄 것인가’ 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이 원해야지, 절대 여기서 먹여주는 것이 아니에요. 낙제도 시험도 없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사람은 어느 대학보다도 더 많은 도움이 된다고 확신합니다.”

이렇게 각광받고 있는 창조학교도 처음엔 어려움이 많았다. 여러 곳에 창조학교의 중요성을 알렸지만  ‘사이버 공간 교육’에 대한 편견과 ‘창조’라는 교육내용에 대한 인지부족 때문에 다들 그 가치를 잘 몰라본 것이다. 그러다 경기도의 김문수 지사가 그의 의견에 공감하여 적극적으로 수용을 했다. 이는 서울의 모든 멘토와 인재를 다 빼앗아 온 격이 됐다. 다르게 말하면 경기도가 ‘창조싸움’에서 이긴 것이다.

‘창조싸움’ 이란 ‘어떤 것의 가치를 알아보고 가져가는 쟁탈전’ 이다. 작게는 개인 간, 넓게는 지방정책싸움, 국가 간의 신경전 등까지 다 포괄하는 문제이다. 돌인지 옥인지 구분하는, 이른바 창조의 구분 작업에서는 가져가는 것이 임자다. 알아보지 못했던 이들은 나중에 후회만 할 뿐이다. 이러한 창조의 구분 작업과 ‘창조싸움’ 을 거친 창조학교도 그 태생부터가 창조적 환경과 떼려야 뗄 수가 없다.

이렇듯 우리나라 인재육성을 위해 꼭 필요한 창조집단인 ‘창조학교’에 더욱 많은 이들의 관심이 요구된다. 돈이나 정치목적 없는 순수한 인재 육성의 취지를 가진 이 프로젝트가 혹여 실패라도 한다면 옆의 경쟁자들을 이기기위한 공부에만 계속 집중하여 글로벌 시대에서 도태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많은 이들의 생각을 깨워주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 곳곳에 숨어있는 인재들의 싹을 틔어 주리라 기대되는 창조학교지만 교과 과정에 말하는 원리나 개념과 상충되어 혼란이 야기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조심스러운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이어령 장관은 “오히려 괴리를 느끼라는 것”이라고 시원하게 말했다. 이는 인사이드 지식과 아웃사이드 지식을 직접 비교해보고 체험해보면서 ‘보통사람과 똑같이 현실과 발을 딛고 살면서 바르게 생각하는 것의 중요성’을 인지해보라는 취지인 셈이다.

특별한 사무실 하나 없이 경기도의 지원과 후원자들의 성금을 소프트웨어에 체계적으로 투자하는 진정한 창조의 무대 위에서 어떤 멋진 공연을 할 것인지는 우리의 몫이다.

“‘아, 이거다’라는 어떤 교감을 통해 1~2초 만에 바뀔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람입니다. 그런 교감을 위해 쉽게 접할 수 없는 한국의 문화재급 멘토들과의 자리를 만들어놓았을 뿐입니다. 창조학교가 앞으로 갈 방향은 후대의 몫입니다.”

◇이제는 3D가 아닌 4D(디지로그(Digilog))이다

얼마 전에 펼쳐진 ‘디지로그 사물놀이 : 죽은 나무 꽃피우기(이하 디지로그 사물놀이)’ 에서 나오는 죽은 나무는 오늘날 인간들의 경제, 환경, 도덕 등 형체만 남고 사막화된 현실을 표현했다. 여기에 생명과 영혼을 넣는 것이 바로 사물놀이다.

 

 

중국과 일본에는 없는 우리 고유의 사물놀이는 징, 꽹과리, 장구, 북으로 이루어진다. 2개의 가죽과 2개의 금속, 유기물와 무기물로 이루어진 세계이다. 4가지 악기는 각각 봄여름가을겨울을 상징한다. 그 4가지가 어울리는 장이 바로 사물놀이다. 명곡인 ‘비발디의 사계’조차 사계절을 각각 따로 표현하지만 우리의 사물놀이는 4계절이 한꺼번에 서로 얽히면서 어울리는 우주적인 울림을 들려준다.

“우리는 밥과 국물을 같이 먹고, 국물이 아닌 밥도 사발에 담아 먹습니다. 음식체계에 또한 거의 국물이 없는 음식이 없죠. 필요하지 않은 것까지도 필요한 것 못지않게 포용하는 ‘국물문화’입니다. 우리가 흔히 야박한 사람을 일컬을 때 ‘저 집은 국물도 없다’고 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음식뿐만 아니라 바지도 넉넉하니 여유가 많고, 옷고름도 길어서 남고, 종소리조차도 ‘웅웅웅’ 길게 울리죠. 이에 반해 서양은 ‘배제의 문화’입니다. 음악을 예로 들어볼까요. 아날로그는 우리가 감청할 수 없는 필요 없는 요소들까지 고루 들어가 있지요. 그에 반해 서양의 디지털은 압축을 통해 필요 없는 부분을 깔끔히 제거하지요. 하지만 디지털 음악은 뭔가 감정이 끌어 오르는 것이 없어요.”

하지만 농경시대의 사물놀이에 머물러있는 것만으로는 오늘날의 대중과 소통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좋은 전통이라도 태어났을 그 당시 사회의 산물이기 때문에 요즘의 디지털인 것들과 어울려 한 단계 진화와 변화를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자연의 전통적 흐름을 상징하는 사물놀이에 3차원 입체영상 기술을 접목시킨 ‘디지로그 사물놀이’가 탄생했다. 이 공연대본을 직접 작성한 이어령 장관은 외국의 3D 기술보다 더 진보한 형태라며 자부심을 표현했다.

“요즘 흥행가두를 달리는 영화 ‘아바타’는 일방적으로 입체영상을 보는 것입니다. 반면 우리가 이번에 기획한 ‘디지로그 사물놀이’는 입체영상과 실제공간이 함께하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차원이 당연히 우리가 더 높다고 할 수 있죠. 그 쪽은 기계에만 의존한 거고 우린 근육과 핏줄이 살아 숨 쉬는 인간과 디지털 홀로그램이 하나가 되어 춤추고 노래하는데 당연한 게 아닐까요?”

 

 

‘디지로그 사물놀이’는 대기업의 프레젠테이션 등에 사용되는 입체 홀로그램을 예술로 만 ‘상업용의 아트화’를 이룬 작품이다. 포르노나 스포츠 중계 등 오락으로만 즐기던 상업용 비디오 분야를 비디오 미디어 아트라는 예술적인 경지로 만든 고 백남준씨와 상통하는 부분이다. “선비의 나라라서 그런지 남들의 상업용을 예술의 경지로 끝맺음하는 것은 한국인만의 별난 특성” 이라고 하는 이어령 장관은 국제적인 자리에서도 변화를 준 적이 있다.

모두가 한복 입은 여성들만을 내보낼 때, 그는 선두에 서는 여성에게 초미니스커트를 입히는 등의 변화를 시도했다. 오히려 그것이 한복의 아름다움을 더 각인시키는 동시에 한국여성의 서구적인 아름다움까지 찬사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별난 특성’을 가진 우리나라 사람 중에 가장 ‘별난 사람’은 바로 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박물관은 그 나라 문화수준의 척도이다

지난해는 우리나라 박물관 100주년이었다. 그러나 그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현재 우리 주변의 박물관은 썰렁할 뿐이다.

계몽주의와 르네상스 등을 겪으면서 민주화가 정착되고 교양과 문화가 생활화된 서구에서도 아직 문화는 귀족이나 권력층의 것 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찌 보면 아직도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문화의 권력화’가 가장 심한 곳일지 모른다. 왕이나 제후들이 개인의 취미로 컬렉션한 것을 민주화되면서 국민들에게 공개한 여민해락의 정신은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다. 살기 바빠 손이 가지 못하는 사람, 잘 살아도 문화와 담을 쌓고 지내는 사람들만 넘쳐 난다. 이러다보니 우리의 마음속에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문화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남아버려 문턱만 높아졌다.

이어령 장관은 지역 박물관이 이리오라고 손짓만 하지 말고 직접 찾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우리에게 기회를 주면 ‘박물관에 이런 체계적인 지식이 있었구나’, ‘박물관이 이러한 곳이었구나’ 감탄하면서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문학박물관을 이야기하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없는 돈 들이면서 수익성 아무것도 없는 문학박물관을 하지만 행사 따위나 해야 사람들이 좀 올뿐이에요. 여러 가지 볼만한 문학들이 많은데 참 가슴이 아파요. 나날이 문학의 관심은 없어지고, ‘과연 누구를 위해 이것을 하고 있나’ 등의 회의가 들 때도 있어요. 그럼 앞으로 누가 박물관을 하겠어요? 물론 자기가 갖고 있는 소장품을 전시하는 건 몰라도 소장품을 어렵게 구하고 모아가면서까지 박물관하려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나라에 천개의 박물관 미술관이 있어야 된다고 주장까지 했던 그는 ‘대를 이어서 박물관을 가는 사람’ 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큐레이터들이 그 지역학교의 초청선생으로 가서 아이들에게 박물관에 대한 교육을 시켜주면, 교육을 받은 그 사람이 박물관을 다니게 될 것이고, 또 그 아들과 손자가 다니게 되죠. 그게 문화국가고, 국격이 높아지는 것 이예요. GDP가 문제가 아니라 박물관을 찾아가는 수가 얼마나 되느냐가 그 나라 문화와 교양의 척도가 됩니다.”

‘권리위에 잠자는 자는 권리를 파괴하는자’ 라는 말이 있다. 문화도 마찬가지다. 누릴 권리가 있는 데도 방치하고 누리지 않으면, 그 사람만 누리지 않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문화를 파괴하는 수순에 이르게 된다.

덧붙여 이어령 장관은 우리 사회가 안정과 건전한 선민 문화국을 위해선 개개인의 교양을 높이고 라이프 스타일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즐겁다는 개념을 돈을 벌거나 쓰는 즐거움의 원초적인 쾌락에서 탈피하여 제대로 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좀 더 생산적이고 예술적인 개념으로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격은 숫자가 아닌 인격에서 생긴다”는 그는 현재 본지에서 추진하고 있는 11公 (한 달에 한 번 공연장 가기) 캠페인은 매우 바람직하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술 먹으면서 건강 해치고, 카지노와 같은 도박으로 스트레스만 쌓는 비생산적인 여가활동보다 무료나 저렴한 가격으로 공연장에 가서 마음을 정화하는 것이 진정한 문화여가입니다. 기존의 잘못된 습관을 깨는 것도 습관입니다. 습관은 문화이고 사회입니다. 즉, 문화는 습관이에요. 많은 이들이 공연장을 다니면서 즐거움이 아닌 쾌락만 추구하는 습관이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앞을 내다보는 퍼블릭 서비스가 필요하다

이어령 장관은 1999년 밀레니엄 시대를 맞아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면서 당시 수많은 공공 서비스를 제안했다. 그 중에 하나가 ‘아파트 단위’의 행정이었다.

 

 

“아파트 아래층에는 사람들이 잘 안 살려고 하잖아요? 그래서 그곳에 행정기관을 만들자는 의견을 냈어요. 앞으로는 구 단위의 행정이 아닌 타운 단위로 해야 한다, 문화부고 행정부고 정보통신부고 간에 아파트 단지 내에 직접 파고들어가서 서비스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우리나라의 백년, 이백년 앞을 내다 본 의견을 내놓았지만 돌아온 것은 거부와 외면뿐이라 상처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율곡이이의 십만양병설을 쓸데없는 걱정으로 치부해 결국 국가발전 속도에 타격을 받았던 역사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그는 이후 개인 글쓰기에만 전념하겠다고 맹세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창조학교나 박물관 운영 등 여러 퍼블릭 서비스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나이 70세를 넘기면 더 고집스럽게 사욕을 챙기는 사람과 해탈의 경지에 올라 후대를 위해 남은여생을 바치는 사람의 두 부류가 있더라.” 고 말하는 그는 완벽한 후자다.

이러한 그도 젊은 작가 시절에는 다른 이들의 왕국에서 신하노릇이나 하는 것이 싫어 그만의 상상력과 창조력의 왕국을 만들고 살았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개인이 항상 퍼블릭보다 앞서고, 개인의 행위가 항상 역사나 시대 상황을 끌고 가는 것을 삶의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그런데 점점 나이가 들고 종교도 가지면서 나보다는 나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의 삶 속에서  ‘남은 여생동안 무엇을 해줄 수 있겠는가’ 를 고민하게 되더군요. 그렇게 살다보니 ‘나라를 빛낸 상’ 까지 타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나’를 빛내기 위해 살아왔는데, ‘라’라는 글자 하나 더 붙은 게 이렇게 행복한 것인지 몰랐었죠.”

 

 

이렇듯 자신의 넓고 깊은 지식을 남에게 주고 떠나기 위한 일종의 자기정리에 몰두하고 있는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그는 한편으로 고령화 시대에서 사회활동능력이 늘어나는 것을 보여주는 모델이 되고 싶어 한다. 그는 ‘나도 저 사람처럼 일할 수 있다’ 는 생각을 줄 수 있는 다른 이들의 노년의 기념비로 남기위해 오늘도 쉬지 않고 달리고 있다.

“나이든 어르신들의 활동을 연장시켜줘서 70대도 50대처럼 일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비극입니다. 젊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뺏는 취지가 아니라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경륜을 통해 평생의 누구도 체험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살려서 활동가능나이를 늘려줘야 행복한 사회가 올 것입니다.”

 사진 김형관 객원 사진기자 press@sctoday.co.kr

 

이어령(李御寧 1934~)
문학평론가· 수필가· 소설가. 초대 문화부 장관

1934년 충남아산 출생.
서울대학교 국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
경기고등학교 교사, 이화여자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역임
'서울신문', '한국일보', '경향신문', '중앙일보' 논설위원 역임
초대 문화부 장관 역임
이화여대 석좌교수 역임
문화평론가로 72-85년 '문학사상' 주간 역임
現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

1979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수상
1989년 체육문장맹호장 수상
1992년 일본 디자인문화상 수상
1996년 일본 국제문화교류재단 대상 수상
2001년 서울시문화상 수상
2003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수상
2009년 마사오카 시키 국제 하이쿠상 수상
2009년 나라현립대학 명예총장 위촉